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용 동지의 편지

채 소장님께

안녕하세요. 봄의 냄새(?)가 나는 3월이 왔네요. 연구소의 이사는 잘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예전의 사무실보다 넓어져서 활발한 활동을 하실 수 있겠지요.

그리고 [정세와 노동] 2월호를 지난 4일에 받아 보았습니다. 3월호를 기다리던 저에게 2월호가 왔는데 맞는 건지요. 제가 요즘 소송을 하고 있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해해주세요.. ^∨^.

안상길님의 글을 읽었는데 아직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 우울하게 만드는 듯 합니다. 휴...

아직은 수형생활을 더 해야지만 부당한 처우에 관해서는 투쟁(?)을 해서라도 찾아야겠지요.. 2년 정도 남아 있는데 벌써부터 힘이 빠지는 듯 하네요.. 무엇인가 일이 꼬인 것 같은 데도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제가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출소하면 재소자들의 인권을 지켜줄 수 있는 그런 시민단체를 결성해 보려고 합니다.

너무나도 열악한 상태로 수형 생활을 하고 있는 재소자를 보고나면 ‘이게 아닌데’ 하면서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재소자들을 보면 저의 마음이 아픕니다. 에휴..

일단 진행 중인 소송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지만 저질렀으니 끝까지 가야겠지요.

항소․상고․헌법소원 등..

가야할 길. 넘어야 할 험난한 산이 아직 많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보려고 합니다.

전국에 계신 수형자 분들, 그리고 동지들이 건강하게 지내셨으면 합니다. 연구소 직원들도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당...

2011. 3. 7.

군포에서 드립니다.

최상철 이병진 교환 서신

이병진 동지 안녕하세요.

제가 또 실수를 했네요. 번역문을 공유하면서 교정과 주석 작업을 거쳐 3월호에 게재될 것임을 정확한 표현으로 전달하지 못했더니 번역문이 이번호(2월)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미 인쇄소에 원고가 넘어간 상황이기에 수정이 불가하게 되었습니다. 2월호도 너무 늦게 나오게 되어서 인쇄를 중단하고 재작업을 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힘들게 보내주신 원고에 마무리작업을 하지 못하고 나가게 되어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이 지겨우시겠죠... 이사 때문에 정신없었다는 핑계거리가 없었다면 아마 쥐구멍이라도 찾았을 것 같습니다. [정세와 노동] 2월호 지면상의 편지에 있는 8번 주석(197쪽)은 제가 단 것이 아니고 최종 편집 책임자인 권정기 동지께서 추가한 것입니다. 급하게 처리한 것이라 자세한 정황에 대한 설명과 주석 작성자의 명의가 빠져있습니다.

어찌되었건 리타 카나(Khanna는 카한나가 아니라 카나로 표기해야할 것 같네요. 수정이 안된 채로 지면에 나가게 되었군요. 인터넷상에 올리는 파일에는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원문 이해에 도움이 될 자료는 18일에 쓴 편지와 함께 동봉합니다. 보내주신 참고자료가 동지께서 작성하시는 소논문을 완성하시는 것에도 약간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조금이나마 안심이 될 것 같습니다.

연구소에서 이론지 [노동사회과학] 4호를 준비 중인데 번역문을 교정하고 자료를 첨부하여 다시 공개를 하면 어떨까 싶네요. 아니면 말씀주셨던 소논문이 완성이 되신다면 그것을 기고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연구소 매체가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동지께서 글이 발표되기에 적합한 다른 지면이 있다면 언제든지 다른 매체에 보내셔도 좋습니다.

편지 답장 발송이 늦어져서 우선 책 세 권을 보내드렸습니다. 오래 기다리시게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책 제목도 정확히 적어 놓지 않고 보냈군요. 한 권은 인도 철학에 관한 개론서이며 한 권은 인도공산당(CPI) 14차 당대회 관련한 단행본입니다. 제본을 하지 못하고 보내드렸는데 여력이 없기도 하고 또 이 책들은 연구소에 있는 것보다 감옥에 계신 동지께 보내드린 것이 훨씬 활용도가 높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습니다.

다음은 복사/출력해서 보내는 것들입니다. 이것도 미리 보내드렸습니다. 이런 것들은 단행본 30권 같은 제한이 없겠죠?

# 저번에 언급했던 소설 [아버지의 기억]의 파일을 구했기에 출력해서 보내드립니다.

# Government of India New Delhi: "Development Challenges in Extremist Affected Areas —Report of an Expert Group to Planning Commission", April, 2008.

# Out Line History of All India Trade Union Congress, New Delhi.

# K. L. Mahendra: A Short History of the A.I.T.U.C. —In the Changing Political Scenario

이하는 추가로 보내드릴 책입니다. 정리를 해서 추후 발송하겠습니다.

# M. P. Singh & Rekha Saxena: Indian Politics —Contemporary Issues and Concerns, PHI, 2008.

# Olle Törnquist: What is Wrong with Marxism? On Capitalists and State in India and Indonesia, Manohar, 1989.

# V. M. Mohanraj: The Warrior and the Chariotter —A Materialist Interpretation of the Bhagavadgita, LeftWord, 2005.

이 중 Indian Polictics는 국내 번역본도 같이 보내드립니다. 제가 듣기로는 번역본에 대해 평이 좋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재번역을 해야 하지 않겠나’라는 평도 들은 바 있습니다. 그 외 보내드릴 책들이 좀 더 있습니다. 정리해서 한꺼번에 보내드리겠습니다.

우체국 문 닫을 시간이 얼마 안 남았네요. 더 늦게 편지드리면 안 될 것 같아 예의없지만 이만 급하게 줄입니다. 희망을 갖고 감옥에서 싸움을 지속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그 길에 함께 연대하겠습니다.

2011년 2월 23일

최상철 드림

최상철 동지 안녕하세요.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습니다. 혹독한 추위에 바들바들 몸을 떨 때에는 봄이 안 올 것 같았어요. 막상 봄 기운이 느껴지니 언제 그런 추위가 있었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당시에는 견디기 힘든 추위였지만 지나고 보면 한 순간처럼 지나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따뜻한 봄 날씨에 고마워하고 감사하게 맞이할 수 있는 것은 엄청 추운 겨울 덕분입니다. 추위를 이겨낸 나의 작은 승리가 따뜻한 봄 햇살을 더욱 눈부시게 합니다. 아주 작고 사소하지만 수인(囚人)은 그런 변화에서 희망을 느낍니다. 밖에서 지내면 계절의 변화에 대해서 온 몸으로 깊이 음미하기보다는 옷차림이나 산과 들의 변화 속에서 계절의 변화를 보게 됩니다. 봄이 가져다 주는 활력과 따스한 기운이 얼마나 절실한지는 온 몸으로 겨울을 지낸 사람만이 맛보는 작은 행복입니다.

연구소 이사는 잘 마무리하셨는지요? 오늘 저도 갑자기 방을 옮겼습니다. 마루바닥 위에서 1년 6개월 간 지내다가 장판이 깔려있는 작은 방으로 오니 밖에서 지내는 방처럼 느껴집니다. 여인숙에서 호텔로 방을 옮긴 기분이에요. 기분도 좋아요. 또한 김혁 동지에게서 반가운 소식이 왔습니다. 항소심에서 3년 형을 받았는데 대법원에서 원심파기를 하여 지난 18일 재항소심에서 1년이 줄어든 2년 형을 받았답니다. 저는 집행유예를 기대했는데 2년 형을 받아 아쉽지만 기쁩니다. 그런데도 김혁 동지는 쌍용차 지부장 혼자에게 책임을 떠맡기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기 때문에 본인이 집행유예로 나가는 것보다는 2년 징역을 살고 나가시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합니다. 그 짐을 같이 나누어 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그다지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신답니다. 그러면서 “엄밀히 말해 쌍용차 투쟁은 계급 간 전쟁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고 거기에서 승리하지 못한 채 포로가 되었으니 그 책임을 응당 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라는 이야기에 비장함과 굳은 신념을 봅니다.

최 동지께서 감옥 인권을 말씀하셨지요. 감옥은 죄를 지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징벌적 성격이 있고 그러다보니 재소자들의 인권이 경시되고 사회적으로 무관심하죠. 반입서적 제한도 문제입니다. 책 같은 경우는 오히려 권장해야 되지 않습니까? 교정기관의 기본 임무가 재사회화를 통한 재소자들의 사회 복귀를 도와주는 거라면 책을 읽고 지적능력을 향상시키는 측면에서 책의 반입을 권장해야 되는데 오히려 개인당 30권으로 제한시키는 것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 법사위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국정감사 때 이 부분을 살펴봐 달라고 해야겠군요. 최상철 동지께서 법사위 소속 국회의원 성함과 소속 정당을 알려주시면 그분들께 편지를 보낼 생각입니다.

지난 번 편지에 이어 세계정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보겠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현실주의”적 입장입니다. 정치학계에서는 국가 간의 힘의 역학관계가 국제질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현실주의 입장에서는 ‘세력 균형(balance of power)’이 국제질서의 기본 구조이며 냉전시기의 진영 간 대립을 정당화했지요. 그러니까 정치학에서의 현실주의는 국가의 물리적인 힘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그러한 힘들의 상호견제와 작용을 통해 국제정세의 흐름과 역동성을 포착하려고 합니다. 현실주의적 입장에서 “세력균형”이론은 불변의 진리처럼 냉전시기에 지배적인 국제정치 이론의 담론이었습니다. 그런데 사회주의권의 갑작스런 붕괴로, 미국중심의 단일체제가 되자 현실주의 이론은 한계에 직면합니다. 그러면서 국제적 협력을 강조하는 국제레짐이론이 힘을 얻게 되죠. 이는 영구 평화론이라든지 국제평화 같은 이상주의적 시각의 국제관계 분석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 통신이 전지구적으로 확산되고 비정부기구(NGO)의 영향력이 국가 단위를 초월하여 국제적인 수준으로 발전하면서 이상주의적인 국제정치 이론이 최근까지 국제정치이론에서 주류로 자리메김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외교 현실도 이와 같은 흐름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군부 정부까지만 해도 대미종속 외교적 기본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노태우 정부 시절에 북방정책을 시작하면서 외교정책의 방향에서 변화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외교의 기본틀에서는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김영삼 정부에서 4강외교가 구체화됩니다. 특히 이북의 핵 문제가 격해지면서 이북을 압박하기 위한 4강 외교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우리 외교의 기본 틀이 되면서 냉전 이후 국제질서의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었죠. 4강외교는 현실주의적 접근의 전형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현실주의가 우리나라 외교의 기본지침이라고 할 정도로 영향력이 높았습니다.

그런데 미국과 북한이 제네바 핵 협상을 하면서 우리나라 외교는 혼란에 놓입니다. “통미봉남”이라는 북한의 외교전략에 뒤통수를 맞은 것입니다. 국제관계에서는 국익에 따라 또는 국가전략에 따라 외교정책이 바뀌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죠. 그러면서 김대중 정부 들어서면서 외교의 다변화에 대한 모색이 시작됩니다. 현재 우석대 총장님이신 라종일 교수님이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라종일 교수님은 영국 캠브리지에서 정치학을 공부하셨고 유럽공동체(EU)의 통합과정과 다자 간의 협력 레짐에 대한 이해가 깊으셨습니다. 라종일 교수님은 국정원 3차장과 노무현 정부 때 국가안보 보좌관을 지내시면서 외교의 큰 흐름을 이끌어가셨지요. 그러면서 우리의 외교도 다자협력외교로 바뀝니다. 현실주의에서 이상주의로 바뀐 거죠. 그러면서 남북관계가 맞물리면서 김대중 정부의 다자협력외교가 노무현 정부에 와서 동북아 균형자론으로 구체화됩니다. 연세대 문정인 교수님이 동북아 균형자론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주셨지요. 이런 거시적인 외교전략의 틀에서 서해안 평화협력지대안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 외교의 최근 흐름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다자 협력 외교의 큰 틀에서 6자회담의 신뢰성을 높여 북한을 견인하고 다독거렸다면 북한이 2차 핵실험까지 안 했을 것이고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 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지 않았겠는가. 또한 저 역시 징역을 살면서 “간첩”이라는 꼬리표에 주눅들고 가슴아파하고 괴로워하지 않지 않았겠는가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이명박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서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특히 인도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큰 것으로 예상하여 한국과 인도의 관계가 획기적으로 변화하지 않겠는가 기대를 했지요.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시절에 인도를 방문했고 인도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커서 취임식 때 인도 대통령이(정확한 이름이 기억이 안나네요)¹⁾참석할 정도였습니다. 제가 2009년 1월 인도대사가 주최하는 인도독립기념일 만찬장에서 타얄(Tayal) 인도대사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한국의 근대화 성공전략을 배우고 싶고, 한국과 외교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 일본보다 한국에 더 관심이 있다고 말하더군요. 폭증하는 비자영사 업무 때문에 주한 인도 대사관을 옮길 계획도 있는데 한국 측에서 소극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인도 대사의 말은 자신의 업적을 쌓기 위한 외교적 발언이겠지만 어느 정도 인도 정부의 뜻이 반영되었다고 생각해요.

작년 한반도의 긴장이 격화되면서 인도는 한국보다는 미국-일본-인도 구도로 방향을 잡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남북관계의 안정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이 저의 생각인 것입니다. 지난 편지에서 최상철 동지가 저에게 “경직되어 있는 이 땅과 동북아 정세에 대한 고민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라고 하셨지요. 바로 이런 문제의식과 고민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앞전에 스스로 ‘현실주의’자라고 하였는데 제가 말하는 ‘현실주의’는 “세력균형”을 고정 변인으로만 보는 국제정치이론에서의 현실주의라기보다는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사실과 그러한 것들의 상호작용과 관계성을 있는 그대로 파악한다는 의미에서 현실주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상철 동지는 “사회주의자들은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함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철저함을 가하지만 존재하는 현 질서는 언제든지 소멸될 수 있(다)”고 하셨지요. 그 점에 대해서는 저도 공감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객관적인 법칙과 주체적인 목적의식적인 노력을 함께 강조합니다”라고 하셨는데 이는 실천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저는 거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게 저의 한계이겠지요.

다만 감옥에 와서 학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진정성”을 믿고 스스로 학자라는 신념을 갖고 살았지만 정작 나는 이적행위자가 되어 사회와 오랜 기간 격리되어야 하고 가족이 해체되고 그로 인해서 아이들까지 고통을 받는 현실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합니다.

[서준식 옥중서한]을 읽어보니 서 선생님도 전주교도소에서 지내셨더군요. 아마 제가 지금 생활하는 시설에서 비슷하게 지냈겠지요. 그분의 생각과 느낌 문맥과 문맥 사이에 흐르는 숨결소리까지 느껴지는 감정의 공감대를 볼 때마다 그 분의 고뇌가 그대로 전해집니다. 그러면서 서 선생님은 30대 초반에 이런 깊은 고민을 하고 신념을 갖고 지냈는데 40대 초반인 나는 ‘아직도 소시민적 고뇌와 번민 속을 맴돌며 지내는구나. 나는 아직도 멀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과 지난 주에 통화를 하였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막내 아들 녀석이 “아빠 사랑해!”라고 말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리면서 “아빠도 ○○를 사랑해”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눈물을 흘리고 나야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이병진 올림

2011년 2월 24일

최상철 동지 안녕하세요?

지난 편지에서 2월 17일 연구소가 이사한다고 했는데 오늘이 이사날입니다. 이곳 전주는 오늘 눈이 왔어요. 서울도 눈이 왔다면 길이 미끄러울텐데 조심하세요.

이번 주에는 기쁜 소식이 많습니다. 오늘 오산대학의 곽태석 교수님이 면회를 오셨습니다. 함께 계신 김종식 교수님과 겸임 교수님들이 걱정을 많이 하신다며 안부 인사를 전해 주었습니다. 제가 오산대에 강의를 맡게 된 계기는 김종식 교수님이 오산 시장에 출마하시면서 인연을 맺었지요. 김종식 교수는 열린 우리당 시장 후보 경선에서 낙선하셨지만 행정학 교수로 투명하고 효율적인 자치행정을 실천해 보고 싶었던 순수한 분입니다. 그래서 저와 인간적으로 가깝게 지냈습니다. 오늘 면회오신 곽태석 교수님은 러시아 전공 문학교수님인데 오산대에서 러시아어과가 사라지면서 인간적인 고뇌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16대 국회의원 선거에 전북 김제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셨습니다. 곽교수님은 전동자전거를 타고 다니시며 혼자서 선거운동을 하셨습니다. 깨끗한 선거운동이 무엇인지 직접 실천으로 보여주신 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두분 교수님의 열정을 존경했고 오산대에 정이 들어 계속해서 강의를 하였습니다.

저의 전공은 정치학이었고 경찰경호행정학과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부담도 있었지만 보람을 가졌던 이유도 두 분 교수님의 인간적인 면모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오늘 곽태석 교수님이 그러는데 영어 때문에 제 속을 상하게 했던 제자가 육군 3사관 학교에 들어가서 내년이면 소위로 임관을 한다고 합니다. 저 때문에 혹시나 제자들이 피해가 갈까봐 걱정했는데 잘 지내고 있다니 여간 기쁘지 않습니다. 외래교수 연구실에 있던 저의 책과 비품들이 여전히 그대로 있다고 합니다. 그것을 볼 때마다 제 생각에 마음이 허전하시다는 곽교수님의 말씀에 저도 뭉클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야 면회와서 미안하다며 서운하게 생각말라는 말씀에 오히려 제가 미안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작년 6월 2일에 치른  지방선거에서 오산의 한나라당 이춘성 후보가 저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간첩”이라고 대대적인 비방선전을 하였다고 하네요. 가족들이 대인기피증에 걸릴 정도로 사람 만나기를 꺼려하고, 왜 두려워하는지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됩니다. 당시에는 천안함 사건과 제 사건이 겹치면서 여론이 한나라당 후보가 시장으로 당선되는 것은 기정 사실처럼 생각될 정도로 대단하였다고 합니다. 결과는 이춘성 한나라당 후보가 낙선하였습니다.

그러나 남북 관계가 계속적으로 긴장 국면이라 어려운 점이 있으셨는데요. 저는 이렇게라도 와 주신 것만도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동안 가졌던 마음의 짐을 털어 놓는 곽교수님께 제가 더 송구하고 죄송스러웠습니다.

김종식 교수님과 곽태석 교수님이 오산시 인수위원회에 참여하셨다니 오산시의 행정에 대해서 기대도 되고 시민들을 위한 자치 행정의 모범을 보여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기대를 가져봅니다.

전남대 인류학과의 김경학 교수님께서도 어머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셔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서 저도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내라는 감동적인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김경학 교수님은 인도 네루대에서 농촌지역을 연구하셨습니다. 저의 박사 논문의 지도 교수님이십니다. 너무나 뜻밖에 여러 교수님들께서 위로와 격려의 편지를 주시고 이렇게 찾아와 주시니 몸둘 바 모르겠군요. 스스로 학자로서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지난 2월 14일에는 멀리 서울에서 향린교회의 조헌정 목사님, 최헌국 목사님, 이강실 목사님이 오셨습니다. 조헌정 목사님은 [양심을 습격한 사람들], 조헌정 지음, 한울(2009), [탐루], 김선주 지음, 한울(2005) 책도 넣어 주셨습니다. 조헌정 목사님은 저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향린교회 조헌정 목사입니다. 이 땅의 참 민주화와 평화 통일을 위해 힘쓰신 일에 진정 감사를 드립니다. 사실은 이병진 님과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는 일은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는 시민이라면 누구라도 가져야 할 상식입니다. 이게 법의 저촉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느 개인이 미국의 어느 기관이나 개인에게서 돈을 받았다고 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법은 권력이 만들어내는 한시적인 규정이니까, 법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히틀러 정권도 법의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처벌했습니다. 기독교가 구원의 주로 고백하는 예수 또한 당시에 권력자들로부터 민중소요죄와 신성모독죄로 고발을 받아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십자가는 당시 로마 제국이 권력에 반대하는 정치범을 처벌하는 사형제도였습니다. 예수는 오늘날로 말하자면 국가보안법으로 사형 판결을 받은 것입니다. 후에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으니,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고백한 셈입니다.

현재의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남한의 적으로, 그리고 국가전복을 위한 불순단체로 규정한 것 자체가 불법입니다. 왜냐하면 북한은 엄연히 유엔에 속한 회원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북한에도 이런 법이 있다면 이 법 또한 불법입니다.)

더구나 이 법은 애당초 일본 제국주의 하에서 독립을 원하는 불순분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보안법으로 시작을 했고, 이후 이승만 정권 시절부터 박정희 정권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 방해가 되는 비판세력들을 처단하기 위해 계속 변형되어 왔습니다.

최근 법원은 이승만정권 시절 간첩의 명목으로 처형을 당한 조봉암 선생님의 무죄를 선언하고, 박정희 군사독재 시대에 간첩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형을 살았던 사람들 또한 무죄 판결을 하고 있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이병진 선생님!

모순된 시대에 태어난 것이 죄라면 죄입니다.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역사의 진실은 언제고 기어이 밝혀질 것입니다.

혹 제가 도움이 된다면 가족을 만나 조금이라도 선생님이 겪고 있는 이 아픔을 이해시키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추운 겨울 건강에 조심하시고 몸으로 뵙게 되기를 바랍니다.

2011년 1월 25일

조헌정 목사 올림.

핍박받고 어려움과 도탄에 빠진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예수님의 삶을 그대로 실천하고 계시는 조헌정 목사님의 편지는 저에게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저는 이 편지를 하루에 한번 씩 읽고 있습니다. 읽으면서 벅찬 감동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강실 목사님도 오셨는데 다른 분을 이미 접견하셔서 안에 들어오시지는 못하고 복도에서 “사랑합니다”라는 손인사만 주고 받았습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서 한상렬 목사님의 재판 소식은 듣고 있었지만 한상렬 목사님의 사모님이시고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님이신 이강실 목사님을 직접 뵈니 너무 반갑고 힘이 납니다.

<예수살기> 총무이시며 촛불교회 최헌국 목사님은 처음 뵈었습니다. [민족 21], 2011년 1월호에 최헌국 목사님의 인터뷰 기사와 사진이 실렸는데 직접 오셔서 뜻밖이었습니다.

오산 다솜교회의 장창원 목사님께서 자주 편지를 보내주시는데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경기 남부 공동 대표를 맡고 계신다면서 정기 월간 소식지를 보내주신다고 하십니다. 오늘 백철현 동지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은 진보적 교회이며 통일, 평화 운동과 장기수 후원 사업 등을 하는 훌륭한 분들이래요. 그런 분들이 저에게 지지와 후원의 뜻을 보내주어서 감사합니다. 장창원 목사님은 백철현 동지도 안면이 있는데 통일과 평화뿐만 아니라 해고자 등 노동자 투쟁에도 적극 참여하는 실천적이고 훌륭한 목사님이라고 알려 주셨어요.

저는 장창원 목사님을 오산 수청동 철거민 문제 때문에 알게 되었고 시민활동을 하는 분으로만 알고 지냈는데 이런 인연으로 다시 만나서 무척 반갑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산시 수청동 철거민 문제를 언급하다 보니 당시 기억이 스쳐지나가네요. 저는 당시에 (몇 년도인지 정확하지가 않지만 2005년 경 쯤인 것 같네요.) 열린우리당 오산시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철거민 대책위원회와 시민단체 그리고 주택공사와 화성 경찰서, 오산시청과 당차원에서 중재를 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만 실패했고 결국 경찰의 강경진압 과정에서 용역 직원 1분이 사망하였지요. 저는 그 사건의 충격으로 현실정치의 한계를 보고 열린우리당에 비판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다만 남북관계가 중요하기에 민주평화통일자문의원 활동은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했지요. 어떻게 해서든지 폭력적인 파국을 막아보려고 무지 애를 썼는데 실패했고 저는 깊은 자괴감에 빠졌습니다.

이후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놓고 비판을 세게 했습니다. 당시 화성시 국회의원인 안병만 의원(정확한 이름인지 확인해주세요.)²⁾ 3․1절 행사 때 발안 제암리에서 만나서 논쟁을 했어요. 당시 안 의원은 열린 우리당의 주택정책을 책임지는 단장을 했는데 그 양반 말이 분양 원가 공개하면 아파트 값이 무너지고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더라구요. 오히려 규제를 너무 세게해서 아파트 값이 떨어질까봐 걱정이라는 한심한 소리를 하더라구요. 당시 정동영 대표에게 그 말을 했더니 심각하게 듣지 않더라구요. 결국 참여정부는 부동산정책실패로 망했지요.

나중에 안병만 의원은 건설업자에게 뇌물을 받아서 형사처벌받고 국회의원에서 물러났습니다. 대규모 신도시 개발, 건설업자,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시장) 그리고 쫓겨나는 세입자와 영세상인 문제는 유기적으로 관련이 깊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최상철 동지 안녕하세요?

지난 2월 17일에 쓴 편지가 반송되어 돌아왔군요. 아마 연구소 이사 때문에 착오가 있었는가 봅니다. 다시 보내드립니다. 연구소 이사 때문에 바쁘실텐데 긴 편지와 자료를 챙겨서 보내주셔서 고맙고 감사합니다. 모두 잘 받았습니다.

소설 [아버지의 기억]은 단숨에 읽었습니다. 인디라 간디 수상의 비상계엄 선포는 인도의 민주주의를 크게 훼손시켰습니다. 인도는 민주주의 대국이라고 포장해서 선전하지만 그건 형식적인 것에 불과할 뿐 내용을 보면 사회적 차별과 갈등 문제가 폭력적 양상으로 자주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기억]은 실화에 바탕한 소설이군요. 비상계엄시기 아들이 무고하게 경찰에 잡혀가 행방불명된 사건을 아버지가 끈질기게 진실을 찾아 진실을 은폐하려는 부정의한 권력에 맞서 싸우는 감동적인 소설이었습니다. 인디라 간디의 철권 통치에 대해서는 다음 편지에 자세히 말씀드리지요.

오늘은 의논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걸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최상철 동지도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감옥 안에서도 학문적 소양을 쌓고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입니다. 아내와 헤어지면서 책을 정리해야 하는데 많은 책들을 정리해야 하는데 많은 책들을 정리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제 책을 연구소에 기증하고 대신에 연구소에서 필요한 책들을 빌려보는 방법으로 감옥에서 공부를 하고 싶은데 연구소의 형편과 입장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제가 감옥에 있기 때문에 지금 책을 정리하면 부모님의 집에 보관해야 되는데 부모님들께서는 영문서적에 어두우셔서 관리하실 만한 입장이 아닙니다. 동생들도 각자의 가정이 있어서 지속적으로 책을 관리하기란 어렵다고 하는군요. 순수한 뜻으로 제가 북측에서 돈을 받아 대부분 도서 구입에 사용하였습니다. 언론에서는 그 돈을 ‘공작금’이라고 하지만 저는 양심적으로 인도 연구를 위한 것으로 받았을 뿐입니다. 담당 수사 검사는 “조선노동당 장학금”이라고 말하더라구요. 결국 3천만원이 넘는 엄청난 추징금까지 내야할 형편입니다. 아무튼 저에게는 너무나 소중하고 사연이 깊은 책입니다. 이런 귀중한 책을 함부로 방치해서는 안될 것 같은 생각입니다. 제가 소장하고 있는 도서의 목록만으로도 앞으로 인도를 연구하는 사회과학자들에게 귀중한 자료가 될 거에요. 왜냐하면 책을 구입하기 위해서 1달 가까이 서점에서 상주하다시피하면서 선택해서 신중히 구입하기 때문입니다.

연구소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신다면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해서 기증할 생각입니다. 물론 인도전문연구소가 있다면 좋겠는데 아직 한국에는 그런 연구소는 없습니다. 제가 노동사회과학연구소를 신뢰하는 이유는 어떠한 시련 속에도 변함없이 원칙과 과학적 탐구정신을 가지고 한 방향으로 이론을 개척해 간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추구하는 학문적 이상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고향은 대전이고 아이들과 살던 집은 오산입니다. 인도 유학시절 공부하며 소장하게 된 책은 대전의 서재에 있고 이후의 최근 서적들은 오산에 있습니다. 제가 기증하기로 했던 LP음반은 대전에 있습니다. LP음반은 20~30매 정도 됩니다. 그리고 연구소에서 저의 책 기증을 받아 주신다면 가족들을 만나서 좀 더 구체적인 인수인계 방법을 가족들과 의논할 생각입니다.

노동사회과학연구소가 인도 전문 연구소가 아니어서 저의 제안을 부담스러워 하실 것 같아서 걱정이군요. 오늘은 책 기증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다음 편지에 보내주신 편지의 답변을 이어 가겠습니다. 이사 잘 하셨다니 축하드립니다. 안녕히 계세요.

이병진 올림.

2011. 3. 2

이병진 동지 잘 지내셨나요? 봄이 다가왔습니다. 아직 꽃샘추위에 발걸음을 주저하고 있습니다만 봄은 추운 겨울의 마지막 몸부림을 살포시 밀어낼 것입니다. 일본에서 발생한 대지진의 충격이 이곳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원전사고가 끔찍한 재앙이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이번엔 답장 완성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3월 19일 연구소 총회 준비로 정신이 멍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내용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편지의 내용을 어떻게 채워갈지 고민하다 이리 늦어버렸습니다. 오래 기다리셨을텐데… 감옥에서 침침한 조명 아래서 쓰시는 동지와 달리 컴퓨터 앞에 앉아 편히 편지를 쓰는 데도 많이 늦어졌네요. 늦게서야 도착한 2월 17일자에 작성하신 편지에 대해 제가 이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있고 이를 명확히 드러내야 하는 게 맞는 건지 아닌 건지에 대해 고심하다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결론은 동지적인 관계에서는 이견이 있다면 명확하게 밝혀주는 것이 맞다는 걸로 나서 이렇게 편지를 시작합니다.

동지께서 열린우리당 당원이던 시절의 고민을 듣고 또 그 한계를 몸소 느껴가는 과정을 보며 동지가 주택문제와 평화 통일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하셨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산 수청동 철거 문제에 대해 언급하실 때는 부끄럽지만 철거민 투쟁에 연대하였던 제 대학생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였습니다. 1999년 구리 인창․최촌에서 빈민학생연대활동에 처음 참가하며 큰 충격을 받게 되고 이후 서울 월곡동 상가투쟁, 월드컵이 벌어지던 2002년 안암동 투쟁 등에 연대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스쳐갔습니다. 경찰의 비호를 받는 용역깡패에 맞선 철거민들의 싸움에 온몸으로 함께하다가 철거민과 함께 폭력과 화염병 사용의 이유로 구속되었던 제 친구들도 있었지만 저는 너무 편하게 연대했었죠… 건설자본과 결탁하여 뇌물까지 받은 뻔뻔한 전 열린우리당 의원에 대한 분노에 깊이 공감하였습니다. 그런데 주택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아파트 값 원가 공개는 충분한 해결책이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집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없다면 대안은 합리적인 자본주의에서 그치겠죠. 토지와 주택에 대한 사유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문제제기하지 않는다면 결론은 미봉책이 될 것 같습니다.

여기서 자세한 이야기를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제가 가진 생각의 기본 바탕을 동지께서 이해하실 수 있도록 우선 프리드리히 엥엘스의 ｢주택문제에 대하여｣를 복사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또한 [정세와 노동] 2007년 10월호에 실린 연구소 전성식 연구위원장(이번 총회에서 연구위원장이 바뀔 예정입니다.) 동지의 ｢주택문제에 대한 이해｣도 출력해서 보내드립니다. (현재 보관본을 제외하면 남아 있는 책이 없습니다.)

다음으로 동지께서는 현실정치—엄밀하게 말하자면 부르주아 정치판—에 대해 깊이 한계를 느끼셨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에 대해 기대를 버리시지 않고 계신 것 같습니다. 언급하셨던 곽태석 교수님과 김종식 교수님에 대해서는 저는 개인적으로 아는 바가 없습니다. 또 동지를 물심으로 후원하시는 분이시며 동지의 말씀대로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깨끗한 분이실 것이라 예상합니다. 그러나 동지께서 철거문제에 대해 언급하시며 ‘지역의 현역국회의원들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버거워’한다며 언급하셨다시피 정치와 행정은 그렇게 간단하게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회의론자인 것처럼 보이실 수 있겠습니다만 조폭과도 결탁을 마다하지 않는 건설자본과 이에 뇌물 혹은 후원을 받는 구조는 몇몇 깨끗한 정치가 행정가들로 바뀔 수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동지께서 두 분 교수님들의 앞날을 축복해주시는 순수한 뜻을 혹시라도 비난하는 것으로 비춰질까 걱정입니다만, 보다 근본적인 한국사회 변혁의 문제에 대해 앞으로도 의견을 나누며 동지와 저의 차이를 줄여 보았으면 합니다. 두 분 교수님께도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동지께서는 지속적으로 의도의 ‘순수성’과 ‘진정성’을 강조하십니다. 저는 동지의 ‘순수성’과 ‘진정성’을 의심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 변혁을 구체적으로 바라는 이는 ‘순수성’과 ‘진정성’에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순수’와 ‘진정’의 단계에만 머문다면 활짝 피기도 전에 지어버리는 꽃처럼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차라리 잡초가 되고 싶습니다. ‘순수’와 ‘진정’은 현실과 부딪치며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평가받아야 합니다. 감히 말씀드립니다만 동지께서 자신의 ‘진정성’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싸우는 힘겨운 몸부림은 이제 보다 더 구체적이고 조직적인 형태로 드러나야 할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쁨이 될 것 같습니다.

동지에게 면회오시고 편지주시는 분들이 부쩍 늘어난 것은 전적으로 세상과 마음을 열고 소통하려는 동지의 변화가 불러온 자연스러운 귀결입니다. 지난 달 말에는 동지의 후배 한 분께서 연구소로 연락을 주셨습니다. 연구소 홈페이지에 공개된 동지의 서신을 보게 되었다고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어하시는 마음이셨는데 이 분도 개인적으로 복잡한 일을 겪고 계신 것 같아서 마음처럼 쉽지 않으셨던 것 같았습니다. 또 조직적으로 면회오고 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은 동지께서 여러 단체에 편지를 보내고 또 그 서신 공개를 동의하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동지가 마음을 여시니 자연스럽게 연대가 조직되고 있습니다. 희망은 한 걸음씩 차근차근 오기 시작하고 희망을 받아들이는 이가 준비가 되었다면 그 걸음은 점점 더 빨라질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지가 보내주시는 편지는 고무적입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노동자 정치신문] 2011년 2월호에 동지께서 번역하신 ｢파키스탄의 경제성장과 위기｣를 보았습니다. 감옥에서도 열정적으로 활동하시는 모습에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부족한 영어 실력에 번역에 시간이 걸리고 애를 먹는데 동지의 활동을 보며 더욱 분발해야 겠다는 자극을 받았습니다.

동지께 면회오고 편지주시는 목사님들이 많이 느셨네요. 언급하신 분들 중에서 이강실 동지와 최헌국 동지는 제가 직접 뵌 적이 있는 분들입니다. 최헌국 동지는 재능교육 시청 사옥 농성장에서 열린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재능교육지부 동지들의 농성장에서 열린 저녁 촛불집회 때도 뵈었습니다. 그때 노래도 부르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이강실 동지는 집회에서 발언하시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3월 5일 보신각에서 있었던 “한미연합전쟁연습 중단, 한반도 평화수호 대회”(원래는 ‘평화수호 국민대회’라는 명칭으로 열렸습니다만 저는 ‘국민’은 반드시 빼버리거나 민중이나 인민으로 대체해버리는 고집불통입니다. ‘서민’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에서도 열정적으로 발언하셨습니다. 단 노선에 있어서 이강실 동지와 저는 이견이 있습니다. 이른바 NL 진영 동지들과의 이견인데 이번 편지에서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분들은 활동가로서 모두 헌신적으로 활동하시는 분들이며 훌륭하신 분들입니다. 저에 비할 수 없이 실천적으로 인민들의 투쟁에 연대해오며 힘든 길을 겪으신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종교 문제와 관련해서는 고민이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근본 변혁을 위한 과정에서 종교가 큰 걸림돌이 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유물론과 맑스-레닌주의를 자신의 세계관으로 지니고 있는 이들이 종교의 자유를 인정치 않는다는 것은 반공주의자들의 거짓선전입니다. 맑스-레닌주의자들이 주요하게 역할을 하여 이 사회의 지배계급이 자본가계급에서 노동자계급으로 바뀐다면 종교의 자유는 더욱 철저하게 보장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종교의 자유’의 개념에 있어서는 많은 논쟁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기존 종교뿐만 아니라 무신론에 대한 자유도 적극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존 자본주의 사회에서 종교가 누리던 기득권 이를테면 교회나 절이 자본가 및 지주의 역할을 했던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그런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비판해야 할 것입니다. 아마 사회주의 사회에서 종교의 자유가 없다고 비판하는 이들은 아마 이 지점에 대해 근본적으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이들일 것입니다.

저는 구쏘련이 종교와의 투쟁을 소극적으로 전개한 것도 붕괴의 내적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2차대전 과정에서 정교회와 일정부분 타협한 노선을 걸은 것은 전쟁 과정에서의 어머어마한 인적․물적 피해와 실제 대다수 쏘련 인민이 가지고 있던 신앙을 감안하면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닙니다만 문제는 2차대전이 끝난 이후입니다. 현실의 불만족을 내세의 평안으로 덮어버리는 종교 이데올로기와의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종교의 부정적인 역할이 부활하리라는 것은 현재의 러시아의 상황이 정확히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언급하신 목사님들께서는 주류 한국 교회와 분명히 다른 노선을 걷고 계시며 교회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 스스로 쇄신할 수 있는 방안을 실천적으로 내오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무신론자로서 양심적인 종교인들과 이 문제를 어떻게 대화해 갈지 고민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주셨으면 합니다.

예수에 대한 제 생각도 조금 더 늘어 보겠습니다. 예수는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상당히 비타협적인 노선으로 민중운동을 이끌던 지도자였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특히 ‘나를 따를 자들은 모든 재산을 버리고 오라’,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며 원시적인 공산주의 사상에 가까운 내용을 설파하며 실천하였습니다. 실제로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의 공동체는 공산주의 공동체와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예수는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라는 식의 타협주의를 설파하기도 했습니다. 로마에 대항한 투쟁에 있어서의 불철저함은 순순하게 십자가형을 받아들이는 결과에까지 이릅니다. 물론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진 것 때문에 그리스도교는 세계종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예수가 짊어진 것처럼 누군가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면 저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날에는 더 이상 ‘사람의 아들’의 죽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형을 강요하는 이들을 근본적으로 몰아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마틴 루터 킹과 같은 길은 영 끌리지가 않습니다.

2월 17일자 편지에서 동지께서 받으신 책 중 [탐루]는 김낙중 선생의 일대기를 따님 김선주 님이 기록하신 책이더군요. 얼마 전에 <4월혁명회>에서 주최한 발표회에서 김낙중 선생을 먼 발치에서 뵌 일이 있습니다. 여전히 분단극복과 평화에 대한 열정이 넘치시는 모습이 무척이나 놀라움을 전해주었습니다.

국가보안법 관련한 재판 투쟁에 대한 소식입니다. 2월 24일에 있었던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건 1심 선고 공판 결과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정세와 노동] 3월호에 연구소 운영위원회 명의의 성명서가 자료로 실립니다만, 직접적인 무력에 의존하지 않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사회주의를 주장한 이들에게 무장봉기를 주장하고 암시했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내린 것은 국가보안법의 또 다른 폭거입니다. 물론 8인의 동지들께서는 실형을 살지는 않게 되었습니다만 유죄판결이 내려졌다는 결과와 사상의 자유에 대한 근본적인 탄압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3월 16일에 있었던 한상렬 동지의 항소심 공판에는 가보지 못했습니다. 찬양고무만을 이유로 5년이나 실형을 선고한 1심이 뒤집어지길 기대합니다.

반가운 전화를 받았습니다. 쌍용자동차 파업투쟁 연대 집회과정에서 구속되셨던 건설노동자 이기호 동지로부터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전주교도소에서 수감되셨던 이기호 동지께서는 2월에 출소하셨는데 진작에 연락하지 못했다고 하시더군요. 이병진 동지에 대한 말씀도 전하셨구요. 한번 쯤 인사드리고 싶다는 말씀에 이번 주 토요일에 있는 연구소 월례토론회와 이전개소식 때 들러주십사 부탁드렸습니다. 출소 이후에도 쌍차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대하시는지 상당히 바쁘신 것 같았습니다. 감옥에서 더욱 단련되어 나오신 동지들께 부끄럽지 않도록 저도 더욱 분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도에 다녀오신 연구소 회원분께서 단행본 한 권을 제게 선물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저보다는 동지께 필요한 책 같습니다. 선물 받은 책이니 그냥 드리지는 못하고 빌려드리겠습니다. 저번에 빌려드린 연구소 책과 함께 다 보시면 천천히 돌려주세요. 서지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Anuradha M. Chenoy & Kamal A. Mitra Chenoy: Maoist and Other Armed Conflicts, Penguin books India 2010. 책을 선물해주신 분께 허락을 얻지는 못했는데 아마 그분이라면 빌려드린 것에 결코 반대하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이 책과 함께 아래의 자료도 복사해서 보내드립니다. 3월호 발송을 할 때 한꺼번에 보내겠습니다. Prakash Karat: Subordinate Ally —The Nuclear Deal and India-US Strategic Relations, Leftword, 2007.

동지께서 말씀하신 서적 기증에 대해 채만수 소장님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연구소로서는 크나큰 기쁨입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동지께서 언급하셨다시피 노동사회과학연구소는 인도 관련 전문 연구소가 아닙니다. 따라서 책의 활용도가 그리 높지는 않을 것 같다는 우려가 있는데 이는 동지께서 널리 소개해주시면 어느 정도 해결될 것 같습니다. 책을 어떤 식으로 활용하면 좋을 지는 동지께서 구체적으로 제안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열람, 및 복사․제본은 허용하되 대출은 불가하게 할지 아니면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할지… 대출을 허용할 때 자칫하면 책이 쏙쏙 사라지게 될 수도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현재 한 명인 연구소의 상근 역량으로는 도서를 하나 하나 관리하고 할 정도 상황은 아닙니다. 아마도 연구소에서 직접 책이 있는 곳으로 가던가 해야 할텐데 자세한 방법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월 5일 3시에 103주년 3․8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시청에서 집회가 있었습니다. 같은 날 5시에는 앞서 언급한 보신각에서 열린 “한미연합전쟁연습 중단, 한반도 평화수호 대회”가 열렸죠. 두 집회는 모두 한국 사회에서 상당히 중요하고 긴급한 현안을 다루고 있는 내용이었습니다만 양 측 집회의 참여자들은 서로 잘 융화되지 못하는 것 같아 무척이나 아쉬웠습니다. 제가 본 바로는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민주노총서울본부>, <사회진보연대>, <전국여성연대>, <한국진보연대>와 여러 노동조합 활동가들 정도가 양 집회에 모두 참여하였더군요. 제가 빠뜨린 단체가 있을 수 있었지만 대략 그러했습니다. 그날 만난 한 동지에게 “섞여야되지 않겠나요?”하니 돌아오는 대답은 “섞이겠어요?”였습니다. 반제국주의 평화투쟁의 과제, 피억압 여성들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 및 노동자들의 시급한 경제투쟁의 과제들이 따로 따로 분리되고 있는 모습이 운동의 현주소인 것 같습니다. 물론 섞이고 융화되는 것은 절충해서 반반씩 하자는 식은 아닙니다. 서로의 합력을 만들어 내는 과정은 단순한 부분합에 그치지 않습니다. 올바른 원칙에 근거하여 합력을 만들어야만 전체 운동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텐데 아직까지는 상당히 아쉬운 점이 많이 있네요.

연구소 총회 이후에 다시 편지드리겠습니다. 그곳에 어서 봄기운이 물씬 풍기기를 기원합니다. 독일 시인 폴커 폰 퇴르네의 ‘칠레 동지의 질문’으로 마칩니다. (출처: A. J. Weckbecker 엮음: 독일의 정치시, 신상전 옮김, 제3문학사, 1990.)

칠레 동지의 질문

누가 기꺼이 하지 않겠는가

자유를 쟁취하는 일을

투표 용지와

연설로서!

그러나 어떻게 하나

만일 감옥이

우리 동지들의

아우성으로

메아리치면? 우리는

사형 집행부대를

저지해야 하나

삐라를 가지고?

누가 기꺼이 하지 않겠는가

민중 세력을 지키는 일을

사설과

판결문으로!

그러나 어떻게 하나

만일 파시스트들이

개머리판으로

우리 문을

두드리면? 우리는

자발적으로

벽에 붙어

서야 하나?

누가 폭력에

반대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어떻게 하나

만일 혼란이

질서의 이름으로

우리 목을 조르면?

※ 동지께서 국회 법사위 의원 명단과 소속 정당 자료를 요청하셔서 첨부합니다. 사족을 달자면 이들 의원의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전적으로 인민의 조직된 힘일 것입니다.

최상철 동지께

보내주신 책을 받고 기쁘고 반가웠습니다. 단행본 7권과 복사해서 보내주신 자료 모두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책은 3월 11일에 받았습니다. 도서를 반입하는 수량이 30권으로 제한되어 있어서 걱정이네요. 이미 30권이 되었으니 다 읽은 책은 영치해서 밖으로 보내라는데 꼼꼼히 다시 읽고 싶은 책도 있고 아직 못 읽은 책도 있는데 수량제한으로 다 읽지도 못한 책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은 참 속상한 일입니다. 제가 받은 책의 목록입니다.

1). The Warrior and the Charioteer: A Materialist Interpretation of the Bhagavadgita (2005) V. M. Mohanraj, Leftword books

2). What is Wrong with Marxism?: On Capitalists and State in India and Indonesia (1989)  Olle Törnquist, Manohar.

3). Indian Philosophy: A popular Introduction (1964), Debiprasad Chattopadhyaya, PPH.

4). Communist Party of India 14th Congress Documents (1989)

5). Indian Politics: Contemporary Issues and Concerns (2008) M. P. Singh and Rekha Saxena, Prentice-Hall of India Pvt. Ltd.

6). [인도 정치학: 현대의 이슈와 관심사] (2009). 위의 책을 신소진 번역, 오름.

7). [인도는 울퉁불퉁하다] (2011) 정호영, 한스컨텐츠.

제가 흥미를 갖는 책은 첫 번째의 책입니다. [전사와 전차모는 전사(The Warrior and the Charioteer)]는 인도의 최고 고전인 [마하바라타(Mahabharata)]를 유물론적으로 해석한다고 소개하네요.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크리슈나를 신이 아닌 인간으로 보고 바가바드기타를 재해석한다는 것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국내에서는 이런식의 해석은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전체 번역은 못해도 서평 형식으로 소개해야 겠습니다. [마하바라타]는 전쟁의 정의(正義)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담겨 있습니다. 플라톤의 [국가: 정치]에서 논쟁이 되었던 정의(Justice)와 또 다른 관점을 볼 수 있습니다. 힌두문명의 도덕과 윤리에 관한 정의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하바라타]를 꼭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마하바라타]의 핵심을 정리해서 서사시(詩)로 표현한 것이 [바가바드기타]입니다.

두 번째 책인 What is Wrong with Marxism?은 인도의 정치․경제를 분석하는 데 시사점을 줄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인도의 정치․경제를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보고 있습니다. 바르단(Bardhan, Pranab)³⁾의 논지를 받아들였지요. 부정부패가 심한 인도를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맥락에서 비판을 합니다.⁴⁾ ‘정부실패(the failure of Government)’라고 하는데 정부의 규제와 진입장벽이 시장 참여자들에게 ‘지대추구(rent-seeking)⁵⁾’적 행위를 하게 하여 부정부패가 만연되고 관료들의 타락과 비효율을 높여 경제발전을 저해한다는 논리입니다. 이에 대한 처방이 바로 ‘시장(market)’이며 인도경제자율화의 논리적 근거로 작동합니다. 이에 대한 인도의 좌파진영의 대응은 세련되지 못하고 여전히 반봉건 반제국주의에 머물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실에 대한 적실성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What is Wrong with Marxism?은 1989년에 출판되었지만 인도의 정치․경제를 분석하기 위해 현재의 시점으로 읽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인도 철학사]는 제게 늘 부담스러운 작업입니다. 공부를 해야지 생각은 하지만 실천이 잘 안 되었습니다. 틈틈이 시간을 내어서 읽어볼 생각입니다.

[인도 공산당 14차 당대회 자료]는 참고용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인도정치학]의 번역본은 문제가 심각하네요. 오역을 넘어서 인도 정치의 기본적인 흐름을 알지 못하면서 번역을 하다 보니 심각한 오류가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이해가 안될 정도로 혼란스러운 번역이군요. 예를 들면

“An entirely new feature of this Act was the introduction of separate electorate for Muslims, the driving wedge of communalism that eventuated into partition of the country”. (p. 13) [원문]

“이 법은 무슬림 유권자들의 분리를 도입하여 결국은 국가적 분열이 된 공산주의의 발단이 되었다.” (p. 38.) [번역본]

원문과 번역본을 비교해 보면 “Communalism”을 “공산주의”로 번역을 하였는데 이는 인도의 정치사에서 가장 큰 문제인 코뮤널리즘과 세속주의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 번역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문장은 다음과 같이 번역을 해야 합니다. “이 법의 새로운 특징은 무슬림 유권자를 구별하였다. 그것은 인도를 분단시킨 코뮤널리즘(힌두-무슬림 갈등: 번역자)을 촉발시킨 쐐기였다.” 번역자의 몰역사적인 시각과 문제의식 없는 번역에 놀라울 뿐입니다.

인도의 태생적 근본모순은 힌두-무슬림 간의 갈등과 카스트 간 갈등입니다. 그런데 이 모순의 뿌리를 들여다 보면 영국제국주의자들에 의한 ‘분리와 지배(divide and rule)' 전략이 교묘히 반영되어 있는 것입니다. 영국 식민정부는 인도인에게 자치권을 준다는 명목으로 선거권을 주지만 무슬림과 힌두교 유권자를 구분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힌두교 유권자와 이슬람교 유권자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영국 식민 정부는 힌두와 무슬림 사이를 이간질 시키고 갈라 놓았습니다. 그런 불신들이 쌓여 독립직후 종교 간의 갈등에 의한 참혹한 학살이 자행되었고 결국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인도로 분리 독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이 문제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평화에 발목을 잡고 있는 거지요. 그 씨앗을 뿌린 무슬림 유권자의 분리 선거를 엉뚱하게 “공산주의”와 연관시켜 오역했다는 것은 단순한 기술적 오류가 아니라 인도 정치연구자로서는 매우 치명적인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번역 오류가 한 두 곳이 아니어서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지만 인도 정치연구자로서 부끄럽고 수치스럽습니다. 제대로 된 인도 정치학 개론서가 시급히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정호영님의 [인도는 울퉁불퉁하다]는 그 동안 인도에 대한 편견을 바로 잡는 데 좋은 안내서가 되는 책입니다. 진작에 이런 책이 나와야 되는데 늦은 감이 있지만 그나마 다행입니다. 인도 전공학자들이 이런 문제들을 잘 알고 있지만 책을 안 쓰는 이유가 소위 시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도 연구의 주제나 방향이 학술진흥재단이나 국가연구 기관의 프로젝트, 또는 기업의 유구에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연구 주제와 범주가 제한적입니다. [인도는 울퉁불퉁하다]라는 책이 인도에 대한 비판적 이해와 사실적 접근의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정세와 노동] 2월호에 실린 저의 번역글과 서신을 읽었습니다. 권정기 편집출판위원장님께서 “깔끔한 번역에 감사드린다”는 말씀에 송구하고 부끄럽습니다. 더불어 “한국진보진영이 인도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기대”하시는 부탁 말씀에 제 어깨가 무거워지고 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재주와 경험이 진보진영에 조금이라도 쓰임이 된다면 오히려 제가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말씀이 실감이 되지 않습니다. 패배감에 빠져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전진해 나가자는 강한 의지를 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급격한 상황과 환경의 변화에 어리둥절하고 제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약간은 혼란스럽습니다. 아마도 현실과 직접 부딪치는 것이 아니고 세상과 떨어져 있기 때문에 오는 혼란스러움이겠지요.

제가 부탁한 참고 문헌의 자료를 자세히 찾아주셔서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직 자세히 읽지 못했는데 꼼꼼히 읽고 분서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보내주신 자료를 참고하면서 일전에 제가 말씀드렸듯이 Samit Kar 교수의 Marx's Legacy in 21st Century에서 “Maoism to Mass Assassinism”을 번역해서 [정세와 노동]에 소개하면 좋겠습니다. Samit Kar 교수의 글이 왜 인도에서 마오이즘 운동이 일어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서둘러서 번역해 보내겠습니다. 인도 연구자로서 길을 개척해 갈 수 있게끔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챙겨주시는 최상철 동지와 연구소의 선생님들께 깊은 동지애와 연대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더욱 분발하고 노력해서 역사의 진보를 앞당기는 데 동지들께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A History of Indian Freedom Struggle 번역을 시작했는데 하나의 절 씩 보내드리겠습니다. 특히 역사적 유물론에 대해서는 제가 이해가 부족합니다. 이 책은 매우 신중히 번역해야 되니까 최 동지께서 도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사월혁명회>에서 저에게 소식지를 보내주신다고 하니 무척 기대가 됩니다. 감옥에 와서 많은 이별과 아픔을 겪어야 했지만 저를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고통을 함께 짊어지시려는 선생님과 동지들을 만나게 됩니다. <사월혁명회>는 대선배님들이시겠지요. 앞으로 우리 역사와 사명감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신현칠 선생님과 간접적으로 교류를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최 동지께서 서옥렬 선생의 수기 [조국을 사랑한 ｢죄｣: …사형소리 여섯 번](연합기획)을 감명깊게 읽으셨다지요. 저도 감옥에 와서 32년간 옥고를 치르신 비전향장기수 허영철 선생님의 전기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보리)를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그 분의 곧은 신념을 보고 제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힘든 시간을 이겨냈었습니다.

최 동지께서 저의 감옥 생활을 “전쟁”이라고 표현하셨지요. 사실 저 역시 하루하루 전투를 치르는 각오와 신념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 정신력으로 무장하지 않는다면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고 감옥에 계시는 모든 양심수분들의 공통된 삶의 자세일 것입니다. 최 동지의 편지에서 “보편성을 둘러싼 이데올로기 투쟁”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을 합니다. 그런데 감옥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는 많은 제약과 통제가 따릅니다. 그런면에서 최 동지는 저에게 많은 성장의 자극을 주고 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지난 주에는 [고난 함께], [민주 가족] 소식지를 받았는데 제가 보낸 편지글이 실렸습니다. <양심수 후원회> 소식지에도 제 편지가 실렸습니다. 3월에는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에서 발행하는 [민족의 진로]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에서 발행하는 [평화누리 통일누리] 소식지도 받았습니다. 한동안 뜸했던 [레프트 21]도 오랜만에 받아보았습니다. 저를 불쏘시개 삼아 제가 썩어 없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되더라도, 우리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 고민하는 모든 분들이 소통하고 연대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인사를 드립니다. 안녕히 계세요.

이병진 올림.

2011. 3.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