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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 이하의 편지에는 비문과 오기로 보이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교정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공개한다. 동지께서 억울한 사건을 겪으신 것은 분명한 것지만,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착오 때문에 편지에 등장하는 교도관들의 실명은 공개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사실이 명백히 밝혀진 후 지면에 공개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안상길 동지의 편지는 <구속노동자 후원회, 구노회> 및 양심수 단체에게 전달했다. 구노회의 “다음 카페”에는 사무국장 이광열 동지의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렸다.

“예, 잘 알겠습니다! 구노회 사무국에서도 내용을 확인하였고, 총회가 끝나면 다음 주 초에 안양교도소를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큰 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으시도록 예방 차원에서라도 조사를 진행하고, 가능한 조치를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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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길 수번 2412

안양교도소 수감 중

발행인: 채만수(소장)님께

채만수(소장님)께. 추운 날씨에 노고가 많습니다. 수용자들의 일로 얼마나 고생이 많습니까요. 저는 현재 안양교도소에 수감 중인 수번 2412 성명 안상길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저희들 때문에 업무 수행 하시느라 고생이 얼마나 많으십니까.

진정요청취지: 기동대장 허필선 황인규 주임 기동대 직원부장 박○○ 오○○ 장○○ 그 사람들에게 폭행협박 모독죄 등으로 진정하오니 철저히 조사하시어 혐의가 밝혀지면 엄벌에 처해주시기 바랍니다.

진정내용: 본인은 2010년 2월 4일 징벌집행 중에 그때 사건에 대한 진정서는 의무과 복도에서 기동대 1명 박○○ 협박과 폭언을 당하고 진료를 받고 의무과 복도에서 진정인을 멱살을 잡고 다리를 걸고 저를 강제로 세면바닥에 눕히운 채 손을 등 뒤로 한 채 수갑을 채우고 동시에 욕설과 함께 5명이 무차별 구타를 하여 이에 억울하고 분하여 진정을 하였으나 진실과 다르게 무고죄로 역고소당하여 진정인은 오른쪽 허벅지와 팔을 혼자서 멍을 들게 했다는 것이 당사자인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제 몸을 자해할 만큼 모자라지는 않습니다. 기동대 2명은 제 양쪽 팔을 잡고 1명은 뒤에 따라오고 16층계단 올라가는 계단에서 구두발로 배를 수차례 차고 팔꿈치로 등을 수차 때리고 검은 장갑을 끼고 볼을 여러번 때렸습니다. 사건 후 6중 관규실 진정인을 데리고 가서 의자에 앉혀놓고 뒤로 수갑을 채우고 갑자기 관규실에 기동대주임 허○○ 황○○ 폭행을 했습니다.

“야 십팔 놈아 조용히 해. 이에 관구실 영치금 넣어주고 하니까 영치금이 아깝다. 십새끼야 도둑놈새끼야.”

조사실로 주임보고 안상길을 데려오라고 전화왔습니다. 조사실에서 기동대 대장 허○○이가 우리는 안상길이를 때린 적이 없는데 왜 맞았다고 거짓말을 하냐 무고죄로 처벌받게 하겠다고 그렇게 2시간 동안 훈계를 듣고 협박했습니다. 계속 아프다고 하니까요 의무과를 보내주었습니다. 주임님하고 의무과를 갔는데 숙직자 직원 침대에 누워 보라고 하고, 아픈 부위를 배를 눌러보니 오른쪽 배가 부어 있었고 허리도 많이 아프고 의사가 없어서 약만 처방해 주고 숙직자가 “하루 참다 보고 더 아프면 보고전을 내고.”

2월 5일날 보고전을 제출했으나 의무과장이나 의사 직원들이 그후로 12차례 보고전을 냈는데 약만 주고 진료는 해주지 않고 묵살했습니다. 그후로 많이 아파서 X-레이를 15부 찍어주고 결과는 10일 후에 알려주고 했습니다. 의무과 직원들도 직원편입니다. 직원 진정인을 폭행한 것 자기를 임의대로 조사하지 않고 조작해서 징벌 25일 먹었습니다. 진정인이 면회오는 사람도 없고 가족도 없고 영치금도 지원 받지 않고 같은 수용자가 우표를 쓰라고 줬는데 그건 부정서신이라고 징벌기일을 먹고 입실거부로 징벌 30일 먹고 총 76일을 먹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2010년 3월 15일날 오전 10시 반에 6중 본무주임 김상호 주임님이 진정인을 수 차례 불러 면담을 하면서 다른 사람이 추가 되는 걸 봤습니다. 진정인을 생각해서 지금까지 고소 청원민원 여러군데 모두 다 취하 하면은 김○○ 주임님이 인권 청원 담당한테 어떻게 하면 검찰청에 알아보고 나서 내 사건이 없는 걸로 해준다고 약속을 하였는데 진정인이 뒤통수 맞았습니다. 그 억울함을 검찰청에 알아보고 나서 헤아려 주십시오. 그후 일주일 후 3월 22일날 서울 지방검찰청 502호에서 진정인을 불러서 조사를 받으면서 담당검사 계장이 진정인 안상길 씨가 고소취하를 했는지 모르지만 서울구치소 조사과 기동타격대 직원들 사건 당일날 수용자 4명 불러서 다 조사를 하였습니다. 안상길을 처벌 해달라고. 검사 김효원 안상길을 처벌했습니다. 송치까지 해서 재판 중입니다. 그리고 6중관구실 관계님이 모두 사건 징벌 안 먹게 한다고 해서 고마워서 반성문과 계장님한테 가서 무릎꿇고 빌기까지 했습니다.

서울 구치소 소장님 면담 묵살 안양에서 소장님께 서신을 했는데요. 소장님은 모른다고 합니다. 책임자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2010년 5월 29일(목) 오후 16:00 김○○이 법정진술에서 피고인하고 수용자하고 폭행당했다고 말하고 조용히 하라고 말을 좋은 말을 하면 되는 데도 피고한테 심한 욕설과 협박을 했습니다.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심한 욕설과 집단으로 반 죽도록 폭행을 당했습니다. 부장 박○○ 먼저 의무과 복도에서 진정인을 멱살잡고 아스바리걸어 넘어뜨리고 김○○이가 손을 다치고 했습니다. (법정 증인 진술)

2010년 8월 27일날까지 기동대 주임 황○○ 주임은 관구심에서 변호사가 변론 후 폭행한 적 없다고 장민수 부장도 폭행한 적 없다고 증언하고 의무과 여의사도 직원편이고 의무과 주임도 직원편이고 법정증언 허위진술했습니다. 조사해 주세요. 2010년 6월 17일날 임○○ 법정진술에서 진정인이 먼저 진찰받고 먼저가고 수용자 4명을 16층에서 앞 이상한 소리가 나고 진정인이 많이 폭행당한 소리를 하고 나 죽겠네 하고 큰소리를 내고 하니깐요. 16층 앞에서 조사과 주임이 올라가지 못하도록 제제했습니다. 2010년 4월 29일 변호사나 형사 16 단독 판사님께 진정인을 CCTV 보조명령도 묵살했습니다.

2010년 2월 8일 의무과 복도 CCTV 심사하게 정보공개 신청해주고 6중 관구실은 비공개결정불복하므로 공개청구 정보는 교정업무 집행 과정을 보안사고 발견 각종사고 위험 예방 때문에 교정에 관한 내부적 보조자료 해줄 수 없다고 하는데 서울 구치소 보안과 장○○께서 말하고 조사과나 기동대 직원들이 없다고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서울 구치소 인권담당이 CCTV 공개해서 보내라고 진정인이 손도장 찍었습니다. 진정인이 오래전에 사건 열람 가는데요 진정 의무과 운동시간 복도 CCTV 찍고 진정인 6중 13방에 하루 한 번씩 찍고 했습니다.

그러면 6중 관구실도 CCTV가 공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CCTV 명령보조신청을 했으나 2010. 2.4일 6중 관구실 CCTV 녹화자료는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녹화자료를 자동삭제했으면 다 전체 돌아가지 않습니다. 인정할 아무런 자료가 없다고 하는데 CCTV를 검찰이나 법원에 내면 직무유기와 감봉 교정 공무원 문제 생기고 하는가요. 그리고 2011년 1월 7일 날 법원 422호 김상호 주임 증인 변호사가 물어봤는데요. 다 거짓말하고 자기는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꼭 조사하시어 재판부에서 CCTV 정보공개 재판을 합니다.

지금 제가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제가 배우지 못하여 이렇게 억울하게 당한 것입니다. 이 억울한 말을 같은 처지에 있는 수용자 말고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습니다. 못난 저의 억울함을 들어 주십시오. 하지만 구치소 수용 중에는 절대로 재소자는 저의 편을 들어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만약 직원이 아닌 재소자의 편을 해주었다면 불이익으로 힘들게 살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의 편을 들어줄 수 없을 것입니다. 저의 무고죄를 무죄로 밝히고 싶습니다.

정말 억울하여 죽고만 싶은 심정입니다. 저에게 가족이 있었더라면 교도소에서 저에게 이렇게까지 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고아인 저는 그저 말없이 눈물만 흘릴 뿐입니다. 못난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는 이러한 일이 없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자세히 살피시어 저의 억울함을 풀어주십시오. 저는 서울구치소서 2010년 3월 29일 안양교도소로 이감왔습니다. 진정인은 억울하게 폭행당하고 공무집행방해죄 1년 6월을 받았습니다.

채만수 소장님께서 진정인 사건 한번만 재조사를 해 진정인을 꼭 누명을 벗겨주세요. 꼭 부탁합니다. 채만수 소장님께 진정서를 제출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1년 1월 18일

진정인 안상길

발행하는 책 이름 ��정세와 노동�� 채만수(소장) 귀중

안녕하세요 안상길 님.

저는 노동사회과학연구소(��정세와 노동�� 발행) 총무 최상철이라고 합니다. 연구소에 보내주신 귀중한 서신 잘 받았습니다. 외로움 감옥 생활에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괜찮으시다면 안상길 동지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안상길 동지께서는 교도관에게 폭행을 당하셨다고 편지에 절절히 적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고발하자 오히려 무고죄로 벌을 받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사실 그대로라면 상당한 인권유린이 감옥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며 그대로 두고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동지께서는 고아 출신이시기 때문에 감옥에서 상당히 많은 차별과 폭력에 서러움을 당하시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제가 아는 동지 중에 한 분도 고아 출신이기에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시고 그 안에서 숱한 인권유린을 당하시기도 하셨습니다. 힘없고 권력이 없는 이에게 더욱 가혹하게 다가오는 시련과 폭력은 이제 멈추어져야 합니다.

보내주신 편지 읽고 이를 감옥인권 관련 단체에 전했습니다. 노동사회과학연구소는 감옥 인권에 대해 전담할 수 있는 기관이 아니기에, 보내주신 편지 내용을 <구속노동자 후원회>(서울시 영등포구 영등포동 2가 20-64 세덕빌딩 302호. 우 150-900)및 다른 단체에 그대로 전했습니다. 다소 시일이 걸리겠습니다만 차근차근 절차를 밟게 될 예정입니다. 연구소에 편지를 주셨는데 직접 문제를 해결하지 못함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전문성을 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단체의 도움을 얻는 것이 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 같습니다.

추운 겨울 차가운 감방 생활을 무사히 이겨내실 수 있길 기원합니다. 다른 소식이 있다면 꼭 바깥에 알려 도움을 청하시길 바랍니다.

2011년 1월 28일

최상철 드림

회원마당: 독자편지

안상길 동지의 편지

이병진ㆍ최상철 동지 사이의 편지

최상철 동지

작은 창문으로 내리는 눈을 보니 신기하고 가슴이 설레이는군요. 2년 전 9살이던 딸 아이와 7살이던 아들 녀석과 눈사람을 만들면서 놀던 추억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아이들이 눈을 좋아해서 눈 오는 날에는 밖에서 아이들과 놀았어요.

작년 겨울은 수원구치소에서 지냈습니다. 그곳은 밀폐형 고층건물구조입니다. 밖을 볼 수가 없지요. 비록 만져 볼 수 없지만 작은 창문으로 눈 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행복하네요. 밖에서는 아주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이 감옥에서는 매우 절실하고 소중한 일이 됩니다. 창문으로 눈 내리는 모습에 감격하는 저를 보면 좀 이상하겠지만 자유가 박탈된 수인은 아주 작고 사소한 변화 속에서 만족을 얻는 것이지요.

자살 방지용 ‘방충망’도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는 사소한 일이겠지요. 그러나 24시간 1평 남짓한 독방에서 지내는 수인에게 밖을 느끼는 유일한 시간이 운동시간 뿐입니다. 1시간 동안 땅을 밟고 신선한 외부 공기와 햇볕을 보는 게 운동시간 뿐이죠. 이런 상황에서 햇볕 1조각, 시원한 바람이 절실한데 조밀한 방충망으로 창문을 가리면 밀폐된 거나 매한가지입니다. 수인(囚人)에게 창(窓)은 바깥과 소통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게 차단당했다고 생각하면 박탈감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이곳 전주 교도소도 방충망으로 창문이 닫혀 있습니다.

이상 기온 현상에 대해서, 자본주의의 무정부적인 생산이 기후변화를 심화시킨다는 점에 공감합니다. 자본주의의 무정부적인 생산은 사유재산에 대한 인간의 욕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주의(Liberalism) 정치학에서는 ‘사유재산(private property)’을 보호하고 지키는 일이 국가의 임무라고 합니다. 특히 존 로크(Locke)는 사과의 비유를 통해서 사유재산을 선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사과(잉여 생산물)를 창고에 쌓아두면 시간이 지나 썪어 없어지기 때문에 사유재산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한계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자본이라는 축적구조가 생기면서 개인의 욕망은 통제 불능에 가까워지고 이는 개인들 상호간에 경쟁을 촉발시켜서 정글과 같은 야만을 잉태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채만수 소장님을 뵙지는 못했지만 소장님의 글을 읽고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생 활동가로서 지금까지 한 평생을 일관된 삶을 사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소장님께서 저를 걱정해주시다니 이 보다 더 큰 영광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난 6년 동안 노동사회과학연구소가 걸어 온 길을 ��정세와 노동��을 읽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청산주의와 조합(협조)주의에 대한 문제의식 속에서 외로운 길이지만 흔들림없이 길을 개척하고 있는 채만수 소장님과 연구소 동지들께 무한한 신뢰를 갖게 되었습니다. “필연 속에 자유가 있다”는 말이 그동안 연구소가 걸어온 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옥중서신의 단행본 출판을 망설이는 이유는 연구소의 업적과 명예에 누가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었습니다. 그런 저를 믿어주고, 함께 뜻을 모아 진실을 밝히고, 비록 감옥 안이라 할지라도 작은 실천을 통해 국가보안법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일깨워 준 채만수 소장님과 연구소 동지들께 존경과 감사를 드리며 단행본 제작에 동참하겠습니다.

인도와 국제 정세와 관련된 자료를 보내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연구소와 최상철 동지 덕분에 인도에서 공부하던 20대로 돌아간 기분입니다. 그때는 전투적으로 공부를 했지요. 1학년 때 많이 힘들었어요. 델리대는 1년에 1번 종합시험을 치릅니다. 시험은 전공과목당 10개의 문제를 제출합니다. 그 중에 5개를 선택해서 서술형으로 작성합니다. 시험시간은 1과목에 3시간입니다. 시험기간은 1달인데 그야말로 초죽음이죠. 인도 친구들은 보통 답안지 노트 2~3권(40~50장)을 제출합니다. 저는 간신히 2권 정도 작성했지요.

요즘은 델리대 정치학과에서 무슨 과목을 어떤 내용으로 가르치는지 궁금하네요. 당시 전공과목은 인도의 독립운동사, 헌법, 인도 정부론, 정치이론, 비교정치론, 국제조직, 국제관계 과목이었습니다. 중립적 시각에서 자유주의와 맑시즘을 모두 공부합니다. 인도에서의 나는 지극히 평범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마치 ‘불온한 사람’이 되었어요. 어디서부터 실타래를 풀어야 될지 난감하지만 꼭 풀어야 될 과제입니다.

연구소 덕분에 저의 관심사와 연구분야가 넓어지고 있습니다. 인도 관련 책을 받게 되면 자료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연구할지 고민하겠습니다. 인도의 진보적인 학문적 성과와 경향을 알리고 소개하는 일도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본 책 반입에 대해서는 담당직원에게 확인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확인결과 제본 책 반입도 가능합니다.)

E.M.S. Namboodiripad, A History of Indian Freedom Struggle, Social scientist press, 1986. 번역을 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구체적인 번역 계획을 세워서 실천하겠습니다. 이 책은 맑스의 역사적 유물론에 입각해서 영국 식민지배 당시 인도의 사회‧경제적 본질과 독립운동의 성격을 규명하고 있습니다. 제 능력으로는¹⁾. 사명감을 가지고 번역을 해야겠습니다. 책은 500쪽 분량입니다. 한 달에 50쪽 씩 10개월이면 초역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이 소개되면 간디와 네루에 대한 정치적 좌표가 명료해질 거라 생각합니다.

최 동지의 CPI(M)의 위기에 대한 진단이 예리합니다. 께랄라주는 서벵갈 주보다, CPI(M)의 집권이 안정적입니다. 께랄라주는 인민 예산 참여제를 강화해서 경제 발전의 문제를 인민들의 참여로 풀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2005년 8월 1달 가량 께랄라에서 현지 조사를 하였습니다. 인민예산참여제에 대한 조사 결과를 “사회적 자본형성과 대중운동 간의 관계에 관한 께랄라 주의 인민참여운동(People's Campaign) 사례를 중심으로”를 인도학회에 발표했습니다. 께랄라주의 CPI(M) 정부는 인민예산참여제를 흔들림없이 정치적 의지를 가지고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낮은 경제 성장률에도 인민들이 동요하지 않고 CPI(M) 정부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벵갈의 CPI(M) 정부는 정권유지에 급급해서 구체적인 노선과 전략없이 산업화 정책을 추구하다보니 농민과 자본가 양쪽 모두에게서 불신을 받고 있습니다. 이틈을 이용해서 마마따 바네르지(Mamata Banerjee)가 중심인 뜨리나물 콩그레스(Trinamool Congress, TC)의 세력이 커지고 있습니다. 현 UPA 정권에서 철도부 장관인 마마따 바네르지는 연방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서벵갈에서 그의 정치세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국가) 독점자본주의 논쟁, 일국사회주의 논쟁에 대해서는 ��노동사회과학��의 글들을 통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현실주의적인 시각에서 냉전 이후의 국제질서를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로버트 길핀의 미국 패권주의를 인정했습니다. 최근에 와서 생각이 달라지고 있습니다만 제국주의 단일체제라는 문영찬 동지의 분석이 현실주의적 입장에서 객관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냉전 이후 현실 사회주의의 존재는 명목 뿐이지 현실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는데 의외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제가 께랄라에서 느낀 점이지만 인도공산당(맑스)에 대한 인민들의 지지가 확고했어요. 물론 2000년 총 인도국민회의에 정권을 잠시 빼앗겼지만 인민들이 직접 겪어보니 경제성장 보다는 결국 사회적 평등과 복지를 실현시키는 인도공산당(맑스)이 옳다는 것을 스스로 느낀다는 점입니다. 빈부의 격차와 사회적 갈등보다는 조금 불편해도 공동체의 존엄과 인간의 가치를 존중해주는 즉 인민들의 정치참여를 보장해 주려는 CPI(M)에 대한 신뢰가 재집권에 성공한 요인이었습니다. 그런 점을 볼 때 현실 사회주의의 존재에 대해서 갖는 최상철 동지의 문제의식은 매우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점에 대해서 저 역시 복잡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실주의적 입장에서 힘의 역학 관계만 가지고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존재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이 저의 판단입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정태적인 힘보다는 역사(歷史) 발전의 추이와 흐름 즉, 모순의 맹아에서 무엇이 점점 소멸하는 것이고 무엇이 점점 발전하고 있는가를 파악하고 인식하는 것이 최근의 국제관계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계체제’와 “세계정세”에 대한 분석을 놓고 어제와 오늘 끙끙거리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최상철 동지가 너무 큰 문제를 던져주셨습니다. ‘주요 모순들을 도식화하고 이에 대한 대응을 테제화’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에 공감합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와 지배적인 질서구조가 “다른 방식의 접근”을 허용하느냐 입니다. 순수한 학자의 길로 가고자 했지만 ‘다른 방식의 접근’이라는 이유로 감옥에 있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죠. 저와 최동지의 대화가 “다른 방식으로의 접근”에 대한 고민을 상호작용으로 발전시키길 희망합니다. 그동안 혼자서 고민했던 문제도 있고 최 동지를 통해서 새로운 문제 의식을 갖게 되어 기존의 관념을 새롭게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최 동지의 문제의식들이 저로 하여금 인도에 대해서 더욱 깊이 들여다보게 하면서 많은 질문을 갖게 하는군요.

네팔통합공산당(마오주의당)이 왜 사실상 정권을 단독으로 획득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수행하지 못했는가는 먼저 왕정이 붕괴되는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의 판단은 국내 정치 상황에 대한 전술적인 판단 오류가 크다고 봅니다. 왕자가 국왕과 일가족을 몰살시키고 자살한 사건이 왕정 붕괴의 직접적 계기였는데 이에 대한 전술 판단의 미비로 네팔통합공산당(마오주의당)이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다음 편지에 계속해서 최 동지께서 말씀하시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부탁하신 번역에 관해서입니다. 인도의 마오주의자들에 대해서 좀 구체적으로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의 인도 경제성장이 주목받고 있지만 그에 대한 반발과 사회․정치적 갈등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번역을 하면서 “인도의 마오주의자들의 저항”이란 글을 썼습니다. 읽어 보시고 번역글들과 함께 소개되었으면 어떨지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War agianst the Maoist: But who are they and what do they want?”와 Samit Kar 교수의 “Maoism to Mass Assassinism” 2개의 번역글을 함께 소개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민주화실천가족협의회>에서 ��민주가족��이라는 소식지와 <혁명적노동자당건설현장투쟁위원회(준)(노건투)>라는 아주 긴 이름의 단체에서 ��노동자세상��이라는 신문을 보내주었습니다. 노건투가 어떤 단체인지 궁금합니다. 저에게 지지와 관심을 보내주셔서 고맙다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1월 24일에 임미영 동지와 백철현 동지께서 이곳 전주까지 오셔서 장소변경 접견²⁾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관심 가지시고 걱정해 주셔서 송구할 따름입니다. 언젠가 최 동지께서 언급하셨듯이 개인 이병진이 아니라 국가보안법 철폐에 대한 의지와 연대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어깨가 무거워지는군요. 오늘은 이만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이병진 올림.

2011. 1. 17

이병진 동지 안녕하세요.

어제 1월호 발송작업을 다 마치고 이제야 편지 드립니다. 2월호는 설 다음 주 중에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 전달 말일에 나와야 제 때 나오는 것인데 발행기일이 너무 많이 늦어져서 독자들에게 죄송할 따름입니다. ��정세와 노동��을 동지께 보내면서 말씀드렸던 자료 12부를 함께 보냈습니다. 무사히 잘 도착하길 바랍니다.

동지께서 출판을 허락하시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주신 것에 대해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다음 연구소 운영위원회에서 관련 내용을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아직 동지와 나눈 서신이 그리 많지 않은 관계로 서적은 시일을 두고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추위에 얼어붙은 한강을 보며 감옥에 계신 동지의 생각이 나더군요. 조직 폭력배 김태촌이 감옥에서 서신을 통해 사랑을 나눌 때 대충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자가 감기에 걸렸는데 감옥 안에서 마음만 안타깝지 해줄 게 아무것도 없소. 내가 자유인이라면 병원에도 데리고 가고 약도 지어 먹일 텐데 정말 가슴이 아프오. 그래서 나는 이 겨울에 옷을 다 벗고 철창을 통해 들어오는 칼바람을 가슴으로 받아들였소. 나도 사랑하는 여인과 같이 감기에 걸려 그 고통을 함께하게 해달라고 말이요.'

조폭 김태촌의 로맨스를 미화하려는 의도로 소개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자살방지라는 명목으로 환풍 채광도 제대로 안 되는 폐쇄된 창으로 대체된 감옥 수감자의 현실이 개탄스럽습니다. 현재 수감자들에게는 조폭 김태촌에게 허용되었던 자유와 로맨스마저도 허용될 수 없는 모양입니다. 동지 역시 창문을 마음대로 개방할 수도 없는 모양입니다. 추위를 온 몸으로 느껴볼 자유마저 없는 모양입니다. 그나마 밖을 내다 볼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후퇴하고 있는 감옥 인권을 그저 받아들이게만 되는 것 같습니다. 여러 구속동지들과 구속동지들의 후원을 위한 단체와 조직에서 힘을 쓰고 있기에 연대의 움직임을 더해서 하나 하나 다시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반입 서적 제한도 그렇습니다. 구노회 강성철 동지의 글을 보니 30권 제한 규정은 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일방적으로 제정된 조치라고 하는군요. 후퇴하는 인권 현실에 맞서 싸우는 것이 더 없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특히나 이병진 동지처럼 학술적인 갈증에 시달리고 계신 분들께 30권 제한은 중증장애인에게 다가오는 보도의 턱과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급히 바꿔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선고공판이 1월 27일에서 2월 18일 오후 2시로 연기되었습니다. 연구소 이사 다음날이네요. 경황이 없더라도 재판에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재판에 다녀오고 나서 결과에 대해 편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혁명적노동자당건설현장투쟁위원회(준)>에 대해서는 제가 11월에 동지에게 드린 편지에서 짤막하게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신영수 한나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출범하지도 않은 이 단체를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려는 집단”이라고 운운했다고 썼었죠. 저도 이 단체에 대해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합니다. 다만 매체 ��노동자 세상��을 통해서 판단해보건데 상당히 현장과 밀접한 투쟁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적입니다. 또한 명확하게 당 건설을 목표로 삼고있다는 것도 분명한 특징입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사회주의를 직접적으로 표명하는 정치조직의 다수가 그러하듯 이 단체도 20세기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해서 자본주의 국가와 동일한 기준으로 바라보며 상당히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노건투에 대해 제가 아는 바는 별로 없습니다만 각종 집회나 투쟁 현장에서 노건투 활동을 하시는 것으로 보이는 동지들을 종종 뵙습니다. 이 동지들과 생각은 다릅니다만 현장 투쟁에 적극 결합하고 계시는 모습은 제가 오히려 많이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들어 제가 집회에 자주 못나가고 있어서 특히 더 그렇네요. 노건투가 ‘(준)’자를 떼고 정식으로 출범하면 단체의 성격과 활동내용이 좀더 명확하게 드러나리라 생각합니다.

세계정세에 대해 꺼낸 화두를 이어가보겠습니다. ‘현실주의적’ 국제역관계 분석에 대한 비판에 있어 동지와 기본적으로 견해를 같이 합니다. ‘현실주의적’ 분석은 존재하는 제국주의 질서를 그 자체로 용인하게 되는 분석으로 귀결되기에 이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이 ‘이상주의’가 되어서는 안 되겠죠. 소위 국제정치에서 ‘현실주의적(realistic)’ 분석은 사회주의자들이 쓰는 현실주의적(realistic)과 같은 단어를 씀에도 그 용법이 다른 것 같습니다. 사회주의자들은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함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철저함을 기하지만 존재하는 현 질서는 언제든지 소멸될 수 있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객관적인 법칙과 주체적인 목적의식적인 노력을 함께 강조합니다. 그런 면에서 ‘역사(歷史) 발전의 추이와 흐름 즉, 모순의 맹아에서 무엇이 점점 소멸하는 것이고 무엇이 점점 발전하고 있는가를 파악하고 인식하는 것’이라고 표현한 동지와 저는 문제의식에서 정확히 일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린 다른 방식으로의 접근이란 사회주의진영이 존재했을 당시 진영테제에 근거한 국제적 계급 역관계에 대한 분석이 1990년대 이후에는 유효성을 상실했기에 다른 방식으로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진영의 붕괴가 곧바로 제국주의 단일체제의 형성이라는 것으로 귀결되는가에 대해 문영찬 동지의 입장과 이견을 보이는 것이구요. 제가 단순화된 접근을 비판하는 것은 현재조건이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론은 복잡한 현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하며 미래를 예측하며 실천의 지침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이론이 도식적으로 전개된다면 현실에 맞는 이론을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이론에 현실을 끼워맞추는 모양이 되어버립니다. 그것은 맑스-레닌주의적 접근이 아니라 관념주의적 접근이 되어 버립니다. 물론 현실에 존재하는 주요한 변수들을 충분히 고려하고 판단한다면 추상화를 거친 이론은 단순하고 명확한 형태로 외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확한 전략전술을 산출하기 위해서는 오랜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리라 생각하며 ‘다른 방식’이란 그런 의미에서 제가 말씀을 드렸던 것입니다.

동지께서는 경직되어 있는 이 땅과 동북아의 정세에 대한 고민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경직되어 보이는 정세는 한편으로는 대단한 역동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동북아를 둘러싼 정세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단 한 명의 활동가의 작은 움직임이라 할지라도 정세와 맞물리면 높은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동지께서 많은 좌절감을 가지고 계실 이 순간에도 정세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습니다. 그냥 멈추어 잠들어 있기에는 동지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정세와 노동�� 1월호에 네팔통합공산당(마오주의당)(CPN(M))의 주요한 문서 “프롤레타리아트의 현재 상황과 역사적 과업”이 소개되었습니다. 2009년에 발표한 문서로 왕정타도 시기의 정세와 CPN(M)의 정세적 판단을 볼 수 있습니다. 네팔 문제에 대한 갈등을 해결해주는 주요한 문서이며 단지 문헌적 가치 이상의 것이 담겨 있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동지께서는 “국내 정치 상황에 대한 전술적인 판단 오류”가 CPN(M)의 왕정복고 이후의 노선상의 ‘혼란’의 원인으로 보십니다만 저는 조금 다르게 봐야하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주체적인 한계와 오류도 있겠습니다만 객관적인 경제적 토대에 대한 판단이 먼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농업 이외의 산업기반이 극도로 취약하며 봉건유제가 강하게 남아 있는 네팔의 혁명의 현 단계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으로 봐야할 것입니다. 물론 네팔 혁명이 부르주아 혁명에 머물러서는 안 되겠습니다만 이 시기의 전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전략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하나 인도와 미제국을 비롯한 타국의 반혁명 지원이라는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확고한 대비가 없는 상태에서 좌경적으로만 나갈 수는 없는 것이기에 현재와 같은 전술을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찌되었든 네팔의 운동과 정세는 상당히 역동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한국의 운동에서는 그러한 역동성을 찾아보기가 상당히 힘듭니다. 저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한국 운동가들의 시야는 국내 그리고 멀리 가봐야 동북아 조금 더 가면 미국과 서유럽을 크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못사는 나라’라고 등한시 할 것이 아니라 그 역동적인 운동에서 오히려 우리가 많이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더구나 네팔에서 많은 이주노동자 동지들이 한국으로 와서 노동하고 있기에 네팔에 대한 이해를 넓힐 필요성은 객관적으로 요청되고 있는 바입니다.

동지께서 저번에 알려주셨던 FrontLine의 웹싸이트를 검색하여 마오주의 운동 관련한 자료를 일부 보내드립니다. 좀더 일찍 보내려 했는데 편지가 늦어지면서 자료도 늦었습니다. Maoist Connection과 War on Maoist라는 기사입니다. 그리고 현재 인도의 정당정치에 대해 간접적으로 알 수 있게 해주는 Historic half-truths라는 기사도 출력해서 같이 보냅니다.

인도 관련해서 추가로 보내드릴 수 있는 서적 리스트입니다. 이하는 제본을 해서 보내드려야 하는 것이기에 시간이 제법 걸릴 것 같습니다. 말도 안 되는 30권 제한 규정 때문에 준비하실 시간도 있어야 할 테니 우선 리스트를 보내겠습니다.

Communist Party of India : 14th Congress Documents —Calcutta March 1989, Communist Party Publication.

Buddhism: The Marxist Apporoach, People's Publishing House.

Indian Society: Historical Probings, People's Publishing House.

Charan Shandilya: India-China Relations, Pt. Sunderlal Institute of Asian Studies.

Prakash Karat: Subordinate Ally, Leftword.

Debiprasad Chattopadhyaya: Indian Philosophy : A Popular Introduction, People's Publishing House.

Sulekh Chandra Gupta: Agrarian Relations And Early British Rule In India, People's Publishing House.

이상 6권입니다. 그 외 복사해서 보낼 자료도 약간 있네요. CPI에서 나온 Bethind the Indo-US Nuclear Deal 그리고 PPH의 Culture And Consciousness In Modern India 이상입니다.

��정세와 노동�� 2월호에는 CPI(ML) 강령이 번역 소개될 예정입니다. 이들이 인도 사회에 대해서 반봉건사회라는 잘못된 규정을 내리고 있지만 이들의 오류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빠블로 네루다의 시로 마무리 하려 합니다. 임채희 동지께서 좋아하는 시로 소개하셨고 제게도 강렬하게 다가오기도 하네요.

점 (點)

아픔보다 넓은 공간은 없다

피를 흘리는 아픔에 견줄 만한 우주도 없다.

최상철 동지께

오늘은 최 동지께 슬프지만 그래도 ‘희망’이라는 기쁘고 감사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사실 어제 이혼에 관한 재판이 있었습니다. 아내와는 10개월 만에 만났습니다. 그동안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못해서 응어리로 남았었는데 이렇게라도 만나서 그 말을 해주어서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재판의 쟁점은 ‘간첩’이라는 꼬리표와 장기 징역이라는 부정적 요인이 아이들에게 해악을 끼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아빠의 자리는 비워두겠다. 하지만 감옥에 있는 동안 아이들과 아빠와 관계를 단절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아빠의 사상으로 인해 아이들과의 관계를 제한할 수 없고 사상의 차이는 어른들의 문제일 뿐 아이들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다. 아빠와 아이들이 한 달에 편지 1회 전화 1회 씩 소통하도록 한다”고 결정하였습니다. 또한 “두 분 다 아이들을 위해서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하나 관점과 방법의 차이가 있다. 따라서 양육에 대해서 두 사람이 협력한다”라고 판결문에 명시하였습니다.

제가 최 동지께 저의 부끄러운 단면일 수도 있는 재판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어른들의 사상의 차이로 아이들까지 제약 당해서는 안 된다는 재판부의 의견에 깊이 공감해서입니다. 아내는 현실적이며 현재의 주류적 시각에서 볼 때 혹시나 아이들이 잘못될까 하는 보호본능적 모성애 입장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판사님의 판단처럼 어른들의 사상적 차이 때문에 기본적인 인간적 관계를 배제하거나 제한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저와 아이들과의 관계이기 때문에 나의 주관적 입장일 수 있지만 아이들만큼은 자유로운 사상과 이념을 접하고 그들 자신의 미래는 스스로의 의지를 갖고 자신들이 결정하는 사상과 신념을 갖고 살게 하면 좋겠어요. 저 또한 아이들이 자라서 저를 신뢰할지 부정적으로 대할지 확신은 없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고 진실되게 저의 경험과 생각, 느낌, 그러면서 그 과정에서의 감정들을 솔직하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기록으로 남겨서 나중에 아이들이 왜 아빠는 집을 떠나 있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우리 가정의 해체에 대한 쓰라린 아픔을 잘 이겨내어 분단된 민족의 아픔 역시 우리 가정의 아픔과 같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는 성숙된 지성인이 되어 아빠없이 크면서 겪어야했던 상처들을 치유하길 바랍니다. 저는 우리 가정이 형식적으로 이별이지만 아픔을 이겨내고 내용적으로는 더 큰 가족으로 만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판사님이 여성분이셨습니다. 두 사람의 “협력”을 판결문에 넣어주신 의미를 깊이 새겨 둡니다.

또 다른 소식은 제가 살았던 오산의 다솜교회 목사님과 지인들이 면회를 오셨습니다. 뜻밖의 방문에 감격했습니다. 오산대의 교수님들도 제 걱정을 하시면서 찾아오시겠다는 반가운 인사도 전해주셨습니다. 제가 경찰경호행정학과에서 강의를 했는데 제자들과 교수님들께서 뭐라 생각할지 나를 이해해 주실지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목사님 말씀에 의하면 처음 제 사건이 보도되었을 때는 모두 놀라고 혼란스러우셨답니다. 지역 신문에 크게 보도되었고, 아주 큰 사건이었답니다. 서로 눈치들을 보며 지냈는데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저에 대한 이해심을 갖고 있다고 전해주셨습니다. 목사님께서 이제는 지역에서 목소리 좀 내야겠다고 “우리들이 지어야 될 십자가를 대신지고 있다”라며 용기 잃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오산의 뜻있는 시민들이 저에게 지지의 마음을 보내주어서 너무나 감격했습니다. 저는 오산에서 ‘참여민주주의 심화’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현실 정치에 직접 참여하였습니다. 결론은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인식하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오산 지역의 뜻있는 분들과 친분을 쌓았는데, 모든 것이 단절이 되었습니다. 지역 사회에서의 단절감이 가족의 고통을 크게 했습니다. 오늘 목사님의 방문으로 오산에 대한 애정이 다시 피어오르네요.

마지막 소식으로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에서 지지와 후원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이병진 교수님의 꺽이지 않는 양심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힘이 되어드렸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정성스러운 편지도 보내주셨습니다.

최상철 동지!

제가 소식을 전하는 이유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변화의 징후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제가 절망에 빠져 힘들어하고 괴로워할 때 최 동지께서는 “죄인이 아니다.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한다”며 저를 적극 옹호해 주셨습니다. 얼굴도 모르고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저를 믿고 신뢰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최 동지와 함께 편지로 대화하면서 조금씩 상처를 치유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비로소 “진실”의 힘이 무엇인가 정의(正義)가 어디에 있는가! 깨우침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진보와 변혁으로 가는 역사(歷史)의 거대한 흐름은 멈출 수가 없습니다.

이병진 올림

2011. 1. 27.

최상철 동지께

<노동사회과학연구소>와 최상철 동지, 그리고 <전국노동자정치협회>의 백철현 동지의 도움으로 작은 논문을 하나 집필하였습니다. 제목은 ｢인도의 마오주의자(Maoist)들의 저항—의미에 대한 시론적 분석—｣입니다. 너무나 기쁘고 특히 최상철 동지와 백철현 동지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논문의 논지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인도의 경제자유화(시장화)가 부족민들과 하층카스트(달리트)들의 빈곤화를 심화시켜 급진적인 무장봉기를 주장하는 마오주의자들이 대중조직으로 발전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는 것이 논지입니다.

그러함에도 제가 기뻐하는 이유는 감옥이라는 제한된 곳에서 미약하지만 지적활동을 통해서 성과물을 냈다는 점입니다. 또한 그것을 가능하게 뒷받침해 준 동지들의 의지가 저로 하여금 의지를 갖고 할 수 있도록 추동한 힘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인도 연구자로서 인도의 농민들과 부족민들을 중심으로 공공연한 무장 봉기를 다루기가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입니다.

두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첫 째는 저의 석사논문과 관련해서입니다. 논문은 농민들의 무장봉기를 다룬 낙살라이트 운동에 관한 연구였습니다. 논문 심사 교수님들이 논문 통과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었습니다. 제 연구가 사실인가 확인하기 위해 참고 문헌의 책들을 빠짐없이 제출하라고 해서 그 많은 책들을 학교에 가지고 가서 하나 하나 참고 문헌 책들을 소개하여 인용한 논지의 근거를 설명하고 증명하고 나서야 겨우 통과되었습니다. 이때 지도 교수님의 배려가 컸습니다. 그러면서 지도 교수님은 저에게 “현실적인 연구”를 하라고 당부하셨지요. 이후로는 연구의 방향을 시민정치와 정치참여로 바꾸었습니다. 두 번째는 역시 석사논문인데 국정원에서 제 석사논문을 분석해서 수사보고에 올렸고 저는 제 논문에 대해서 설명을 해야 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참 많이 위축이 되더군요. 이런 상황에서 굳이 이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써야 하나 망설인 것이지요. 2009년 5월에 인도를 마지막으로 다녀와서 현장 경험이 떨어져서 현재 인도 상황에서 적실성 있는 주제인지 고민했지만 한 번쯤은 다루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은 했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검토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요청하신 번역글(War against the Maoists: But who are they and what do they want?)도 함께 보냅니다. 예전과 달리 집필에 대한 사전 심의 절차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밖으로 내보낼 때만 내용 심사를 한다고 하는데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고 합니다. 학술논문과 번역문이니 큰 문제없이 빨리 도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보내주신 1월 12일자 편지의 대화를 이어갑니다. CPI(M)의 위기라기 보다는 서벵갈을 집권하고 있는 CPI(M)이 경제발전에 치중하면서 전통적인 지지층인 농민들과 충돌하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벵갈은 CPI(M)이 집권하면서 농지개혁도 성공적이었고 지방자치기구인 빤쨔야트도 활성화시켜 1993년 73차 헌법개정³⁾으로 빤쨔아트의 제도적 개혁을 이끄는 데 커다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최초 서벵갈의 빤쨔야트 주민들의 참여보다는 관료화가 지배적이며 농지개혁을 통해서 농민들의 지지가 확고한데, 산업화 전략에 따른 개발정책으로 농민들과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는 더 깊이 분석해 볼 문제입니다. 서벵갈의 한계에 대해서 저도 공감합니다. 어떻게 변화할지 지켜볼 일입니다.

CPI(M)이 집권하고 있는 께랄라는 서벵갈과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발전의 속도는 더디지만 사회복지수준이 높고 주민들의 정치의식 수준이 높습니다. 주민들의 자치조직인 빤쨔야트의 참여율도 높아요. 젊은이들의 실업과 자살로 고민이 많지만 정치적으로는 안정되 있고 카스트와 종교 간 갈등이 없는 지역입니다. 같은 CPI(M)이 집권해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일국사회주의 논쟁’을 잘 몰랐습니다. 요즘 연구소에서 보내준 자료들을 읽고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논쟁들을 통해서 진실이 알려지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구성체 논쟁이 과학적 이론의 발전과 우리 사회를 정확히 분석한다면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소에서 논쟁의 불씨를 살리려는 것에 대해서 어떤 호응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간첩”이라는 꼬리표를 자르는 일이 저에게 중요한 일이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면 막막할 뿐입니다. 현실적으로 살아야 될 징역도 무겁게 다가오거든요. 하루를 전쟁터에서 싸우는 각오와 정신무장으로 냉수목욕으로 시작합니다. 이런 상황을 언제까지 살아야하나 가끔씩 서글플 때도 있습니다.

남동생에게 편지가 왔습니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인 막내 아들 녀석이 “고모 나 귀가 아파!”하더래요. 병원에서는 감기 치료를 제대로 못 받아서 중이염에 걸렸다고 합니다. 그날 밤 잠을 못 잤습니다. 참았던 울음을 울컥하고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아이들 만나면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나.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초등학교 3학년인 큰 딸 아이는 친구들이 “너희 아빠 뭐 하시니?” 물어보면 “몰라!”라고 말하며 자신없어 한다는 말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 하네요. 큰 딸아이는 저에게 늘 관심이 많아서 “나도 아빠처럼 훌륭한 교수가 될 테야”. 아빠를 따르고 좋아했어요. 그만 이야기해야겠군요. 가슴이 먹먹해져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간첩”이라는 꼬리표만큼은 꼭 떼어내고 싶습니다.

향린교회에서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국가보안법의 문제점과 형제와 이웃 심지어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향린교회는 북의 형제를 적으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침해하는 법이라 폐지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진리를 실천하려는 형제․자매님들의 숭고한 신앙의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국가보안법이 사라져서 다시는 저와 같은 비극적 삶의 희생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병진 올림.

2011. 1. 23

이 편지⁴⁾는 제가 쓴 소논문과 번역글을 보내려고 쓴 편지인데 논문의 완성도와 정합성에 대해서 고민을 하다 소논문은 보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좀더 깊은 연구를 해서 발표할 생각입니다. 다만 연구주제의 문제의식은 최 동지와 공유하고 싶군요. 편지에 막내 아들 녀석 이야기를 드렸어요. 막내아들 녀석 생각이 많이 나네요. 귀가 아프다는데 함께 병원에 가지 못해서…… 지난 편지지만 아이들에 대한 나의 간절한 마음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사랑한다 ○○, ○○아!!! 그리고 미안하다.’

만나서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

2011년 2월 9일

이병진 올림.

최상철 동지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편지와 “Maoist Connection”, “War on Maoist” 기사 자료 그리고 ��정세와 노동�� 1월호와 12권의 책 잘 받았습니다. 귀중한 연구 자료들을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인도에서 자료를 구하고 가져오는 일이 얼마나 힘들지 알기에 그 가치를 소중하게 느낍니다. 그것도 감옥 안에서 받아 볼 수 있다는 것은 더욱 특별한 일입니다. 점점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저는 최 동지와 <노동사회과학연구소>와 함께 인도 연구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족들은 걱정을 많이 합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혹시나 잘못될까봐’라는 걱정이겠지요. 더군다나 아빠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저도 무척 마음이 아픕니다.

“형은 도덕적이나 사회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단지 이념(사상)이 많이 다르다는 생각 뿐이지. 하지만 그깟 이념이나 사상 때문에 가족이 해체되고 8년이란 세월을 교도소에서 보낸다고 생각하면, 너무 가치없고 무모한 짓 아니야?”라고 안타까워하는 동생에게는 인간적으로 너무나 미안하고 슬픕니다. 언젠가는 이해해 줄 날이 오겠지 생각하며 가슴으로 눈물짓고 있습니다. 동생은 말합니다. “우리같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국보법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데, 왜 형은 긁어 부스럼 만드는지 모르겠어”

동생 말이 맞아요. 국가보안법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죠. 그러나 그건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일 뿐이지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중력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중력의 영향을 받고 살지 않습니까. 중력의 원리를 몰라도 농사를 짓거나 먹고 사는 일에 전혀 지장이 없죠.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좇는 망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적 추론으로 중력을 이해한 서구문명은 기계문명을 발전시켰고 비행기, 미사일, 우주선까지 개발하여 압도적인 기계문명의 힘으로 전세계를 지배하고 식민지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등한시한 민족은 피눈물나는 착취와 억압을 당하며 지내야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 발전에 도태되어 억압받으며 살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의 질서가 영원하다는 무사안일한 생각에 빠지지 말고 역사 발전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귀를. 왜? 보다 행복하고 인류(사람)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죠.

동생은 감옥에 있으면서 이제야 국가보안법이 문제라고 하면 자기 변명이고 밖에서 볼 때는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뻔뻔하고 이기적”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물론 감옥에 와서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으면서 ‘내가 왜 이런 아픔을 겪어야 하나’라는 반발심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그런 점은 하나의 요인일 뿐 본질적인 부분이 아닙니다. 단지 국가보안법이란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보안법이라는 기제의 “정당성”의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인 거죠. 절대적 진리라고 믿었던 ‘만유인력의 법칙’도 깨지지 않았습니까? 상대성 이론에 의해서 절대적인 ‘시간’의 기준도 달라집니다. 그러면서 양자역학이 나오고 소립자와 미립자에 대한 이해가 확장되면서 핵분열과 핵융합의 기술까지 발전시켰습니다. 냉전이 와해되면서 국제질서의 환경이 근원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다면 냉전시대의 산물인 국가보안법도 바뀌어야 되는 것 아닐까라는 것이 저의 문제의식 즉 “정당성”에 대한 문제의식입니다. 어린이가 성장하면 큰 옷으로 바꾸어 입지요. 우리 국가의 경제력, 사회의 발전 정도, 국민들의 의식수준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성숙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에 걸맞는 옷으로 바꾸어 입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문제제기를 하는 거지 나를 변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점에 대해서 최상철 동지와 <노동사회과학연구소>와 깊은 공감대가 있어서 저의 닫힌 마음이 열리고 대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동생은 나의 이런 문제의식조차도 마치 내가 좌파단체에 현혹되어 국가에 대항하려는 것은 아닌지 또는 그러한 삶을 살려는 것은 아닌지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국가보안법 기준에서 볼 때 나는 실정법을 위반했고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국가에 사과했고 책임지는 자세로 징역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직접 경험한 전체적인 역사적 흐름과 맥락에서 볼 때 나는 “이적 행위”를 하지 않았고 그런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문제제기를 했다고 해서 국가에 대항하려고 보는 것은 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동생은 오히려 제가 감옥에 있으니까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었다고 하니 저도 조금은 고민이 되네요. 이 점에 대해서 동생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생각입니다.

이번에 보내주신 책에서 인도공산당(맑스주의당)에서 발행하는 the Marxist: Theoretical Quarterly of the Communist Party of India(Marxist)가 있습니다. 2008년 4-6 ⅩⅩⅣΖ에 인도공산당(맑스주의당) 19차 회의 보고서가 실렸습니다. “On Left-led Governments: The Experience and their Role in the Present Situation” Part Ⅱ of the Political-Origanisational Report of the 19th Congress of the CPI(M). 이 보고서에는 인도공산당(맑스주의당)의 당의 기본 입장이 제출되었습니다. 기본적인 정세인식은 미제국주의에 반대하며 미국과 결탁한 중앙정부에 반대한다는 점입니다. 노동자와 민중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경제자유화(시장)정책과 외국인 직접투자(FDI)⁵⁾를 반대합니다. 문제는 좌파 주정부가 집권한 서벵갈, 트리퓨라 주정부가 재정위기를 겪고 있고, 중앙정부의 견제로 어려움이 크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산업발전의 필요로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허용한다는 것입니다. 주정부는 공공부분과 사회간접 시설을 유지관리하여 산업화를 촉진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일관성이 없습니다. 이처럼—최상철 동지께서도 이미 지적하였듯이—“부분적․ 지역적 자치의 실험으로 인도에 사회주의 정치를 뿌리내리려는 노선은 그 수명을 다한 것 같다”는 점에 저도 동의를 합니다.

네팔의 통합공산당(마오주의당)이 단독으로 정권을 수립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지 못한 이유가 많이 있겠지만 저는 경제적 요인이 매우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네팔의 경제는 인도에 종속적입니다. 인도로부터 기본 생필품이 차단되면 네팔은 현실적으로 유지할 힘을 잃게 됩니다. 가뜩이나 인도는 국내의 마오주의자들을 반정부 세력으로 규정하여 진압하는 마당인데 네팔에서의 마오주의당 정부의 구성을 좋아할 리 없겠지요. 그런 한계에 직면하여도 지도부가 변질되지 않고 당의 순결성을 지켜나가야 하는데 기회주의자들과 결탁하여 변질이 되면서 혼란을 겪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국제 맑스주의 경향(International Marxist Tendency> 그룹의 주장처럼 일국에서의 변혁만으로 사회주의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⁶⁾ 네팔의 상황은 사회주의를 자체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물질적 토대가 미미하기 때문에 그렇지 정치적인 면에서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네팔통합공산당(마오주의당)이 정치적 의지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사회주의 건설을 지향하며 자신의 정치적 힘으로 물질적 토대를 구축한다면 그래서 인도로부터의 경제적 자립을 이룩한다면 군사적 압력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너무나 복잡하고, 네팔 주민들의 교육수준이 낮고, 전체 인민을 묶어 세우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지도부에서 기회주의자들이 발생하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는 강한 규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 동지와 편지를 나누면서 과거에는 피상적으로 생각하였던 사회주의 국가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일국사회주의” 논쟁도 그런 예의 하나입니다. 솔직히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깊이 연구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여러 국가들을 다니다 보니 현장에서 느꼈던 질감과 통찰력은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주의 국가로 분류되는 북한, 중국, 베트남, 그리고 주정부 수준이지만 인도의 께랄라, 서벵갈의 경험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캄보디아도 2차례 다녀왔습니다. 우리에게 킬링 필드로 잘 알려진 폴 포트의 모험주의적인 극좌 노선을 보면서 자본주의가 극우로 변질되면 파시즘으로 돌변하고 사회주의가 극좌 모험주의로 변질되면 전체주의 독재국가가 된다는 점을 캄보디아에서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파시즘과 히틀러의 등장을 단순히 나치당의 출현이라는 하나의 사건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1․2차 세계 대전, 특히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정치․경제 상황을 이해해야 어떻게, 왜 히틀러가 그렇게 짧은 기간에 나치당을 중심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찬 가지로 캄보디아의 비극은 단지 극악무도한 폴 포트의 독재의 결과가 아니라 그것을 가능케 했던 사회 경제, 정치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⁷⁾

더군다나 캄보디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베트남과 캄보디아 관계를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이면에는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내용이 있다는 점입니다. 개별 국가의 역사적 발전 경로와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 수많은 변인이 존재할 텐데 명목상 균질한 수준의 사회주의 국가가 전세계적으로 동시적으로 존재할 수준의 객관적 조건이 성숙되어야만 혁명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이상’이자 이론입니다.

현실과 이론은 많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군요. 저는 이론에 현실을 맞추려하지 말고 구체적인 현실을 토대로 이론을 추론해내고 그 이론을 가지고 다시 현실을 재구성하면서 예측할 수 있는가? 그러면서 그 이론이 가지고 있는 신뢰성(과학성)을 계속 높여가는 작업을 반복적으로 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다른 방식의 접근”을 고민하는 최상철 동지와 저는 비슷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영찬 동지의 ‘제국주의 단일체제’에 대해서는 저도 대체로 공감은 합니다. 그런데 현실 사회주의에 대해서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점에 따라서 이 문제는 조금 다르게 말씀드릴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한국 안에서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역사(歷史)가 진실을 보여 줄거라 생각합니다.

｢마오주의자와의 전쟁: 그들은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가?(War against the Maoists: But who are they and what do they want?)｣ 번역글을 보내드립니다. 저 역시 발번역을 하였습니다. 문장과 오탈자를 다듬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⁸⁾

향린교회 조헌정 목사님과,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조순덕 상임의장님,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경기남부 공동대표이신 정창원 목사님이 설날을 맞이하여 안부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무엇보다 반가운 일은 전 인도학회장이셨던 경상대학교 백좌흠 법학과 교수님의 편지입니다. 저를 많이 걱정하시면서 “새로운 예지적 삶”을 말씀하시네요. 좋은 학자가 되길 기대 많이 하셨지요.

저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내주시는 최상철 동지께 정말 감사해요. “작은 움직임이라 할지라도 정세와 맞물리면 높은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말이 와 닿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고 싶습니다. “그냥 멈추어 잠들어 있기에는 동지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니 더욱 더 분발해야 겠습니다.

벌써 새벽 1시네요. 제 이야기만 하다보니 편지에 대한 답변을 충분히 못했습니다. 다음 편지에 세계정세에 대한 화두를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연구소 이사를 축하드립니다. 음악도 들을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음반을 드리고 싶거든요. 임채희 동지께서 좋아하는 시를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피를 흘리는 아픔을 이겨내어야만 하는 제게 우주라는 “희망”을 갖게하군요. 임채희 동지께서도 아픔을 함께 나누시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 가슴에 무엇인가 뭉클함을 주네요.⁹⁾ 안녕히 계세요.

이병진 올림.

2011. 2. 8

안녕하세요 이병진 동지.

답장이 많이 늦었습니다. 신기록을 남긴 한파가 지나고 2월은 비교적 따뜻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상하수도가 동파되어 무척 애를 먹은 겨울이었습니다. 입춘이 지났고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습니다. 겨울 감옥생활이 무척이나 고달프셨겠습니다만 이제는 일조량도 늘고 있고, 여러모로 희망찬 봄을 맞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사도 마쳤습니다.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운 연구소 주소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다음부터는 그쪽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서울 동작구 본동 435 진안상가 나동 2층 (우 156-060)

자재분들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배어있는 필치에 복받치는 감정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몇 번이나 가슴이 울컥해지더군요. 읽는 저도 감정을 참느라 힘이 들었는데 동지께서는 오죽 힘드시겠습니까? 저는 그저 이렇게 글로서 위로드릴 수밖에 없습니다만 감정은 전해지리라 믿습니다.

또 동지에게 전해지는 연대의 손길이 늘어나는 데서 오는 기쁨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평통사>은 반제․평화․통일․군축 운동에 앞장서서 헌신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연구소보다 상당히 규모도 크고 회원결집력도 강한 편입니다. 주한미군철수와 한미동맹 폐기를 위한 주장과 실천을 지속해오고 있는 단체로 월간 매체도 발간하고 있습니다. 백좌흠 교수님의 편지를 받으시고 설레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주셨더군요. 인도학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활동하는지 궁금합니다. “새로운 예지적 삶”이라는 표현을 보니 칸트가 생각이 나더군요. 저는 칸트의 이원론적 세계관은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사월혁명회> 사무처장님과 이병진 동지에 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사월혁명회>는 1960년 4.19혁명 때부터 활동하신 우리 운동의 대선배님들이 주축이 된 모임입니다. 대부분의 4.19 세대들이 변절 혹은 투항해갔습니다만 아직도 그 정신을 유지하고 계신 소중한 선배 동지들을 <사월혁명회>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또 <사월혁명회>는 연구소와 교류하는 단체이기도 합니다. 특히 연구소가 참여하고 있는 <천안함사건 진실규명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공동행동, 천안함 공동행동> 그리고 상설연대체 건설을 위한 회의 자리 및 토론회 자리에서 자주 뵙는 단체입니다. <사월혁명회> 한찬욱 사무처장님께서 이병진 동지께 회보를 보내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기억하시겠습니다만 제가 이병진 동지께 보낸 편지 중에 비전향 장기수 출신 신현칠 선생의 시를 인용한 부분이 있죠. 그 내용이 담긴 ��정세와 노동�� 12월호를 <사월혁명회> 사무처장님이 신현칠 선생님께 전하셨다고 합니다. 이병진 동지로 인해서 현대사의 뼈아픈 과거와 현재가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동생 분과의 문제도 참으로 복잡하고 어려우실 것 같습니다. 가족이기에 갈등을 푸는 것이 더 쉽지가 않죠. 이야기 중에 나온 표현 “국가보안법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죠.”에 대해서 굳이 꼬투리를 잡아보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일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 일상이라는 것이 어떤 평균적으로 균질한 것이라는 전제를 암묵적으로 하고 쓰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상은 다종다기한 각인들의 삶이 녹아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일상은 개별적인 특징뿐만 아니라 보편성도 지니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국가보안법이 제 일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병진 동지의 일상에는 특히 더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동생분의 일상에 대해서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적으로 국가보안법이 없었다면 동지께서는 차가운 감옥에서 겨울의 일상을 맞이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국가보안법이 없었다면 동생 분께서 형과 다투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국가보안법이 있기에 저는 일상적으로 제 표현을 사전검열 하고(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공개하는 글과 말은 ‘노예의 언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제한된 표현은 다시금 제 사고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것은 일종의 악무한적인 순환을 이루게 됩니다. 국가보안법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저의 악무한적인 일상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노예가 노예이기를 벗어나려 투쟁하지 않는다면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맑스주의자들이 거대담론이나 이데올로기를 중요시하고 일상과 개인적인 소중한 가치를 무시한다는 비난을 많이들 하곤 합니다. 그러나 맑스주의자들은 일상의 중요성에 대해 보다 근원적으로 사고하고 있습니다. 일상을 중요한 모티브(motive)로 제기하고 있는 루카치의 미학이론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맑스주의자들은 일상이 지니는 연원을 탐구하고 그것을 영구불변의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발전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엥엘스의 ��영국노동자계급의 상태��는 구체적인 예증을 통해 자본주의적 공업생산이 노동자들의 ‘일상’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밝혀내고 있습니다. 칼 맑스의 ��자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것들은 순전히 거대담론에 그치는 것일까요? 일상과 거대담론에는 장벽이 있어서 전혀 넘나들 수 없는 것일까요? 변증법적 논리학의 범주를 어설프게 끌어다 보자면 일상에는 개별성․특수성뿐만 아니라 보편성도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거대담론이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시공산제 해체 전의 사회인 요순시대에도 일상과 거대담론이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대 인간들이 누리던 걱정없는 태평한 일상은 당시의 생산력과 생산관계 그리고 그에 조응하는 상부구조의 통치 방식에 규정되는 것일 테니 말입니다.

물론 현재의 대다수 인민들은 국가보안법과 일상이 전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상태의 다수의 인식이 항상 올바른 것은 아닐 것입니다. 또 이들이 다수라고 할지라도 보편성의 범주에서 보자면 다수나 소수나 부분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것은 보편성을 둘러싼 이데올로기 투쟁입니다. 이 보편성이라는 범주는 대개는 지배계급이 전유해왔죠. 그래서 맑스는 ��독일이데올로기��에서 한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라고 단정했던 것입니다. 국가보안법이 규정하는 일상성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에 올라서는 날을 위해서 끊임없이 싸워가야 합니다.

꼬투리 잡기가 계속되어 불편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조금만 더 이어가 보겠습니다. 동지께서는 국가에 대항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표현을 쓰셨습니다. 그러나 이병진 동지께서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국가기구에 대해서 한 몸으로 대항하고 저항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동지의 저항 이전에 국가가 이병진 동지에게 무수한 폭력을 가했고 지금도 가해오고 있습니다. 자신의 일상에 가해오는 억압을 끝내기 위해서는 국가권력에 끊임없이 대항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억압기구를 전면적으로 해체해나가는 노력에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대항이며 어떻게 보면 전쟁입니다.

연구소와의 교류가 긁어 부스럼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하시는 가족 분들께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저도 고민입니다. 더욱이 연구소는 극히 우편향적인 한국사회의 시각에서 보자면 심각하게 좌측으로 경도된 곳입니다. 동지와 이데올로기적으로 차이도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현재까지의 노력을 통해 많은 공감대를 이루며 교류하고 있는 것은 서로에게 많은 성장의 자극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지께서도 이 점에 있어 같은 생각이시기에 관계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이 정도만 하지요. 가족 분들에 대해서 제가 더 이상 언급하는 것은 맞지가 않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일이 잘 잡히지 않을 때 장기수 서옥렬 선생의 수기 ��조국을 사랑한 ｢죄｣: …사형소리 여섯 번��(연합기획)을 읽었습니다. 이분은 일제의 폭압기 하에 유년시절을 거치고 해방정국이라는 대혼란과 변혁기에 자연스럽게 좌익이 되시고 분단과 전쟁의 과정에서 남이 아닌 북을 택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남파 이후 비전향 장기수로써 30년을 복역하시고 출소하셨습니다. 읽으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더군요. 이분은 남파 과정에서 폭력을 쓰거나 사람을 다치거나 해한 일이 전혀 없는 분입니다. 또 군사기밀을 직접적으로 넘기거나 하지도 않은 분입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서옥렬 선생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전향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30년을 감옥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 하의 야만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야만의 역사가 청산되지 않고 있기에 동지가 겪고 계시는 모진 시련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반성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됩니다. 갈등과 그로 인한 상처는 치유해야 합니다. 1945년 이후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분단과 전쟁체제는 극복되어야 합니다.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이 절실합니다.

이제 인도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지난번 편지에서 오류가 있기에 바로잡습니다. AITUC(All India Trade Union Congress: 전인도노동조합회의)는 CPI(M)이 아니라 CPI와 긴밀히 관련을 맺고 있는 노총입니다. 잘못된 정보로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2002년 인도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조합원은 267만 7979 명입니다. 이들의 집회 장면이 담긴 사진들을 보았는데 붉은 깃발이 인상적이더군요. 저는 CPI에 문제가 많다고 봅니다만 인도의 노총 조직에 대해서는 아직 자료를 보지 않아서 뭐라고 하지 못하겠습니다. 참고로 CPI(M) 산하의 노총은 CITU(Centre of Indian Trade Union, 인도노동조합센터)이며 조합원은 322만2532 명입니다. 인도 노동부에서 발표한 노총별 조합원 수 통계를 살펴보니 우파 노총들의 조합원들 수가 공산당․좌파계열보다 많은 것으로 나오는 군요.

한-인도가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을 맺은 지 1년이 지났는데 이에 대한 운동진영의 분석과 대응은 거의 전무한 상황입니다. 언론 단신에 따르자면 현재까지 CEPA 체결 이후 인도와 무역은 증가했지만 한국 기업의 인도 진출(엄밀하게 하자면 자본수출로 봐야겠지요)은 크게 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도의 독점자본도 한국의 재벌과 비슷한 형태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앞으로 한-인도 관계의 중요성이 점점 중요하게 부각되리라 생각합니다.

인도 문제에 대해 운동 진영에서 거의 관심을 두고 있지 않는 것은 부르주아 언론에서도 한-인도 자유무역협정에 관해서는 미국, 일본, EU, 칠레와의 협정 만큼의 보도도 되지 않은 정황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국내 운동 진영의 협소한 시각과 국제 감각의 부족은 차근차근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제대로 된 국제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타국의 현실과 투쟁에 대해서 두루 잘 알고 소개하는 것만으로 부족합니다. 거기에 더해 자국의 현실과 투쟁이 지닌 세계사적인 의미를 밝혀내고 이를 타국의 동지들에게 알리고 연대 투쟁을 조직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제 자신에 대한 자아비판이기도 합니다. 일화하나 소개하겠습니다. 한국의 한 활동가가 일본 활동가들에게 미술가 오윤의 20주년 기념 출판물을 선물했는데 한편에 오윤의 10주년 출판물이 꽂혀 있더랍니다. 정작 선물한 그 활동가는 오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는데 일본 활동가들은 모두 오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노동해방실천연대>에서 발간하는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57호(2010. 9. 14)에는 김광수 동지가 ｢몸을 태워 현실에 발언한 화가, 오윤｣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습니다. 상당히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의료·건강 운동 단체를 중심으로 인도-EU FTA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담은 실천 제안문을 보았는데 편지 말미에 별첨하겠습니다. (제목: “인도-EU FTA저지, 의약품접근권 확보를 위한 연대투쟁을 제안드립니다.”) 이 걸 보니 제가 잘 모르는 투쟁이 상당히 많이 진행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번 편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곧 출판되는 ��정세와 노동�� 2월호에 CPI(ML) 강령이 번역됩니다. 짧고 간명한 것은 보기가 좋더군요. 인도를 신식민지반봉건사회로 보고 있음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강령 논쟁과 사회구성체 논쟁에서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은 현실을 정확하게 보는 것입니다. 고정된 사고체계와 이론에 현실을 끼워 맞추는 태도는 지극히 경계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인도 역시 한국처럼 종속의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만 이것이 신식민지적 성격으로 규정할 수 있을 정도의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인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너무 부족합니다만 말을 이어가 보겠습니다. 한국의 경우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한미군의 주둔이라는 명백한 규정력이 있기에 여전히 신식민지적인 근본 성격이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인도는 한국에 비하면 그 종속의 정도가 약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에는 정치·군사적 규정력뿐만 아니라 실제 자본주의적 재생산의 총과정에 대한 고찰과 실증이 필요할 것입니다. 여기서는 다만 의문을 표하는 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또 인도의 반봉건사회라는 규정에 대한 것도 부연하고 싶습니다. 독립 이후의 인도에서도 구 봉건지주들의 토지소유가 거의 변치 않고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때 인도에서 유일하게 진행된 께랄라 주와 웨스트 벵갈지역에서의 토지개혁은 구 지주토지의 소유를 소농적 토지소유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이는 결국 한국에서 해방 이후에 진행된 유상몰수 유상분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대다수의 인도 다른 지역을 볼 때 반봉건적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농촌에서 지주 소작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지주들이 토지소유를 유지하면서 농업자본가가 된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재 웨스트 벵갈과 께랄라 지역은 다른 인도 지역에 비해 농업 부문 생산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소농적 생산과 자본주의적 농업 생산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인도 사회는 카스트 제도와 봉건적 유제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만 사회 전반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우위에 있고 이것이 지배적인 것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더구나 인도가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중요한 버팀목으로 역할하고 있고 향후 20년 이후 인도는 전세계적인 패권국의 하나로 부상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으리라 봅니다. CPI(ML)의 강령에서 보이는 오류는 CPI(ML)의 지지기반과 탄생배경에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정세와 노동��에 CPI(M) 강령도 번역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CPI(ML) 강령보다 상당히 많은 분량이기에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내용에는 인도 사회성격논쟁의 역사가 담겨 있기에 인도 연구자와 활동가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전체를 나누어 번역·연재할지 필요한 부분만 번역하는 것이 좋은지는 좀 더 논의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동지의 이야기를 받아서 네팔 문제에 대해 제 고민을 조금 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정세와 노동�� 1월호에 네팔통합공산당(마오주의당)의 ｢프롤레타리아트의 현재 상황과 역사적 과업｣ 번역문이 실렸습니다. 2009년에 발표된 이 글은 상당히 역사적인 문건이라 생각합니다. 네팔이 현실 운동의 역동성은 대단하지만 이론적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을 것이라고 지레 편견을 가졌던 것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국왕이 다스리던 신정일치제 반봉건적 사회였던 네팔에서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위한 투쟁 그리고 사회주의 변혁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을 상당히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튀니지, 이집트를 비롯한 북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민들의 투쟁만큼 큰 관심을 받고 있지 못합니다만, 네팔의 투쟁이 전진하느냐 좌절하느냐는 아시아 인민들에게 주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하는 전적으로 제 추측입니다. 네팔통합공산당(마오주의당)은 아마도 캄보디아의 극단적인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고 투쟁의 노선과 수위에 대해 고심하면서 운동을 지도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캄보디아 끄메르 루즈 정권의 ‘사회주의 실험’은 당시의 캄보디아의 주객관적 상황에 대해 과학적으로 검토하지 못한 채 진행되어 결국 실패로 귀결한 것으로 봅니다. 참고로 작년 7월에 출판된 한형식 동지의 ��맑스주의 역사 강의��에서는 끄메르 루즈의 성격을 현실과 유리된 인텔리겐찌아의 극단적인 실험 정도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설명이 불충분하다고 봅니다. 킬링 필드(Killing field)로 알려진 캄보디아의 비극은 끄메르 루즈의 집권이 아니라 미제의 폭격으로 인한 진짜 킬링 필드가 보다 근본적인 연원입니다. 끄메르 루즈 정권이 집권이 가능했던 것에는 제국주의자들의 잔학함과 캄보디아 사회의 구체제의 억압이 주요한 원인일 텐데 이러한 부분에 대한 분석은 잘 찾아보기가 힘들더군요. 한형식 동지의 책은 상당히 소중한 작업을 담고 있습니다만 세세한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좀 있습니다. 특히 아시아 공산주의를 별도의 항목으로 다루면서 한국 학문계(진보진영도 결코 자유롭지 못한)의 지독한 서구 중심주의적 편향을 극복하려고 한 시도는 분명히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아시아 공산주의 운동의 전거로 삼은 자료는 서양 학자들의 2차 자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 같더군요. 지면관계상 모든 연구 내용을 개설서에 다 담기는 힘들었던 사정도 있었겠습니다만 그러한 면에서 미세한 불만이 있습니다.

또한 끄메르 루즈 정권의 학살과 당시 캄보디아의 식량난에 대해서는 완전히 원점에서부터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식량난에 대해서 베트남 캄보디아 전쟁 이후 캄보디아에 진주해 보니 식량난은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는 베트남 쪽의 증언도 간접적으로 접한 바 있습니다. 정권의 학살로 인한 비극이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만 제국주의자들과 반공선전가들은 언제나 상황을 부풀리고 조작하는데 익숙합니다. 우리도 무의식적으로 사실 이상의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내륙국가인 네팔은 인도와 경제교류 없이 자립경제를 수립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어쩌면 해상봉쇄를 당하고 있는 쿠바와 같은 섬나라가 네팔에 비한다면 오히려 더 낫지 않을까도 생각합니다. 언제든지 인도가 네팔에 군사력을 동원할 수도 있는 상황 그리고 미제국주의자들 역시 네팔을 주시하는 조건에서 투쟁의 수위조절과 전술수립은 치밀해야 합니다. 뜨로츠끼주의 그룹인 <국제 맑스주의 경향(International Marxist Tendency)>은 이러한 배경에 대해서는 거두절미하고 네팔 통합공산당(마오주의당) 노선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만약 원리원칙대로 네팔에서 바로 사회주의 혁명을 도모한다면 그것은 제국주의자들의 무력에 의한 진압 혹은 캄보디아 같은 비극으로 귀결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들이 네팔에 관해서 올리는 글들이 많은 참고가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만 그 기사들은 현지에 직접적인 정보와 조직에 근거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편지 말미에 이들의 누리집(저는 아직 홈페이지라는 용어가 익숙합니다만^^)에서 최근 네팔 상황에 대한 논평하나를 출력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지난 번 번역문 잘 받아보았습니다. 외롭고 정신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힘겨운 감옥생활 중에서 정성스럽게 보내주신 소중한 결과물이기에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발번역’이라는 표현은 당치 않은 겸손이십니다.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교정 및 주석 작업을 하여 3월호에 게재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원래는 2월호에 마치려 하였습니다만 연구소를 옮기면서 복잡한 일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제가 사무처리를 잘못해서 그렇기도 하네요. 인쇄매체에 공개가 늦어지는 것을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보내주신 번역문은 타이핑을 마치고 연구소 회원 공간에 올려놓았습니다. 타이핑은 연구소 회원 한 분께서 맡아주셨습니다. 이제까지 이병진 동지 편지의 타이핑은 제가 직접 해왔습니다만 이사 일정 때문에 번역문 타이핑 하나만 맡아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 회원분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너무 늦었지만 Rita Khana의 글에 대한 보충설명 자료를 같이 첨부합니다. 인터넷 검색 수준에서 얻을 수 있는 자료들이라 아주 심도깊은 논거가 되지는 못하는 것이 좀 아쉽습니다. 그래도 부족한대로 갈증을 채우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지의 질문 15부터 30까지에 대한 답변은 ○○○ 님께서 작성해주셨습니다. 그분의 작업이 없었다면 이번에 자료를 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감옥에서 밖으로 보내는 글에 대한 내용 심사를 한다는 것도 사전 심의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결국 서신검열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도 제도 개선을 위해 싸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일상을 옥죄어 오고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만 완성될 소논문에 대한 내용은 기대를 하게 합니다.

2월 24일(목) 2시에는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사건의 1심 선고공판이 있습니다. 이에 맞추어 국가보안법에 맞선 연대가 각계에서 조직되고 있습니다. 선고 결과는 향후 국가보안법 적용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관련 8인의 동지들의 무죄 판결을 기원해 마지 않습니다.

연구소에는 좋지는 않지만 음악을 들을 만한 장비가 있고 턴테이블도 있습니다. 취미이기도 합니다만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음악을 자주 듣습니다. 턴테이블 바늘을 갈긴 해야 합니다만 다 작동합니다. 레코드 기증 의사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한편에서는 이렇게 받아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저도 한 장 한 장 음반을 모아본 사람인지라 판 하나 하나에 다 사연이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려운 결정에 감사드립니다. 기증해주신다면 잘 관리해서 공개자료로 활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가족 분을 통해서 전달을 하셔야 할 텐데 폐를 끼치게 되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어떤 식으로 전달받아야 할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략적인 수량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연구소 운영위원회에서 동지께서 서신출판에 동의하셨다는 내용을 공식적으로 보고드렸고 다들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아직까지는 나눈 편지가 그리 많지 않으니 분량이 모이면 출판계획에 대해 자세히 동지와 협의해가도록 하겠습니다.

3월 19일에는 연구소 총회가 있습니다. 이사가 끝나니 총회 준비에 매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편지는 원래 1월부터 쓰기 시작한 것인데 중간에 멈추고 고치고 또 이사도 있고 해서 이제야 다 완성이 되었습니다. 오래 기다리셨을텐데 송구스럽습니다.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신현칠 선생의 시를 한 편 더 소개합니다. 출처는 저번과 같습니다.

수목과 같이

참새처럼 지저귀어서

죄없지 못할진대

수목과 같이 말없이 있어라

수목과 같이 자라면서

의젓하게 수수한 모습으로

어쩌면 친구답게 따뜻한 얼굴로

말없이 있어

호흡마다 자라라

<노사과연>

6) 이병진 동지는 <국제 맑스주의 경향(International Marxist Tendency, 이하 IMT>의 홈페이지(http://www.marxist.com)의 글들을 직접 검토해보지 못하였고 최상철과 짧은 편지글로 소통을 했기 때문에 세세한 부분에 있어서는 엄밀하지 못한 언급이 있을 수 있다. IMT가 뜨로츠끼주의적 영구혁명론과‘일국사회주의 비판’의 관점을 견지하는 것은 분명하나 이들의 네팔통합공산당(마오주의당) 노선 비판의 핵심은‘타협주의적인 노선’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네팔의 구체적인 조건에서 ‘타협’하지 않고 장렬히 산화한다면 과연 광야를 사를 하나의 불씨가 될 수 있을까? 네팔 투쟁을 비판하는 IMT의 현란한 수사는 의도하지 않았던 의도했던 좌익의 언어를 빌려 제국주의자들의 이해에 부합하는 행위를 하는 뜨로츠끼주의의 일반적인 경향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IMT는 현재 국내의 뜨로츠끼주의 그룹 다수의 분파들보다는 훨씬 건전한 것 같다. 주장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기겠다. 이들의 웹싸이트를 직접 방문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