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밑에서 맑은 물이 치솟자 급기야 혼절을 하는 이도 있었다.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이었을지도 모를 그 목마름의 세월이 가져온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순간의 감격이었을까... 언젠가 우연히 본 티비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다. 그리고는 그들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큰 고마움의 표시로 먼 나라에서 찾아온 연예인들에게 춤을 춰준다.

지금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열악한 환경에 고통 받는 이들이 있는 세계 곳곳을 찾아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내용의 프로그램이었다. 그 날은 물이 없어 처참한 삶을 살고 있는 아프리카의 어느 마을을 찾아가 땅을 파서 우물을 만들어 주는 내용이었는데... 보는 내내 한 쪽 머리가 먹먹해지고 숨쉬기도 거북했다. 그리고 눈물도 흘렀다...  

그곳 사람들이 살아내는 인고의 세월 앞엔 ‘피눈물’이라는 말조차 창피해서 땅 밑으로 기어들어갈 판이다. 그냥 보기에도 만약 한 방울이라도 내 옷에 묻는다면 당장 그 옷을 버려 버릴 것만 같은 흙탕물 한바가지를 퍼오기 위해 수 킬로미터를 맨발로 걸어 다니는 아이들. 화면을 통해 그 물의 역한 냄새가 전해져 오는 것만 같았다. 그것으로라도 갈증을 해소하려 마시는 모습이 숨 막힌다. 더러는 그 먼 길, 물을 구하러 다니다 끔찍한 일을 당하는 아이들도 있단다. 오염된 물로 인해 온갖 병을 앓고 있는 가족을 옆에 두고 안타까워하는 이들, 손 한번 못 써본 채 자식을 묻어야 했던 젊은 여인의 사연은 우리네 옆집 아저씨 주식투자했다 손해 봤단 사연 만큼도 얘깃거리가 되지 못한다.

그런 이들이기에 먼 이국땅에서 낯선 이들이 찾아와 끝도 없이 솟아나는 맑은 물을 선사했으니, 성서에 나오는 오병이어 만큼의 기적 정도로 여겨지지 않겠나... 기적을 내린 이들도 울고, 그 맑은 물에 온 몸 적시는 그곳 사람들도 울었다. 또 말하지만 나도 울었다.

모순이 중층적이듯 눈물도 중층적이다. 그래 나도 사람이라 그들이 그 깨끗한 물을 가지게 된 게 감격스러워서, 과정이야 어쨌든 솟아나는 물 만큼 인간미 넘쳐나는 그 프로그램 연출에 자동반사적으로 눈물이 났겠지.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아마 그런 물줄기 수백 개는 뚫어야 맞먹을 거처럼 치솟는 분노였고 자괴감이었다.

분노? 자괴감? 왜? 저토록 아름다운 휴먼드라마를 보면서... 거의 하나님에 맞먹는 기적을 저 검은 땅에 선사한 온정 넘치는 자랑스런 나라의 국민인데... 웬 분노? 웬 자괴감? 이 정도면 ‘그냥 성격 좀 까칠한 녀석’을 넘어서서 심각하게 정신건강 전문의와 상담을 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

뭐... 상담... 쩝... 어쨌든...

한나절이었다. 그리고 500만원이었다. 수십 년 그 한 맺힌 갈증을 푸는 데, 아니 ‘한’이라는 말이 사치스럽게 느껴질 만큼 기가 막힌 그 현실을 해결하는 데 딱 한나절 걸렸다. 돈 500만원 들었다. 굴착기를 들여오는 데 든 돈, 그 굴착기로 땅을 파내려가기 시작한지 한나절...

나 참... 눈동자가 썩어 들어가는 자식을 부여안고 무너졌을 그 부모의 억장을, 그토록 숱하게 죽어갔을 사람들의 목숨을 그 한나절이라는 시간이, 자애로운 돈 500만원이 비웃고 있는 듯 느껴졌다. “쌀 없으면 고기 먹으면 되죠?”라고 정말 이해 안 간다는 표정을 지은 채 천진난만한 눈을 껌뻑였다는 사람 얘기처럼...

하루 종일 삽질로 땅 파서 흙을 팔아 번 돈으론 하루치 목숨 잇기에도 버거웠던 그들. 그렇게 주민 전체가 일을 하고 또 해도 만들 수 없었던 그 돈 500만원. 대기권마저 뚫고 그 바깥까지 발걸음을 내딛었다고 그렇게 감격하며 호들갑 떨던 게 이미 역사책 속 얘기가 되어버린 인류는... 단지 몇백 미터 땅도 못 뚫어 저렇게 가볍게 죽어가는 그 자랑스럽고 감격스런 인류 구성원의 모습 앞에 뭔 말을 할 건가? 매일 수 킬로미터를 걸으며 구정물을 떠 나르던 그 아이들은 단 한나절만에 맑은 물이 치솟는 그 허탈한 조화 속을 보며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 건가... 그네들의 삶을 지구 반대편에서 맥주 마시며 지켜보면서 진정한 인류애의 감격에 눈물 흘릴 사람들을 위해, 매 주마다 그 물 뽑는 데 든 돈 보다 못해도 수십 배는 더 들여서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있는 인간사의 꼬라지를 난 대체 그 아이들에게 뭐라고 설명할 건가... 

뭐... 대충 설명하려는 사람이 있긴 있더라. 몇 해 전에 이 나라 진보정당을 대표하는 매우 유명한 진보정치인의 교육을 들을 일이 있었다. 어느 노조 조합원 총회 때 문화교육을 할 일이 있었는데 그 사람 교육이 내 바로 앞 순서였다. 주제는 ‘물’이었다. “당신들이 내는 수도요금은 사실 원가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시작을 했다. “철저하게 이윤창출 논리로 이루어진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원가보다 싼 가격으로 물을 쓰고 있는지 이유를 아느냐”고 질문이 이어졌고 교육을 받는 조합원들은 수돗물을 그렇게 싸게 쓰고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는지 웃기만 할 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스스로가 그 답을 이야기하는데 순간 난 귀를 의심해야 했다.

“그건 바로 아무리 자본주의가 발달했다 해도 물만은 인간 생명유지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기에 누구나 이용함에 어려움이 없도록 자본주의 논리에 적용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사람들의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얼굴과 귓불이 빨개지는 걸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얼마나 인정미 넘치는 감동적인 이야기인가... 젠장... 그 감동의 진정성 때문에 귀가 빨개졌으면 나도 참 좋았을 테지만, 어쨌든 비슷한 부류 취급 받고 있는 사람의 인식 수준이 저토록 몰과학적이라는 사실이 창피해서였고, 알고 그랬든 모르고 그랬든 결과적으로 이 세상사 사기극의 또한 구절을 듣고 있어야 하는 현실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물론 그 뒤의 이야기는 그런 수도를 사유화해서 자본주의 논리에 귀속시키려 하고 있고 그것을 막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래... 이 나라 사는 사람들은 그토록 인간미 넘치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태생적으로 자애로운 인간들이어서 먹고사는 시스템조차 감히 물 먹는 거는 넘볼 수 없었고, 아프리카 사는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그런 인간미나 자애로움 따위는 안드로메다에 팔아먹은 사람들이어서 돈 500만원 때문에 구정물로 질긴 목숨 연명했던 거였구나...

허긴 그렇게 자애로우니 한 끼 밥 먹을 돈 없는 어린 학생들이 굶어 죽을까봐 수돗물은 참으로 인심 넉넉하게 틀어대준 거였겠지. 아무리 이윤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이라도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 수단 만큼은 자본주의 논리에 지배받으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넘쳐나는 세상이어서 30대 초반의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님은 ‘남는 밥 좀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굶어죽었겠지...

그동안 먹어봤던 음식 중 가장 비싼 음식인 쥐약을 먹고 동반 자살을 기도했던 아이들은 세상이 이토록 자애롭다는 그 분 교육을 들어보지 못해서 그런 선택을 했었던 거구나... 약값만 한달에 30만원 이상 들던 1급 중증장애 여성의 유일한 생계수단인 노점좌판을 빼앗은 것도, 한달에 26만원이라는 그 자애로운 생계비가 지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려는 저들의 인정미 넘치는 행동이었구나. 끝끝내 그 26만원으로 살 방법을 찾지 못해 자기 아이 한번 맘껏 끌어안아보려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그 여성 장애인 최옥란 열사는 이 세상의 자애로움을 알려는 노력을 덜해서 그런 선택을 했던 거였구나...

이 빌어먹을 자애로움이여...

그런데...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말이다. 아직 내 머리가 너무 짧아서 난 그 분 말 잘 이해못 하겠다. 수돗물이 쌌던 것은 우리나라 자본주의 발전 단계에서 저임금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공공요금을 낮게 유지하려 했던, 즉 사실은 이윤창출 논리로부터 벗어난 게 아닌 오히려 철저하게 이윤논리에 따라 이루어졌던 정책이었다는 사실 밖에 난 모르겠다. 임금은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가격, 즉 노동력 재생산 비용이며 그것은 곧 생활비이기에. 발전단계에 있었던 대한민국 자본주의는 그 일반적 법칙에 따라 대규모의 저임금 노동력이 필요했었고 그래서 기본적인 생활비를 낮게 유지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은 그렇게 대규모 노동력이 필요하지 않은 발전단계로 접어들었으며 이윤창출구를 찾기 위한 끝없는 자본의 탐욕이 공공재를 노리고 있어 ‘물 사유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미 더럽게 없는 놈인갑다...

이왕 인간미 없는 놈 된 거... 뭐 상담할 때 상담하더라도 그냥 내 식대로 이야기 할란다. 요즘이야 한물 간 이야기지만 해마다 뻔히 물난리 때문에 사람들 난리치는데, 눈앞에 한번도 마른 적 없는 한강물을 매일 보며 사는데 ‘물 부족 국가’라고 떠들어대던 건 정말로 물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다만 저들의 욕심을 채울 이윤창출구가 부족했을 뿐.

전 세계 곳곳에 목말라 죽고 굶어죽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건 역시 인류가 목마름과 배고픔을 해결 할 수 없을 만큼 무능해서가 아니다. 다만 그들 굶주림과 목마름을 바탕으로 해야지만 유지될 수 있는 이 지독한 착취시스템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도 그들은 그들 착취시스템에 의심어린 눈길을 보낼 이들이 두려워 한바탕 인간미 넘치는 자애로움의 향연을 벌인다. 또한 그 시스템의 일원으로 즉 공범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많은 이들은 그래도 눈물 한 바가지로나마 어느 구석 자리하고 있을 인간미를 위로하며 살아간다.

“내가 구정물 먹였냐? 내가 굶겼냐? 난 그저 열심히 살 뿐” 물론 밝히건데 선량하게 살아가는 많은 이들을 비난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건 절대로 아니다.

다만...

적어도 저들의 눈물 놀음에 놀아나지는 말자고...

해마다 기아체험 한다고 하루 굶으면서 자위하기보단, 티비 에이알에스 성금모금 숫자 올라가는 거 보면서 고무받기보단, 단 한번이라도 그 아픔의 근본인 저 착취 시스템을 똑바로 노려보고 그 심장부에 돌멩이 한번이라도 던져보자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아무리 벌컥 벌컥 뱃속으로 물을 들이부어도 마음은 한 자락도 적셔지지 않는 이 갈증을 끝끝내는 풀어낼 그 날을 위해...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