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한국의 두 번째 추기경을 임명한 지난 2월 22일은 마치 국민적 축제일 같았다. '두 명의 추기경'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마치 무언가를 해내고야 만 국민적 저력의 표현이기라도 한 것처럼, 온통 '위상', '권위', '업적', '염원', '영광', '축하', '경사', 등등 ― 신문과 방송은 온통 이런 자부심과 찬사의 말들로 가득 찼다.

“추기경님....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은 마치 목자를 잃어버린 양들과 같습니다. 황 교수 사건도 그렇고 어린 초등학생이 성폭력으로 인하여 목숨을 잃어버린 사건 등 온 국민이 (...)사는 의미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부디 추기경님께서 어린 양들을 지키는 선한 목자로서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시어 살맛나는 세상으로 바꾸어 주세요."^*1) ― 애먼 백성들은 졸지에 이렇게 한낱 미욱한 짐승의 떼로 추락해버렸고!

흥미로운 것은 두 부류의 사람들의 반응이다.

하나는, 종교인들이나 '신앙인들'의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언필칭 진보적 지식인들의 태도이다.

우선, 종교인들 혹은 신앙인들의 태도를 보면, 적어도 언론의 보도를 통해서 보는 한은, 천주교는 물론 불교를 포함한 대부분 종교의 지도자들도 하나같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추기경 서임'을 축하하고 있었다.^**2) 그 중에서도 3월 4일의 각 신문에 보도된 한 장면, 즉 불교와 원불교, 천주교, 성공회의 여성 '수도자들'로 구성되었다는 삼소회(三笑會) 회원들이 3월 3일 오후 정진석 추기경을 찾아가고, 추기경이 그들과 함께, 특히 불교 조계종의 진명 스님 및 원불교의 김지정 교무의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고 있던 한 컷의 사진은 정말 백미였다. '추기경 서임'의 축하를 넘어, "종교 간 화합"의 정이 절절히 배어 있는 듯이 보였으니 말이다.

실제로 추기경도, 지난 2월 5일부터 23일까지 18박 19일간의 세계 각 종교의 성지들을 함께 순례한 바 있다는 이들에게 "종교가 갈등과 분쟁의 원인이 되는 오늘날 여러분이 타 종교 성지를 함께 어울려 순례함으로써 종교 간 화해와 평화라는 큰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며 격려했다는 보도다.

이렇게 "종교가 갈등과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파악하고, 그리하여 "종교 간의 화합운동"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종교상의 '최고지도자'는 물론 한국의 추기경만이 아니다. 예컨대, "'내 종교엔 신념을... 타(他)종교엔 존경을' ― 달라이 라마, 한국 비구니와 수녀를 만나다"라는 기사^***3)는 이렇게 쓰고 있다.

[세계 여러 종교의 "성지를 순례하며 세계평화와 종교 간 화합을 기도하고 있다"는 삼소회 회원들에게: 인용자] 달라이 라마는 "저도 1975년경 종교간 화합운동을 추진했는데, 바로 여러분들이 그 아이디어를 실천, 적용하고 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달라이 라마는 당시 자신의 계획은 전체 5단계로, 학문적 교류, 영적 체험 공유, 단체로 타종교 성지 순례, 종교 지도자 간 교류, 종교적 신념과 존경 확산의 순서로 심화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뿐 아니라 현재에도 종교는 갈등과 피비린내의 원인이 되곤 했다"며 "종교인들의 화합은 세계 평화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반겼다. 그는 "여러 번 예루살렘이나 파티마 등 기독교 성지를 순수한 기독교인의 자세로 방문했다"며 종교 화합을 위한 자신의 체험을 생생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파티마에서는 작은 마리아상(像) 앞에서 잠시 명상하다가 떠나며 뒤돌아보니 마리아상이 저를 보고 웃고 있었습니다. 내 눈이 잘못됐다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면서 그는 종교 간 하모니를 위해서는 '신념과 존경'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념은 자신의 전통(종교)을 지키는 것이고, 존경은 그 밖의 모든 다른 것에 대한 것입니다. 한 개인으로선 신념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만, 사회 전체로서는 존경이 필수적입니다." 그는 "부처님도 제자들이 성향이 각기 다른 것을 아시고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가르치셨다"며 "넓게 보아야 실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양성의 인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음식과 미각에 비유했다. "한국에는 무슨 음식이 있지요? 아, 김치. 마찬가지로 중국인, 일본인, 티베트인, 인도인들은 각기 고유한 음식이 있습니다. 똑같은 혀와 입, 치아를 가지고 있지만 각기 다른 맛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요.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충돌의 진정한 원인인 석유 등의 자원과 잉여노동에 대한 지배와 탐욕은 제쳐두고 얘기하자면, 종교적 근본주의가 전쟁과 테러와 같은 "갈등과 피비린내"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요즈음에 정진석 추기경이나 달라이 라마 그리고 삼소회원 등의, 위와 같은 "종교 간의 화합과 평화"를 위한 노력과 설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값진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문답^****4)도 많은 사람의 고개를 끄덕이게 할지 모른다.

베아따 수녀(천주교): "세계는 여러 종교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서로 화합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요."

달라이 라마: "불자들 중에도 여러 그룹이 있습니다. 팔리 전통이 있고, 산스크리트 전통이 있고, 한국도 일반불교도 있고 원불교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의 정신적 성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정신에는 다양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다양한 전통이 있는 것이지요. 불교 입장에서 말한다면 부처님 자신도 제자들 가운데 다른 정신적 성향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들에게 각기 다른 전통과 철학을 가르치셨습니다. 서로 상반된 철학을 가르치기도 하셨지요. 부처님이 왜 그러셨을까요. 부처님은 인간의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기독교도 천주교와 개신교가 있고, 다양한 교파가 있지요. 이슬람에도 수니파, 시아파가 있지요. 음식도 한국음식 뭐가 있지요? 김치. 중국인, 일본인, 티베트인, 인도인 모두 자신들의 고유 음식이 있습니다. 똑같은 혀, 입, 치아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다른 맛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 것처럼 종교 신자들도 다양성을 필요로 합니다. 그것이 사실(팩트)입니다. 중요한 것은 넓게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실체를 볼 수 있지요. (책상 앞을 가리키며) 여기만 보면 실체를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달라이 라마가 설파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종교는 음식이다!", "똑같은 혀, 입, 치아이지만 다른 맛을 필요로 하듯이 종교 신자들도 다양성을 필요로 한다!" ―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고 하면, 그의 말을 멋대로 재단하고 있다는 불만이 필시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재단도, "[여러 종교와 여러 교파가 존재하는 이유는: 인용자] 인간의 정신적 성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 인간의 정신에는 다양한 요소가 있습니다 --- 그래서 그런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다양한 전통이 있는 것이지요" 따위로 논리(?)를 전개하면서, 무엇보다도 종교나 교파를 음식이나 입맛으로 비유하는 달라이 라마보다는(혹은 그렇게 얘기했다고 보도하는 기자나 신문보다는) 훨씬 덜 제멋대로일 것이다.

아무튼, 달라이 라마가 뭐라고 하든, 종교나 교파는 음식도 아니고, 음식에 비유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신에게 기도하고 제사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저들, 특히 추기경이나 달라이 라마 같은, 종교의 최고 지도자들의 저러한 설교, 즉 타 종교와의 화합의 설교는 아무래도 분열증의 병증이며, 자신들의 신도들을 오도하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생각해보라, 한편에서는 "너는, 나 이외에는 다른 귀신들을 네게 있게 하지 말라"("출애급기", 20장 3절)는 야훼의 십계명을 외우고 설교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다른 종교와의 화합을 설교하니 ― 분명 분열증과 종교적 오도가 아니겠는가? 생각해보라, 자신의 종교에 신념을 가지라면서도, 동시에 다른 종교를 존경하라니 ― 이 역시 분명 분열증과 종교적 오도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러한 저들은, 분열병증 환자로 진단되고 종교적 오도자(誤導者)로 규정되는 대신에,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5)로 상찬되고 있다.

거짓과 위선, 속물근성이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 잘못된 진단일까?

사실, 예컨대 서울역 광장에서 어깨띠를 두르고 천당과 지옥을 떠들며 "하나님을 믿으라!"고 외쳐대는 광신도들을 보면서는 그 구제불능의 무지에 연민을 느끼지만, '종교 간의 화합'을 설교하는 이들 사회의 '원로', '정신적 지도자들'을 보고는 경멸밖에 느낄 게 없다. 그들은, 그냥 무지한 게 아니라, 예컨대 달라이 라마가 말하는 바, 자신들의 "신념"에도 투철하지 못하고, 자신들을 휘감고 있는 이 사회에서의 명예․명성, 그리고 사실은 물질적 부(富)와 안락함 만큼이나 위선과 속물근성이 넘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속물근성의 수렁에서 허우적대기는 이 시대, 그리고 특히 이 사회의 대다수 진보적․'혁명적'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이다. 둘러보라, 어디에 종교 비판이 보이고, 들리는가를! 지난 2월 22일 이후 수일 동안 '영광'이니, '축하'니, '경사'니 하고, 한 제사장(祭祀長)에 대한 찬미가 이 사회를 뒤덮을 때에도 그러한 비판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지식인들이 기껏 종교적 '근본주의'를 비판하고 있을 때 ― 그것은 그들이 바로 종교 자체에 대한 비판을 포기한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이 시대, 이 사회 지식인들의 지적 실천이다.

이 시대에, 그리고 이 사회에서, 저들 지식인들이 종교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지 않는 이유가 "종교의 비판은 본질적으로 이미 끝나 있기"^*6) 때문은 절대 아닐 것이다. 종교에 대한 비판이 초래할 지도 모를, 그리고 사실은, 교수로서든 다른 무엇으로든, 종교재단에 몸담고 있는 많은 지식인들의 경우에는 그러한 비판이 필시 초래할, 물질적․사회적, 따라서 '정신적' 안락함에 대한 위험 ― 바로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종교에 대한 비판을 포기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한에서 그들은 비판적 지식인일 수도, 진보적 지식인일 수도 없고, 하물며 혁명적 지식인일 수는 더더욱 없다. "종교의 비판은 모든 비판의 전제"이기 때문이고, "도착(倒錯)된 세계의식인 종교"에 대한 비판의 포기는 바로 "도착된 세계", "도착된 국가와 사회"에 대한 비판의 포기이며, "종교를 후광으로 하고 있는 이 비참한 세상에 대한 비판"의 포기이기 때문이다.^**7)

각 교회, 각 교파, 각 종교가 자신들의 신도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숫자를 합하면, 이 사회 전체 인구의 몇 배가 된다는 소리도 있다. 그만큼 이 사회에는 온갖 귀신이 횡행하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 열광하고 있으며, 현실에서가 아니라 거기에서, 즉 환상 속에서 위안을 찾고 있다. 멀쩡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정상적인 사회였다면 이미 오래 전에 정신문화박물관에나 들어앉아 문화인류학이나 신화학의 대상으로나 되어 있을, 금박에 검은 표지의 두툼한 제문집(祭文輯)을 교양인의 필수휴대품인 양 과시하면서 거리를 활보한다.

바로 억압과 착취의 이 세상에 대한 민중의 비판의식을 마비시키려는, 그리하여 그 억압과 착취를 영속화시키려는 지배계급의 음모와 기획의 결과이고, 지식인들이 침묵으로써 그에 동조하는 결과이다.

오늘날 이 사회의 사실상의 지배적 종교인 기독교의 사회적 역할을 보자.

기독교의 사회적 원리는, 고대의 노예제를 정당화했고, 중세의 농노제를 찬미했으며, 마찬가지로 부득이할 경우에는 울상을 지면서도, 프롤레타리아트의 억압을 변호하는 데에 동의한다.

기독교의 사회적 원리는, 지배․피지배계급의 필요성을 설교하고, 피지배계급을 위해서는 단지, 지배계급의 자비심이 있으라는 경건한 소망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기독교의 사회적 원리는, 모든 비열한 행동의 장로회의적 조정을 하늘의 뜻으로 강요하고, 그를 통해서 지상에서 이 비열한 행동이 영속화되는 것을 정당화한다.

기독교의 사회적 원리는, 피억압자에 대한 억압자의 모든 파렴치한 행위를 원죄나 기타의 죄에 대한 당연한 벌이라든가, 혹은 주님이 무한한 지혜로 피구원자에게 내리는 시련이라고 천명한다.

기독교의 사회적 원리는, 나약함과, 자기비하, 굴욕, 비굴, 겸손, 한 마디로 천민의 모든 속성을 설교하고, 천민으로서 취급당하지 않으려는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빵보다도 더 많은 자신의 용기, 자신의 자존심, 자신의 자부심, 자신의 독립심을 가져야 한다.

기독교의 사회적 원리는 위선적이고, 프롤레타리아트는 혁명적이다.^***8)

기독교의 본거지인 유럽에서, 그것도 지금으로부터 160년 전인 1847년에 맑스는 위와 같이 폭로하고, 또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 이 사회의 자칭 타칭 진보적․혁명적 지식인들은? ≪노사과연≫

정세

종교적 근본주의 비판인가, 종교 비판인가

안재호｜회원

*) 정진석 추기경의 홈페이지(http://cardinalcheong.catholic.or.kr)에 올라왔다는 글. (http://www.chosun.com/culture/news/200602/200602240394.html에서 재인용.)

*****) "이명박 서울시장은 정진석 서울대주교가 추기경에 서임된 데 대해 23일 논평을 내고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며 '450여만 천주교 신도의 영광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경사'라고 밝혔다. ... 이 시장은 '정 추기경께서 한국의 정신적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온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주고 사랑과 평화의 전도사로서 헌신적 역할을 다하시리라 기대한다'고 기원했다."(연합뉴스, "이명박 '정 추기경 서임은 한국의 경사'", http://www.chosun.com/politics/news/200602/2006022304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