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주:

본문은 쿠라하라 코레히또(한국에서는 한자를 그대로 읽어서 장원유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의 ��藏原惟人評論集�� 第五卷 芸術論Ⅴ․芸術書簡, 新日本出版社, 1974, pp. 92-96.을 번역한 것이다. 레닌이 고리끼에게 보낸 편지는 일부가 번역되어 볼 수 있다. 이길주 번역으로 논장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 ��레닌의 문학예술론�� 중 레닌이 고리끼에게 보낸 편지들을 읽고 본문을 읽으면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아직도 번역이 안 된 나머지 편지들을 번역해 소개하는 것은 우리의 운동에 있어서 해결해야 할 과제라 생각한다. 레닌 전집의 번역을 다 끝내지도 못한 것이 한국 운동의 현 주소이며 부끄러운 현실이기도 하다. 쿠라하라 코레히또의 글은 식민지 조선시대부터 이 땅의 문예운동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고, 또 여러 논쟁을 제기하였다. 1980년대  쿠와라하의 글과 관련한 논쟁은 다소 구체적인 맥락을 소거한 상황에서 진행되었다는 비판이 있는데, 여기서는 더 구체적인 이야기까지는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이번에 소개하는 쿠와하라의 글은 일반적인 독자와 활동가들을 위해 다소 평이하면서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부분을 소개하기 위해 선택했다. 본문은 1954년 8월 31일에 발표된 글이며, 쿠와하라가 6.25전쟁이 끝나고 휴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새로운 국제정세와 일본 정세 하에서 작성한 글이다. 쉬운 내용이지만, 이와 관련해서 파생될 수 있는 논쟁은 상당히 많으리라 생각한다. 본문에서 직접적인 소재로 삼고 있는 위대한 혁명가와 예술가의 동지적인 교우뿐만이 아니라, 사회주의 운동과 문화․예술로 주제를 심화․확장한다면 한국에서도 보다 심도있는 논의와 구체적인 실천의 과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일예로 지난 11월 20일 해방연대가 주최한 토론회, ‘민주노조운동, 과연 미래는 있는가’에서 제출된 발제문 ｢민주노조운동의 향후 방향｣ 중에 노동자 문화운동의 활성화를 언급하고 있는 부분을 예로 들고 싶다(해방연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9호(2009년 11월 27일), p. 3을 보거나 혹은 해방연대 홈페이지(http://hbyd.org에서 확인하면 된다.). 내용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물신숭배를 전면적으로 배격하고 노동자계급의 새로운 노동문화 창출을 고민하는 내용이 담겨있어서 반갑게 읽어보았다. 그러나 해방연대 동지들이 ‘문화혁명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부정으로 시작된다’고 언급한 부분에 있어서는 지면을 빌어 약간의 보충의견을 제시하고 싶다. 맥락상 발제문은 자본주의 문화의 퇴행성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과 부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며 이에 대한 문제의식에는 많은 부분 공감한다. 그런데 내용에 기존의 노동자계급의 문화․예술 운동의 성과를 어떻게 비판적으로 계승할 것인가에 대한 언급이 없는 지라 자칫 청산주의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무튼 논의는 이제 시작한 단계이기에 향후 구체적이고 활발한 문제제기와 실천이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본문의 주석은 모두 역자의 것이다. 이번에도 독해를 도와준 쥴리아님과 채만수동지에게 감사드리며 아울러 책을 연구소에 전해준 김성칠 동지에게 감사드린다. 아직 독해하는 데에도 더듬더듬 헤메는 수준인지라 일본식의 어투를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옮기지 못한 점은 너그러운 양해를 부탁드린다. 아울러 서툰 번역자의 오역에 대한 지적은 언제든지 감사히 받아들이겠다.]

여기에 1907년 8월에서 1921년 8월까지 14년 동안 레닌이 고리끼에게 보낸 46통의 편지를 소개한다.

레닌과 고리끼의 우정은 1907년 7월에 런던에서 열린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의 제5차대회에, 고리끼가 의결권을 지닌 대의원으로서 출석했던 때부터 시작하여, 레닌이 죽기까지 계속되었다. 금세기최대의 혁명가였던 레닌과 최고의 프롤레타리아 예술가였던 고리끼와는, 인간과 과업에 관한 서로의 깊은 애정과 존경에 의해 맺어져, 그것이 이 편지들 속에서 직접적 형태로 배어나온다.

병이 있던 고리끼에 대해 레닌은 항상 건강에 신경쓰고, 그가 작업에 매달려서 요양을 잊지 않도록 권했다. 1921년 혁명시대의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그가 신경질적이 되어 건강을 해쳤을 때, 레닌은 열심히 그가 러시아를 떠나 국외에서 요양하도록 권하고 있다.

레닌은 고리끼가 당의 기관지에 협력할 것을 진심으로 원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 유명한 작가의 작업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신중한 배려가 있었다. 그는 고리끼의 문학상의 본격적인 작업을 제일로 두고, 1908년 2월의 루나차르스끼에게 쓴 편지¹⁾에서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쁘롤레따리��의 문예비평란을 지속적인 것으로 하고, 그것을 A. M(고리끼)에게 위임하는 것을 꿈꾸고 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솔직히 제안하는 것을 꺼려했던 것입니다. 몹시 꺼려했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A. M의 작업의 성격(과 작업을 하는 방식)²⁾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그가 본격적인 작업에 종사하고 있다면, 그리고 사소한 일 때문에, 신문 때문에, 평론 때문에 그것을 중단시키는 것은 그 과업을 망치는 방향이기에—그를 방해하고, 그를 중단시키는 것은 바보같은 일이며, 죄악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가 자신의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당의 신문에 협력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주도록, 루나차르스끼³⁾에게도 의뢰하고, 고리끼 자신에게도 그것을 써보냈다. 정치가로서의 레닌이 고리끼의 에술상의 작업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얼마나 높이 평가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고리끼가 때로 범한 사상적･정치적 과오에 대해서는 애정이 있는, 그러나 엄격한 비판자였다. 고리끼는, 레닌의 그에 대한 태도는 “엄격한 교사의 태도이며, 선량하며 ‘친절하며 절친한 벗’의 그것이었다”고 후에 쓰고 있으나, 그 사실은 이 편지들의 도처에서 볼 수 있다.

그 편지들을 읽으면, 같은 인민해방을 위한 싸움에 있어서 정치가로서의 레닌과 예술가로서의 고리끼 두 사람의 태도가 흥미롭게 나타나 있다. 레닌은 항상 현실의 과학적인 분석에 기반하여 이론적, 정치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고리끼는 보다 직감적, 도덕적으로 현실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1905년의 혁명 이후 고리끼는, 한때 보그다노프와 루나차르스끼 등의 영향을 받아 맑스주의와 종교를 화해시키는 입장에 섰다. 당시 고리끼의 의견으로는 “신이란...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고, 동물적인 개인주의를 억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사회적 감정을 일깨워 조직하는 관념들의 복합체이다”. 그러므로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도덕적 원리로서의 신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레닌은, 이같은 생각은 역사적･현세적으로 신의 관념에 있는 다종다기한 반동적인 것･반인민적인 것을 제외하고, 종교의 물질적 기원을 무시한 소부르주아적인 관념론이며, 현실적으로 신의 이름으로 인민을 노예상태로 유지하려고 하는 승권확장론(僧権擴張論)자나 반동주의자들의 사상을 미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⁴⁾

또 1917년 10월혁명 이후, 고리끼는 역병과 기아를 동반한 수도⁵⁾의 혹독한 혁명의 현실 속에서, 볼쉐비끼의 정책을 비판한 적이 있었다. 그는 혁명이 월등한 인뗄리겐챠나 노동자를 인민의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았던 것이다. 그는 레닌과 만나서 그것을 이야기도 하고, 편지에도 써보냈다. 이에 대해 레닌은 그가 수도의 부르주아지와 인뗄리겐챠 등의 포위 속에서 신경이 마모되는 일 없이, 그의 일과 생활환경을 바꾸어, 정말로 새로운 생활을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예술가로서 관찰할 수 있는 곳으로 옮기도록 권하고 있다.⁶⁾

혁명의 이상은 가장 적은 희생으로 가장 교화적으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에 있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전혀 희생이 없는 혁명 따위는 있을 수 없고, 특히 최초의 사회주의혁명인 러시아 혁명은, 격앙된 전세계 부르주아지의 공격 속에서, 많은 희생을 필요로 했다. 혁명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기에 각각의 사건들이 지나치게 나아가기도 하였다. 그러나 역사는 레닌이 지도하는 볼쉐비끼의 정책이 기본적으로 옳았다는 것을 입증하는데, 고리끼도 훗날 당시 자신의 오류를 인정한다.

하지만 동시에 혁명 당시의 고리끼의 행동은 소부르주아ㆍ휴머니스트의 그것으로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는 자주 레닌에게 학자와 예술가의 구제에 대해 진언했고, 레닌도 가능한 그 진언을 받아들이고 있다.

“당신은 불가사의 한 사람입니다. 문학에 있어서는 빼어난 리얼리스트인 것 같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낭만주의자이군요”라고 레닌은 고리끼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고리끼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자주 그를 초대했다. “당신과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있습니다. 당신의 인상의 범위는 보다 넓고 다면적입니다.”

레닌과 고리끼와의 편지 왕래는, 천재적인 정치가와 예술가의 우정의 기록으로 우리에게 무한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또한 지금 일본에서 논의되고 있는 ｢자유｣의 문제나, 정치와 예술, 맑스주의와 종교, 당활동과 철학의 문제 등을 언급하고 있는 점에서도 흥미가 있다. 이들 문제를 우리가 물론 새롭게 국제적 정세와 일본의 현실 속에서 생각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를 위해서도 이 편지는 많은 것을 시사할 것이다.

이 책에는 상당히 상세한 주석도 붙여있기에, 편지의 성격에서 오는 간결한 서술의 이해를 도와주고 있는데, 최근 쏘련의 간행물 중에 고리끼 전집이 완결되었고, 레닌에게 고리끼가 보낸 편지도 처음 발표된 것 같다. 그것도 아울러서 번역되면, 두 사람의 우정이나 의견의 상이함도 분명해지고, 이들 편지의 이해도 깊어질 것이다. <노사과연>

번역: 최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