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묶아라 줄! 난간에 밥줄 묶아라고!!”

‘85호크레인 사수대’라고 적혀있는 몸벽보를 한 채 크레인 다리 위를 올려다 보며 소리친다. 언짢은 건지 걱정스러운 건지 잘 알 수 없는 눈가엔 굵은 주름이 깊게 패어있다 .

“젊은 것들이라 뭘 알아야지... 에이... 김주익이가 우째 갔는데...”라고 중얼 거리면서도 연신 크레인 다리 위를 올려다본다.

“쫌 탱글하게 묶아라!”

크레인 조종석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김진숙 동지에게 밥과 물을 올려주기 위해 크레인 다리 위까지 늘여놓은 줄을 말하는 거다. 그 다리 위에서 농성장을 지키고 있던 몇몇의 노동자들이 그 소리를 듣고서야 방금 밥을 올려 보내고 늘어져서 나풀거리는 줄 쪽으로 다가가 난간에 단단히 묶는다.

악몽이 무서운 건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85호 크레인, 땅보다 하늘이 가깝다는 그 곳에 오로지 살 길을 찾아 올라갔던 한 가장이자 노동자가 세상으로 통하던 유일한 목숨줄인 밥을 달아 올리던 줄(밥줄)에 목을 매달았던 2003년. 악몽이라면 질기게도 길게 반복되는 악몽을 그들은, 아니 우리는 꾸고 있었다. 절대로 그럴 리 없다고 여기면서도 혹시나 또다시 악몽이 반복될까 싶어, 그 늙은 노동자는 난간에 단단히 묶여 있는 줄을 그래도 의심스러운 듯 힐끗힐끗 올려다본다.

밥줄... 누가 붙였는지 이름 한번 잘 붙였다. 아니 따로 붙일 것도 없이 본능적으로 입에서 나와버린 말이 아닐까... 밥줄... 바닷가 도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감당하기엔 너무나 왜소해 보이는 그 밥줄 한 가닥처럼, 정리해고의 칼바람과 현장의 절망, 고공농성으로 이어지는 악몽의 반복 앞에 우리 노동자들의 밥줄은 그리도 왜소하다.

얼마전 부평 GM비정규직지회 동지들의 투쟁을 지원하는 집회에 갔었다. 얼어들어가는 몸뚱이 부여잡고 손바닥 만큼도 하늘 가릴 곳 없는 공장 정문 아치 위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GM비정규직지회 동지들에게 밥이라도 한 끼 올려주려고 밥줄에 밥을 달아 올리려던 순간, 공장 안쪽에서 긴 쇠막대기 끝에 날 퍼렇게 달려 있던 낫이 튀어 나왔었다. 구사대들이 밥을 달아올리던 줄을 끊기 위해 낫을 동원한 것이었다. 분노한 동지들은 낫을 단 쇠막대기에 매달리며 싸웠다. 그리고 한 동지의 울분에 찬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정리해고로 우리의 밥줄을 끊더니 이제 낫으로 우리 동지들의 진짜 밥줄마저 끊으려 한다”

그래, 해고는 밥줄을 끊는 것. 그래서 해고는 살인이라는 구호를 외쳤었다. 사실 그 구호를 처음 만들어 외칠 땐 ‘좀 너무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너무한 것 아닌가’라고 한 번이라도 생각했던 내 자신이 너무했다.

“오늘 드디어 290여명의 정리해고자 명단이 나왔습니다” 85호 크레인 밑 야간집회에서 사회자가 말한다. 순간 정신이 번쩍든다.

‘살처분’

구제역으로 최소한의 생명으로서의 존중도 못 받은 채 생매장 당하는 소, 돼지들. 똑같다. 구제역도 자본의 끝간 데 없는 탐욕이 만들어 놓은 결과물이기에...

그 탐욕의 끝에 정리해고든 전쟁이든 인간에 대한 자본의 ‘살처분’이 오늘도 진행된다. 공무원 동지들의 말을 들어보면 더러는 죽지 않으려는 소들의 뒷발질에 채여서 다친 이들도 있다더라. 저 크레인 조종석의 농성이, GM부평공장 정문 위의 농성이 그 뒷발질 만큼은 될까...

다시 85호 크레인을 올려본다. 사실, 크레인을 오르는 사다리로 자꾸 눈이 간다. 누가 그러더라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중력’이라고... 그럭저럭 동의한다.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서 크레인 조종석에 싸늘한 시신으로 누워 있던 김주익 열사를 만나러 그 사다리를 오를 때 사실은 난 그 중력의 무서움에 오금을 떨며 아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관을 앞에 두고 절조차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지 못해 그저 고개 떨구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사실은 내려갈 순간의 두려움에 몸이 떨려왔었다.

그렇게 김주익 열사를 만나고 내려와 집회를 하며 무심코 크레인 사다리를 봤을 때 그곳의 동지들은 난간에 손도 안 짚고 오르고 내리더라... 물어봤었다. 안 무섭냐고... “아, 안 무수울 수가 있는가 어데... 저가 내 밥줄이니까 그래 올라다니는 기제” “태풍 매미 왔을 때 저 크레인이 세 바꾸를 안 돌았나. 안에 김주익이 을메나 무서벗겠노...”

그래 확실히... 중력은 무섭다. 그 무서움을 거스르며, 살겠다고 살아보자고 자꾸 노동자들은 고공으로 오른다. 그런데... 이건 꿈이 아니다. 악몽이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반복되는 것이지만, 이건 꿈이 아니기에 우리의 의지로 반복되지 않게 할 수도 있다.

그 때도 외쳤었다. “우리가 김주익을 죽였다”고. “자본이 아니라 그 자본의 살처분에 하나의 몸짓으로 힘차게 뒷발질하며 저항하지 못했기에 김주익은 저 높은 곳으로 혼자 올랐고, 130여일을 그렇게 무서움과 싸우다 결국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그 밥줄에 스스로가 목을 매달았던 것”이라고.

그리고 지금 “우리가 김주익을 죽였다”고 눈물, 콧물 다 짜며 통곡하던 한 여성 노동자가 7년이 지나 바로 김주익이 있던 그곳으로 다시 올랐다.

“아마 저 곳에서 김주익 동지를 날마다 만나겠죠. 쇳덩어리지만 사람의 손길이 오래 닿으면 그 곳곳에 그 사람의 생명이 하나하나 서려있게 마련이니까요...” 한 조선소 노동자가 말한다.

무슨 대화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찬바람 부는 도크에 앉아 재규형님을 찾는 일도, 85호 크레인에 들어 앉아 김주익을 찾는 일도 이제 그만 하려고 내가 마지막으로 여기 올라왔다는 말을 전했으면 한다.

그리고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닐 수 있게, 또 울고 짜며 그 사다리 안 올라도 되게 저들 자본가들의 살처분에 하나의 강력한 뒷발질로 맞서야 한다.

아까의 형님 노동자처럼 크레인을 올려보며 나도 마음 속으로 흉내 한번 내본다.

“밥줄 탱글하게 단단히 묶아라~~~!!!”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