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나를 분열시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 성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초점을 맞추자

권대희 | 후원회원 |

이 글을 쓰면서 ‘나’아닌 다른 호칭을 거론하기 힘들다. 어떤 책에서 읽은 “우리는 페미니스트이면서 직장 여성, 이혼여성, 성폭력 피해여성일 수는 있어도 매춘여성일 수는 없었다”란 말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문제의 다른 영역은 여성으로서 나를 분열시키기보다 발견하게 했지만, 이 문제만큼은 분열을 경험한다. 두렵고, 자신 없고, 조심스럽다. 그 어느 곳에 기댈 대도 없다. 성폭력 피해의 경험을 통해서는 남성의 경험을 여성의 시각으로 재구성할 수 있었지만 성매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남성들은 아직 입을 다물고 있다. 여기서만큼은 문진(問診)도 없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나에게 묻고, 스스로 고민하는 일이었다.

욕먹을 상상으로 시작해 보자. 가난한 사람들만이 성매매에 종사하고 있을까? 성적 보수주의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는 빈곤이 성매매의 다수를 점하고 있을 것 같기는 하다. 그렇다면 빈곤을 없애기 위해 내가 원하는 가격으로 성매매 비용을 책정하는 건 용인될 수 없는 일인가? 이상한 상상이지만, 만약 한번 비용이 7만원이 아니라 20만원이고, 포주의 중간착취가 불법화돼서 대부분의 돈이 나에게 떨어진대도 도덕적 부담 때문에 그만 두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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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돌 맞을 각오로 논리적 비약까지 서슴지 않는 이유는 하고 싶은 말이 따로 있어서다.

하나는, 이미 ‘성’의 판매를 통한 돈벌이는 더 이상 도덕적, 윤리적 잣대를 들이댈 수 없는 영역이라는 점이다. 어떤 페미니스트가 “성노동권을 주장하기보다 성노동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고 말할 때, “성노동을 말하는 이유는 앞으로 여성이 성노동을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매매 여성의 존재를 가시화, 사회화시키기 위해서이다”란 말을 할 때, 그런 흔적을 본다. 어떤 친구가, 비록 자신의 발로 성매매에 들어갔어도 그것은 카드빚으로 자살한 사람이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이듯이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 강요된 선택이란 점을 강조할 때도 느낀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은 원해서 한 일이란 점을 얘기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그건 빗겨간 쟁점이다.

그런 인식의 흐름에서 짚고 싶은 바는 그들을 모두 ‘구출’되어야 할 여성으로 본다는 점이다. 한 여성을 구출되어야 할 정체성으로만 바라본다면 그 안에서의 삶은 모두 무의미한 것으로 보기 십상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삶의 에너지는 무엇이었는지 이해할 길이 없어 보인다. 경제적 행위에 있어서는 ‘성’을 팔고 있지만, 때론 누군가의 애인일수도, 아내일 수도, 어머니일 수도, 다양한 취미를 갖고 있는 그저 한 여성일 수도 있다는 점을 배제하고 오로지 성매매 여성으로서만 정체성을 갖도록 한다. 총체적인 삶으로서 그들을 바라보기보다는 너무나 가혹한 삶을 살고 있는 ‘불행한 여성’이란 사실만 크게 각인되어 ‘피해여성’으로만 존재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구출’되어야 할 여성으로 보는 생각의 바탕에는 성노동은 극도로 비인간적 노동으로서 그런 소외된 노동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그래서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란 등식이 성립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성노동이 극도로 비인간적이고, 소외된 노동인 이유는 성에 대한 사회 문화적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가사노동이 여성억압으로 정착된 이유가 성차별에서 기인되듯이 성노동을 터부시하는 것 역시 성차별 의식과 제도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본다. 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도덕적, 윤리적 잣대의 연장선으로 성노동을 바라보면서 그들에게 당당한 여성으로 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그런 관점에서는 성매매를 하는 한 그 여성은 결코 당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잣대를 집결지 여성에게만 적용시키려고 든다. 다시 말해, ‘성매매여성=타락한 여성=범죄자’와 같은 사회적 낙인은 집결지 여성에게만 국한된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언제나 그랬듯이 가장 기층에 대해 가장 잔인하다. 이미 한국사회도 유흥업소나 노래방 등 1차 업종의 2차 연장선으로 성매매가 확장되고 있다. 그들에 의한 성매매가 집결지의 성매매를 앞지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이 성노동자이길 주장하지 않는다. 아마도, 성적 보수주의가 유지되고, 성매매를 가릴 수 있는 외피로서의 직업이 존재하는 한 그렇게 할 것 같다. 하지만, 집결지 여성들은 그렇지 못하다. 날 것 그대로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더욱 기층이다. 더 이상 그들을 보호할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보호를 위해 성노동자를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이 땅의 여성이라면 그 목소리를 외면해선 안 된다.

2001년에 사후피임약 노보레의 수입․판매를 둘러싼 격론이 생각난다. 그때도 여성단체는 의견이 엇갈렸지만, 사실상 찬성하는 쪽도 반대하는 쪽도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었는데 “여성에게 좋은 일이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원치 않는 임신과 낙태수술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건 큰 진전이다. 그렇지만 피임과 낙태의 책임이 오롯이 여성에게 굴레 씌워진 현실에서 불평등한 책임 구조가 더욱 강화되는 걸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착잡하다. 이 약이 남성피임약이었으면 어땠을까?”와 같은 의견이었다. 의학의 발달에도 성차별이 존재하니 그 구조까지 치고들어가서 개혁시키지 않는 한 이런 일은 지속될 것이다. 그렇다고 구조를 바꾸기 전까지 노보레를 금지시켜야 된다고는 아무도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실에서는 바로 시판이 허용되었고, 다음해가 되자 여성단체들은 “간통죄 처벌이 간통행위를 완전히 예방할 수 없는 것처럼 피임약 때문에 성이 문란해진다는 주장 역시 즉각 폐기돼야 한다”며 “낙태하지 않을 여성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처방 없이 일반의약품으로 구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사후피임약에서 일치했던 ‘여성의 권리’가 이번에는 어째서 여성주의자 내부에서도 격하게 대립하고 있을까? 그 핵심에는 노보레는 돈 있는 여성이든, 없는 여성이든, 교육을 받은 여성이든, 받지 않은 여성이든, 사장님 여성이든, 노동자 여성이든 ‘모든’ 여성의 이해에 직결되어 있었지만, 이번 사안은 그렇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성을 팔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여성, 돈과 학력과 권력이 있는 여성에게 이 사안은 무슨 이해가 걸려 있겠는가? 특히, 창녀와 성녀의 경계선 속에 자신의 품위를 유지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그 ‘다름’을 잔인하게 고수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든다.

나는 ‘왜 팔아야 해?’ ‘다른 방법은 없어?’란 질문에 ‘왜 팔면 안 돼?’란 응수가 맞붙는 식의 논쟁은 없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이 문제를 처음 접했을 때,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몸과 정신을 갖고 있을 텐데 거기에 ‘노동자’란 이름을 붙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들에게 그게 무슨 자존감의 회복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들에게는 그런 호칭이 무의미할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곧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이미 그들을 하나의 정체성, 즉 만신창이가 된 몸과 정신으로 보고 있었고, 그런 경계로 나와 ‘다름’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에 반해, 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불릴 수 있다는 사실에 상당한 충격을 받는 듯했다. 그들 스스로도 결코 입에 담고 싶지 않은 호칭 대신 더 당당해 보이고, 덜 주눅 들고, 덜 깎아내리는 호칭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던 모양이다.

한참 만에, 난 그들과 다르면서, 다르지 않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야하게 옷을 입고 밤거리를 활보하면 내게도 쏟아질 비난을 거부하기 위해 적당히 선을 유지하는 건 그들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는 웅얼거림이었고, 현실은 오히려 같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남성은 언제든지 여성을 타락한 존재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고, 기회 있을 때마다 창녀로 취급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경계선을 이동시키며 순응을 강제하고 있는데도, 여성은 그 경계  속에 자신을 방치함으로써 성매매 여성을 더욱더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면서 아주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노동자 대신 공순이, 공돌이가 일반적 호칭이었던 80년대, 쾌적한 시설의 반도체 공장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봉제공장 노동자들과 자신들이 철저히 구별되길 갈망했다. “우리가 어떻게 걔네들과 같냐”, “우리는 고등학교도 나왔고...”, “우리는 공순이가 아냐, 직원이지”라고 말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놀랍기도 하고, 쫌 한심한 눈초리로 웃어 보였지만, 지금의 나를 보니 꼭 그 때의 반도체 노동자 같다. 자본가에게 그들은 다 노동자일 뿐이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들에게 여성들이 다 도구로 보이듯이. 결국은 여성의 성과 관련된 부분을 여성 자신의 통제 하에 둘 수 없는 한 진정한 자유는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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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는, 범죄가 아닌 일에 대해 사회적 가치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경제적 삶을 포기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성매매 여성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일’일 뿐이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랑 없는 섹스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사랑 없는 섹스도, 섹스 없는 사랑도 우리 주변에는 차고 넘치도록 많다. 탈성매매에 앞장서고 있는 쉼터와 같은 단체에서도 성매매 여성을 범죄시하는 데에는 반대하고 있다. 비자발적 매매행위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성구매자는 범죄자로, 판매자는 비범죄자로 구별할 것을 주장한다. 법리상 적용도 쉽지 않겠지만, 성매매를 불법으로 하면서 한쪽만 범죄자로 취급하자는 얘기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성매매를 범죄로 보는 한 성매매 여성을 비범죄자로 볼 수가 없다.

나는 성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성매매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고 본다. 하지만 결혼제도가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고 불법이지는 않듯이, 임노동제가 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폭력이지만 불법이지는 않듯이 성매매가 불법이라고 보지 않는다. 성매매 여성을 성노동자로 인정한다고 해서 성매매가 갖는 폭력성을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한다고 해서 폭력을 당해도 된다는 논리가 아니듯이 그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게다가 미시적인 삶에 있어서는 성매매 연구자들도 성매매와 착취는 등가물이 아니며, 반드시 동일선상에 놓여 있는 것도 아니란 점을 자주 언급한다. 그런데도 성노동을 반대하는 여성들 중에 성매매를 인정하고 성노동으로 보자는 주장은 노골적으로 말해, 여성에 대한 강간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리하여 모든 여성이 사회적 지위를 얻는 것을 불가능하게 할 것이며, 결국 더 많은 여성이 성적 착취에 빠지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

나 역시 이것이 초기 고민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이런 두려움의 밑바탕에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오래된 신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구조적 폭력에 대해 구조를 바꾸는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결국 극복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맞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내가 그 구조의 문제에 집중하는 동안에도 어떤 개인은 아주 계속해서 아프길 강요받는다는 사실이다. 아픈 사람이 스스로 말하게 하고, 일어나게 하고 주체가 되게 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 구조를 바꿀 것인가. 폭력구조의 가장 날카로운 칼날 앞에 서있는 자들이 자기주장을 하지 못한다면, 주장을 했는데도 이러저러한 사회적 가치와 지향 때문에 입을 열자마자 다물 것을 강요받는다면 그것이 무슨 민주주의겠는가.

나는 성매매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성매매의 구조’와 ‘성을 팔면서 사는 여성의 삶’을 접근하는 방식을 분리하자. 구조와 사람의 문제를 푸는 방식을 동일시하지 말자. ‘불쌍한 여성들’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여성들’로, ‘문제여성’에서 ‘한 측면에서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으로, ‘탈성매매’는 ‘강하고 행복한 여성 만들기’의 일환으로, 무엇보다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는 무조건 저항하는 방식으로 만나길 희망한다.

그래서 나는 짧은 고민 끝에 내가 아는 방식으로 그들을 존중하기로 결론 내렸다.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 필요한 일이라면 난 ‘성노동자’의 길을 택하겠다. 조금이라도 그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합법화’에 손을 들겠다. 미래의 사회적인 가치지향 때문에 현재의 존재를 유령처럼 다룰 수는 없다. 그들이 자신의 인권을 얘기하기 위해 ‘성노동자’의 권리가 요구된다면 주저 없이 그들을 지지하겠다. 정말 쓰기 껄끄러운 표현들, 냄비, 창녀 등등의 표현을 없애고 주홍글씨를 없앨 수 있다면 그로 인해 오는 정치적 파장은 감수할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그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용인될 수 있도록 하는 길은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충분히 듣고, 그에 걸맞게 호명하는 일이다. 이것이 존중의 출발이다.

* 성매매 쉼터 여성과의 대화에 이어, 두 번째로 고민의 계기를 던져주었던 인도 여성들의 다큐멘터리가 인상적이어서 「인도 캘커타, 제1차 전국 성노동자회의 선언문」을 이책의 뒷부분에 자료로 붙인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