머리말

정세가 반동기를 마감하고 고양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세계대공황이 정세를 밀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반전의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으나 퇴조의 정세가 반전된 것은 아니다. 정세가 반전되는 것은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한 주체역량이 정세에 정확히 조응하는 투쟁을 벌일 때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전략전술을 가다듬고 정교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대공황은 각국의 계급대립을 심화시키고 있으나 각국에서 그러한 계급대립이 발현되고 계급투쟁으로 성장하는 것은 각국 고유의 정치적, 경제적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각국의 고유한 전략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남한의 경우도 주어진 역사적 조건을 파악하고 그에 걸맞는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절실하다.

파시즘에서 제한적이지만 부르주아민주주의로 이행했다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남한의 정치체제는 사회주의적 과제와 민주주의적 과제의 관계를 쟁점으로 만들고 있다.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을 해야 하는데 민주주의의 토대는 취약하고, 현실 정치는 여전히 부르주아 간의 민주주의 문제가 지배하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자신의 전략노선을 구체화해야 하는지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본질, 부르주아민주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관계, 남한 민주주의의 역사를 녹여내어 노동자계급의 전략노선을 구체화하고 풍부히 해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온갖 잘못된 견해를 비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은 민주주의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관점을 확보하는 과정이고 민주적 과제와 사회주의적 과제의 관계라는 쟁점을 풀어내는 것이다.

1. 당면변혁의 성격

민주주의를 추상적으로 파악하여 다수 민중의 지배 혹은 보통선거 등으로 해석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해 잘못된 이해로 빠지는 첩경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파악은 현실에 기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한 사회의 현실, 계급대립의 현실에 기초하여 이에 대해 민주주의의 문제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것은 변혁의 과정에서 민주주의 문제를 어떻게 해석할지로 모아진다. 이를 위해 우리사회의 당변 변혁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남한의 정치체제는 파시즘에서 제한된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변화되었다. 이렇게 파악하는 근거는 남한의 계급대립의 구도가 변화되었다는 것에 기인한다. 즉, 1980년대의 계급대립의 구도는 독점자본을 중핵으로 하는 반동부르주아지 대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블럭이 대립하고 있고 중간에 자유주의 부르주아지가 권력의 분점을 요구하며 반파쇼투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9년 지금의 계급대립구도는 이와 본질적으로 달라졌다. 여전히 반동 부르주아지와 자유주의 부르주아지가 대립하나 그것은 부차적인 것으로 변화하였고, 반동부르주아지와 자유주의 부르주아지를 포괄하는 보수적 지배집단을 한편으로 하고, 노동자계급과 민중을 한편으로 하는 계급대립이 성숙하고 있고, 중간에 소부르주아 우파를 중심으로 하는 중간층이 있다. 이러한 계급대립 구도의 변화는 변혁의 단계가 변화했다는 것을 말하고, 그것이 정치체제에서는 파시즘에서 제한적이지만 부르주아민주주의로 이행 혹은 보수대연합체제로의 이행으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변혁의 성격은 명백히 사회주의적 변혁의 단계로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사적 소유를 공격하지 않으면, 사회주의를 말하지 않으면 변혁의 동력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의 진보적 민주주의 변혁론은 상황의 변화에 맞지 않는 낡은 것이고, 그에 따라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활동은 실천적으로 개량주의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또 하나 확인해야 할 것은 우리 사회의 사회주의 변혁의 특수성이다. 우리 사회 사회주의변혁의 특수성은 남한의 계급투쟁의 역사에 의해 규정되는데, 핵심적인 것은 1980년대의 민족민주변혁이 승리하지 못하고 혁명이 유산되었다는 것이며, 그에 따라 파시즘에서 부르주아민주주의로 이행이 불철저하고 개량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국가보안법이 온존하고 파시즘의 후계세력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사회주의 변혁을 추진할 민주주의의 토대가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치적 조건은 일거에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세우는 변혁이 어려우며, 따라서 변혁의 단계를 나눌 필요성을 제기한다. 즉, 사회주의 변혁의 단계를 나누어야 하며, 그 1단계는 완전한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소부르주아 좌파를 포함한 노동자ㆍ민중권력을 수립하는 것은 목표로 하는 것이며, 그 과제로는 독점자본의 몰수와 국유화를 통한 사회주의적 혼합경제를 창출하는 것,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포함한 완전한 정치적 자유를 확보하는 것, 미제국주의의 축출과 민족통일 등 민족적ㆍ민주적 과제를 더불어 시행하는 것 등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주의 변혁의 1단계를 노동자계급이 주도하는 것을 통해 노동자ㆍ민중권력을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로 전화시키고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완전한 폐지, 착취의 완전한 폐지를 달성하여 사회주의 변혁의 2단계를 완수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사회주의 변혁의 1단계의 성격의 문제이다. 사회주의변혁의 1단계는 독점자본이라는 사적 소유의 가장 강대한 부분, 현 사회의 현실적 지배세력을 제거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 성격을 띠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반독점운동이 아니며 사적 소유에 대한 공격을 통해 그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주요 진지를 노동자계급이 점령한다는 의미를 띠는 것이고 따라서 민주주적 성격만을 띠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성격을 띠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이러한 독점자본의 몰수와 국유화가 자본주의를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약화시키고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정치적 힘을 강화시킨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적 성격을 띠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제는 동시에 전민중적 요구라는 점에서 노동자계급 이외에 광범한 세력을 사회주의 변혁의 1단계에 동원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고, 노동자계급은 이들을 동맹세력으로 묶어야 하는 과제를 갖는 것이다. 이들 동맹세력의 주요한 범위는 소부르주아 좌파 혹은 소부르주아 하층을 의미한다. 이들은 자본주의에 의해 몰락하는 세력으로 사회주의적 전망이 주어진다면 당면 변혁에 기꺼이 참가하고 노동자ㆍ민중권력의 구성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이외에 소부르주아 상층, 소부르주아 우파는 자본주의의 단물을 빨아먹고 자본주의하에서 계급상승을 꿈꾼다는 점에서 동맹의 대상이 아니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개량을 자신의 정치적 경향으로 갖는다.

2. 반독점 민주주의혁명론비판

위와 같이 당면변혁의 성격이 사회주의 변혁이며 또 특수하게 사회주의 변혁의 단계를 나누는 것은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선진국 혁명, 혹은 제국주의 국가의 혁명론으로서 등장했던 반독점민주주의 혁명론과 선을 긋는 것이다. 유럽과 일본 등의 제국주의 국가의 사회주의 세력은 2차대전 후 차츰 혁명성을 상실하고 개량주의로 경도되어 갔는데, 이들의 이러한 개량주의화를 합리화하는 것이 반독점 민주변혁론이다. 이들은 통일전선 전술과 2차대전후 인민주주의혁명의 경험을 개량주의적으로 해석하여, 제국주의 국가에서 당면변혁이 민주변혁이며 현실적 주적이 독점자본이라고 정식화했던 것이다. 여기서 문제점은 자본주의가 성숙할 대로 성숙한 상태에서 더구나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최대로 확보된 상태에서, 사회주의 변혁을 당면 과제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국주의 국가에서는 사적 소유를 정면으로 공격하고 그 결과 독점자본의 몰수, 사회화, 그리고 자본주의 사적 소유의 완전한 폐지로 나아갔어야 하는데, 이들은 이러한 정면투쟁을 회피하고 개량주의로 흘러갔던 것이다.

이는 실천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을 반독점 민주운동으로 후퇴시키는 것이었다. 즉,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가능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운동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희석시켰던 것이다. 그에 따라 이들의 전략을 구체적으로 보면 많은 오류가 드러난다. 이들의 반독점운동은 자연히 중소자본가까지 포함하는 것이고, 나아가 중소자본가도 민중의 한 구성부분으로 파악하였다¹⁾. 이러한 파악은 반독점민주주의 혁명론이 실은 부르주아적 반독점운동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사회주의운동이 개량주의운동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성숙한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자본가가 자본주의를 변혁하는 세력이라는 것인데, 이는 논리적으로도 오류이고 실제적으로는 개량주의화를 합리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운동에서는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전망은 전혀 확보될 수 없고, 자본주의 체제 내의 야당으로 변혁운동을 전락시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반독점 민주주의 혁명론을 거부하고 당면 변혁이 사회주의 변혁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전략노선을 세워야 한다. 제국주의국가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있는 신흥공업국인 남한의 경우, 사회주의 변혁을 통해서만 현재를 질곡을 타파하고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해방을 향해 전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선진국, 제국주의 국가들의 사회주의 세력의 혁명전략이 개량주의로 전락하게 된 것은, 세계적 차원에서 보면 쏘련의 후르시쵸프, 브레즈네프의 수정주의 노선의 영향이 컸다. 이들의 수정주의는 제국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로 평화적 이행의 가능성을 강조하고 통일전선을 우경적으로 해석하여 결국 반독점민주변혁론이라는 개량주의노선을 승인하는 것으로 흘러갔던 것이다. 따라서 선진국, 제국주의 국가의 변혁운동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변혁노선을 새롭게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3.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관계

그러면 당면변혁에서 민주적 과제와 사회주의적 과제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다루어보자. 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과 전 민중의 해방의 문제를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정치적 힘이 고양되는 것을 필요로 하고 그것은 민주주의 신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관계에 대하여 참으로 여러 가지의 입장들이 제출되고 그 중에는 여러 잘못된 견해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민주주의의 지속적 확대를 통해 민주적으로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고 러시아와 같이 봉기를 통한 것은 예외적 상황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민주주의의 지속적 심화를 주장한 점에서는 옳지만 민주주의의 계급성을 보지 못한다는 점에서 오류이다. 즉, 민주주의의 지속적 심화는 부르주아민주주의 단계에서 지속적 심화와 그것의 질적 비약으로 인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쟁취 문제가 있는데, 이러한 민주주의에서 질적 차이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의 지속적 심화는 부르주아민주주의의 지속적 심화라는 것, 따라서 그것을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로 전화시키기 위해서는 변혁이라는 질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민주주의에 대한 태도는 부르주아민주주의의 지속적 심화를 밀고나가되 그것을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로 전환시키기 위한 노력과 방향을 한시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민주주의의 지속적 심화라는 양의 문제와 그것의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로 전화라는 질적 문제를 동시에 제기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 민주주의에 대한 잘못된 견해는 민주주의와 독재를 대립시키는 견해이다. 사실 민주주의와 독재는 대립되는 견해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동일한 내용의 모순적 표현이라는 점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노동자계급에게는 부르주아 독재에 다름아니다. 이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노동자계급의 지배라는 동일한 내용의 같은 표현인 것이다. 따라서 카우츠키같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비난하며 민주주의를 대립시키는 것은 혁명에 대한 기회주의적 공격이고 배신적인 노선이다. 그리고 사회주의로 민주적 길이라는 노선을 제기하며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비난하는 플란차스 같은 경우는 민주주의의 확대 심화라는 면만 보았지 그것의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로 전환이라는 질적 측면을 보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과학적이다.

그러면 이러한 논의의 전제가 되는 민주주의의 본질의 문제를 살펴보자. 레닌은 민주주의를 ‘다수의 지배’로 파악하는 견해의 피상성을 지적했다. 레닌은 민주주의는 단순한 다수의 지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다수의 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강제력 즉, 국가라고 민주주의를 파악했던 것이다. 다수의 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적 힘의 문제, 그리고 그것을 구체화시키는 국가의 문제로 민주주의를 파악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참다운 과학적 접근인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본질은 권력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노동자계급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투쟁에 적극 나서야 하며 민주적 과제를 노동자계급이 주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 남한의 구체적 현실에서 민주주의 문제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남한 정치체제의 특징은 보수대연합 체제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반동부르주아지와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의 대립은 부차적인 것이고, 그들이 민주주의라는 쟁점을 놓고 대립하는 것은 자신들의 권력의 지분을 늘리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피상적인 대립을 기초로 그들은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데 그것은 반혁명 연합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라 민주당의 경우 아무리 민주주의를 외치더라도 그들은 이명박정권의 퇴진투쟁을 벌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유주의부르주아지를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정치적 힘을 강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들 보수적 지배집단의 민주주의는 매우 협소하며 제한된 것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국가보안법으로 사회주의세력의 정치적 진출을 가로막는데 이해를 같이 한다. 이는 이들이 더 이상의 진보성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따라서 부르주아체제 내이지만 더 이상의 민주주의의 신장을 위해서는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정치적 투쟁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사회주의 변혁의 단계에서 민주주의의 문제를 다루어보자. 과거의 혁명경험을 보면 민주변혁의 단계와 사회주의 변혁의 단계를 나누어 보는 것이 고전적인 관점이다. 러시아 혁명의 경우 전형적으로 이에 해당된다. 그리고 2차대전 후의 동유럽의 인민민주주의 혁명이나 중국의 혁명의 과정의 경우에도, 역시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만 혁명의 과제의 중점이란 점에서 보면 부르주아 민주주의 틀 내에서 변혁의 단계와 사회주의 변혁의 단계가 구분된다. 사례를 살펴보면 중국의 인민민주주의 혁명은 반제반봉건 혁명이 승리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한 1949년부터 약 6-7년간 반봉건 민주혁명을 진행하고, 1956년 이후부터 농업의 집단화 등 사회주의적 과제를 실현하는 단계로 접어든다. 이러한 고전적인 경험은 민주변혁 단계와 사회주의 변혁단계의 구분을 보여주지만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사회주의 변혁 단계에서 민주주의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우리 자신은 발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본질이 권력의 문제라는 것을 위에서 확인했고 사회주의적 과제의 본질이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해방, 착취의 폐지라는 점을 기초로 논의를 전개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회주의 변혁의 단계에서도 민주주의의 문제는 사활적인 것이다. 이는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정치적 힘의 문제, 나아가 국가의 문제이기 때문에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민주주의적 정치적 쟁점에 대해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노동자계급과 민중이 요구하는 민주적 과제를 강령으로까지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일정한 단계에서는 부르주아민주주의 틀 내에 머물 수 있다. 그러나 자본가계급이 진보성을 완전히 상실한 지금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정치적 힘의 고양으로 귀결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투쟁이 활성화되고 고양된다면 노동자계급은 부르주아 틀 내에 머무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민주주의로 전화라는 과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혁명과 민주주의 현 단계에서의 관계이다. 이렇게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활성화될 때, 그에 따라 증대되는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정치적 힘을 기초로 착취의 폐지라는 사회주의적 과제에 대해 제기할 때, 보다 커다란 힘과 영향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사회주의적 과제의 제기 없이는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힘을 얻을 수 없다. 착취의 폐지,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해방이라는 목표가 분명할 때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전진할 수 있다. 즉, 사회주의적 과제라는 내용이 민주주의라는 그릇에 담겨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사회주의 변혁의 1단계에서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적 민주주의 완전한실현인 동시에 부르주아민주주의의 지양이 될 수 있다. 즉, 부르주아 틀 내이지만 민주주의의 확대라는 양적 성장이 부르주아적 성격의 탈각이라는 질적 전환을 가져오는 것이고 이것이 노동자ㆍ민중권력이라는 국가의 수립문제로 구체화되는 것이다. 노동자ㆍ민중권력은 사적 소유의 즉각적이고도 완전한 폐지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아니지만 더 이상 자본가계급의 권력이 아니라는 점에서 사회주의적 성격을 띠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변혁의 1단계에서는 정치적 자유의 완전한 보장, 그리고 그것을 구체화는 노동자ㆍ민중권력의 수립을 핵심으로 하여 지난 민족민주변혁의 유산으로 실현되지 못했던 민주적, 민족적 과제를 완수하고 독점자본의 몰수와 국유화를 통한 사회주의적 우클라우드 창출, 교육, 의료, 주택의 보장 등 부분적 사회주의적 과제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주의 변혁의 1단계가 완료되면 사적 소유의 완전한 폐지, 그리고 농업에서 협동적 생산관계의 창출, 국가 성격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로의 전환 등이 구체화되면서 사회주의 변혁의 2단계가 진행되는 것이다. 여기서 사회주의 변혁의 2단계에서 민주주의 문제를 살펴보면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완전한 전개를 의미하는 것이다. 각 공장, 지역에서 생산자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국가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완전히 보장하고 강제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4. 강령의 체계의 문제

그러면 이러한 민주주의에 대한 고찰을 기초로 강령의 체계의 문제를 살펴보자. 지난 민주변혁의 단계에서의 강령을 보면 최대강령은 사적 소유의 폐지, 착취의 폐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로 이루어지고 최소강령으로서 민족민주적 과제가 제기되었었다. 그리고 민족민주적 과제의 실현은 자본주의적 틀 내의 것이라는 점에서 자본주의가 강화될 수도 있으며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가 중요하다고 파악되었다. 이렇게 최대강령과 최소강령을 나누는 것은 혁명의 과제와 단계에 맞추어진 것으로 일정한 타당성을 갖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은 변혁의 단계가 사회주의적 변혁의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것이고 이러한 상태에서 최대강령과 최소강령을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가이다. 최대강령은 보다 명료하게 정립될 수 있다. 즉, 사적 소유와 착취의 폐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정식화될 수 있다. 문제는 사회주의 변혁의 1단계의 강령인데 이는 노동자ㆍ민중권력의 수립, 정치적 자유의 완전한 보장, 독점자본의 몰수와 국유화, 교육, 의료, 주택의 보장 등을 핵심으로 하여 당면 변혁의 강령으로 제출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주의 변혁의 1단계의 강령은 자본주의적 관계를 침식하지만 아직 사적 소유의 완전한 폐지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회주의 변혁의 2단계의 강령과 구분되는 것이다.

남한과 달리 사회주의 변혁의 단계를 나눌 필요가 없는 곳에서는 최대강령과 최소강령의 의미가 달라진다. 최대강령은 여전히 착취의 폐지, 사적 소유의 폐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수립이지만 최소강령은 당면투쟁의 개량적 요구들, 부분적 요구들로 이루어진다²⁾. 이것은 최대강령, 착취의 폐지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에서 기존의 반독점민주변혁론과 구별되며 또 당면의 전술적 요구들, 부분적 개량의 요구들을 최소강령으로 하여 현실투쟁에 개입한다는점에서 유연한 접근이다. 이와 달리 민족민주 변혁의 유산, 국가보안법의 온존, 파시즘의 후계세력이 광범한 현실에서 사회주의 변혁의 단계를 나누어야만 하는 남한의 상황에서는 사회주의 변혁의 1단계의 강령이 최소강령으로 될 수 있을 것이다.

5. 남한에서 민주주의의 역사

이러한 관점을 남한 사회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남한의 역사, 특히 민주주의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남한에서 민주주의는 오랜 세월 적대시되는 개념이었다. 물론 지금도 파시즘의 후계세력들, 현실적인 남한의 지배계급들은 민주주의를 적대시하고 대중을 기만할 필요가 있을 때만 민주주의를 뇌까린다.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부르주아적으로 인정되는 권리가 된 것은 1980년대의 투쟁 이후였다. 고양되는 민중의 투쟁 앞에서 개량을 통한 혁명의 유산, 그리고 보수대연합 체제를 통한 반혁명진영의 결성을 위하여, 파시즘을 전면에 내세웠던 남한의 지배계급과 미제국주의는 민주주의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즉, 파시즘에서 자유주의 부르주아지까지 포함한 보수대연합체제로 이행이 이루어졌던 것이고 소위 민주화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보수대연합체제의 성립을 의미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자유주의 부르주아지는 권력에 대한 접근을 보장받고 실제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을 통해 집권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는 한편으로 반혁명연합의 성립이었으며 그 결과 국가보안법은 온존하고 자유주의부르주아지는 일체의 진보성을 잃고 지배적인 보수집단의 일분파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에 따라 자유주의 부르주아지는 반동부르주아지와 대립하기도 하지만 이들과의 연합에 자신의 권력의 지분이 달려 있으므로 이들과 전면적으로 투쟁하지 못한다.

한편, 이러한 ‘민주화’는 민중투쟁의 산물이었다는 점에서 노동자계급과 민중에게 일정한 민주주의의 확대를 가져왔다. 사상적 통제의 완화, 전교조와 민주노총의 합법화 등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화는 완전한 정치적 자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사회주의세력을 탄압하고 북한과의 연대는 여전히 금기시된다. 한편 이러한 ‘민주화’로 인한 정치적 공간의 확대는 운동의 개량화를 가져왔다. 정당, 노조, 이론 등에서 개량주의 세력이 득세하고 과학은 실종되고 맑스-레닌주의는 낡은 것으로 치부되는 상황을 빚어낸 것이다. 그에 따라 노동자계급은 전망을 상실하고 수동적 저항의 차원을 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총체적인 변혁의 전망을 회복하고 운동에서 과학을 복원할 때만 노동자계급은 해방의 길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남한에서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문제이기도 한데 이러한 민주주의 확대를 위해서는 노동자계급과 민중이 주도적으로 민주주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유주의 부르주아지는 진보성을 상실한지 오래되었으며 더 이상의 민주주의 진전은 오직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투쟁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주의 투쟁을 주도해야만 노동자계급은 해방의 길로 차츰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유주의부르주아지와 연합노선을 취하고 있는 민족해방(NL파)계열의 노선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민주당이 민주주의투쟁에 나서는 것은 오직 투쟁의 성과를 독식하기 위해서이고 자신의 권력의 지분을 늘리기 위해서라는 현실을 이들은 외면한다. 그리고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민주주의 투쟁을 변혁을 위해 봉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강화를 위해 봉사하게 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당면 변혁이 사회주의적 변혁이라는 점에서 개량주의세력에 대한 명확한 태도가 필요하다. 개량주의 세력은 노동자계급을 투쟁력을 약화시키고 투쟁을 의회 내로 수렴하는 주범이다. 이들의 노선은 노동자계급에게서 변혁의 전망을 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을 무력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들이 민주주의 투쟁에 나서도록 노동자계급이 강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투쟁의 성과가 의회 내로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과 민중을 강화시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6. 결론

지금까지 세계적 차원에서 사회주의변혁의 단계에서 사회주의적 과제와 민주주의적 과제의 관계에 대해서는 매우 논의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는 선진국, 제국주의 국가의 사회주의 세력이 반독점민주변혁론으로 기울면서 부르주아적 반독점운동으로 용해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편으로 신식민지 규정을 띠고 다른 한편으로 다른 제 3세계와 달리 신흥공업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남한의 경우는 특수하게 자신의 변혁론을 새롭게 개척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민족민주변혁의 유산이라는 남한의 현실을 천착하는 것,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변혁의 단계에서 사회주의적 과제와 민주적 과제의 관계를 정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난 시기를 보면 민주적 과제와 사회주의적 과제의 관계에 대한 잘못된 견해가 상당수다. 대표적인 것이 플란차스의 ‘사회주의로의 민주적 길’이라는 것과 남한의 경우 해방연대의 민주적 사회주의 노선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에 천착하면서도 변혁성을 견지하고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힘을 키워나가고 해방의 전망을 분명히 하는 전략노선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권력의 문제라는 것, 민주주의와 독재는 모순적 통일이라는 것, 사회주의라는 과제가 민주주의라는 그릇에 담겨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할 때 그러한 전략노선의 수립이 가능하다.

바야흐로 정세가 변화하고 있다. 기나긴 퇴조의 시기, 반동기가 마감되고 다시금 계급투쟁의 시대가 전개되려 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운동과 투쟁을 과학적으로 이끄는 전략노선의 수립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반동의 시기에 와해된 운동의 과학을 복원하는 것에 경주하는 것이 지금의 사회주의자들의 진정한 과제이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