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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긴급정세칼럼>
제목 <권두시> 삼림의 귀신— 후캉골의 백골을 제사 지내며
글쓴이 무딴 E-mail send mail 번호 180
날짜 2013-07-15 조회수 2012 추천수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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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딴(穆旦)







삼림 :

나를 아는 사람은 없지만 나는 세계의 한 곳에 서 있다.

나의 용량은 바다처럼 넓고 나는 미풍을 따라 춤춘다.

녹색의 커다란 잎사귀를 벌리고 있다, 나의 이빨이.

내가 웃는 것을 본 사람 없지만 나는 소리 없이 웃고

나는 저 혼자 쓰러져 오래도록 썩으며

자신의 속마음을 살찌운다.

산언덕에서 골짜기까지 골짜기에서 뭇 산까지

선녀는 죽은 지 오래고 사람도 오지 않고

저 깊숙한 길들은 울창한 나무 속에 파묻혀

나는 원시에서 와서 다시 비밀스런 원시를 펼쳐낸다.

저 지독한 태양, 저 굵은 비,

저 내 머리 위의 오락가락 하는 구름은

다가와 덮지 않지만 감추어진 수종의 나는

하나의 생명, 숨어서 움직이지 않는 생명.



사람 :

문명을 떠나는 것은 수많은 적에서 떠나는 것.

이끼와 덩굴 사이에서, 백년 된 낙엽 위에서

세상의 목소리가 죽어갔다. 이 푸르른 잡초

이 붉은 꽃, 꽃 속의 벌

이 이름 모를 벌레, 기어오르고 날고

팔딱거리는 원숭이, 새의 지저귐, 물 속의

물고기, 땅 위의 뱀과 코끼리, 그리고 더 큰 공포

자연의 이름으로 자연의 숭배를 받는다.

시작도 끝도 없이 알 수 없는 꿈속에서 질식하고 있다.

나의 어울리지 않는 여행이 모든 것을 놀라게 한다.





삼림 :

잘 왔노라 피와 살을 벗어버려라.





사람 :

무슨 소리가 부르는 것인가? 무엇이

갑자기 나를 피하는가? 잎사귀 뒤에서

눈동자를 드러내고 나를 쳐다보며 내가 움직이면

그것도 가볍게 뒤따른다. 밤은 질투의 침묵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나무와 나무가 짠 그물이

나의 호흡을 짓누르고 내가 누리는 하늘을 가로 막는다!

이곳은 기아의 공간 낮은 소리로 맴돌고

꾀 많은 영혼처럼 나는 차츰 깨닫는다.

그것은 온유하면서 사악한 요구를, 그것은

질병과 절망, 휴식을 뿌리며 나에게 복종을 요구한다.

쓰러진 나무 옆에 썩은 잎사귀 위에

녹색의 독(毒), 네가 내 피와 살과 마음을 마비시켰다!





삼림 :

그것은 나, 너에게 다가갈 수 없어

너를 어둠의 문으로 데려오리라.

모든 아름다움은 내 무형의 손이 쥐고

여기에서 네가 시들어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아름다움은 너의 눈 없는 눈이 될 것이다.

꿈은 사라지고 또 다른 꿈이 대신하여

말 없는 이빨은 더욱 듣기 좋은 소리를 지닌다.

그리고 나면 우리는 함께 텅 빈 세계를 누비리니

텅 빈 것은 네 핏속의 모든 갈등

오래된 생명이 너를 가지리라.

너의 꽃 너의 잎 너의 유충.





장송곡 :

음침한 나무 아래, 급류의 물가에서,

지난 유월과 칠월에, 인적 없는 산 속에서

너의 몸은 돌아가려고 몸부림치지만

이름 없는 들꽃이 이미 머리 위에 만개했다.



저 뼈를 깎는 기아, 저 산사태의 충격

저 독충이 물던 고통스런 밤을

너희들은 견딜 수 없어 사람들에게 말하려하지만

지금 흔쾌한 나무들은 모든 것을 잊었다



과거는 너희들의 죽음에 대한 항쟁.

너희들의 죽음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것.

저 뜨거운 분쟁은 아직도 멈추지 않았지만

너희는 삼림의 주기 속에서 더 이상 듣고 있지 않다.



고요히 잊혀진 산언덕에는

아직도 빽빽이 비가 내리고 아직도 미풍이 부는데

역사가 일찍이 이곳을 지나갔다는 것 아는 이 없이

영령들이 나무가 되어 자라나고 있다.





해설: 1945년 9월 창작. 후캉골은 미얀마 북쪽에 위치하여 북으로 히말라야 산맥과 닿아 있고 끝없는 산맥과 울창한 밀림, 늪, 음습한 기운이 가득한 곳이다. 버마어로 풀이하면 ‘마귀가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정확한 버마어 발음과 표기를 옮기지 못함은 양해를 구한다.) 무딴은 미얀마 전투에 참가했다가 이 후캉골의 살인적인 환경에서 무수한 동료들이 죽어 가는 중에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경험이 있다. 이 시는 당시 후캉골에서 죽어간 동료들을 위해 쓰여진 시이지만 단순한 추모의 의미를 넘어서 처절한 투쟁과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출처: 무딴: 목단시선, 이선옥, 문이재, 2003. pp. 79-85. (해설 내용에는 일부 첨삭과 수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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