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파일이란 어떤 의미인가? 나는 “미지(未知)의 사건”을 의미한다고 알고 있다. 모든 과학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원인규명’에 있는데, 그 원인을 알 수 없을 때, 원인의 정체를 규명해 낼 수 없을 때, 그 현상 또는 사건을 ‘X파일’로 규정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인식능력이란 시대적 한계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당대의 모든 사건 또는 현상에 대해 원인을 제대로 규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X파일’이라고 불리는 사회적 현상과 사건은 ‘아직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건이라기보다는 ‘누구나 다 알지만 원인을 발설해서는 안 되는’ 사건일 것이다. 왜 그러한가? 그 사건하나에 지배적인 이해관계망이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2005년에 두 개의 X파일이 존재했다. 연예인 X파일과 안기부 X파일 말이다. 자본주의 시장의 꽃, 연예산업의 먹이사슬구조와 자본주의 지배구조를 움직이는 핵심적인 지배세력의 유착구조가 두 개의 파일에 그대로 있다. 그러나 차이라고 한다면, 연예인 X파일은 음으로 양으로 돌면서 무릇 대중에게 회자되고 있지만, 안기부 X파일의 구체적 내용은 대중에게 회자되지 않는다. 대중에게 회자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권력의 실체를 알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안기부 X파일사건은 ‘X파일’이라는 호칭을 받기에는 너무 명확한 원인에 기인한다. 삼성그룹으로 대표될 수 있는 자본권력과 그들의 경제적 이익을 엄호하는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손아귀에 장악되어 진실을 폭로할 수도 은폐할 수도 왜곡할 수도 있는 상업적 언론권력과 소위 법적 기준을 집행하는 검찰권력, 공권력의 유착구조이다. 재계-정계-언론계-법조계의 유착구조 말이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독점자본의 지배구조망’, ‘구조적 원인’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원인이 가시화할 수 있는 특정 개인이거나 특정집단에 있지 않고, ‘구조적 원인’에 있다고 한다면, 대개의 경우 그 원인은 ‘모른다’ 또는 ‘알 수 없다’라고 답하여진다. 또한 ‘구조적 원인’은 ‘해결할 수 없는 것’과 직결되게 인식시킨다. 물론 현실에서 몇 단계를 거쳐, 처벌의 형태는 그 구조를 담지한 행위자에 대한 책임자처벌로 귀착된다. 최근 ‘농업문제’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거대 초국적 농업자본을 대리해 주는 국내 정치가들의 권력작동의 문제가 ‘거리’라는 공간에서 공권력과 농민의 대립구도로 전화되어, 특정시기 공권력을 잘못 휘두른 ‘경찰청장’의 책임자처벌로 귀착되었다. 문제를 발생시켰던 초국적 독점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의 농업이라는 구조적 원인에 대한 밝힘 또는 인식은 사라지고, 책임자처벌로 귀착된 것이다. 그러나 새로 부임한 ‘경찰청장’이 자본주의 사회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법적인 공적기관으로서 경찰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겠는가! 또한 만약, 이건희를 사법처리(현실적으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한다면, 삼성자본의 역할이 바뀌겠는가? 만약 미림팀의 도청을 지시했던 상급자 처벌, 그 위에 존재하는 대통령을 처벌한다고 할지언정, 이 체제에서 국가의 역할이 바뀌겠는가?

내가 이렇게 회의적으로 말하면, 누군가는 나를 구조적 환원주의자, 정치적 무책임주의자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해도 할 수 없다. 그래도 ‘좋은 자본’, ‘좋은 정치권력’이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패구조’가 없는 ‘깨끗한’, ‘투명한’ 자본과 권력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경제권력의 정치적 지배의 합리성과 정당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것이지, 그 존재규정을 질적으로 다르게 바꾸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비합리적 억압적 지배’에서 ‘합리적 지배’로의 변화는 자본과 권력의 성장메카니즘과 연관된 것이다. ‘비합리’에서 ‘합리’는 법제도적 절차의 유무의 문제인 것이지만, 합리적 지배가 경제적 착취가 없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더 많이 양산할수록 잉여노동을 착취할 수 있는 합리적 지배구조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국회라는 공간을 통해 입법화하려고 하는 것이지 않는가. ‘초국적 독점자본’이 그들의 어마어마한 과잉의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서 정계, 언론계, 법조계는 물론 연예인 사회에도 구조화되어 있는 것이다. ‘독점자본’ 지배라는 구조적 원인을 어떻게 풀 것인가? 관건은 거기에 있다. 쉽지 않지만, 구조적 원인을 설정하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독점자본’ 그 자체에 문제를 제기할 것인가, ‘독점자본의 지배가 합리적이지 못한 것에 문제를 제기할 것인가’에 따라 인식, 대처양상, 대안을 형성하는데 굉장히 다른 행보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시민운동과 민족주의 운동은 후자에 강조점을 찍고 있는 듯하다. 운동의 기조가 ‘자본합리화’, ‘국가주의화’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X파일 사건에 담긴 권력구조적 차원의 문제를 논의하여 보자.

첫째, 국가권력과 자본권력과의 관계의 문제이다. 2005년 7월 X파일이 보도되고, 참여연대의 고발로 검찰이 수사를 진행한지 143일만인 2005년 12월 14일에 수사결과가 발표되었다. 검찰은 이건희 삼성회장과 홍석현 전(前)주미대사, 이학수 삼성구조본부장에 대해서는 불기소 결정을 내리고, 이상호 MBC기자와 김연광 월간조선 편집장은 도청자료를 공개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 판결을 내림으로써, 여론은 삼성재벌권력에 종속되어 있는 검찰권력에 대해 ‘검찰’이 최소한의 자존심도 세우지 못하였다고 맹비난을 하였다.

자본주의 국가는 총자본의 이해를 관철시킨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검찰의 태도는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가 사회적 요구가 있다면 개별자본의 이익에 반해서라도 자본에 대한 상대적 자율성을 갖고 정치적 행위를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이 사례’의 아쉬움을 표현할 것이다. 그러나 ‘삼성자본’은 자본일반으로 보았을 때는 ‘개별자본’인 것은 맞지만 이 ‘개별자본’이 갖는 구조적인 힘은 정치권력을 능가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오히려 삼성자본권력은 사회권력화 되어있다. 그러나 비단, 삼성자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도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삼성자본이 다른 자본보다 착취구조가 심하기는 하지만, 이것이 삼성자본의 특이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발달한다고 한다는 것은, 자본 및 경제권력이 여타의 권력을 압도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정치권력은 결코 경제권력에게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것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현대자본주의 국가권력은 ‘독점자본’에게 구조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국가권력의 물질적 기반은 ‘자본’에게 있기 때문이다.

둘째, 현대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자유주의적 접근은 국가권력은 정치권력으로서 공적권력을 의미하는 것이고, 자본권력은 경제권력으로서 사적권력으로 이분화시키고 있다. 사적권력을 우선하는 자유주의 입장에서는 국가에 대한 공적 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이론적 전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적인 이해관계가 법질서의 테두리 내에서 유지되기 위해서 또한 공적권력의 필연성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공적권력과 사적권력을 즉,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존재적 차이를 일단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으로 구분해 놓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필요에 맞게 적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본질은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라는 자본주의 원칙을 유지하기 위한 ‘기구’로서 제 권력기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애초에 ‘공적인 이해’가 따로 설정되어 그 ‘기구’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근대국가의 탄생과정이 그렇다. 단, 개별자본 분파 간의 이해가 그런 기관을 통해 조율되고, 집행되고, 판단되는 ‘국가기구’를 만들어내었기 때문에 ‘공적인’ 의미를 획득한 것이다.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를 통해 경제적 부를 축적하기 위한 공공연한 기관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국가라는 것이 ‘공공의 이익’, ‘다수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고 교육받는다. 현대 자본주의 국가권력은 행정권력, 입법권력, 사법권력으로 삼권분립되어 있어서, 그 자체가 견제와 균형을 이루면서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배운다. 자본이라는 경제적 권력과 절대적 독립을 유지하면서 말이다. 이것은 허상이다.

현 시기 ‘의회 안’에 존재했던 ‘한나라당’은 통과된 ‘사립학교법’이 ‘사학자본’의 이해를 침해할 것이라는 판단 하에 ‘의회 밖’으로 나왔다. 물론 통과된 ‘사립학교법’은 1%도 사적소유를 침해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만큼 그들은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이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사회의 원리,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는 금기의 대상인 것이다. 조금이라도 훼손한다면, 과감한 정치적 행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생산수단이 사적으로 소유’되어 있기 때문에 ‘진정한 다수’는 경제적 부의 축적은 고사하고 빈곤의 나락으로 빠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오히려 다수는 ‘생산수단이 사적으로 소유’되어 있기 때문에 생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본질을 은폐하는데, 소위 ‘공적인 국가권력’이 그 핵심적 기능을 하는 것이다. 국가가 수행하는 갖가지 ‘정책’과 ‘제도’는 생산수단을 갖지 않는 ‘진정한 다수’의 사회구성원에게 구조적 본질의 원인이 ‘생산수단’을 둘러싼 문제에 있다고 보지 못하게 한다. 예를 들어, ‘사회양극화’ 문제를 이제 정부가 발벗고 나서서 극복하고자 한다. 더 이상의 방치는 자본주의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 일 것이다. 갖가지 정책과 제도를 제시하고 있다. 다시 대중은 이 문제를 ‘정책처방’으로 가능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갖는다.

셋째, 그러나 이 문제는 상부구조의 효과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자본’이 시민사회에서 우세하게 존재하는 것처럼, ‘독점자본’ 및 ‘자본친화적인 세력’은 사회권력 속에 내장되어 있다. 황우석 사건에서 보이는 것은 사회 속에서 얼마나 자본의 속성이 구조화되어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병원’이 그렇고, ‘학교’가 그렇다. 생명과학의 고부가가치를 독점자본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한국언론은 2005년 최고의 뉴스메이커는 ‘삼성’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삼성이 만든 뉴스는 정경유착과 불법로비, 재벌소유지배구조, 편법증여, 노조탄압, 불공정 거래 등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문제를 드러냈다고 말한다. 그야말로 삼성공화국은 종합비리 공화국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화법에는 ‘삼성재벌’ 아닌 다른 자본은 안 그럴 수 있다거나 자본주의가 안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주입시킨다. 그러나 ‘다른 자본’은 정말 다른가. 그런 문제투성이 ‘삼성공화국’에 한국사회가 지배받는 것이 문제라고 제기하면서도, 그것이 자본주의 그 자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에 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삼성자본’이 좀 더 깨끗하다고 한다면, 좀 더 공정하다고 한다면, 자본의 지배를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하는 것일 게다. 더더군다나 그 대열의 가맹자는 ‘자본의 합리화’를 부르짖는 한국사회의 시민운동세력이다. ‘깨끗한, 합리적 자본’이라는 이데올로기적 환상은 황우석 연구팀에게 ‘줄기세포’가 없다고 사실이 밝혀진 이후에도 여전히 일부 사람들이 보이고 있는 “아니야 믿을 수 없다”는 강한 신념과 같아 보인다. ≪노사과연≫

정세

안기부 X파일과 구조적 원인

최경희｜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