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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금폐화론의 비과학성에 대하여 ―곽노완 박사가 경제과학에 날린 잽(jab)에 대한 간략한 비판
글쓴이 채만수|소장 E-mail send mail 번호 109
날짜 2009-01-20 조회수 4274 추천수 148
파일  1232461449_금폐화론의 비과학성에 대하여.hwp

  













금폐화론의 비과학성에 대하여





















I. 조금은 길고 긴 사전(事前) 곁다리










비과학ㆍ비맑스주의 공황론으로서의 달러지배체제 원인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설마 설마 하던 대공황이 현실화되고 급격히 전개되면서 이 공황의 원인과 성격을 둘러싼 논의, 그것을 규명하려는 논의가 분분하다. 한국에서의 ‘맑스주의 경제학’의 기예(氣銳)한 신진의 한 사람이랄 수 있는 곽노완 박사의 “달러지배체제의 위기와 21세기 코뮌주의의 한국경제 비전”1)도 그러한 논의 중의 하나다.





공황은, 더구나 현재 전개되고 있는 것과 같은 대공황은 그 자체 당연히 고찰해야 할 수많은 측면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 원인 및 성격과 관련해서도 고찰의 추상적 수준 여하에 따라서는 여러 가지를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고찰의 추상적 수준을 명확히 하고 그에 상응한 고찰을 하기만 한다면야, 이번 공황을 “달러지배체제의 위기”라는 측면에서 고찰한다고 해서 그 자체를 비판하고 나설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미국의 공황은 달러지배체제가 잉태한 미국 발 공황의 여러 가능성 중의 하나가 지연되어 폭발한 것이었을 뿐이다”2)라는 주장처럼, 이번 대공황의 주요 원인이 마치 미국의 ‘달러지배체제’인 것처럼 고찰하고 주장한다면, 즉, 달러 지배체제의 문제가 이번 대공황의 주요 측면인 것처럼 주장한다면, 그에 대해서는 결코 동의하기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위기를 향해 질주하던 미국의 달러 지배체제가 이번 공황을 계기로 더욱 커다란 타격을 받을 것이고, 어쩌면 말 그대로 위기에 처할지도 모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예상, 혹은 예상되는 그러한 사실과 이 공황을 ‘달러지배체제’가 잉태했다고 주장하는 것 사이에는 소양지차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공황의 주요 원인이 (불환의) ‘달러지배체제’ 따위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과학적인 공황론일 수 없고, 따라서 맑스 경제학적일 수 없다. 그런 식의 주장ㆍ이론으로는, 무엇보다도, 1930년대의 대공황과 제2차 대전을 거치면서, 특히 브레튼우즈 협정을 계기로 달러 지배체제가 확립되기 이전의 공황들, 비근하게는, 예컨대, 1930년대의 공황에 대해서도 그 원인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빠레이스: 반유토피아적 맑스주의의 유토피아”










곽노완 박사의 문제의 글은 그 외에도 수많은 흥미로운 내용ㆍ주장을 담고 있다. 한두 가지만 예시하자면, 우선 이렇다.










전 세계의 통화를 근원적으로 안정시키고, 강대국의 기축통화를 통한 약소국에 대한 수탈을 차단하는 방법은 세계단일화폐체제밖에 없다. 이런 차원에서 달러화에 예속되지 않는 지역단일통화를 도입하려는 진보적 남미국가들 및 주변국들과 통화스왑을 도입하려는 중국의 시도는 아쉬움이 남는다. 원하는 어떤 나라도 가입할 수 있는 세계단일화폐체제를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또는 중국 등이 주창했다면, 제3세계 국가들에게 많은 희망을 주었을 것이다.3)










“원하는 어떤 나라도 가입할 수 있는” 화폐체제라면, 그 자체가 원하지 않는 나라의 비가입을 전제하는 것이어서 “원하는 어떤 나라도 가입할 수 있는 세계단일화폐체제”라는 것이 그 자체 자가당착의 주장이라는 것, 현재의 세계체제가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ㆍ경제력이 관철되고 있는 제국주의 체제일 뿐 아니라 이해관계가 중층적으로 서로 복잡하게 착종되어 있는 국민국가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식의 주장, 그리하여 마음만 먹으면 세계단일화폐체제를 추구할 수 있다는 식의 주장 등이 갖는 비현실성, 유토피아적 성격 따위에 대해서는 차라리 눈 감아 버리자.





그렇더라도, 그가 “강대국의 기축통화를 통한 약소국에 대한 수탈을 차단하는 방법”이니, “세계단일화폐체제를 ... 주창했다면, 제3세계 국가들에게 많은 희망을 주었을 것이다” 운운할 때의 그 구제불능의 상투성이나 몰계급성에 대해서까지 눈 감아서는 안 될 것이다.





어느 나라인가가 그러한 것을 “주창했다면”, 분명 “제3세계 국가들에게 많은 희망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제3세계의 국가들”의 누구에게인가?





물론 제3세계 국가들의 대중에게이다. 그러나 그 대중이란 부르주아의 이데올로기 지배에 복속되어, 계급적 사고가 마비되고 국가주의적ㆍ애국주의적 사고에 익숙해져 있는, 제3세계 국가들의 순진한 대중일 뿐이다!





그들에게 어떤 “많은 희망을”?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과 직접적으로는 관계없는, 그리고 때로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국가주의적이고 애국주의적인 희망을! 따라서 허망하기 그지없는 희망을!





제국주의적 현실에서 ‘강대국’과 ‘약소국’ 혹은 ‘제3세계’의 이해의 대립 문제는 물론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러나 예컨대, 오늘날 한미 FTA를 둘러싼 대립ㆍ투쟁을 통해서도 명확한 것처럼, ‘약소국’ 혹은 ‘제3세계’의 지배계급ㆍ독점자본은 그 나라의 노동자ㆍ인민의 이해관계보다는, 아니 그에 반해서, 제국주의와 그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집단 혹은 계급이다. 그리고 사실은 제국주의 국가 내에서의 계급적 이해관계의 대립도 이와 같은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곽노완 박사처럼 문제를 단순히 ‘강대국’ 대 ‘약소국’ 혹은 제3세계의 문제로서 논의하는 것은 결국 이 계급적 대립을 은폐하면서 지배계급의 국가주의를 선전하는 것일 뿐이다. 제3세계 노동자ㆍ인민의 이해를 그 지배계급의 이해에 종속시키려는 수정주의자들, 기회주의자들은 언제나 ‘제국주의와 식민지ㆍ신식민지(≒제3세계) 인민 간의 모순’을 ‘제국주의와 식민지ㆍ신식민지(≒제3세계) 간의 모순’으로 표현해 왔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렇다.










필자는 21세기 코뮌주의의 경제모델로 주식회사의 전 사회성원의 공동소유로의 전환 ... 등을 제시한 바 있다(곽노완, 「빠레이스: 반유토피아적 맑스주의의 유토피아」). 이는 ... 맑스의 “필요에 따른” 분배처럼 삶의 안전망과 연대를 확장시키는 계기가 된다.





미국의 공황과 세계 경제위기 내지 경제침체는 이러한 기획에 다가서기 위한 적극적인 계기를 포함하고 있다. 미국 부시정부조차 금융자본을 국유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에서는 축적된 230조 원의 연기금과 은행자본( 및 대출채권)을 사회성원들의 공동소유인 ‘사회연대기금’으로 전환하며, 이에 기초해서 기존 기업대출을 모두 주식으로 전환하고 기존 연기금을 전액 주식매입에 사용한다면 상장기업뿐 아니라 거의 모든 주식회사를 사회의 공동소유로 전환할 수 있다. 특히 최근의 금융위기로 인해 한국의 상장주식시가총액이 반 토막되어, 이를 실현하기가 호황기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다. 그리고 지배주주인 사회연대기금의 권한을 이용해 배당을 하지 않기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낼 경우, 자본주의는 사실상 폐기된다. 그러면 이행기를 거쳐 완전히 사적소유를 폐기하는 21세기 코뮌주의에 바짝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4)










가히 ‘사회연대기금주식시장을 통한 코뮌주의로의 이행의 길’이라고나 해야 할 위대하기 그지없는 역사적인 이행의 길이다!





고난의 혁명 따위도 필요 없고, 이렇게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내기만 하면 되는데도, 그런데도 어리석은 중생은 그걸 모르고 있거나, 그걸 실현하려 하지 않고 있다!!!





오호 통재라!!!





그리하여 그는 한없는 안타까움 때문에 다음과 같이 그 실행의 절차까지 친절하게 교시한다.










이행기 중에 우선 ‘사회연대기금’이 대다수 기업의 지배주주가 되면, 그 권리를 이용해 배당을 폐기함으로써 사적인 법인과 개인들의 주식투매를 유도하고 전체 주식을 사실상 사회의 공동소유로 전환시킨 다음 헌법개정을 통해 사적소유권과 주식회사제도를 폐지하고 코뮌주의적인 전사회적 공동소유를 확립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필자의 테제는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확대하여 주식시장을 부양하거나 연기금의 투기수익을 추구하는 노무현정부 및 이명박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연기금투기정책과는 다른 지향을 갖는 것이다[하모! 하모! 다른 지향을 갖고 말고!: 인용자].5)










참으로 경탄 경탄할 만한 코뮌주의, “코뮌주의적인 전사회적 공동소유를 확립하는” 수법이다!!! 곽노완 박사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빠레이스: 반유토피아적 맑스주의의 유토피아”화(化)다!!!





그런데 이렇게만 얘기하면, 그는 물론, 그의 <<진보평론>>적인, 혹은 <<사회이론>>적인, 혹은 <<마르크스주의 연구>>적인 적극적ㆍ소극적 지지자들은 그가 결코 ‘계급투쟁’을 부정하고 있지 않다고 항변하고 일어설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그가 말하는 ‘계급투쟁’, 나아가 그 ‘지평의 확장’을 보자.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좌파정치세력은 이러한 청사진을 갖고 좀 더 진취적으로 계급투쟁의 지평을 확장해야 할 것이다. 정리해고 반대 등 수세적 투쟁이 불가피한 경우라도, 노동자의 경영권 및 기업대표 선출권을 요구하며 나아가 금융자본과 주식회사를 전사회의 공동소유로 전환하여 기업의 수익 중 50%를 전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가능케 하는 ‘사회연대소득’으로 전환할 것을 제시하는 것은 [!: 인용자] 사회성원의 연대를 고양시키는 계기가 되어 좌파정치의 시공간을 크게 확장해 줄 것이다.6) (강조는 인용자)










바로 (독점)자본가계급을 포함한 “사회성원의 연대를 고양시키는 계기가 되어 좌파정치의 시공간을 크게 확장해 줄”, 그리하여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낼” 수 있는 계급투쟁!!! 그것이 그의 계급투쟁이다!





그리하여,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그의 면모가 어떤 것인지 스스로 말하게 하자.










적립된 연기금을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계기로 활용하자는 ‘연기금사회주의’[!: 인용자]의 테제는 ‘적립식’ 연기금 제도를 택하고 있는 영미권의 마르크스주의자들[!: 인용자]에게서 나왔다. 블랙번(Blackburn)은 그러한 테제를 주창한 대표적인 연구자이다. 하지만 그의 테제는 자본주의적 신용의 폐지와 비상장주식회사의 전사회적 공동소유로의 전환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필자는 그의 테제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연기금만이 아니라 은행자본을 전사회적 공동소유의 ‘사회연대기금’으로 전환하고, 이에 기초하여 비상장주식회사까지 전면적으로 사회적 공동소유로 전환할 수 있으며 자본주의적 신용을 완전히 폐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7)










참으로 블랙번(Blackburn) 같은 영미권의 마르크스주의자들[!: 인용자]은 발뒤꿈치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철저하고 위대한 ‘마르크스주의자’다!!! 저 “반유토피아적 맑스주의”를 “유토피아”적으로까지 ‘확장’하고 있지 않은가!!!




















II. 곽노완의 금폐화론










 그러나 이러한 지적들은 이 글의 주요 목적이 아니다. 농반진반으로 말하자면, ‘절박한 이 대공황의 와중에서 한가하게도(?) 무슨 놈의 듣기에도 생경한 금폐화론 타령이냐’는, 혹시 있을지도 모를 힐난을 모면하기 위해서(?) 그저 지나가듯 하는 얘기일 뿐이다.





이 글의 주요 목적은 곽노완 박사가 그렇게 훌륭한 공황론을, 그리고 그렇게 빼어난 사회주의로의 유토피아적 이행론, 이행 방법론을 전개하면서 맑스의 상품ㆍ화폐론을 향해서, 따라서 사실은 경제학 그 자체를 향해서 잽(jab)처럼 날린 금폐화론(金廢貨論)의 의의를 간략히 밝히면서, 역시 간략하게 그것을 비판하려는 것이다. 곽노완 박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볍게 잽을 날리듯이 공격했지만, 뒤에서 말하는 것처럼, 금이 화폐임을 부정하는 것, 그리하여 화폐가 상품임을 부정하는 것은 사실은 맑스 경제학, 따라서 경제과학의 기초를 허무는 것이기 때문이다.





곽노완 박사는 말한다.










1971년 닉슨 미국 대통령은 브레튼우즈 협정을 어기면서 달러화의 금태환을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이어 1973년에는 급기야 브레튼우즈 협정의 파기를 선언함으로써, 달러화를 세계기축통화로 하는 고정환율제는 붕괴되고 각국의 외환거래는 기본적으로 변동환율제로 전환되었다. 이제 자본주의에서 최종적인 지불수단은 더 이상 금이 아니라 지폐로 전환된 것이다. 이로써 자본주의의 최종지불수단인 화폐는 상품화폐인 금(또는 은)일 수밖에 없다고 한 맑스의 테제는 자기 시대의 사례를 절대화한 것임이 역사적으로 판명되었다.8) (강조는 인용자)










우선,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필시 생경할 수밖에 없을 금폐화론(金廢貨論)의 의미에 대해서 먼저 말하자면, 그것은, 바로 곽노완 박사가 위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1971년 미국의 달러의 금 교환 정지 선언으로부터 1973년의 전면적인 변동환율제로의 이행, 1978년 브레튼우즈 협정 개정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금은 더 이상 화폐가 아니게 되었다는 주장, 혹은 화폐는 더 이상 금이 아니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같은 말이지만, 이는, “이제 자본주의에서 최종적인 지불수단은 더 이상 금이 아니라 지폐로 전환된 것”이며, “이로써 자본주의의 최종지불수단인 화폐는 상품화폐인 금(또는 은)일 수밖에 없다고 한 맑스의 테제는 자기 시대의 사례를 절대화한 것임이 역사적으로 판명되었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곽노완 박사는 이와 같은 금폐화론을 다음과 같이 부연하고 있다.










맑스가 ��자본�� 1권의 1장 3절에서 원리적으로 자본주의의 화폐는 가치를 내장하고 있는 특정 상품화폐일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고 하는 점에 대해서는 맑스주의 내부에서 이견이 없다. 당시 금으로 태환되는 영국은행권이 법정화폐였으나 맑스는 이를 신용화폐로 간주하고 진짜 화폐는 금이라고 보았으며, 자본주의에서는9) 그럴 수밖에 없다고 전제했다. 이와 관련해서 맑스주의 경제학 내부에서 논쟁 지형은, 1971년 금본위제가 폐기된 이후에도 달러화 등 각국의 중앙은행권은 신용화폐에 불과하며 이 제도는 일시적인 예외상황이라 다시 금본위제로 귀환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입장 vs. 중앙은행권인 지폐가 최종적인 지불수단인 진짜 화폐로 전환되었고 오히려 자본주의에 적합한 화폐는 지폐와 같은 상징화폐라고 보는 입장의 대립이다. 전자의 입장은 간스만(ganßmann)과 바크하우스(Backhaus)를 포함한 대부분의 맑스주의 연구자들10)이 옹호하고 있다. 그리고 후자의 입장을 주창하는 학자로는 하인리히(Heinrich)가 대표적이다. 하인리히는 맑스의 상품화폐론은 이론적으로 폐기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전자의 입장은 1971년 이래 37년 이상 유지되어 온 현재의 불환지폐제도11)가 왜 일시적인 예외상황으로 간주되어야 하는 지에 답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난점을 갖는다. 필자가 보기에 하인리히의 견해에도 문제가 있다. 그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수 백 년 동안 작동했던 상품화폐가 자본주의에 적합하지 않았다고 보는 셈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보기에 원리적으로 최종지불수단이 화폐이고 이는 역사적 시공간의 조건에 따라 상품화폐일 수도 있고, 상징화폐일 수도 있다.12)










여기에서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은, 곽노완 박사 역시 그가 거론하고 있는 하인리히와 마찬가지로 “맑스의 상품화폐론은 이론적으로 폐기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문제 삼고 있는 하인리히의 견해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수 백 년 동안 작동했던 상품화폐가 자본주의에 적합하지 않았다고 보는” 점일 뿐, “중앙은행권인 지폐가 최종적인 지불수단인 진짜 화폐로 전환되었(다)”고 보는 데에서는 견해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가 “보기에 원리적으로 최종지불수단이 화폐이고 이는 역사적 시공간의 조건에 따라 상품화폐일 수도 있고, 상징화폐일 수도 있(는데)” 맑스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화폐는 금이라고 단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폐화론을 주장하는 ‘맑스주의자들’










나의 판단으로는, “맑스의 상품화폐론은 이론적으로 폐기되어야 한다”고 보는 이상, 이것만으로도 그는 맑스주의자일 수 없다. 하지만, 이 사회의 수많은 인품들, 인품 고매한 ‘맑스주의자들’은 물론 나의 이러한 발언을 천부당만부당하다고 지탄하고 나설 것이다. 그것이 한국 사회의, 아니 세계적인 ‘맑스 경제학’의 현 상황,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부르주아 강단 맑스주의의 상황이다.





하기야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반동의 시대,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제국주의 독점자본의 헤게모니는 일본의 한 맑스주의 경제학자로 하여금 다음 같이 개탄하고 자조하게끔 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한 10여 년 전[一昔前]까지는 금의 폐화를 주장하는 것은 맑스 경제학의 성역(聖域)을 범한다고 하는 두려움을 수반하고 있고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했지만, 최근에는 폐화론을 주장하는 쪽이 대세가 되고, 금의 폐화를 부정하는 쪽이 용기의 필요를 느끼는 정세로 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13)










현재의 정세야말로 정확히 바로 그러한 정세이다.















맑스주의, 맑스 경제학에서의 ‘상품화폐론’의 위상과 의의










독일의 고전철학 및 프랑스의 사회주의 사상과 더불어 영국의 고전파 경제학이야말로 맑스주의의 3대 원천이라는 사실, 그것들이 가진 오류를 비판ㆍ극복하고 그것들이 가진 적극적ㆍ과학적 내용을 계승ㆍ발전시킴으로써 맑스주의가 확립되었다는 것은 상식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구태여 강조하지 않더라도, 맑스의 화폐론을 부정하고서는 맑스주의자, 맑스 경제학자일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은 그 자체로서 극히 자명한 일이다.





위에서 인용한 마쓰모토 히사오(松本久雄) 교수도, “금의 폐화를 주장하는 것은 맑스 경제학의 성역을 범한다고 하는 두려움을 수반”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화폐는 (상품으로서의) 금이다’라고 하는 맑스의 화폐론은 경제학을 과학이게끔 하고, 맑스 경제학이게끔 하는 과학적 노동가치론의 불가분의 일체, 유기적 일체를 이루고 있는 부분이며, 맑스 경제학의 출발점, 혹은 토대이다.





실제로 맑스의 과학적 노동가치론의 기본적 원칙은 <<자본론>> 제1권 제1편에서 피력되고 있는데, 이 편(篇)의 제목은 바로 “상품 및 화폐”(Ware und Geld)이다. 그리고 금이 화폐라고 하는 결론, 즉 “금이 다른 상품들에 대하여 화폐로서 상대하는 것은 단지, 금이 다른 상품들에 대해서 이미 이전부터 상품으로서 상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14)라는 결론도 물론 그 제1장 “상품”(Die Ware)의 분석에서 직접 도출되고 있다.





그리하여, 주지하는 것이지만, 엥겔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맑스는 ... 상품과 화폐의 관계를 연구하여, 어떻게 하여 그리고 왜 상품에 내재하는 가치속성에 의해서 상품과 상품교환이 상품과 화폐의 대립을 낳지 않을 수 없는지를 입증했다. 이 입증 위에 구축된 화폐론은 최초의 완벽한(erschöpfend: 철저하게 파헤친) 그리고 오늘날 암묵 중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화폐론이다.15)










따라서 금이 화폐임을 부정하고서는 어떤 경제학도 결코 과학으로서의 경제학, 맑스 경제학일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미국의 ‘금태환’ 거부나 ‘브레튼우즈 협정의 파기 선언’ 등에 의해서 금이 더 이상 화폐가 아니게 되고, 즉 폐화되고, “이제 자본주의에서 최종적인 지불수단은 더 이상 금이 아니라 지폐로 전환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 성격상 가장 천박한 화폐론으로서의 화폐국정설(貨幣國定說)에 다름 아니다.16) 왜냐하면, 이는 ‘금 태환’ 거부나 ‘브레튼우즈 협정의 파기 선언’ 같은 국가의 행위, 방침 등이 금을 폐화시키고 상대적으로 무가치한 지권(紙券)으로서의 지폐, 정확하게는 불환은행권을 “최종적인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로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971년 8월 15일 미국 대통령 닉슨은, “신경제정책을 개괄하는 대(對)국민 연설: ‘평화의 도전’”(Address to the Nation Outlining a New Economic Policy: 'The Challenge of Peace')라는 성명을 발표한다. 그런데 그는 그 속에서, 당시의 ‘달러 위기’, 실제로는 미국 정부로부터의 ‘금의 대량 유출 위기’를 미국의 누진적인 국제수지 적자와 달러 남발 탓이 아니라 전적으로 국제적 투기꾼 탓으로 돌리면서, “투기꾼들로부터 달러를 방위하기 위하여 필요한 행동을 취한다”며 “통화 안정을 위해서 그리고 미국의 최대의 이익을 위해서 결정된 양(量)과 조건을 제외하고는,17) 달러의 금 및 기타 준비자산으로의 교환을 잠정적으로 중지한다”고 선언한다.





그런데 사실 이 성명, 이 조치를 통해서 금은 폐화되고 불환의 달러가 최종결제수단으로서의 화폐 그 자체가 되었다고 믿을 수 있는 경제학자는 오직, 금을 방위하기 위해서, 즉 금의 유출을 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달러를 방위하기 위하여”, “통화 안정을 위해서” 그러한 조치를 취했다는 저 기만과 위선을 믿는 순진한, 아니 덜 떨어진 위인들밖에는 없을 것이다.





조금의 비판적ㆍ논리적 사고력이라도 가진 사람이라면, 미국 정부의 ‘달러-금 교환’ 거부 등을 계기로 “이제 자본주의에서 최종적인 지불수단은 더 이상 금이 아니라 지폐로 전환된 것”이라고 단언하기 전에, 미국 정부는 왜, 진실로 무엇을 위해서 그 교환을 거부했는가를 생각해봤어야 할 것이다. 그 거부는, ‘금 전쟁’(gold battles)라고까지 불리는 제국주의 열강 간의 금 쟁탈전 끝에 나온 것이고, 자본주의 국제 통화ㆍ금융ㆍ무역에 대변화, 엄청난 타격을 주는 것이었고,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핵병기를 앞세운 미국의 군사적 위협 앞에서 속으로만 부글대다가 끝나긴 했지만 엄청난 국제적 긴장을 조성하는 조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닉슨은 문제의 성명에서 “국제 화폐 거래자들 중에 누구도 이 조치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Now, this action will not win us any friends among the international money traders)라고 말하고 있다.





만일 저들 덜 떨어진 위인들이 믿고 주장하는 것처럼 금이 더 이상 화폐가 아니라면, 미국은 무엇 때문에 그토록 무리를 무릅쓰고 그러한 조치를 취했던 것일까?





상대적으로 무가치한 지권, 즉 종이쪽지로서의 지폐 그 자체가 왜 화폐 자체일 수 없는가는 뒤에서 간단히 언급하겠지만, 아무튼 이러한 천박한 화폐국정설이 어떻게 맑스주의일 수 있겠는가? 그렇게 덜 떨어진 위인들을 어떻게 맑스주의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맑스의 시대적ㆍ역사적 경험의 한계인가 박사의 무지인가










앞에서 본 것처럼, 곽노완 박사는 박사님다운 확신과 대담함으로 말한다.










이제 자본주의에서 최종적인 지불수단은 더 이상 금이 아니라 지폐로 전환된 것이다. 이로써 자본주의의 최종지불수단인 화폐는 상품화폐인 금(또는 은)일 수밖에 없다고 한 맑스의 테제는 자기 시대의 사례를 절대화한 것임이 역사적으로 판명되었다.










그런데, 맑스의 화폐론, 즉 “자본주의의 최종지불수단인 화폐는 상품화폐인 금(또는 은)일 수밖에 없다고 한 맑스의 테제”는 과연 맑스가 “자기 시대의 사례를 절대화한 것” 즉, 맑스의 시대적ㆍ역사적 경험의 한계인가? 혹은, 그것을 그렇게 맑스가 “자기 시대의 사례를 절대화한 것”이라고 단언하는 것이야말로 박사님의 무지의 소치인가?





맑스가 화폐는 화폐상품인 금일 수밖에 없다고 한 것을 “자기 시대의 사례를 절대화한 것”에 불과하다고 단언할 때, 이는 당연히 맑스는 불환의 국가지폐나 불환의 중앙은행권의 전일적(全一的)인 유통을 경험하지도, 그에 대해서 알고 있지 못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과연 맑스는 이를 경험하지도, 알고 있지도 못했을까?





결코 아니다. 예컨대, 프랑스 혁명기의 저 악명 높은 아씨냐(assignat) 지폐의 증발이나 미국의 남북전쟁 시기의 그린백(green back) 지폐의 증발에 의한 인플레이션은 물론, 나폴레옹 전쟁(1796-1815) 시기에는 영국에서조차 군비를 조달할 목적 때문에 은행권의 금태환이 중지되고 1799년에서 1819년까지 잉글랜드 은행의 불환은행권이 유통되었던 사실은 맑스가 아니더라도 당시대인들에게는 생생한 경험, 생생한 기억이었다. 그리고 특히 <<자본론>> 제3권 중 “이자 낳는 자본”의 편(篇)에서는, (비록 엥겔스의 손에 의한 것이지만,) 러시아에서의 국가지폐화된 불환의 중앙은행권의 일반적 유통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18)





뿐만 아니다. 불환은행권이 전일적ㆍ배타적으로 유통하고 있는 조건 속에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인플레이션의 원인과 본질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해주는 유일한 이론으로서의 지폐유통의 특수법칙(spezifisches Gesetz der Papierzirkulation)19) 역시 국가지폐로 대표되는 불환통화의 전일적 유통을 조정(措定)하지 않고서는 결코 도출될 수 없는 것이었다.





다시, 그뿐만이 아니다. 곽노완 박사의 박사님다운 식견은 맑스의 상품화폐론은 맑스가 “자기 시대의 사례를 절대화한 것”일 뿐이라고 단언하고 있지만, 맑스는 참으로 의미심장하게도 이렇게 쓰고 있다.










상품의 교환가치가 교환과정에 의해서 금화폐로 결정(結晶)되는 것처럼, 금화폐는 유통 속에서 그 자신의 상징으로, 처음엔 마멸된 금주화의 형태로, 그리고 다음에는 보조금속주화의 형태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무가치한 표장, 지권(Papier), 단순한 가치장표(Wertzeichen)의 형태로 승화(昇華)한다(sich sublimieren).20) (강조는 맑스)










“금화폐는 ... 마지막으로는 무가치한 표장, 지권(Papier), 단순한 가치장표(Wertzeichen)의 형태로 승화(昇華)한다(sich sublimieren).” ― 이것이 맑스의 언명이다.





그런데도 곽노완 박사는 참으로 대담하게도 “자본주의의 최종지불수단인 화폐는 상품화폐인 금(또는 은)일 수밖에 없다고 한 맑스의 테제는 자기 시대의 사례를 절대화한 것임이 역사적으로 판명되었다”고 판정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판명된 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의 무지, 지적 무능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의 그러한 망발에 침묵하는 수많은 인품들, 인품 고결한 ‘맑스주의자들’의 저 더러운 패거리주의, 혹은 그 지적 무능이 아니던가!





참고로, 유통필요화폐량을 넘는 지폐의 증발에 따른 지폐의 감가 현상, 그 역수(逆數)의 표현인 물가의 명목적 상승으로서의 인플레이션, 즉 지폐유통의 특수법칙의 관철로서의 인플레이션은 다른 요인에 의한 물가의 실질적인 상승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고, 따라서 이론적으로 엄밀히 구분되어야 한다.21) 그런데도 비과학(非科學)=비맑스주의 경제학으로서의 부르주아 강단맑스주의, 특히 서유럽 강단맑스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ㆍ계승하고 있는 곽노완 박사는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다.










국제원자재가격이 상승한 조건에서 아시아각국이 물가인상을 억제하기 위해 이자율을 인상한다면, 아시아의 실물경제가 위축될 수 있다. 현재의 물가인상압력은 수요팽창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원자재가격 등 비용 상승요인에 의해 초래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자율 인상은 기업의 비용 상승요인을 확대하여 오히려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초래하고 ...22)










“현재의 물가인상압력은 수요팽창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원자재가격 등 비용 상승요인에 의해 초래된 것”, “이런 상황에서 이자율 인상은 기업의 비용 상승요인을 확대하여 오히려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초래하고 ...” ― 전형적으로, 일체의 물가상승을 무차별적으로 인플레이션으로 치부해버리는, 비과학으로서의 부르주아 경제학의 천박하기 그지없는 인플레이션 이론, 이른바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demand-pull inflation)’ㆍ‘비용 상승 인플레이션(cost-push inflation)’의 ‘이론’을 그대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수요팽창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 비용 상승요인에 의해”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초래될 것이라며 경고를 발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맑스주의 경제학자’로서 ‘진보’ 사계(斯界)의 각광을 받고 있다.















국가지폐 혹은 불환의 중앙은행권이 화폐 자체일 수 있는가










앞에서 본 것처럼, 곽노완 박사는 “이제 자본주의에서 최종적인 지불수단은 더 이상 금이 아니라 지폐로 전환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제 금이 아니라 지폐, 그의 다른 표현으로는 “상징화폐”23)가 화폐 그 자체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우선 여기에서 물어야 하는 것은 화폐의 기능, 그 가치척도로서의 기능의 문제이다. 화폐의 제1의 기능이 가치척도 기능일 뿐 아니라, 맑스에 의하면, “가치척도로서 그리고 따라서 또한 자신의 몸으로 혹은 대리물을 통해서 유통수단으로 기능하는 상품이 화폐”24)이기 때문이다. 혹은, 맑스의 화폐론은 이제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마당이기 때문에 굳이 맑스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가치척도 기능이 없는 화폐’란 가장 천박한 경제학자라도 결코 이를 상정(想定)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 그런데 상대적으로 무가치한 지폐가 그 자체로서 화폐이며, 따라서 가치척도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는 무가치물로서 가치를 측정ㆍ계량하는 것으로서, 무게로서 거리를, 혹은 거리로서 무게를 측정ㆍ계량하는 것 만큼이나, 즉 예컨대 서울과 부산 간의 거리를 킬로그램(Kg)이나 톤(ton)으로 측정ㆍ계량하고, 예컨대 어떤 사람의 체중을 미터(m)나 킬로미터(km)로 측정ㆍ계량하는 것 만큼이나 불가사의한 일이다.25)





실제로는, 무언가가 가치의 척도이기 위해서는 그 자체가 가치, 즉 인간노동의 결정(結晶)ㆍ응축물이어야 하고, 따라서 화폐는 무엇보다도 여러 상품의 가치에 대한 일반적 등가물(等價物)로서의 화폐상품=금인 것이다.





앞에서 인용했던 마쓰모토 교수는 당연하게도 일반화하여 이렇게 설명한다.










가치형태론의 논리에 따르면, 상품의 가치를 표현하는 재료, 즉 등가물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가치물이지 않으면 안 된다. 상대적 가치형태에 서는 상품은 자신과 등치되는 상품을 우선 가치물로서 인정함으로써 비로소 그것과 같은 것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치형태에 관해서 논하는 경우의 기본이고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중앙은행 또는 보통은행의 채무인 은행권이나 당좌예금은 그것 자체는 가치물이 아니다. 그것 자체로서 가치물이 아닌 은행권이나 예금은 자신의 모습으로 상품들의 가치를 표현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무언가 가치를 가진 것처럼 유통하는 것은 단지 그것들이 가치물인 화폐의 일정량을 대표하기 때문일 뿐이다. 결국, 화폐상품의 대리물로서만 그것들은 일반 상품에 대한 직접적 교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26)










그리고는 현재와 같이 금화도 유통하지 않고, 금태환도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불환의 은행권이 전일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조건, 그리하여 금은 오히려 불환은행권과 교환된 후에야 다른 상품과 직접 교환되고, 따라서 외견상으로는 불환은행권이 다른 상품과의 직접교환성을 갖고 있는 조건에서, 이를 근거로 지폐야말로 이제 화폐라며 금폐화론을 내세우는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금이 직접적으로 상품과 교환되지 않고 그 대리물이 현실적으로 상품과의 직접적 교환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금은 이미 일반적 등가물이 아니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고객과 직접 응대하고 있는 것이 오로지 지배인이나 종업원임을 보고는 그 상점의 주인은 이미 상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유사할 것이다.27)










결국 상대적인 무가치물로서의 지폐 자체, 불환은행권 자체는 가치척도의 가능을 수행할 수 없고, 금태환이 정지된 조건 하에서도 그것들은, 비록 자유금시장이라는 우회로를 통해서일지라도, 그것들이 다름 아니라 화폐인 금의 대리물이기 때문에 가치척도로서, 따라서 화폐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비록 자유금시장이라는 우회로를 통해서일지라도”라고 말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맑스가 말하는 “현실적인 태환성(교환성)”[wirkliche Konvertibilität (Austauschbarkeit)]28)이다. 맑스는 가치장표, 즉 지폐나 불환은행권의 태환성을 법률적인 그것에 한정하지 않고 있고, 경제적인ㆍ현실적인 그것으로 확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프로이쎈에는 강제통용력(Zwanfskurs)을 가진 지폐가 존재한다. ... 금과 은으로의 태환성은, 그 지폐가 법률상 태환할 수 있든 없든, ... 모든 지폐의 실제상의 가치척도(praktisces Maß des Werts jeden papiergeldes)이다. 명목가치는 단지 그림자로서 그 물체 옆에 붙어 있을 뿐이며, 양자가 서로 일치하는가 어떤가는 지폐의 현실적인 태환성(교환성)이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29) (강조는 인용자)










경제적으로 볼 때 지폐의 태환성은 법률적인 그것에 한정되지 않는 것이며, “그리하여 태환성―법률적이든 아니든―이란 여전히 모든 화폐에 대한 청구권이며, 그 호칭이 화폐를 하나의 가치장표로 만드는 것, 즉 그 화폐를 제3의 상품의 양(量)과 등치시키는 것이다.”30)





결국, “불환제는 금본위제와는 다른, 전혀 새로운 원리에 선 화폐제도라고 할 수 없”으며, “불환제는 단지 금태환이 정지된 상태에 다름 아닌” 것이다.31) 그리고 그 금태환 혹은 금과의 교환은 결국 자유금시장을  통해서 현실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불환은행권의 국제통화로서의 유통근거










전 세계적으로, 국제거래에서까지 불환은행권이 전일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조건에서 화폐론상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는 사실 불환은행권의 국제통화로서의 유통근거와 관련된 그것이다.





실제로 금폐화론자들이 금의 폐화를 제기하는 것도, 그리고 지폐가 이제 최종 지불수단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도 모두 불환은행권의 국제통화로서의 전면적 유통이라는 이러한 사실에 자극받은 것이다. 우리가 앞에서 본 것처럼, 곽노완 교수 역시 1971년 8월의 미국의 달러-금교환 정지나 브레튼우즈 협정의 파기(개정)를 그 계기로 들고 있다.





이와 관련, 아예 드러내놓고 금폐화론을 주장하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예컨대 이렇게 주장한다.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서는 국제적인 준비자산은 금 또는 달러였다. 1960년대에 달러 불안이 자주 발생했는데, 이는 금과의 비교에서 달러의 신인(信認)을 묻는 것이었다. 그러나 71년에 달러는 금태환을 정지하고, 78년의 국제통화기금(IMF) 협정의 개정에 의해 금이 폐화되자 달러에 비견할 국제통화 내지 국제준비자산은 없어졌다. 이 때문에 달러는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확립하고,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





금을 폐화하고, 변동환율제로 이행하자 금본위제라는 제어장치(anchor)로부터 해방되어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인플레 없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이라는 국내균형에 전념하여 경제를 운용할 수 있게 되고, 세계의 경제성장을 선도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32)










그는 말한다. “78년의 국제통화기금(IMF) 협정의 개정에 의해 금이 폐화되자 달러에 비견할 국제통화 내지 국제준비자산은 없어졌다”고 말이다. 각국이 유로나 엔화 등을 국제준비통화로서 축적해가고 있는 추세라는 사실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렇다면 미국은 왜 금과 달러의 교환을 거부ㆍ중지한 것일까?





그는 또 말한다. “금을 폐화하고, 변동환율제로 이행하자 금본위제라는 제어장치(anchor)로부터 해방되어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인플레 없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이라는 국내균형에 전념하여 경제를 운용할 수 있게 되고, 세계의 경제성장을 선도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라고. ― 이 뒤집어진 사고(思考)가 얼마나 멋있는가! 이것이 바로 부르주아적 사고이다. 다른 얘기는 필요 없을 것이다.





아무튼 이 문제의 핵심 쟁점을 말하자면, 그것은 “한편에서는, 국제적 최종결제수단으로서의 세계화폐는 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것, 또 다른 한편에서는 불환통화는 국경에 의해 그어진 국내유통영역에서만 국가의 강제통용력에 기초하여 유통에 필요한 금을 대신하여 유통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 이상의 기본적인 명제에 따라서, 단순한 불환통화인 달러가 국제통화로서 가능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은가 하는”33) 것이다.





미리 얘기해두자면, 이 문제는 참으로 어렵고 복잡한 문제여서 아직도 해명되어야 할 여러 미해결의 난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 같은 범부(凡夫)가 그 완전한 해명을 자임하고 나설 수 있는 문제는 더더구나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 다음과 같은 사항, 즉, 미해결의 난점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결코 금폐화론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은 확인해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는 당연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위에서 확인한 것처럼, 금을 폐화시키고서는, 즉 화폐는 가치물로서의 금 혹은 은임을 부인하고서는, 어떤 가치척도도, 따라서 어떤 화폐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마쓰모토 교수도 말하고 있는 것처럼, 사실은 “금이 화폐라고 하는 것은 사적소유에 기초한 상품경제의 특질과 결부되어”34)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과제는 이 난문제를 해명하는 것이지, 금의 폐화를 주장하는 것일 수는 결코 없다.





그러면 여기에서 이 난문제에 대한 시론적 해명을 시도해보자.





첫째는, 신용제도의 국제적인 전개에서, 더구나 미국 주도의 신용제도의 국제적 전개, 다른 국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대미(對美) 종속적 신용제도의 국제적인 전개에서, 그리고 자본주의 세계시장의 특정국에의 사실상의 종속에서, 특정국 불환통화, 특히 미국 달러의 국제통화로서의 유통의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맑스는 이미, 예컨대, 화폐의 지불수단 기능과 관련하여, “신용제도가 확대되면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도 확대된다”면서, “화폐는 이러한 지불수단으로서 여러 특유한 존재형태를 취한다”35)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미, 국가지폐화하긴 했으나 본래의 국가지폐와 달리 현대의 신용제도에 기초해서 발행되는 불환은행권36)이 “화폐의 한 현상형태”37) 혹은 그 한 존재형태일 수 있음이 시사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요 국민통화의 국제적 유통 역시 그들 통화의 “현실적 태환성” 및 신용제도의 국제적 발달과 관련해서 주요하게 해명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 신용제도는 다분히 미국의, 그리고 그와의 동맹세력으로서의 서유럽 국가들이나 일본의 은행, 금융자본에 의해서, 그들 기관의 세계적인 망(網)과 그와의 직접ㆍ간접의 연계 하에서 전개되고 있으며, 대부분 국가의 경제는 그들의 지배 하에 금융적으로, 에너지ㆍ식량 등의 원료 조달과 최종 제품의 판매시장의 측면에서 사실상 종속되어 있다. 제2차 대전 후 형성되어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근간이 유지되고 있는 자본주의 국제관계는 결코 대등한 주권국가 간의 관계가 아닌 것이다.





둘째는, 그러나 특정국의 불환통화가 국제통화로서 유통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바로, 곽노완 교수 같은 금폐화론자들이 주장하듯이, 그 불환통화가 세계시장에서도 최종의 지불수단임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주지하는 것이지만, “불환의 일국 국민통화가 ―유통량과 유통필요화폐량의 관계에 의해서 감가되긴 하지만― 국내유통에서 최종지불수단으로서 기능하는 것은 국가의 강제통용력에 기초하고 있다.”38)





그러나 그것이 국제적으로 유통하는 이유는 전혀 다르다. 그것이 국제통화로서 유통하는 이유는, 우선, 불환제 하에서든 태환제 하에서든, “국제적 거래는 어느 나라인가의 통화 표시, 통화결제로 이루어”39)지는 것인데, 1936년 이후에는 전 세계 어느 국가도 금태환을 중지한 상태이기 때문에40) 그 거래가 불환의 통화 표시, 불환의 통화결제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몇 가지가 해명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는, 태환제 하에서도 국제거래는 외국환 표시, 따라서 특정국의 통화표시 및 그 통화결제로 이루어졌고, 세계화폐로서의 금의 현실적 이동은, 금의 산지로부터 다른 나라로의 확산을 별도로 하면, 결국은 금의 수출입 비용인 금의 현송점(現送點)을 넘어 환율이 등락할 때에만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즉, 무역 차액의 청산수단으로서 최종적 결제수단으로서의 금이 거래되었던 것인데, 이 점은 오늘날 불환국제통화국의 무역적자의 누적으로 그 통화의 가치가 심히 열세일 때, 수출업자가 그 통화의 수령을 기피ㆍ거부하는 것으로서 나타나고 있다. 즉, 그 불환의 국제통화가 결코 최종적 결제수단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달러가 오늘날 기축(基軸) 국제통화로 되어 있지만, 무역업자들, 특히 유럽이나 일본과 거래하는 수입업자들은 현지의 수출업자들이 달러로 지불받기를 거부하고 유로나 엔으로 결제해줄 것을 요구하는 경우를 많이 경험한다. 그들과 거래하는 미국의 수입업자들도 이러한 경험을 하고 있으리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즉, 기축 국제통화 달러가 결코 최종적 결제수단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미국의 엄청난 국제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수많은 국가들이 달러를 축적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도 현실이다. 하지만 이에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에서의 미국경제의 위상ㆍ비중, 특히 그 금융상의 지배력, 브레튼우즈 체제, 즉 IMF 체제의 유산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하고 있고, 우리가 여기에서 논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구체적인 수준의 논의가 필요한 문제이다.





또 하나는, 불환통화가 국내유통에서 최종지불수단으로서 기능하는 것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국가의 강제통용력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지만, 국제유통에는 결코 그러한 강제통용력이 있을 수 없다. 자본주의 국제시장의 군사적ㆍ경제적 대미 종속으로 미국의 영향력이 막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래도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도 결코 국가의 절대적인 강제통용력일 수는 없다.





따라서, 특히 민간거래와 관련하여 말하자면, 거래업자가 어떤 일국의 불환통화를 수령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 통화의 신인도에 기초하여 그것을 수령하고 있을 뿐이다. 그 때문에, 앞서 말한 것처럼, 무역적자의 누적 등으로 그 신인도가 떨어지면, 그 수령을 강제할 방법이 없고, 따라서 결코 최종적인 결제수단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공동의 붕괴를 피하기 위한 ‘국제통화협력’, G7이니, G8이니, G10이니 하는 제국주의 열강 중심의, 자의반타의반의 ‘국제통화협력들’이 있지만, 이 역시 불환의 국제통화가 최종적 결제수단이 될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확인해주는 것일 뿐, 그 반대가 아니다. 그러한 ‘국제통화협력’은 협력 당사국들 간의 끊임없는 정치적ㆍ경제적 갈등과 긴장을 수반하면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고, 혹은 오히려 그러한 갈등과 긴장의 존재ㆍ고조 때문에 그것을 다소라도 완화함으로써 공동의 붕괴ㆍ파멸을 모면하기 위해서 전개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그러한 국제통화협력과 그로부터 도출되는 제반의 정책이 결코 특정 불환통화를 세계시장에서의 최종적 결제수단이게끔 하는 강제통용력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한편, 다음과 같이도 얘기할 수 있다.










일국 통화가 국제통화로서 기능한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그 나라의 통화―주화ㆍ은행권ㆍ정부지폐 등―가 직접 국경을 넘어 유통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하물며 그 나라의 통화가 다른 나라의 국내유통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일정 시점에서의 일국 통화의 국제통화로서의 존재는 비거주자가 그 나라의 통화표시로서 갖고 있는 단기채권―은행예금 내지 정부단기증권 등의 단기채권―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선, 국내유통에서의 일국 통화와 국제유통에서의 일국 통화는 거주자 보유인가 비거주자 보유인가 하는, 그 소유자의 차이에서 구별될 것이다. 다만 국제적 거래가 해당 통화 표시 통화결제로 이루어지는 한에서는 국제적인 지불은―제3국 간의 결제를 포함해서― 예컨대 국제통화국에서의 은행예금의 대체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러한 한에서 일국 통화가 국제유통에서 기능한다고 할 수 있다. ... 불환의 일국 통화가 국내유통에서 유통하는 것은 국가의 강제통용력에 기초하고 있는 것임에 비해서 국제통화로서 기능하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 일국 통화가 국제통화로서 기능하는 것은 ―직접 국제무역 등의 국제적 거래에 종사하고 있는 업자, 외국환은행, 해외통화당국을 포함하여― 비거주자가 스스로 해당 통화 표시의 단기채권을 보유하려고 하는 한에서의 것이어서 비거주자는 해당 통화 표시로 보유하고 있는 자금을 필요한 한 언제라도 자국 통화나 타국 통화, 혹은 자유 금시장에서 금 등으로 전환할 자유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41)










마지막으로는, 간단히 지적하고 넘어가는 것이지만, 주지하는 것처럼, 브레튼우즈 체제가 아직 막강하게 작동하고 있던 1950년대부터 이미 자본주의 세계시장에는 수많은 통화위기, 외환위기가 발발해왔고, 이를 둘러싸고 국가 간의 갈등ㆍ긴장이 고조되곤 했다. 그리고 그 원인의 상당 부분은 바로 불환의 국제통화체제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시금 대공황이 전개되고 있는 지금 이 국제통화, 혹은 그 안정을 둘러싼 국가 간 갈등ㆍ긴장도 이전과는 다른 차원, 다른 규모로 고조되고 있다. 특히 이번의 대공황이 미국의 ‘써브프라임 모기지 붕괴’라고 하는 사태로부터 발발함으로써, 그리고 그간 과잉생산을 극한까지 몰아가는 데에 미국의 금융기관들, 미국 중심의 금융자본이 전 세계적 규모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이번의 대공황을 계기로 불환의 이른바 ‘달러지배체제’가 심대한 타격을 받을 것임은 널리 예견되고 있는 대로이다.





그렇게 되면, 세계적 규모의 대사회혁명의 가능성을 잠시 도외시하더라도, 당연히 국제통화의 면에도 커다란 변용(變容)이 발생하면서, 특정국의 불환통화가 결코 최종적인 결제수단일 수 없다는 것도 보다 분명해질 것이다. 10년 전 외환위기시에 ‘금 모으기’를 해야 했던, 예속적 지위의 한국 경제에서와 같은 사태야 발생하지 않겠지만, 미 달러화에 대한 신인도가 크게 훼손되면서 국제적인 무역ㆍ금융질서 상에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려운 대변화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조건, 상황 속에서 어떻게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금의 폐화를 얘기할 수 있겠는가?















III. 기타 진면목 2제(題)










[진면목 1] 곽노완 교수는, 지난 해 10월 현재 전개되고 있는 대공황을 논하면서, 소위 디커플링 개념을 도입하여 우선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2004년 이후 미국경제와 세계경제의 디커플링(decoupling)이 커지면서 미국경제가 침체되거나 공황에 직면해도 세계경제에 미치는 직접적인 악영향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디커플링이란 모건스탠리가 처음으로 사용한 개념으로 한 나라 경제가 특정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42)










바로 여기에서도 비과학=비맑스주의 경제학으로서의 서유럽 강단맑스주의의 무비판적 수용ㆍ계승자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에 대한 무비판성, 아니 굴종 습벽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지난해 9월부터 급격히 전개된 사태는 이러한 소위 디커플링 개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고, 그리하여 ‘2008년 겨울’에는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본주의의 제국 미국에 공황이 닥쳤다. 서브프라임(...) 붕괴에서 시작된 미국의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파급되면서 전반적인 공황이 도래한 것이다.43) 그리고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로 확대되고 있다.44)










그런데 같은 글의 결론에 가면, 다시 전혀 다른 얘기를 한다. 이렇게.










그런데 2004년 이후 미국의 실물경제와 세계의 실물경제 사이에 디커플링(Decoupling)이 커지면서 미국경제가 공황에 빠져도 세계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직접적으로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45)










그리고 “디커플링(Decoupling)”에는 10월의 글에서는 본문에 있었던 말, 즉 “디커플링이란 모건스탠리가 처음으로 사용한 개념으로 한 나라 경제가 특정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라는 설명이 각주로 달려 있다. ― “디커플링(Decoupling)”이라는, 많은 인문학도에게는 필시 생경할 이 말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들렸으면! 이 역시 그의 진면목이다.





[진면목2] 서유럽 강단맑스주의의 일반적 특징의 하나는 그 불치(不治)의 반쏘ㆍ반공주의이다. 그 서유럽 강단맑스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ㆍ계승하고 있는 곽노완 박사 또한 그에 뒤떨어진다면 서러워할 반쏘ㆍ반공주의를, 그것도 공황이라는 주어진 주제와는 사실상 아무런 맥락도 닿지 않는, 그리고 물론 아무런 근거도 없는 모략을 일삼고 있다. 그의 진면목을!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달러화가 폭락하고 달러지배체제가 붕괴된다면 미국은 1920년대 말 이후 대공황보다 훨씬 위력적인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1990년 소련 붕괴 이후 지금까지 루불화가 50억분의 1로 폭락했음을 감안할 때, 달러지배체제가 붕괴할 경우 소련보다 더 많은 자국통화가 해외에 나가있는 미국의 몰락은 소련의 몰락 이상으로 처참할 수도 있다.46)










글의 형식적 맥락만을 보면, ‘50억분의 1’(?)로의 루블화의 폭락이 마치 쏘련 시대 엄청난 루블화를 해외에 내보냈기 때문인 것처럼 읽힌다. 과연 진실인가? 반쏘ㆍ반공주의 말고는 도대체 여기에서 뜬금없이 쏘련과 루블화가 거론되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그러나 이것은 약과다.





다른 글에서 그의 반쏘ㆍ반공주의는 이렇게까지 표현된다.










어쨌든 1970년대 초 달러화의 금태환 포기와 변동환율제 도입 및 외환자유화에도 불구하고 금융세계화를 통해 달러지배체제를 유지하면서 전 세계로부터 현재 연간 1조억[원문대로!: 인용자] 달러에 육박하는 무역수지적자와 예산적자를 공물로 받아온 미국경제의 위상은 이번 서브프라임 붕괴로 인해 크게 실추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1990년 이후 소련이 그랬듯이, 미국이 수십년 동안 전 세계로부터 받아온 공물이 한꺼번에 갚아야 할 빚으로 돌아올 가능성조차 배제할 수 없다. ... 그리고 지구적 차원에서 자본주의 자체가 허물어지는 원년이 될 수도 있다.47)










이 역시 의도적으로, 아니 악의적으로 ‘쏘련이 루블지배체제를 유지하면서 전 세계로부터 엄청난 무역수지적자와 예산적자를 공물로 받아 왔고, 수십 년 동안 전 세계로부터 받아온 그 공물을 1990년 이후 한꺼번에 갚아야 했다’고 읽히도록 씌어진 글이다. 과연 쏘련이 세계로부터 그러한 공물을 받아왔던가?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런데 그토록 ‘디커플링’을 강조하던 박사께서 왜 또 갑자기 “지구적 차원에서 자본주의 자체가 허물어지는 원년이 될 수도 있다”?! ― ‘달러지배체제’, ‘금융세계화’와 ‘실물경제’는 별개의 문제라는 뜻인가?!















IV. 디커플링(Decoupling)을 설교하시니까










곽노완 박사께서 연거푸 디커플링(Decoupling)을 설교하시니까 하는 말이지만, 자본주의 세계시장의 통일성을 부정하는 이러한 어이없는 논의ㆍ주장들을 보면서, 참고로 나는 정확히 1년 전에 그러한 어이없는 소위 디커플링 논의를 보면서 다음과 같이 썼음을 부기해둔다.










최근 부르주아 논설가들은 이른바 친디아(Chindia=China+India) 담론을 열심히 띄우면서, 특히 중국과 인도, 그리고 부분적으로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등으로 대표되는 ‘신흥시장’(emerging markets)이 이내 닥쳐올 공황의 충격을 크게 흡수해줄 것이라는 자기최면을 널리 유포시키고 있다. 그러나 19세기 초부터 자본주의적 생산이 “일단 일정한 운동에 던져진 천체가 끊임없이 동일한 운동을 반복하는 것과 전적으로 마찬가지”의 “팽창과 수축이라는 교대하는 운동에”48) 내던져진 이래 끊임없이 등장한 ‘신흥시장’이 그 팽창ㆍ수축의 운동을 저지ㆍ교란한 적도 없거니와, 어떤 면으로 보나 중국이나 인도,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의 신흥시장이 그러한 역할을 할 여건에 있지 않다. 우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은 말이 신흥시장이지 오랫동안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주요 일부분을 형성하면서 그 팽창과 수축의 운동을 함께해온 지 오래다. 인도는 영국 식민지 시대로부터 오랜 제국주의적 착취에 따른 빈곤과 저개발로 세계적인 공황을 떠받칠 만한 구매력이 없다. 혹시, 제2차 대전 후에 서유럽 등에 대해서 그랬던 것처럼, 미국 등이 거액의 무상원조를 제공하여 구매력을 창출한다면 모를까! ― 물론 미국 등은 그럴 의사도, 능력도 없다.





중국? 중국이 공황의 쇼크압서버(shock absorber)가 되리라고 기대한다면, 그것은 불과 수개월 전인 지난 해 2, 3월에 자본주의 세계를 휩쓴 ‘중국발 공황’라는 조급했던 공포ㆍ소동조차 어느새 망각한 새대가리의 기대일 뿐이다. 당시 미국의 월간 제조업 생산이 후퇴했다는 통계발표와 마침 때맞추어 중국의 증시가 폭락하고, 그에 이어 세계 주요 증시가 연달아 폭락하자 ‘중국발 대공황’이라는 일대 소동, 일대 공포가 자본주의 세계시장을 휩쓸지 않았던가! (지금의 기대는 그 공포, 그 소동이 현실화되지 않고 지나간 데에 대한 안도와 반성의 표현인가?)





중국은 이미 공황의 진원지일 수는 있어도 그 충격의 흡수장치, 혹은 그 공황을 예방하는 안전밸브일 수는 결코 없다.49) 중국의 엄청나게 쌓이는 외환보유고, 엄청난 규모로 기록을 갱신해가고 있는 무역흑자에서 명백한 것처럼, 중국은 상품의 수입ㆍ소비시장이기보다는 오히려 그 제조ㆍ수출시장으로서의 비중이 훨씬 높다.





아무튼 공황은 필연적으로 폭발할 것이고―혹은 이미 미국과 영국에서 폭발하고 있고―, 그것도 임박해 있다.50)










디커플링 운운이 얼마나 어리석은 부르주아적 소망ㆍ공포의 표현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여! 부디 이 가엾은 영혼을 어루만져주소서! <노사과연>






1) 곽노완, “달러지배체제의 위기와 21세기 코뮌주의의 한국경제 비전”, <<진보평론>> 제38호, 2008년 겨울, pp. 94-112.






2) 곽노완, 같은 글, p. 106.






3) 곽노완, 같은 글, pp. 107-08.






4) 곽노완, 같은 글, pp. 110-12.






5) 곽노완, 같은 글, pp. 111-12, 주 20.






6) 곽노완, 같은 글, p. 112.






7) 곽노완, 같은 글, p. 111, 주 20.






8) 곽노완, 같은 글, p. 98.






9) 화폐가 상품일 수밖에 없는 것은 자본주의에서만이 아니라 상품교환 일반에서의 일이기 때문에, 이 “자본주의에서는”은 “상품교환에서는”이라고 해야 하지만, 이러한 것은 차라리 사소한(?) 오류이다.






10) 정확히 사실을 말하자면, 그들 대부분은 정말로 “맑스주의 연구자들”, 더구나 그 발권은행의 아무런 채무증서도 아닌, 이미 국가지폐화된(MEW, Bd. 25, SS. 539-40) 불환의 중앙은행권을 신용화폐로 규정하는 엉터리 “맑스주의 연구자들”일 수는 있어도 “맑스주의자들”일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






11) 불환은행권으로서의 달러의 일체의 ‘법률적 태환성’이 최종적으로 정지된 것은 1971년 8월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불환지폐제도’가 1971년 이래의 일인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1930년대 대공황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2) 곽노완, 같은 글, p. 98, 주 4.






13) 松本久雄, <<國際價値論と變動爲替相場>>, 新泉社, 1995, p. 11.






14) <<자본론>> 제1권, MEW, Bd. 23, S. 84.






15) F. 엥겔스, “<<자본론>> 제2권 서문”, MEW, Bd. 24, S. 23.






16) 예컨대, 현대 부르주아 경제학의 기린아 J. M. 케인즈도 자신이 <<화폐의 순수이론>>이라고 명명한 저서에서, “오늘날 모든 문명화된 화폐는, 논쟁의 여지없이, 국가가 정한 것”[J.M. Keynes, A Treatise On Money in Two Volumes, 1 The Pure Theory of Money (1930) (The Collected Writings Of John Maynard Keynes, Vol. 5), London, 1971, p. 4.]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17) “미국의 최대의 이익을 위해서 결정된 양(量)과 조건을 제외하고는(except in amounts and conditions determined to be ... in the best interests of the United States)” ― 그렇다. 그의 성명 전체를 통해서 사실상 이 구절만이 그 목적과 관련한 진실이었다.






18) <<자본론>> 제3권, MEW, Bd. 25, SS. 539-40.






19) <<자본론>> 제1권, MEW, Bd. 23, S. 141.






20) <<경제학 비판>>, MEW, Bd. 13, S. 94.






21) “[지폐의 증발에 의한] 가격의 등귀는 가치장표(價値章標)가 그 대리로서 유통한다고 칭하는 금의 양에 이 가치장표를 억지로 등치시키는 유통과정의 반작용에 불과할 것이다.”(<<경제학 비판>>, MEW, Bd. 13, S. 99).; “지권(紙券)의 수량의 증감―지권이 유일한 유통수단으로 되어 있는 경우의 그것―에 수반하는 상품가격의 등락은 다름 아니라, 유통하는 금의 양은, 상품의 가격에 의해서 규정되고 유통하는 가치장표의 양은 그것이 유통에서 대리하는 금주화의 양에 의해서 규정된다고 하는 법칙이 외부로부터 기계적으로 파괴된 경우에 유통과정에 의해서 억지로 완수된 이 법칙의 관철일 뿐이다. 그러므로 다른 한편에서는 어떤 임의의 수량의 지권도 유통과정에 의해서 흡수되고, 말하자면, 소화된다. 왜냐하면, 가치장표는 그것이 어떤 금명의(金名義, Goldtitel)를 가지고 유통에 들어가더라도 유통의 내부에서는 그 대신에 유통할 수 있었을 금량의 장표로 압축되기 때문이다.”(MEW, Bd. 13, S. 100).






22) 곽노완, “서브프라임 붕괴와 마르크스주의 공황론의 새로운 지평”, 맑스코뮤날레 주관, 경상대 사회과학원, 노동자의힘, 사회실천연구소, 연구공간 수유+너머, 진보전략회의 공동주최 2008년 10월 24일 토론회 자료집 <<미국발 세계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노동자의힘’이 그 홈페이지에 올린 것에 의한다), p. 27, 주 14.






23) 앞에서도 인용한 것이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원리적으로 최종지불수단이 화폐이고 이는 역사적 시공간의 조건에 따라 상품화폐일 수도 있고, 상징화폐일 수도 있다.”(곽노완, “달러지배체제의 위기와 21세기 코뮌주의의 한국경제 비전”, p. 98 주 4.)






24) <<자본론>> 제1권, MEW, Bd. 23, S. 143.






25) 현대의 불환 중앙은행권은 “사회적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순이 없다는, 또 다른 형태의 금폐화론이 있지만, 사실 이는 동의반복(同義反復)의 말장난일 뿐이다. 이에 대한 메아리 없는 비판은, 채만수, “‘금폐화론’과 현대 불환은행권”, <<진보평론>> 창간호, 1999년 가을, pp. 272-302 참조.






26) 松本久雄, 같은 책, pp. 15-16.






27) 松本久雄, 같은 책, p. 16.






28) <<경제학 비판 요강>>, Karl Marx, 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Berlin, 1953, S. 52.; MEW, Bd. 43, S. 68.






29) 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SS. 51-52.; MEW, Bd. 43, SS. 67-68.






30) 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S. 53.; MEW, Bd. 43, S. 70.






31) 久留間 健, <<貨幣.信用論と現代不換制の理論>>, 大月書店, 1999, p. 136.






32) 壽崎雅夫, “變動相場制下のドルとアメリカの役割”, 田中素香ㆍ岩田健治 編, <<現代國際金融>>, 有斐閣, 2008, p. 41.






33) 久留間 健, 같은 책, pp. 101-02.






34) 久留間 健, 같은 책, p. 137.






35) MEW, Bd. 23, S. 154.






36) 사실은, 비상시에 국가가 중앙은행권의 태환을 정지하고 그것을 법화(法貨)로 삼는 것, 즉 강제통용력을 부여하는 것(MEW, Bd. 25, S. 533)은 그 자체 “국가의 신용에 의해서”(같은 책, S. 539) 그 불환은행권을 ‘법정지불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飯田 繁, <<兌換銀行券と不換銀行券>>, 千倉書房, 1963, pp. 184-85 참조.)






37) 같은 책, S. 152.






38) 久留間 健, 같은 책, pp. 114-15.






39) 久留間 健, 같은 책, p. 119.






40) 많은 사람들이 1971년 8월에 금-달러의 교환을 정지할 때까지는 미국은 금태환제를 취하고 있었던 것처럼 얘기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1933년 4월 이후 미국의 화폐-통화제도는 불환제였고, 다만 IMF 협정 이후 외국의 통화당국에 대해서만, 구태여 그렇게 말하자면, 금 1온스=$35.-의 비율(소위 금의 ‘공정가격’)로 그 금태환 요구에 응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전면적 불환제가 실시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달러의 금내용은 감가될 수밖에 없었고, 바로 이 달러의 ‘국내 가치=현실적 가치’와 대외 ‘공정가격’ 간의 불일치라는 모순이 1960년대에 ‘골드러시’를 야기하면서 금의 대량 유출, 결국에는 달러-금 교환의 정지에 이르게 한 것이었다.






41) 久留間 健, 같은 책, p. 111.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앞에서, 맑스를 인용하면서, 가치장표의 태환성은 법률적인 그것에 머물지 않고 ‘현실적인 태환성(교환성)’을 포함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마쓰모토 교수가 “일국 통화가 국제통화로서 기능하는 것은 ―직접 국제무역 등의 국제적 거래에 종사하고 있는 업자, 외국환은행, 해외통화당국을 포함하여― 비거주자가 ... 해당 통화 표시로 보유하고 있는 자금을 필요한 한 언제라도 ... 자유 금시장에서 금 등으로 전환할 자유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때, 이는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수는 이 태환성 혹은 교환성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예컨대, “국제적 거래는 어느 나라인가의 통화 표시, 통화결제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한에서는 대내적으로도 대외적으로도 금과의 교환성을 갖지 않은 일국 통화라도 국제통화로서 기능한다”(같은 책, p. 119, 강조는 인용자)라고 말함으로써 그 반대도, 즉 통화의 태환성 혹은 교환성을 법률적인 그것에 한정하는 발언도 동시에 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둔다.






42) 곽노완, “서브프라임 붕괴와 마르크스주의 공황론의 새로운 지평”, p. 26.






43) 소위 “실물경제”의 위기, 즉 과잉생산이 금융위기를 초래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파급”되고 있다는, 이 정확히 전도(顚倒)된 인식에 대한 비판은, 채만수, “대공황과 혹세무민지설들”, <<정세와 노동>>, 제39호(2008년 10월호), p. 38 등 참조.






44) 곽노완, “달러지배체제의 위기와 21세기 코뮌주의의 한국경제 비전”, p. 94.






45) 곽노완, 같은 글, p. 109.






46) 곽노완, 같은 글, p. 105.






47) 곽노완, “서브프라임 붕괴와 마르크스주의 공황론의 새로운 지평”, p. 29.






48) ��자본론�� 제1권, MEW, Bd. 23, S. 662.






49) 19세기 마지막 4ㆍ4분기라는 조건 속에서 엥겔스는 이렇게 썼다. “게다가 다시 중국이 개방된다면, 단지 과잉생산의 최후의 안전밸브가 닫힐 뿐 아니라, 중국인의 거대한 국외이주가 일어나게 되고, 그것만으로도 온통 미국과 호주, 인도 등의 생산조건에 혁명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아마 유럽에까지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 이곳의 상황이 아직 지속되고 있다면”(“아우구스트 베벨에게 보내는 편지”, 1886. 3. 18., MEW, Bd. 36, S. 465.)이라고. 누구나 아는 것처럼, 20세기 말의 중국의 ‘개방’은 “중국인의 거대한 국외이주” 대신에 ‘made in China의 거대한 양의 상품’으로 전 세계를 뒤덮고 있다.






50) 채만수, “위기와 억압, 투쟁과 격동의 시대”, <<정세와 노동>> 제31호, 2008. 1. pp.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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