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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범죄불안사회: 누구나 수상한 사람?
글쓴이 세리자와 카즈야, 하마이 코이치 E-mail send mail 번호 324
날짜 2013-06-18 조회수 2614 추천수 78
파일  1371532249_p.hwp

  





























번역: 임덕영(회원)




















[역자주: 이 글은, 하마이 코이치(浜井浩一), 세리자와 카즈야(芹沢一也)의 “범죄불안사회: 누구나 수상한 사람?”(犯罪不安社会──誰もが「不審者」?、光文社新書, 2006) 중 ‘들어가며’, 제3장과 제4장을 번역한 것이다.










작년 범죄와 관련된 서적, ≪빈곤이라는 감옥≫을 번역하다가 이미 출판된 것을 알고 중단한 바가 있다. 이 책은 이에 대한 일본판이라 할 수 있다. 저자를 간단히 소개한다. 하마이 코이치 씨는 현재 교토의 류코쿠 대학 교수로 있으며, 교정시설과 보호관찰소 근무 경력이 있다. 세리자와 카즈야 씨는 현재 비상근 강사로 일하고 있으며, 근대일본사회사, 문화사를 전공하였다. 저자들은 치안 악화라는 것은 이미지에 불과하고, 사실은 통계나 갖가지 자료를 상식적으로 본다면, 그것은 거짓말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경찰뿐 아니라 시민들의 자발적 치안의식의 향상 및 벌런티어 활동은 안전한 마을을 만들기보다는, 주민들이 서로 신경질적이 되고 언제나 긴장하게 되고 결국은 범죄에 대한 끊임없는 공포 재생산으로 귀결된다고 주장한다.]










들어가며










‘예전에는 없었던 것 같은, 흉악한 범죄가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안전과 물은 공짜라는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바야흐로 ‘치안악화’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의심할 바 없는 사실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치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는 언제쯤부터 나타난 것일까.





하나의 전환점이 된 것은 1997년 고베에서 발생한 연속아동살해사건이다. 이 사건은 소년범죄의 저연령화나 흉악화라는 논조가 널리 퍼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연이어서 14살의 소년에 의한 살인사건, 17살 소년에 의한 살인 사건 등이 문제가 되었으며, 범죄피해자 지원 운동 등과 맞물려 소년법 개정․스토커 규제법과 엄벌화를 목적으로 한 형사입법이 계속해서 국회를 통과했다.





또한 치안 악화라는 이미지가 사람들 사이에 정착하게 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와 폭력범죄 인지건수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동시에 검거률이 저하하고 있다는 것이 메스미디어에서 크게 다루어지게 된 이후부터이다.





그리고 01년에는 오사카 교육대학 부속 이케다 초등학교에서 아동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대량살인 사건이 발생하여 범죄불안은 결정적인 것이 되었다. 안전해야 할 초등학교까지 대상이 되었으며, 학교 안전대책이나 수상한 사람에 대한 대책이 커다란 사회적 테마가 되었다. 이 사건 이후, 학교에 대한 침입 사건 등이 연이어 보도되고, 다수의 학교가 교문을 폐쇄하고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경비원을 두게 되었던 것이다.





04년에는 나라에서 통학로를 통해 귀가하던 여자아동이 성범죄 전과자에게 유괴당해 살해당했다. 당시부터 아동 안전대책은 학교뿐만 아니라 통학로를 포함한 지역 사회 전체에 일거에 퍼져나갔다는 느낌이 있다. 그리고 불안에 떨면서 위기감을 공유하는 PTA나 정내회의 방범 벌런티어가 조직되고, 지역사회에서 수상한 자에 대한 경계가 강화되었다.





이러한 사회 정세 속에서 범죄나 치안 문제는 전후 처음으로 선거 공약으로도 다루어지게 되었으며, 행정도 본격적인 대책을 강구하게 되었다. 03년 마니페스토 선거로 화제가 된 중의원 선거에서도 주요 정당 대부분이 범죄․치안대책을 중요한 논점으로 다루었다.





실제로 이것은 일본 선거에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이 선거 전까지 경제․세금․고용․연금․국방 등이 주요 공약이었지만 범죄 대책이 정치문제로서 다루어진 적은 거의 없었다. 내가 근무하고 있던 법무성은 이권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족의원1) 등은 물론 없었으며, 대부분 정치가가 관심을 갖지 않는 대상이었다. 치안 문제가 정치적 주제로 되지 않은 것 자체가 해외에서는 일본의 치안이 양호하다는 증좌로 언급되기도 했었다. 전후 고도성장기 이후 지금처럼 일본에서 범죄나 치안이 커다란 사회문제로 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누구도 손에 넣을 수 있는 통계를 제대로 분석한다면, 일본 치안 상황이 급속하게 악화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이라 느낄 것이다. 1장에서 상술하겠지만, 통계적으로 ‘일본의 안전이 붕괴하였다’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안악화’의 담론은 마치 사실인 것처럼 정착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치안악화신화’라고 이름 붙이며 04년 가을 학술지에 발표하였다. 당시 치안악화 자체를 의심하는 것은 매우 희귀한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현재 행정의 다수 시책이 치안악화를 전제로 하여 작동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문제인 것은 이 치안악화신화가 근거없는 ‘신화’ 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행정 시책이 구사되며, 사람들의 자유를 제한하고 비용을 증대시키는 근거가 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예를 들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으며, 행정에서도 문제시 되고 있는 ‘니트 문제’. 이것도 또한 ‘이상하게 변질한 젊은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일본은 어떻게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라는 식으로, 소년 범죄의 급증, 흉악화를 전제로 한 치안악화 신화와 관련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까지 치안악화를 믿게 되었던 것일까.





본서에서는 치안악화라는 이미지가 왜 더욱 강고하게 되었는가를 분석하기 위해, 공저라는 형식을 취했다. 1장에서는 본인, 하마이 코이치가 주로 통계를 사용해 분석을 하고 이어서 2장, 3장에서는 세리자와 카즈야가 사상사의 관점에서 범죄를 둘러싼 담론을 언론이나 여론, 행정에 걸쳐 분석한다. 이 치안악화라는 신화의 생성에는 ‘수치’와 ‘사상’ 두 가지 측면과 관련되어 있다. 그 때문에 이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했다. 그리고 4장에서는 ‘치안의 최후의 보루’라 일컬어지는 형무소의 실태를 엿보면서, 치안악화신화와 감시강화나 엄벌화가 만들어낸 ‘현실’을 나타낸다. 1장은 “범죄사회학연구”(제29호, 현대인문사, 2004년)에 발표한 논문 ‘일본의 치안악화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4장은 졸저 “형무소의 풍경”(일본평론사, 2006년)의 1장을 기초로 수정 가필한 것이다.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내가 일본 치안악화에 의문을 느끼고 연구 테마로 해온 계기를 언급해 두고자 한다.





법무성 재직 중 인사이동으로 법무종합연구소에서 형무소로 전근할 당시의 일이었다.





의외로 형무소에서는 흔히 이야기되는 치안악화의 실태를 느낄 수 없다. 거꾸로 널리 유포되고 있는 치안악화 담론과 ‘치안의 최후의 보루’인 형무소 현상 사이에는 커다란 격차가 있음을 느꼈다.





여론은 치안악화는 흉악하고 교활한 범죄자에 의해 초래된 것 같이 선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무소는 통상적인 작업에 대응할 수 없는 고령자나 장애인으로 넘쳐나고 있다.





지역의 모든 수용자가 한 번은 모두 모이는 수도권 특대형 형무소의 형무관, 현장에 있는 그들조차 내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최근 좋지 않은 사건들이 많네요. 일본은 어떻게 되고 있는 것일까요.’





‘눈 앞에 수형자를 보면 정말 그렇게 생각되나?’





나는 그렇게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처음으로,





‘아차, 그러고 보니 노인이나 어디 아픈 사람이나 외국인만 있네요. 뭔가 이상하네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치안의 최전선에 있는 형무관조차 미디어 영향을 강하게 받고 눈앞에 일어나고 있는 사태와의 차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정도까지 치안악화라는 ‘신화’가 강고하게 각인되어 있다는 것에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는 일본 치안은 안녕하고 어떤 대책도 필요치 않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본서를 통해 독자 여러분들의 상식을 의심해보길 바란다. 그리고 사회에서 올바른 현실인식에 근거한 지극히 지당한 논의가 성립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2006년 11월 하마이 고이치















3장 지역범죄활동이 다다른 곳(세리자와 카즈야)










◯ 사후활동에서 예방활동으로










1994년 경찰청은 생활안전국을 설치하고 ‘지역안전활동’이라는 것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현재의 ‘안전, 안심 마을만들기’ 프로젝트의 원류가 된다. 이러한 활동에 착수한 당시 경찰청의 관심은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은 경찰청 보안부 부장(당시) 다나카 츠네오(田中恒夫)의 다음과 같은 문장에 잘 표현되어 있다.










‘지역안전활동의 추진’은, 범죄 방지뿐만 아니라, 사고나 재해로 인한 피해 방지도 포함한 넓은 의미로, 지역의 안전을 고려하고, 이것을 민간, 지자체, 경찰, 이렇게 3자의 연계로 확보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에도 특히 중요한 것은, 민간방범조직이나 최근 활기를 띠고 있는 벌런티어 활동에 종사하는 분들이 수행하는, 친밀한 지역사회에서의 범죄나 사고, 재해피해 등의 발생을 방지하기 위한 자주적 활동에 대해, 경찰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지원, 원조할 것인가라는 점에 있습니다. (‘연두 인사’, ≪지역과 보안≫ 1994년 1월)










지역안전활동의 추진은, 범죄 단속이나 방지에 그치는 것이 아닌, 사고나 재해를 포함한 넓은 의미에서의 지역 안전을 생각한 마을 만들기 사업에, 경찰이 본격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지역주민이나 벌런티어 단체, 지자체 등과 협력하면서, 지역에 밀착한 형태로 경찰활동을 수행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활동과 함께 90년대 중반, 경찰은 그 활동방침을 크게 변경하였다. 중축을 ‘사법경찰’에서 ‘행정경찰’로 이동시킨 것이다.





사법경찰이란, 사건이 발생한 후에 범죄수사를 하고 피의자를 체포하는, 사후적 활동이다. 포인트는 어디까지나 ‘사후’라는 점에 있다. 이에 대해 행정경찰이란 공공의 안전과 질서 유지를 위한 예방활동이다. 여기서의 포인트는 ‘예방’에 있다. 바람직한 질서를 적극적으로 지역에서 만들어내는 것으로, 사전에 범죄 발생을 억지한다는 것이 행정 경찰이다.





사후활동에서 예방활동으로.





전후 일본 경찰은 국민생활을 구석구석 감시, 감독한 전전(戰前) 행정 경찰에 대한 반성으로, 기본적 인권의 존중과 국민생활 원리에 근거한 사법경찰로 스스로를 한정시켰지만, 그것이 90년대 중반 다시 역전된 것이다.





그렇지만 고압적인 전전(戰前) 경찰로 복귀가 지향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민간방범조직이나 벌런티어 활동이 중시되고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경찰이 지향하는 것은 민간의 자주적인 활동을 지지하는 가운데 달성되는 지역의 안전이었다.















◯ 배경으로서의 신자유주의










이러한 동향의 배후에는 다음과 같은 인식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치안이 양호한 이유 중 하나는 지역사회에서의 시민과 경찰의 밀접한 관계에 있었지만 최근 도시화, 광역화, 국제화, 탈경계(borderless)화(지역, 시간, 성별, 연령별 등), 정보화 등 사회정세의 변화는 지역사회에서의 시민 연대감의 희박화, 익명성의 증대를 초래하고, 생활 안전의 기본인 지역사회를 취약화시키고 있다.





영국, 미국 등의 예를 볼 필요도 없이, 양호한 치안을 지탱해 온 요인의 변질은, 치안정세의 급격한 악화를 초래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시민이 입는 피해는 막대하며, 또한 사태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비용은 막대한 것이 될 것이다. (와타나베 타쿠미(渡辺巧), ‘생활의 안전을 생각하는 방식에 대하여’, ≪경찰학논집≫ 47권9호)










신자유주의 개혁이 초래한 규제완화나 개발유도정책에 의한 도시화, 또는 세계화가 초래한 국제화와 탈경계화가 주민들의 연대감을 희석시키고 익명성을 높여간다. 그 결과 지역사회가 취약해지는 가운데 치안이 악화될 것이다라는 견해가 90년대 중반 이미 우려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확실히 신자유주의 경제 시대에 어울리게, 치안도 또한 민간 활력에 기대한다고도 언급될 수 있을 것 같지만(방범의 자기책임화), 여기서 주의하고자 하는 것은 치안악화를 설명하는 논리이다.















◯ 커뮤니케이션 붕괴라는 논리










이른바 ‘지역 커뮤니티의 공동화’라 언급되는 사태로 인해, 일본사회는 범죄를 억지할 능력을 잃고 있고, 그 때문에 치안 악화가 초래되고 있다는 논리. 다양한 논자가 입을 모아 말하고 있으며, 이미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논리이다. 당연 그 해결책으로 이구동성으로 지역 커뮤니케이션 부활이 제창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1장에서 하마이 코이치씨가 논증하였듯이, 일본 사회의 치안은 결코 악화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즉 범죄발생 배후에 지역 커뮤니케이션 공동화를 읽어내는 것 따위는 전혀 넌센스로서 일소에 부쳐야 할 것이지만, 하지만 이 근거없는 논리가 현지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게 되고 만 것이다.





대체 왜일까.





그것은 객관적인 치안정세의 악화에 의한 것이 아닌, 체감치안, 즉 치안의 이미지가 1990년대 후반 이후 악화 일로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





97년 코베(神戸) 아동학살사건2)을 계기로 소년범죄 보도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괴물화된 소년들에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게 되었다. 그리고 타쿠마 마모루(宅間守)3)나 고바야시 카오루(小林薫)4)와 같은 괴물화된 범죄자의 출현에 사회는 결국에는 뿌리깊은 범죄 불안에 사로잡혀 버렸다.





그 당시 미디어는 소년이나 외국인, 성범죄자 등 살인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는데, 그러한 과정에서 ‘이미 안전신화는 붕괴되었다’라는 논조가 지배적이 되었으며, 치안 악화는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라 간주되게 되었다.





예를 들어 2004년 1월, ≪아사히 신문사≫가 전국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81%가 5년 전과 비교할 때 일본 치안이 악화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 자신이나 가족이 범죄에 휘말릴 것 같은 불안을 느낀다는 사람의 비율은 78%이다. 소년범죄를 겪을 수 있다는 불안을 느끼고 있는 사람은 81%, 외국인 범죄는 71%. 따라서 감시 카메라 설치나 소년범죄의 엄벌화, 외국인에 대한 출입국 심사나 단속을 엄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해지고 있었다 (≪아사히 신문≫ 1월 27일 자).





이렇게 체감 치안이 악화되는 가운데, 그 누구에게도 설득력 있게 원인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는 것이, 지역 커뮤니티의 공동화라는 판에 박힌 논리였던 것이다. ‘고도성장 시대에 무너져 온 지역사회를, 시간을 들여 되돌릴 시기가 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것이다(오카무라 이사오(岡村勲), ≪요미우리 신문≫ 03년 8월 5일).















◯ 보수적인 노스탤지어










그러한 판에 박힌 논리를 강화하는 것으로, 보수적인 사회층 사람들의 노스탤지어가 있다. 그들은 치안악화의 원인으로 질서나 모럴 저하를 호소하며, 옛날 같은 지역 커뮤니티의 부활을 제창하고 있다. 예전 이웃들의 유대가 강했던 시대에는 주민들의 눈이 있었기 때문에 범죄는 일어나기 어려웠지만, 그러나 작금에는 그러한 지역 연대가 없어졌기 때문에 범죄가 늘고 있는 것이라고, 어떤 근거도 없이 강하게 주장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지역 커뮤니티가 있었다고 간주되는 쇼와 30년대(1950년대 중반—60년대 중반: 역자)는 지금보다 훨씬 폭력 범죄가 다발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근거없는 판에 박힌 논리가 마치 논증된 사실인 것처럼 다양한 장면에서 독자적인 행보를 하고 있다. 그것은 지식인들의 언론에서의 발언부터 행정의 정책결정의 장면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면에 존재한다.





예를 들어 2003년 3월 ‘도쿄도 안전․안심 마을만들기에 대한 보고서’가 유식자 담화회에서 발표되었는데, ‘범죄 다발의 배경’으로 무엇보다 먼저 지적되고 있는 것은 (여기에서도 치안악화는 당연시되고 있다) ‘지역사회의 일체감․연대감의 희박화’, ‘준법의식․준법정신의 저하’,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동반된 자기중심주의의 풍조’ 등이었다 (물론 그 중 ‘소년비행의 심각화’나 ‘방일 불량 외국인의 암약’ 등도 예시되고 있다).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은 정책을 위해 제출된 근거라는 것들이 도저히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으로,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예전 사회에 대한 단순한 노스탤지어에 불과하다.





교통기관 발달로 인한 사회의 스피드화, 고층 맨션 증가 등으로 인한 주택구조의 변화, 사람들의 생활양식의 다양화 등으로 주민들이 근린과 접촉할 기회가 감소하고, 주위에 대해 무관심하게 되어 지역사회의 일체감이나 연대의식이 희박해지고 있다는 등등이 언급되고 있는 한편, 가정에서 아동의 예절교육이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공공장소에서의 행동가짐이 몰지각하다, 주위 사람들의 불편을 고려하지 않는다 등, 사회의 기본적 규칙을 지키지 않는 풍조가 강해지고, 준법정신이 희박해지고 있다는 등이 주장되고 있다.





수많은 논의의 결과는 일본인의 라이프스타일이나 사고방식이 변화하는 가운데, 자기중심주의의 풍조가 퍼져가고, 개성적으로 사는 것과 자기 내키는 대로 사는 것을 분별할 수 없는 사람들이 늘고, 지역사회에 대한 주민들의 귀속의식을 저하시키고 있다 등이 진지하게 설파되고 있는 형국이다.





어찌되었든 명백하게 도덕적인 분노나 한탄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보수적인 노스탤지어를 근거로 치안대책이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 현 상태이다.















◯ 전국으로 퍼져가는 ‘생활안전조례’










이러한 와중, 으스스하게 퍼져가고 있는 것이 ‘생활안전조례’이다.





객관적인 근거없는 치안악화 신화와, 노스탤지어에 지나지 않는 커뮤니티 붕괴 담론이 서로 뒤엉키는 ‘분위기’가 강화되는 가운데, 생활안전조례가 연쇄적으로 제정되고 있는 것이다.





2002년 이케다(池田) 초등학교 사건5)의 영향을 받아 오사카 부에서는 ‘안전한 마을만들기 조례’가 제정된다. 그리고 03년 도쿄도에서는 ‘안전․안심 마을만들기 조례’가 제정되는 등, 당시까지 시․정․촌(市町村)6) 규모로 퍼져나가던 생활안전조례가 일시에 전국 도도부현(都道府県)7)으로 확대된다. ‘지역안전조례’ ‘안전․안심 마을 만들기 조례’, ‘범죄방지추진조례’ 등 명칭은 다양하지만, ‘지자체나 주민 일체하여 안전을 지키자’, ‘우리들의 마을은 우리들이 지키자’ 등 선전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여기에 일관되고 있는 슬로건은 마치 판에 박힌 것 같이 똑같다.





치안부활 해결의 열쇠는 ‘지역 커뮤니티 연대의 부활’이라는 것이다.





범죄 정세가 우려스러운 사태에 직면해 있는 현재, 경찰만으로 치안을 완전히 지켜내는 것은 이미 곤란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방범 의식을 향상시키고 자위적인 방범 행동을 취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마을은 자신들이 지킨다’라는 의식을 양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통해 커뮤니티를 재생․강화하고 지역사회 범죄 억지 능력인 ‘커뮤니티의 눈’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것이다.





이리하여 경찰과 지자체, 주민이 협동하여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마을 만들기를 추진하려는 것이 생활안전 조례의 목적이다. 1994년 이후 경찰청이 추진해온 지역안전 활동의 흐름 가운데, 현재의 ‘안전․치안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가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에 주민들도 또한 부응하고 있다.





경찰과 벌런티어 주민과의 연계가 중요하다는 호소에 주민들은 갑자기 자위에 대해 눈을 뜬 듯이 전국 각지에서 속속 방범 패트롤에 참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현재 경찰의 역할을 대체하는 듯이, 지자체나 PTA8)등이 중심이 되어 마을을 순찰하고 있다.





지역의 어느 곳에서나 주민들이 ‘커뮤니티의 눈’을 번득이고 있는 것이다.















◯ 시대착오라 간주된 생활안전국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왜 최근 수년간 이 프로젝트는 이렇게 퍼져나갔던 것일까. 왜냐하면 생활안전국이 발족한 당시, 지역안전활동은 매우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그 실현이 의문시되었었기 때문이다.





생활안전국이 설치된 직후, 경찰 동향에 가장 민간한 일변연 (일본변호사연합회: 역자)이 ‘경찰활동이 확대되면서 경찰이 한층 시민생활에 관여하게 됨으로써, 시민생활의 구석구석까지 경찰이 일상을 부단하게 감시하게 될 위험성이 발생되고 있다’고 하며 그 위험성에 대해 1995년 상세한 검증에 나섰다.





그런데 이러한 과잉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법한 위기감을 안고 있었던 일변연은, ‘지금, 우리들에게 부여되고 있는 긴급한 과제는, 말하지 않고도 현관 앞에 회람판9)을 놓아둘 수 있는 오늘날의 이웃 관계를 회복하고 예전의 피가 통하는 온정 있는 이웃 관계로 이끌어가는 것이며, 주민주도의 지역방범 활동을 적극적으로 촉진하는 것, 지역의 범죄 방지 기능의 재구축을 꾀하고 평온하며 안전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것’이라는 경찰관계자 말을 다음 문장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단순히 시대착오적인 반향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역공동체의 재편……‘지역조직’의 재현 앞에 커다란 장애가 경찰을 기다리고 있다. 경제․사회활동의 복잡화나 다양화, 생활양식의 다양화는 시대의 커다란 흐름인 것이며, 전통적인 지역공동체의 붕괴는 그 필연적인 결과이다. 이 흐름에 브레이크를 걸고자 하는 경찰의 실험은 사막에 물을 뿌려 식물을 키우려고 하는 작업일지도 모른다. (“검증 일본의 경찰”)










지역 커뮤니티 공동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경제나 사회활동의 복잡화, 다양화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그렇다면 시계의 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것과 같은, 전통적 커뮤니티의 부활 등을 추구해서는 안 되는 것일 것이다.





이렇게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막상 뚜껑을 열어보았더니, 일본연의 이러한 낙관을 저버리고 현재 치안과 자위에 대한 높은 관심이 경찰의 목표대로 지역 커뮤니티의 재생을 확실히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대체 주민들은 그러한 시대착오에 왜 부응하고 있는 것일까.















◯ 핵심은 ‘아동의 안전’










왜 주민들이 자위에 대한 의사를 가지게 되었던 것일까.





그 대답은 확실하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심어진 불안이 단순한 범죄 불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만이라면 방범은 개인에게 맡겨두는 것으로 끝날 수 있었을 것이다. 방범을 개인에게 맡겨두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던 원인은, 그것은 아동에 대한 범죄 불안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범죄 불안의 핵심은 ‘아동의 안전’인 것이다.





예를 들어 2005년 10월 문부과학성은 ‘지역 교육력에 관한 실태조사’를 행하였는데, ‘지역 교육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는 설문에 대해 ‘아동의 안전을 지키는 활동’이라고 답한 보호자가 67%, ‘상이한 연령대의 사람들과의 교류촉진’ 36%, ‘지역의 역사나 문화를 배울 기회를 늘리는 것’ 34%로, 이어서 ‘학력을 늘릴 수 있는 활동’은 8%에 그쳤다. 지역에서 대응해야 하는 활동으로서 부모들은 학력이나 운동보다도, 안전에 지대한 관심을 나타내었다.





이러한 수치에서 여실히 나타나고 있는 ‘아동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라는 불안감이야말로, 주민들을 자발적인 방범 활동으로 몰아대고 있다. 여기에 존재하는 것은 언론이 뿌려댄 다음과 같은 위기의식이다.










초등학생을 노린 범죄는 최근 끊이지 않는다. ‘안전에 주의해라’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지 말아라’ 이러한 천편 일률적인 주의로는 더이상 아이들을 지킬 수 없는 사회가 되고 만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 지금까지 일본은 세계에서도 드물게 안전한 사회로서 외국의 경탄어린 시선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러한 시대는 지나버렸다. 유감스럽지만 인식을 바꿀 수 밖에 없다. 아동을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을 남김없이 구사해야 한다. (≪아사히 신문≫ ‘사설’ 2005년 12월 3일)










이것이야 말로, 우리들의 사회가 끌어들인 ‘깰 수 없는 악몽’임에 다름 아니다.















◯ 피해자화하는 사회










사람들이 감정을 이입하는 대상이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옮겨가며, 소년을 비롯한 범죄자가 사회의 위험한 적으로 되었을 때, 실제로는 우리 주변에서 범죄는 다발하지 않고 있지만 주민들은 ‘자신들도 결국 이러한 피해자가 될 지도 모른다’라는 불안을 안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회 전체가 이른바 피해자화가 되어가는 가운데, 피해자에 대한 동정과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교차할 때, 이에 결정체가 된 것이 ‘괴물적인 범죄자와 덮쳐진 아이들’이라는 구도였던 것이다.





이러한 구도가 확실한 형태로 된 것은 2005년 전후였다. 그것은 04년 고바야시 카로우의 나라(일본 지방 이름: 역자) 여아 유괴살해사건, 05년 11월 칼로스 야기에 의한 히로시마 여아살해사건, 그리고 그 얼마되지 않은 10일 후 도치키(栃木)현 이마이치(今市)시 여아살해사건 등, 아동이 희생된 사건이 연달아 발생한 시기이다.





05년 11월, 박스 상자 속에 축 늘어진 여아가 지나가던 사람에게 발견되어 얼마 있다가 사망한 사건이, 체포된 야기의 진술과 함께 소란스럽게 보도되던 중, 도치키 현에서 행방불명이었던 초등학교 1학년 여아가, 칼로 왼쪽 가슴을 찔린 채 유체가 되어 이바라키(茨城)현 산 속에서 발견되었을 당시, 아동이 습격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가 정점에 달했다.










또 다시 하교 도중에 7살 1학년 여아가 살해되었다는 가슴 아픈 사건이 일어났다. 히로시마에서 동일한 초등학교 1학년 여아가 살해된 사건이 있은 직후인데도, 각 방면에 커다란 충격을 전하고 있다. 히로시마 시의 사건이나 이번 사건과 같이, 하교 도중의 아동을 노린 흉악사건은 끊이지 않는다. ……등하교 통학로가 흉악범죄의 무대가 되고 있다. …… 지역도 전국에서 발생, 장소도 도회지, 외곽지, 구별하지 않는다. 작년 나라시 사건 이후, 전국 각지에서 학교나 보호자, 지역 벌런티어의 통학로 안전대책이 강화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히로시마, 도치키현 등에서 비극이 이어졌다. 특히 저학년 아동이 혼자하는 하교는 원칙적으로 금지라는 강한 조지를 취하지 않으면 아이들의 목숨은 지킬 수 없다. (≪산케이신문≫ ‘주장’ 2005년 12월 4일)










전국 각지에서 무차별적으로 아동들이 습격당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미지가 이리하여 제멋대로 만들어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 고바야시 카로우의 경종, 미야자키 츠토무(宮崎勤)10)의 사형판결










게다가 2장에서 검토한 바와 같이, 그러한 공포를 사회에 처음으로 초래한 고바야시 카로우가, 사람들의 당황스러움을 마치 비웃는 것과 같은 메시지를 옥중에서 보냈다. ‘내가 체포되고 일정기간이 지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안심하여 순찰을 그만두고 있다. 경찰도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한 움직이려 하지 않는 조직체제라는 데에 문제가 있으며, 그 결과 히로시마와 도치키 현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나같은 성범죄자는 재범, 초범이든 상관없이,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창” 2006년 2월).





또한 아동의 안전을 둘러싸고 사회가 소란을 벌이고 있을 때, 이미 세상에서는 망각되어 뒤에 묻혀져 있던 미야자키 츠토무가 복귀했다. 마치 타이밍을 재고 있었던 것처럼 이때 최고재판소에서 미야자키 츠토무의 사형판결이 내려졌던 것이다. 미야자키 츠토무의 여아 연속살해사건, 그것은 4명의 여아들이 차례차례 유괴되어 그리고 성적으로 학대되고 살해된 사건이었다. 그러나 당시 관심은 전혀 그러한 것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문화나 시대론을 수다스럽게 말하는 데 쓰이는 재료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첫 공판으로부터 16년 경과하여 사형이 확정된 06년 1월, 사건은 예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보안과 관련된 관심의 근거로 의미부여되었다.










헤이세이의 막이 열릴 때(1989년: 역자) 벌어진 미야자키 사건은, 되돌아보면, 지금 사회에 대한 경종이었던 것같다고 생각된다. 그로부터 17년. 어린 여아자이가 살해당한 사건이 나라, 히로시마, 도치키 등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미야자키 피고의 범행 동기에 대해 최고재판소는 ‘자기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과, 사체를 촬영한 비디오 테이프 수집욕이다’라고 지적했다. 병적인 소아성애자는 어떤 사회에도 잠재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범죄와 연계되는 것을 막을 것인가이다. (≪아사히 신문≫ ‘사설’ 06년 1월 20일)










그리하여 미야자키 츠토무는 ‘병적 소아성애자’라는 상으로 정리되었으며, 그것은 또 한 번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전과 같은 불가해적인 살인사건의 시작인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고 아동이 살해당하는 사건의 선구가 되는 것이다.





‘단지 자신의 성욕을 채우는 이유만으로, 어린 아이의 생명을 노린다. 그러한 인간으로부터 아동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이러한 위기의식이 강렬한 리얼리티를 띠면서 사회에 퍼져나간다. 그러한 가운데, 예전과 같은 이야기는 더 이상 설득력을 잃었다. ‘그가 만들어낸 “불가사의한 나라”의 주민이 된 것처럼, 재판에 끌려들어갔다’고 말하는 사사키 류조(佐々木隆三)를 필두로 하여 미야자키 사건과 동반해 온 지식인들은 ‘미야자키 츠토루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입을 모으지만, 그러한 그들의 코멘트는 공허하게 울릴 뿐이다(≪아사히 신문≫ 06년 1월 18일).





이미 시대는 바뀐 것이다. 지금 사회는 ‘깨어날 수 없는 꿈’이라는 목가적인 미궁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범죄에 리얼한 공포를 껴안기 시작한 사회는 이번에는 바꾸어 ‘깨어날 수 없는 악몽’에 끌려들어갔다. 거기에서는 ‘아동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부르짖음이 사방 팔방으로 반향을 일으키면서 메아리처럼 닿는 곳곳마다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 ‘아동을 지켜라’ 대합창










그리고 ‘아동을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을 아낌없이 구사해야 한다’라는 담론이 경찰뿐만 아니라 정부에서 기업, 그리고 주민에 이르는 모든 주체에게 실천되기 시작하였다.





2005년 섣달 그믐달이 다가오던 때, 긴박함을 알리는 기사가 있다. ‘아동을 지키는 안전대책, 국회논의 각 당이 검토’










연이은 아동 살해사건에, 각 정당이 방범․안전대책에 대응하고 있다. 자민당은 기존 노선 베이스를 활용하기 위해 지자체에 대한 재정 조치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 민주당은 내년 통상국회에 ‘학교안전대책기본법안’을 제출하는 방침으로, 공산, 사민 양당도 제언을 검토 중이다. 아동들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국회도 논의의 무대가 되고 있다. (≪아사히신문≫ 12월 30일)










그리고 2006년, 문부과학성은 도도부현․지정도시교육위원회 교육장 회의를 열고, 통학로의 검토, 안전한 등하교 방법, 수상한 사람에 대한 정보의 공유, 경찰과의 연계 등 5 항목에 대해 상세한 지시를 내렸다.





경찰청도 각 도도부현 경찰에 대해, 경찰서 등에 걸려오는 수상한 자의 정보를 인터넷이나 전자 메일, 팩스 등을 활용하여 신속하게 지자체, 학교, 보호자와 공유하는 네트워크 창설을 서두르도록 지시. 민간 기업이나 각종 단체 등과 지역에서 네트워크 창설을 추진하고, 경비회사․택배회사․신문판매점․우체국․택배업자․소방단․편의점 등이 일상적으로 경찰과 정보교환을 행하며 업무 중에 수상한 자가 발견된 때에는 경찰에 통보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가운데, 긴축된 06년 예산에도 불구하고, 아동 안전에 관한 각 부처의 사업만이 대폭 증가하게 되었다.





문부과학성에 집단하교를 위한 대기장소정비, 스쿨 가드의 확충, 수상한 자 정보 공유 시스템, 인터넷에서의 안전 대응 소개, 방범 교육 개최 조성 등으로 26억 엔, 경찰청에 지역안전안심 스테이션, 아동 긴급 통보 장치, 슈퍼 방법 등으로 4억 7천만엔, 법무성에 보호관찰대상자 조사강화, 성범죄자 처벌 프로그램으로 3억 5천만 엔, 총무성에서도 신규사업이 받아들여졌으며, 인터넷을 안전하게 이용하기 위한 아동용 교재개발에 4천만 엔의 예산이 준비되었다.





학교에는 경비회사의 경비원이 배치되었으며, 등교시 교문 주변의 경비, 일과 중 학교 경지내나 주변 안전점검, 하교시 교문주변의 경비와 더불어, 정기적 통학로 순찰을 시작하였다. 또 학원이나 교육 장소의 왕복 시 배웅하는 비즈니스까지 경비회사가 속속 참여했다.





아동을 지켜보기 위한 기술도 급속히 진전되었다. 기존 시장이 포화되기 시작한 휴대전화 회사는 초등학생용 상품으로 진로를 개척한다. 전 지구계측 시스템 (GPS) 기능이 붙은 휴대전화를 개발, 아동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언제나처럼 다름없이 등하교하고 있는지를 보호자가 파악할 수 있으며, 임의로 전원을 끊으면 현지 위치정보가 부모에게 송신되는 휴대전화가 각 메이커에서 일제히 발매되었다. 또 문방구 메이커, 란도셀11) 판매회사, 학생복 판매회사 등도 경쟁적으로 이 ‘안전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





한 사립 초등학교에서는 IT를 사용해서 아동의 안전정보를 보호자에게 보내는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IC 태그를 지닌 아동이 자택에서 가장 가까운 역과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역, 그리고 교정 입구를 통과할 때, 이렇게 3번 보호자 휴대전화에 확인 메일이 자동 발신되는 시스템이다. 오사카 부 등, 이와 같은 시스템을 도입하는 지자체도 나타났다. 또 정보 시스템 회사는 등하교 시 아동이 통학로에서 벗어나면 학교나 보호자에게 긴급 통보하는 시스템을 개발, 정력적으로 판로를 확장하려 하고 있다. 아동의 안전은 일대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 방범 벌런티어의 급증










물론 주민들도 발벗고 나섰다. ‘지역 전체에서 아동을 지키자’라며 지역 사람들이 등하교 통학로 등에 서서 수상한 사람이 없는가 감시의 눈을 번뜩이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에서 속속 방범 벌런티어 단체가 결성되었으며, 주민들은 더욱 더 방범 패트롤에 참가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 시기에 이루어진 몇 가지 조사에서 확인해보자.





2006년 2월 ≪아사히 신문사≫가 전국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아동이 범죄에 휘말릴 위험이 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93%까지 상승했다. 또 ‘집단 등하교에 보호자나 교사가 따라 붙거나, 통학로에서 인근 주민이 지켜보는 대책이 각지에서 취해지고 있다. 이러한 대책이 아동 안전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89%, 초등학생 이상의 아동이 있는 사람의 경우 93%나 되었다(≪아사히 신문≫ 06년 2월 22일)





이러한 수치가 구체적인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최근 방범 벌런티어 단체의 증가가 뒷받침해주고 있다. 경찰청 조사에 따르면 03년말 전국 3056개 단체였던 방범 벌런티어 단체가 05년도 말에는 그 수가 2만단체에 달하였으며, 인원도 약 119만 명이 참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04년도 말과 비교하더라도, 단체수는 약 2.4배, 참가자는 2.3배이다. 그 약 7할이 통학로 아동보호나 유도 활동이었다.





또 약 절반은 정내회 등이 중심이 된 종래의 벌런티어 활동인데, 이 시기 새롭게 늘어난 경향이 초등학교 PTA 등 보호자가 중심이 된 것이었다. 04년 대비 약 4.2배인 약 2800단체. PTA가 친목단체에서 위기관리단체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 삶의 보람으로서의 방범활동










이러한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배후에는, 아동의 안전을 둘러싼 안전과 함께 또 하나의 요인이 존재한다.





그것은 주민들에게서 나오고 있는 ‘쾌락’이다.





현재 지역에서도, 주민들 사이의 연대가 희박해지고 있으며 커뮤니케이션 활력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탄하는 사람이 많다. 이러한 사람들의 감정에, 방범 활동은 호소할 수 있는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에 의한 방범 활동은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일체감을 준다. 그러한 일체감은 예전 좋았던 날을 회고하는 노스탤지어를 달래준다. 예전 이웃 교류나 긴밀한 커뮤니케이션 같은 것이 부활한 것 같은 감각을 되살려준다.





이러한 가운데, 방범 활동은 사람들에게 ‘보람’이나 ‘삶의 보람’과 같은 것을 전해준다. 이러한 것은 방범 활동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어른이 아이들에게 말을 건네 마을이 건강하게 되었다’ ‘방범을 중심으로 지역이 좋아졌다’라고 한 목소리로 즐거운 말들을 나누는 것에서 명백하다.





현재 방범 활동은 다양한 형태로 주민들을 묶어나가고 있다.





예를 들어 교육위원회 등에서 의뢰를 받아 실버 인재 센터로부터 통학로 순찰에 파견되는 노인들. 노인 파워의 활동이라는 슬로건이 노인들에게 사회적인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는, 삶의 보람을 부여함과 동시에 ‘동년 세대의 지인도 늘고 손자 뻘 되는 아이들의 얼굴도 알게 되니 즐겁다’라는 등, 동년배 노인이나 아이들과의 교류와 같은 즐거움을 만들어낸다. 방범 패트롤에 참가하는 노인들의 입에서 ‘지인이 없어서 쓸쓸했는데, 아이들과 친해져서 인사를 해주니 즐겁다’라는 환희의 목소리가 흘러 넘친다(≪마이치니 신문≫ 시즈오카(静岡)12)면, 2006년 3월 8일)















◯ 마치 서클 활동처럼










또는 아동이 피해를 당하는 사건이 널리 보도되는 가운데, 부모들이 운영하는 아동 안전정보 홈페이지가 개설되고 있다. 인터넷이나 신문에서 아동이 휘말린 사건․사고정보를 모아서 그것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있는 것 이외에, 말을 거는 수법 분석이나 하교시 주의점 등도 정리되어 있다. 그런 홈페이지상에서 정보나 고민, 문제의식이 공유되는 가운데 부모들의 연계가 넓어져 간다.





방범 활동은 마치 서클 활동인 것과 같은 양상마저 띠고 있다.





애견가가 개 산보시 방범 패트롤을 하는 ‘멍멍 패트롤’ 멤버 모집에서는 패트롤은 지역 교류를 겸하고 있으며, 여름에는 피서모임을 실시한다는 내용 등이 강조되어 있다. 또는 여자학생이 통학시 방범 패트롤을 행하는 ‘링링 패트롤’. 그리고 ‘지키자’라고 써져 있는 잠바를 입은 대학생들의 ‘아동을 지키는 대(隊)’ 등 남여노소, 세대를 넘어 ‘아동의 안전’을 위해 지역이 결속해 나간다.





지역안전활동과 커뮤니티의 부활이라는 슬로건은 경찰뿐만 아니라 주민들에게도 즐거우며, 보람 있는 것이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행정 경찰을 지향하려 하는 경찰의 동향을 정당화시켰다. 예전의 범죄억지능력을 되돌리기 위해서라며, 경찰은 주민과의 연계를 강화하면서 지역 재편을 추진해 간다. 그리고 다른 한편 그것은, 주민들의 노스탤지어에도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방범 활동에 동원되는 주민들은 커뮤니티가 재생산되는 것처럼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 환경범죄학의 보급










그러면 방범이라는 목적을 수행하면서 커뮤니티의 재생이라는 과제에도 부응하는 ‘안전과 안심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는 사회의 복음이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 모든 것은 한꺼번에 해결되고 있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방범을 축으로 편성되어 가는 커뮤니티가 도대체 어떠한 생활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는가를 알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문제를 다루기 전에, 현재의 ‘안전․안심 마을만들기’에 이론적인 근거를 부여하고 있는 사상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프로젝트가 어떠한 발상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환경범죄학’이라는 이름의 일본에서는 새로운 범죄이론이다.





환경범죄학은 종래의 범죄학과는 발상을 전환시킨 획기적인 이론이라 자칭하고 있다. 현재 정력적으로 환경범죄학을 보급시키고 있는 범죄사회학자인 고미야 노부오(小宮信夫)의 설명에 귀를 기울여 보자.










지금까지의 범죄학은 ‘범죄원인론’이라는 사고방식에 입각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어떤 인간이 왜 범죄에 다다른 것일까, 그 원인을 규명하려고 하는 입장에 선다. 그렇게 된다면 범죄자는 보통의 인간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간주되고, 범죄에 이르게 된 원인이 범죄자 인격이나 환경(가정․학교․회사 등)에서 구해진다. 그리고 원인이 되는 인격의 이상성(異常性)이나 처해 있는 환경의 열악성을 제외함으로서 범죄를 방지하려 하는 것이 범죄원인론의 발상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방범을 위해 전혀 효과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 고미야 노부오다.










본인의 성장과정이나 성격, 가정환경 등을 조사해서 본인을 교정하고 갱생을 위해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끄집어 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러한 정보는 개별적인 것으로 일반적인 예방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법입니다. 범죄의 원인이 특정될 수 있고, 그러한 것을 없앨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원인을 특정하는 것도 할 수 없으며, 설령 특정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며 예방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아동은 ‘이 장소’에서 희생되었다”)










고미야가 이렇게 주장하는 환경범죄학은 범죄자에 대한 공감을 잃어버린 사회에 적절한 이론이다. 범행의 배후에 개인적 동기나 환경을 읽어내는 것은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그 어떠한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인간’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신 관심을 향하고 있는 것은 ‘장소’이다.















◯ ‘범죄기회론’이라는 사상










그러한 접근방법은 ‘범죄기회론’이라 불린다.





범죄기회론은 범죄의 기회를 주지 않는 것으로,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려고 한다. 특징적인 것은 이 이론은 범죄자를 특별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범죄자와 그렇지 않은 인간 사이에는 별다른 차이는 없다. 어떠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기회가 있다면 범죄를 저지르며 또 기회가 없다면 실행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인간도 범죄를 저지르기 힘든 ‘환경’을 정비하려는 것이 범죄기회론의 발상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발상을 가지는 환경범죄학이 ‘안전․안심 마을만들기’의 기초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드면에서의 시책인 ‘범죄방지를 배려한 환경설계활동의 추진’과, 소프트면의 시책인 ‘지역안전활동의 추진’이라는 측면에서 추진되고 있다.





하드면에서는 경찰의 가두긴급정보 시스템(슈퍼 방범 등. 사건․사고 등이 발생할 때 긴급통보 버튼을 누르면 인터폰에서 경찰관과 서로 통화가 가능하다.)이나 가두방범 카메라 시스템 등의 설치, 또는 경찰이 관여하는 점포, 주택, 주차장에 대한 감시카메라 설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소프트면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 지역안전활동, 즉 주민에 의한 패트롤 활동이다. 그 어느 것도 범죄의 기회를 뺏고자 하는 시책이다.















◯ ‘깨진 유리창 이론’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소프트면의 지역안전활동인데, 이 활동을 이론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것이 1982년 미국 범죄학자 J. Q. 윌슨과 G. 케링그가 제창한 ‘깨진 유리창 이론’이다. 뉴욕 줄리앙 전 시장이 이 이론에 근거하여 경찰관 증원, 철저한 도보 패트롤, 경미한 범죄에 대한 단속을 행하여 뉴욕의 치안을 회복시켰다라는 과장 선전으로 유명한 이론이다.





그 명칭은 그 말 그대로, ‘건물의 유리창이 깨져 있는 것을 방치하면 다른 유리창도 전부 깨지게 될 것이다’라는 사고방식에서 유래한다.





즉 이런 것이다. 깨진 유리창이 방치되는 것과 같은 ‘장소’에서는 주민의 주인 의식이 느껴지지 않으므로 범죄자는 어떠한 경계도 하지 않고 침입할 것이다. 또한 당사자 의식도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범죄를 실행해도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발견되어도 통보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범죄자는 안심하고 범죄에 착수한다는 것이다.





즉, 깨진 유리창이라는 것은 거기에 생활하고 있는 주민의 주인의식과 당사자 의식의 낮음, 더 나아가 질서의식의 낮음을 말해주는 상징인 것이다.





이렇게 설파된 깨진 유리창 이론에 따르면 치안이 악화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잠깐 보았을 때 중요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질서위반이 있다고 하자. 그러나 그러한 위반 행위가 방치되면 그것은 ‘그 어떤 주민도 질서의 유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는 표시가 된다. 그렇게 되면 주민의 치안의식이 저하되고 질서유지에 협력하지 않게 되며, 그것이 더욱 더 환경을 악화시키고 만다.





그렇게 되어 그러한 지역에는 흉악범죄가 다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방범 협회의 홈페이지에서 인용해 본다.










건물이나 빌딩 유리창이 깨진 것을 그대로 방치해 두면, 외부에서 그 건물은 관리되고 있지 않다고 인식되고 깨지는 유리창이 늘어난다. 건물이나 빌딩 전체가 황폐해지고 그것은 또한 지역 전체가 황폐해지고 있다는 구실이 된다. … 즉 ‘깨진 유리창 론’은 단지 한 장의 깨인 유리창의 방치로 발생되는 황폐의 시작이며, 거리는 황량해지고 무질서 상태가 되어 범죄는 다발하고, 지역공동체를 만들고 있던 주민은 마을에서 도망쳐 나오며, 마을이 붕괴한다는 것이다. (‘전국방범협회연합회 홈페이지’)










그렇다면 치안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마을을 붕괴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좋은 것일까.





깨진 유리창 이론에 따르면 치안악화를 일으키는 최초의 싹을 잘라내야 한다. 즉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깨진 유리창 이론은 커뮤니티가 자발적으로 질서 위반행위에 대응하는 것을 재촉한다. 주인의식과 당사자 의식이 높아진다면, 질서위반행위가 방치되는 일은 없을 것임에 분명하다. 거꾸로 말하자면 질서위반행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주인의식과 당사자 의식을 높여가고, 더 나아가 그것이 미래의 흉악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질서위반행위란 무엇일까.





그것은 주민에게 불쾌함이나 불안감을 심어주고 생활의 질을 저하시킬 것 같은 행동거지라 여겨진다. 낙서하는 것, 공원에서 술을 마시는 것,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것, 자전거를 방치하는 것, 빈 집에 떼지어 모여 있는 것, 공공 시설을 부수는 것, 차내에서 크게 떠드는 것, 가두에서 난폭한 행동거지를 하는 것, 강제로 물건을 파는 것, 밤 중에 큰 소리를 내는 것, 잡초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 등등.





이러한 작은 ‘악의 싹’을 눈감아 주면, 그것은 결국에는 범죄의 다발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아직 최소한의 피해 단계에서 그것을 적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범죄대책임에 분명하다는 것이 된다.





왜 주민들의 범죄 패트롤이 중시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이해될 것이다.





그것은 ‘커뮤니티의 눈’이 지역 각지에서 주시하고, 질서를 위반하는 행동거지를 감시해 가는 것이 범죄의 기회를 주지 않는 범죄방지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며, 동시에 그러한 주민들의 자발적인 범죄방지활동이, 주민의식과 당사자 의식을 길러내는 것이기 때문인 것이다.





이른바 콜롬부스의 달걀을 땅에 세우는 것 같은 범죄이론이지만, 그러나 이 이론은 간단하게 일본 사회에 받아들여질 리가 없다. 그 때문에 아동의 안전을 둘러싼 불안이 보호자를 중심으로 한 주민들 사이에 만연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주민들의 위기의식을 방범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방법까지 고안되었다.















◯ 전국 초등학교에 퍼지고 있는 실천










그 방법이 현재 전국 초등학교에서 실천되고 있는 ‘지역안전 맵’이다.





고미야 노부오는 지역 맵을 고안한 경위를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저는 10년 이전부터 ‘범죄기회론’을 제안해오고 있습니다만, 좀처럼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까지는 다다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범죄기회론’을 누구라도 실천할 수 있는 것, 특히 아동도 실천할 수 있는 것으로 고안해 낸 것이 지역안전 맵인 것입니다. (“아동은 ‘이 장소’에서 희생되었다)










여기에서도 아동이 돌파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지역안전활동에는 당연하지만 주민 벌런티어 참가가 불가결하다. 주민을 참여시키기 위해서는 주민 자신이 범죄를 방지하려 하는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를 위해 자신들도 안전의 중요한 역할자라 자각시키기 위한 주민에 대한 일종의 ‘감정교육’이 필요하다. 그러한 감정 교육의 ‘교재’로, 특히 아동을 대상으로 편성되어 나온 것이 지역안전 맵임에 다름 아니다.





학교에서의 맵 작성은 다음과 같은 순서를 밟으며 이루어진다.





먼저 사전 학습이 이루어진다. 여기에서는 아동들이 ‘위험한 장소’(잘 보이지 않는 장소,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장소, 어두운 장소 등, 범죄가 일어나기 쉬운 장소)란 무엇인가에 대해 환경범죄학의 기초적인 사고방식을 배우게 된다.





그 다음 아동들은 반을 편성하여 필드워크를 위해 분담지구로 향한다. 하나의 반은 6명 정도로 반장, 부반장, 인터뷰계, 사진계, 지도계 등 역할 분담이 이루어진다. 아동들은 자신의 발과 눈으로 위험한 장소를 확인하고, 또 성인들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범죄가 일어나기 쉬운 장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조사를 끝내면 교실로 돌아와 마을을 걸으며 발견한 것이나 느낀 것을 반별로 지역안전 맵으로서 정리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탐험심”을 자극하여 아동들뿐만 아니라 참가자 모두가 맵을 만드는 데 열중하게 되며, 자연스럽게 배운다는 매력이 있다’라 이야기되는 지역안전 맵. 그 효과는 단지 아동의 방범 의식을 높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한다. 동시에 그것은 커뮤니티의 일원으로서의 자각을 일깨움과 동시에, 커뮤니티 그 자체를 성장시키게 된다고 여겨진다.










맵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필드워크(마을 걷기)를 통해 아동들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 인터뷰를 하여 자신들을 지켜주는 성인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 애착을 느끼게 된다. 한편 맵 만들기를 하는 아동들을 발견하거나 인터뷰에 협력해주는 것으로, 성인들도 지역 아동들을 지키자는 의식이 싹 트고 아동들과 일체가 되어 ‘범죄에 강한 마을’ 만들기에 힘을 쏟는다. (“아이는 ‘이 장소’에서 희생되었다”)










지역안전 맵 작성도 또한 참가자 방범 의식을 높힘과 동시에, 커뮤니티 재생을 초래해 주는 활동인 것이다.





05년 7월, 도쿄 도에서는 아동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도내의 학교 교원, 경찰 OB13), 지역방범 벌런티어를 모아 ‘도쿄도 안전․안심 마을 만들기 아카데미 지역안전 맵 전과(専科)’가 개최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67명의 지도원이 탄생하였으며, 도내 초등학교를 비롯한 각지 강연회에 파견되고, 지역안전 맵 작성 지도를 하기 시작했다(06년도에는 150명 수강생이 예정). 또 문부과학성도 05년 12월에 ‘등하교시 유아 아동 학생의 안전확보에 대해’라는 통지를 전국 교육관계자에 내고, 고미야 노부오의 지역안전 맵 만들기를 요청했다.





이리하여, 05년부터 06년에 걸쳐, 즉 히로시마나 도치기의 여아 살해사건에서 사회가 소동을 벌이며 아동의 안전에 대한 위기감이 정점에 달하는 가운데 지역안전 맵은 마른 들판의 불처럼 전국 초등학교에 퍼져 나갔던 것이다. 06년 6월에 이루어진 문부과학성 조사에서는 맵을 작성하고 있는 초등학교가 전국 90%를 돌파했다.















◯ 쾌락과 불안이 공존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절대 검증하려 하지 않는 것이 있다.





과연 지역 안전 맵 작성은 정말 방범상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라는 것이다.





원래 환경범죄학이 가르쳐주는 위험한 장소에서는 정말 범죄가 다발하고 있는가조차도 실제로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제창자인 고미야 노부오에 따르면 지역안전 맵 성과는 보다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다. 그는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가장 큰 성과는 감동입니다. 관여한 사람들 전원이 감동할 수 있다. 가장 즐거운 것이 아동들과 함께 맵 만들기를 위해 마을을 걸어가 보고, 아동들이 좋았다, 고마워요, 라고 말해 주었을 때…… 모두 하나가 되어 만들었다 라는 달성감이랄까. 문화제나 스포츠와 똑같은 감정이라 생각한다. (“AREA" 2006년 6월 19일)










현재 지역에서 추진되고 있는 주민들의 방범 활동은 그 어느 것도 실제가 없는 범죄불안에 떠밀린 것이다. 게다가 그 배후에는 ‘보람’이나 ‘살아가는 보람’과 같은 직접적인 보람, 커뮤니티가 재생하고 거기에 참가하고 있다는 즐거움이 함께 하고 있다.





즉 불안과 쾌락이 연결되어 방범 활동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지역안전 맵을 지지하고 있는 것도 결국에는 이러한 것과 동반되는 역학이다. “AREA"의 기사를 정리한 저널리스트 사토이 세이지(藤井誠二)는 지역안전 맵이 인기가 있는 현상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타자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린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고미야 이론은 아동의 ‘생명’을 빼놓고는 성립하지 않는다. 순수한 감동뿐만이 아님에 확실하다. 감동과 위기. 고미야가 인기가 있는 것은 그러한 것이 양립할 수밖에 없는 풍자적인 사회를 우리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AREA" 2006년 6월 19일)










지역 커뮤니티가 공동화하였다는 불안과 함께, 아동의 ‘생명’에 대한 위기감이 매우 비대해져 왔다. 그리고 ‘아동의 안전’을 기치로 한 방범 활동이 추진되지만, 아동이 습격당할 것이라는 위기감과, 커뮤니티가 재생되어 가는 즐거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위기와 감동, 결국에는 불안과 쾌락이 왜곡된 관계로 구동되어 지역사회는 세큐리티로 뒤덥혀져 가는 것이다.





쾌락과 불안이 양립해 버리는 풍자적인 세큐리티 사회.





그렇다면 그러한 사회의 귀결은 도대체 어떠한 것이 되는 것일까.





주민들이 방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기 시작하고, 세큐리티가 지역사회를 뒤덮으려 하는 가운데, 그렇다면 사람들은 안전과 안심을 손에 얻었는가. 또는 손에 얻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이 질문에 대답하면서 이 장을 마치도록 한다.















◯ 타인을 보면 수상한 사람이라 생각하라










지역사회가 세큐리티에 뒤덮히려 하는 가운데, 2006년 3월 ≪아사히 신문≫의 투고란에 사가(佐賀)현에 사는 67세 남성이 다음과 같은 문장을 보냈다.










근처 공원에서 산보를 하고 있으면, 벚꽃 나무 옆의 좁은 길에서 흰색 봉지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초등학교 통학로이고, 아이가 떨어뜨린 물건이라 생각해서, 주웠더니 확실히 초등학교 학교이름이 눈에 띄었다.





그 곳에 수명의 아이들이 운 좋게 지나갔다. ‘떨어진 물건이야’라고 말을 붙이자마자, 가방을 덜컹대며 도망쳐갔다.





연이은 유치원아, 아동 살해사건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의 권유에는 대응하지 말도록 학교에서 철저하게 교육받은 탓일 것이다. 허무해졌다.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되는 슬픈 현실. 세상의 허무함을 생각했다. (중략) 사람을 보면 의심하고, 붙어서 다니지 말라. 인명 옹호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어린 시절에 심어진 인간 불신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경찰이나 패트롤에 신고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봉지를 벚꽃 가지에 걸어서 느려뜨려놓았다. (2006년 3월 7일)










최근 이러한 소리를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알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수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라’라는 것이 지역에서 생활하는 모든 주민의 신조가 되고 만 것 같다.





또 방범 벌런티어에 종사하는 사람들조차 ‘평상복을 입을 때는 패트롤 모습을 하고 있을 때처럼 아이들에게 말을 걸 수 없다’라는 목소리도 자주 들리게 되었다.















◯ ‘상호불신사회’의 탄생










지역 커뮤니티의 공동화가 치안악화를 초래하고 있다, 그래서 커뮤니티 재생이야말로 치안회복의 열쇠가 된다, 최근 십년 정도 이러한 말들은 계속 주창되어 왔다.





그리고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주민들이 점차 적극적으로 참가하게 되었으며 방범 활동에 참가하여 커뮤니티 부활을 위한 노력을 느끼기 시작한 현재, 과연 ‘건전한 지역 커뮤니티’가 재생되고 있는가라고 한다면, 오히려 반어적으로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지역의 연대는커녕 아동에게 말을 건네는 것조차 수상한 자라 여겨지는 ‘상호불신사회’인 것이다.





하지만 왜 우리 사회는 이렇게까지 인간불신이 심해져 버린 것일까.





예를 들어 ‘안전․안심 마을만들기’ 프로젝트의 이론적인 근거인 환경범죄학. 이것은 어디까지나 범죄가 일어나기 쉬운 ‘장소’에 주목하는 이론이므로, 인간불신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며, 더욱이나 현재와 같이 수상한 자에 대한 감시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된다. 하지만 과연 정말 그것이 올바른 것인가. 환경범죄학 추진자, 고미야 노무오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우리들이 안고 있는 불안은 반드시 범죄 그 자체가 아니다. 역 주변에 젊은이들이 모여 있다. 술취한 사람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면서 길을 걷고 있다. 여기저기에 낙서가 있다. 쓰레기가 흩어져 있다. 여기저기 유리창이 깨져 있다. 빈 집이 방지되어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방치해 두면, 결국 범죄로 이어지는 것이다. (‘가두의 감시카메라와 프라이버시 문제를 생각하다’ ≪안심할 수 있는 마을로≫ 2003년 5월 호)










환경범죄학은 ‘어떻게 범죄가 발생하기 힘든 환경으로 정비할 것인가’라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고미야의 발견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그것은 결국 ‘인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질서 정연한 생활환경을 정비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불쾌나 불안을 안겨주는 것은 물건이든, 사람이든, 모두 똑같이 ‘악의 싹’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론의 위험성은 지역주민이 질서의식에 과민하게 되는 것과, 질서를 해치는 행동거지에 대해 신경질적으로 되는 것이다. 마치 매일 방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있는 사람에게 단지 하나의 ‘쓰레기’가 눈에 거슬리는 것과 같이. 그리고 지역에서 배제되어야 할 쓰레기 중에는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여겨지는 ‘인간’이 포함되어 있다.





범행의 동기 등은 어찌되었든, 범죄의 ‘조짐’을 발견해내고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파하는 범죄학은 이리하여 최악의 형태로 인간의 배제에 봉사하게 될 위험성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범죄이론을 기초로 ‘안전․안심 마을만들기’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으므로, 거기에서 형성되는 지역사회가 감시의 눈초리로 일관되며 상호불신 상태에 빠져 있는 것도 필연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 범죄학적인 관심이 공유되면 될수록 사람들은 점차 범죄불안에 사로잡히게 되고 지역사회는 목가적인 커뮤니티에서 더욱 멀어지는 성격을 띠게 되어 갈 것이다.





떨어진 물건을 주운 노인을 보고 초등학생이 도망치는 앞서의 투서를 본 여성은 이후 다음과 같은 의견을 ≪아사히 신문≫의 투고란에 보냈다.










아이들을 사람을 못믿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지만,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역시 나도 아이들에게 ‘알지 못하는 사람이 과자를 준다고 말을 걸어도 따라가면 절대 안 돼’라고 말하게 되버린다.





예전 산책하러 외출을 했을 때, 손을 호주머니에 넣은 채로 아이들을 태운 유모차에 가까이 온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손을 꺼내며 ‘귀엽네’라고 쓰다듬으려 할 때, 그 때, 칼을 호주머니에 숨기고 있다가 갑자기 아이를 찌른 사건을 들은 직후여서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아사히 신문≫ 나고야 판, 2006년 3월 28일)










여기에 쓰여 있는 남성의 행동거지는 아이를 향한 매우 자연스러운 애정의 발로다. 예전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주민들을 동료로 묶어주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어른이 아이에게 웃음을 띠는 것은 지역 커뮤니티가 생성되는 일상생활의 한 단면이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이 ‘살해될지 모른다’라는 공포의 순간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세큐리티 사회, 현재의 ‘치안공동체’의 현실이다.





경찰과 주민이 각자 이해와 관심을 충족하면서 방범을 축으로 지역 커뮤니티의 재생을 지향할 때, 거기에서 범죄불안은 진정되기는커녕, 더욱 더욱 비대화할 뿐이다.





그리고 주민들이 생활하는 일상적인 풍경은 일변하는 것이다. 지역 커뮤니티의 재생뿐만이 아니다. 완전히 반대로, 모르는 사람이 수상한 사람의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 이 치안공동체에서는 주민들은 서로 쌀쌀맞으며, 때에 따라서는 공포스러운 존재로 변하는 것이다.















◯ 불안과 치안의 악순환










게다가 문제는 이렇게 추진되고 있는 방범 활동에는, 이 정도면 충분해라는 한계가 없다는 데에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치안악화라는 이미지가 초래한 근거없는 불안에 내몰려진 것이기 때문이다.





2006년 8월 내각부가 ‘아동의 방범에 관한 특별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것은 아동의 방범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의식조사지다. 거기에서는 4명 중 3명이 ‘아동이 범죄피해를 당하지는 않을까’라는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정부에 희망하는 방범 대책으로 ‘경찰직원의 패트롤’이 54.0%, ‘통학로상의 안전 확보(방범등의 설치 등)이 51.9%, ’가까운 수상한 사람의 정보 발신‘이 49.9%로 경찰 등의 세큐리티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수 상위를 차지했다. 한편 지역 방범 활동에 참가할 의향을 나타낸 사람도 73.4%에 달하여 자위의식이 유례없이 높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이 조사에서 흥미로운 것은 ‘불안한 이유’에 대한 것이다. ‘가까운 곳에 아이가 휘말린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에’는 고작 12.1%인 것에 반해,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아동이 휘말린 사건이 자주 거론되기 때문에’가 85.9%, 그리고 ‘지역의 연계가 약하고, 인근 주민의 얼굴을 거의 모르기 때문에’가 33.2%였다.





여기에서 명백한 것처럼 결국 아동의 안전에 대한 위기감을 키우고 있는 것은 미디어이며, 그와 함께 지역 커뮤니티의 공동화라는 불안인 것이다.





이리하여 사회는 ‘깰 수 없는 악몽’의 악순환에 휘말린다.





일본의 어디에서건 아동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 미디어 보도를 매개로 하여 그것이 주민들의 불안을 더욱 증폭시킨다. 그 불안이 세큐리티의 강화를 더욱 요구하게 만들며, 커뮤니티 재생을 슬로건으로 주민들을 방범 활동으로 내몬다. 하지만 그러한 활동은 안전이나 안전을 초래하는 것은 전혀 아니며 오히려 수상한 자에 대한 위협에 민감하게 되어 더욱 불안을 높이고 만다. 그리고 결국 계속 자극되는 이 불안의 불씨가 더욱 흉악사건과 함께 타오르는 것이다.





이렇게 사회는 불안과 치안의 끝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또 경험하지 않은 범죄에 과도한 불안을 느끼고, 그리고 과잉되기까지 한 경계태세를 갖춘다면, 그로부터 해방되는 날은 절대 오지 않을 것이다. 불안에 구동된 세큐리티의 추진은, 미디어를 통해 매일매일 제공된 공포를 더욱 강화할 뿐이다.





학교에서 사건이 일어난다면 학교 세큐리티의 강화가, 통학로에서 사건이 발생한다면 방범 패트롤의 강화가, 그리고 학원에서 사건이 일어난다면 강사채용의 기준의 강화가……. 이러한 방식으로 사회의 다양한 장면에서 세큐리티가 확산되어 가는 것이다.










◯ 그 누구도 숨쉬기조차 힘들다










다음 문장은 2005년 12월에 발생한 학원강사에 의한 여아 살해사건 당시의 기사이다.










이렇다면 아이를 학원에 보낼 수 없다. 아이를 가진 부모는 어찌할 바를 모를 것이다. …… 히로시마와 도치키에서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가 하교 도중에 살해당하는 사건이 연이어 벌어진 직후이다. 통학로 안전을 지키려는 움직임이 각지에 퍼져나가던 도중, 이번 사건이 발생했다. 아이의 안전한 장소가 점차 좁아져 가고 있다. ……





학생은 2년전 도시샤(同志社)대학 도서관에서 여학생의 가방에서 지갑을 훔치고 발견한 경비원을 때린 혐의로 체포되었다.……체포된 이후 5개월 후, 학원은 학생을 강사로 채용했다. 채용에 있어서 교육의 장에 적절한 자질이 무엇인가를 다양한 각도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아사히 신문≫ ‘사설’ 05년 12월 13일)










‘아동의 안전한 장소가 점차 좁아져 가고 있다……’





하지만 아동의 안전한 장소를 좁혀가고 있는 것은 어른들의 근거없는 범죄 불안과 커뮤니티 재생의 노스탤지어이며, 그리고 불안과 쾌락으로 지탱되고 있는 우리들 자신의 세큐리티의 의지인 것이다.





우리들은 현실의 위험을 더욱 냉정하게 알 필요가 있다.





1장에서도 하마이가 인구동태통계에서 숫자를 내보였지만, 경찰청 범죄통계에도 확실히 아동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 제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작년 미디어에서 문제가 된 초등학생이 살해된 사건인데, 1990년 이전과 비교해서 대폭 감소한 채 안정되고 있다. 가장 많았던 76년이 100명, 82년은 79명, 그 이후 눈에 띄게 계속 감소하여 05년에는 27명이다.





게다가 살인사건의 통계는 미수를 포함한 것이라는 것, 또한 아동이 살해당한 사건의 대부분은 가족 등에 의한 학대라는 것을 함께 생각한다면 알지 못하는 수상한 사람에게 목숨을 빼앗긴 초등학생의 수는 실제로는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타인에 의한 아동 살해’를 막기 위해, 우리들은 세큐리티를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침투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한 상호불신 사회는 과연 현실의 숫자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일까, 그러한 질문은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부상되고 있지 않다.





현재 ‘아동의 안전’이라는 이름하에, 앞서 본 바와 같은 치안관련 장치에 많은 예산이 투여되고 있다. 하지만 예외적인 사건을 일반화하여 쏟아부어진 예산은 과연 적절한 것일까. 그것은 부질없이 세큐리티 산업을 살찌우고 있는 것만은 아닐까. 또는 현재와 같은 세큐리티는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방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일까. 결국 단지 불안을 부추기는 것만은 아닐까.





이러한 사정들이 논의되는 것이 아닌, 단순한 이미지나 감정에 근거하여 세큐리티가 강화되고 있다면, 그때 만들어지는 사회는 결국 누구에게도 살기 힘든, 숨쉬기 힘든 사회일 뿐임에 분명하다.















◯배제되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










게다가 그러한 사회는 범죄에 강하기는커녕, 이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회적 약자에 지극히 불관용적인 사회이다.










의사에게서 ‘자폐경향이 있다’라고 진단된 가와사키(川崎)시의 남성 B씨(28)의 가족은 고민하고 있다.





B씨는 아이들을 좋아해서 거리에서 만나면 웃으면서 쳐다본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혼자 말을 하거나, 팔짝팔짝 뛸 때도 있다. 현재는 무직이지만 도자기 만드는 것을 목표로 주4회 교실에 다닌다. 그 외에도 수영, 그림 교실, 조깅 등 혼자 또는 가족이 함께 적극적으로 외출해 왔다.





작년 12월 밤, 인근 주민이라는 남성 4명이 방문했다. ‘눈에 띄니까 아이들이 무서워한다. 어떻게 안 될까’(≪아사히 신문≫ 2006년 1월 25일)










B씨의 모친은 평상시 ‘사람들을 뚫어지게 쳐다보면 안 돼’라고 타일러왔지만 이때 ‘이 마을에 살 수 없게 돼’라고 더욱 엄하게 혼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또 1년 반 정도 전에는 오랫동안 다녀왔던 수영장 교실도 그만두게 했다. 주위에서 수상한 사람을 둘러싼 소동이 빈발하고 ‘모두 무서워 하고 있다. 그만두었으면 좋겠다’라고 통보받았기 때문이다. 모친은 ‘어린 아이들을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 아들의 사정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것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 느끼고 있다.





한 방범 패트롤 대의 슬로건.





‘수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엄중한 눈으로 발견하고 곧바로 경찰에 통보합니다’





이러한 말들이 언급될 정도로 방범 패트롤은 수상하다는 것 말고는 특별히 감시대상이 제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수상한 사람이란 도대체 누구인가.





생활시간대가 다른 수많은 사람들, 실업자나 홈리스, 정신장애인이나 지적장애인, 재일 외국인 등 ‘보통 사람’과는 다른 생활 리듬이나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 결국 이러한 사람들이 수상한 사람이라 간주되는 것이다.





그것은 유니폼 잠바를 몸에 걸치고 ‘방범’이라는 완장을 찬 선의의 주민들의 눈에 이질적인 사람으로 비치는 사람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러한 이질적인 사람들이 수상한 자로서 지금 사회에서 배제되고 있다.





치안 공동체라 불릴 만한 커뮤니티, 그것이야말로 현재 우리들이 향하려 하고 있는 사회의 모습인 것이다.





4장 엄벌화가 만들어낸 형무소의 현실 (하마이 코이치)










[역자주: 4장을 쓴 하마이 코이치가 주장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먼저, 범죄가 흉악화되었다거나, 늘어났다는 것은 사실과 다른 신화일 따름이다. 이에 대해서는 제1장과 제2장에 구체적 수치를 통해 논증하고 있지만, 제4장에서도 데이터는 오히려 그 반대를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범죄의 엄벌화를 통해 수용자가 늘어나고 있는데, 그러한 수용자의 대부분은 괴물과 같은 무시무시한 사람들이 아닌, 극단적으로 빈곤하거나 장애가 있는 자, 외국인 등, 사회에서 배제된 사회적 약자들이라고 주장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묘사된다. 세 번째, 따라서 형무소는 “사회복지 최후의 보루”가 되어가고 있다. 복지시설의 경우에는 정원이 있으며, 복잡한 입소 절차가 필요하다. 그러나 형무소는 판결이 내려지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대상자를 입소시켜야 하며, 형이 끝날 때까지 혹은 사망할 때까지 받아들여 주어야 한다. 형무소는 최근 사회에서 버려진 사회적 약자들을 무한정 받아들이는 “사회복지 최후의 보루”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사회복지만으로는 수많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에 역부족인 자본주의 사회는 밑바닥 사람들은 형무소로 우격다짐 밀어넣고 있다.










빈곤한 사람들 중 감옥 등 사법적 처벌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태어날 때부터 악질적인 사람들이 빈곤하게 된다거나, 반대로 빈곤하게 되면 사람이 악질적이 된다라는 주장이 타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빈곤과 범죄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무엇을 ‘범죄’라고 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범죄’ 규정 자체부터가 빈곤한 자들에 대한 통제 역할에 적합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지적도 설득력이 있게 느껴진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 것인가? 우리는 빈곤한 자들이 저지르고 있다고 여겨지는 경범죄들에 대해 어떠한 판단을 해야 할 것인가. 형무소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룸펜 프롤레타리아트인가? “범죄화된” 프롤레타리아트인가?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사회적 정책들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인가? 범죄로 피해를 당은 사람들은 누구이며, 엄벌화를 요구하는 그들의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이 글은 엄밀한 이론서는 아니지만,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주의환기를 해줄 수 있다고 생각된다.]















◯ 수상한 자란 어떤 사람인가?










지금까지 서술해 온 바와 같이, 치안악화는 실제로는 ‘신화’임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사람들에게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 되고 말았다.





2, 3장에서 세리자와 카즈야가 지적한 바대로, ‘깰 수 없는 악몽’으로 끌려 들어간 사회는 범죄자나 비행소년을 괴물로 간주하였다. 그리고 이질적인 자들을 차례차례 배제하는 불관용적인 사회를 형성해 왔다.





‘아동의 안전’을 기치로 세큐리티가 강화되고, 시민에 의한 수상한 자 사냥이 이루어지며, 지역에서 거동이 이질적인 자들은 차례로 경찰에 통보되게 되었다.





그러나 수상한 자란 어떤 사람인가? 이것은 매우 애매한 개념이며, 아마도 정확하게 이미지화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동시에, 범죄자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매우 적지 않을까 싶다. 밖에서 침투해 들어온 교활하고 보이지 않는 모습의 불길한 존재, 그것이 범죄자의 이미지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자신들과는 이질적인 존재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범죄자 이미지일 것이다.





이렇게 막연한 이질적인 존재를 상대로, 사회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싸워나가는 것이 좋을까. 막연한 적에게는 막연한 대책만을 취할 수밖에 없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대책은 ‘수상한 자 사냥’과 같은, 힘에 의한 위력과 감시의 강화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은 치안악화라는 근거 없는 전제를 근거로 하고 있으며, 대상도 불명확하고 애매한 것이다. 그런 것에 과연 효과가 있을 것인가. 부작용은 없을까.















◯ 과학적 근거란 있는가










근거없는 신화에 근거하여 현실화된 것이 2004년 말 이루어진 형법 개정에 의한 중벌화이다. 국회 심사를 들어보고 있으면, 개정의 커다란 목적으로 형벌의 위력효과에 의한 치안회복이 거론되고 있다. 치안회복을 말하는 이상 치안이 악화되고 있다는 인식(전제)이 있으며, 게다가 형벌의 위력효과로 흉악범죄가 감소한다는 가설이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한창 심의 중인 가운데, 위력효과의 과학적 근거에 대해 질문을 받은 법무대신은 ‘범죄를 억제하는 기능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강조점: 필자)라 답변하였다.





이것은 유달리 법무대신에 한정된 것은 아니며 법제심의회나 중의원․참의원 법무대신회의 논의 중에서도 몇 명의 의원에게 비슷한 질문이 이루어졌지만, 과학적 근거는 제시되지 않은 채 ‘치안은 악화되고 있다’ ‘중벌화에는 범죄억지 효과가 있음에 틀림없다’라는 막연한 생각만이 언급되었다.





그러나 국가의 기본법인 형법의 개정이 ‘막연한 생각’과 ‘효과를 믿고 있다’라는 (형벌) 신앙에 의해 이루어져도 괜찮은 것일까. 신앙에 근거한 대책은 우리들 사회에 무엇을 초래할 것인가.















◯ 과잉수용이라는 레토릭










나는 2003년까지 법무성에서 근무하였는데, 2000년 법무종합연구소 연구관에서 형무소로 전근했다. 법무종합연구소는 “범죄백서”를 만들고 있는 부서인데, 1999년부터 2000년에 걸쳐 폭력범죄를 중심으로 인지건수가 비약적으로 상승하였기 때문에, 내 후임자들은 01년 이후부터 백서에서 일본 치안악화를 특집으로 다루었다.





내가 전근을 간 형무소도 점차로 수형자가 늘어서 심각한 과잉수용 상태에 빠졌다. 치안이 악화하고 범죄가 증가한다면, 수형자가 늘어나는 것은, 일견 당연한 현상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인가 이상했다. ‘치안이 악화한 결과의 과잉수용’이라는 레토릭에는 무엇인가 위화감을 느꼈다. 이 위화감이야말로, 내가 치안악화에 의문과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이다.





그런데, 형사 사법에서, 형무소는 곧잘 ‘치안의 최후의 보루’라 언급되곤 한다. 그것은 왜인가. 먼저 검찰청에 사건이 송치되고 수리된 사람들 가운데, 실형 판결을 받고 형무소까지 오는 경우는 2%이다. 즉 형무소는 경찰에서 시작되어 검찰, 재판을 경유한 엄선된 엘리트 범죄자가 다다르는 최후의 장소라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형무소가 붕괴되어 버리면 형벌의 집행이 보증될 수 없게 되며, 일본 치안은 유지될 수 없다. ‘치안의 최후의 보루’란 그러한 의미의 말인 것이다. 뒤집어 보면 형무소는 국가의 치안상황이나 형사정책․범죄대책의 결과를 대표하고 있으며, 형무소를 보면 그 국가의 치안을 알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다시 내 의문으로 돌아가 보면, 치안이 악화한 결과, 형무소가 과잉수용 된 것이다. 당연히 형무소에는 치안악화를 초래한 원흉들인 범죄자가 수용되어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역시 무엇인가 위화감을 느꼈다.





형무소에서 내 역할은 수석교정처우관(분류심의실 담당)이라는 것이었다. 작업 내용은 분류업무라 불리는 것인데, 새롭게 형이 확정된 수형자의 심리테스트나 면접조사, 처우시설의 결정, 종사할 작업의 결정, 가석방의 심사, 석방시 보호 등을 주요 업무로 하고 있었다. 내가 형무소에 근무하게 된 이후 얼마되지 않아 부하 직원이나 타 부서와 의견 교환을 하면서 이상한 것을 느끼게 되었다. 과잉 수용으로 인해 확정된 수형자로 구치소, 형무소 모두 넘쳐나는 가운데 형무소 내부 몇 개의 공장에서 아래와 같은 요청이 쇄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형자가 부족하므로 신속히 보충해주기 바란다. 이대로는 작업에 지장이 초래되고 맙니다.’





따라서 다시 담당자인 고사총괄(수형자의 분류조사․이송․작업지정 등을 담당하는 간부직원)에 사정을 들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수형자는 얼마든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만, 제대로 작업을 할 수 있는 수형자는 거의 없습니다. 모두들 노인이든지, 장애인이든지, 병이 있는 사람들 투성이어서……’















◯ 노동력이 되지 못하는 수형자들










증원 요청이 있었던 것은, 모두 형무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경리작업이나, 또는 정확한 기계작업이 필요한 작업의 종사자들이었다. 이러한 수형자는 형무소에서는 일반적으로 ‘경리요원’이라 불린다.





경리요원이 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자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요건은 극히 간단하다. 먼저 어느 정도 건강할 것, 고령자이지 않을 것, 보통 정도의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 폭력단에 소속되고 있지 않을 것이다. 또한 목수․페인트공이나 보일러․조리사 자격을 가지고 있는 수형자는 더욱 중요한 자원이다.





경리요원을 확보할 수 없으면 형무소 운영, 그 자체에 지장이 초래되고 만다. 따라서 나는 ‘조기발견․조기치료 플랜’이라 부르며 구치지소와 제휴하여 경리요원이 될 가능성이 있는 후보자를 구치소 단계에서 찾아내고 형이 확정된 다음 날 분류 직원이 구치지소까지 출장을 가서 조사를 실시, 인재를 확보하는 방책을 강구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미리 도착해서 조사를 실시해도 필요한 인재를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던 형무소는 이른바 ‘누범 형무소’라 불리는 누범자나 폭력단 관계자 등 범죄성이 꽤 심각한 형무소를 주로 처우하는 시설이었지만, 동시에 정원 500명 이상인 거대한 구치지소와 정원 100명 정도인 중규모 구치지소, 두 곳의 병설 기관이 있었다.





그 때문에 다른 형무소와 비교하자면, 신 확정수형자도 대량으로 거느리며 경리요원도 비교적 확보하기 쉬운 시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경리요원을 확보할 수 없었다. 수형자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고 있음에도, 평범하게 일할 수 있는 경리요원은 만성적으로 부족이었다.





소장은 ‘구외 작업 요원(형무소 울타리 밖에서 청소활동 등을 하는 수형자)을 늘릴 수 없을까. 2, 3명 수형자를 위해 직원이 지키고 서 있는 것은 아깝다. 수형자는 얼마든지 있지 않나’라고 지시를 내려도, ‘적임자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임할 때까지 이어졌다.















◯ 노인․장애인․외국인










여기서 다시 형무소가 처한 상황을 될 수 있는 한 객관적으로 다시 한번 보게 되었다. 그 결과 알게 된 것은 새롭게 형이 확정된 수형자의 대부분이, 작업을 하는 데 지장이 있는 핸디캡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핸디캡의 대부분은 65살 이상이라는 연령, 생활습관병을 중심으로 한 질병, 팔 다리의 마비, 시력저하, 난청 등의 신체장애, 지적장애, 각성제 후유증으로 인한 환각 등의 정신장애, 그리고 외국인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언어의 장애이다.





형무소는 작업의 종류에 따라 기계 별로 위험도와 안전기준이 세밀하게 지정되어 있다. 이러한 핸디캡을 가지는 수형자는 작업 중 사고 방지를 위해 설정된 안전기준을 통과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난청 수형자를 기계작업에 투입하고 지시나 주의를 듣지 못해 사고가 발생한 경우나, 고혈압증이나 심장질환이 있는 수형자를 육체노동에 투입하여 작업 중 쓰러지는 경우 등에는, 그들의 장애를 알고도 작업을 시킨 형무소에게 책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외국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일본어가 능숙하다 하더라도 일본어 읽고 쓰기를 할 수 없는 경우에는 기계작업의 실수로 사고가 발생한 경우 기계의 메뉴얼을 이해할 수 없는 수형자를 기계작업에 종사시켰다는 것이 되기 때문에, 안전기준을 통과하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가령 조리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본인이 희망한다 할지라도, 이러한 장애를 가진 자를 경리작업의 하나인 조리작업에 종사시킬 수는 없다.















◯ 재활 시설과 같은










수형자의 대부분은 징역형을 받고 있으며, 형무소 내의 작업의무가 있다. 형무소는 사회복귀를 위한 갱생시설이라는 것이 강조되고 있지만 원래 일정정도 건강한 자를 대상으로 형벌을 집행하는 기관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장애인의 재활시설 기능은 가지고 있지 않다.





심각한 장애를 가진 수형자는 형무소 내에서도 어떤 의미에서 ‘짐’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일할 장소를 확보하는 것은 간단치 않다. 유감스럽지만 그들 중에는 집단생활에 적절치 않다고 판단되어 ‘주야간 독거처우’라 일컬어지는 하루 대부분을 단독실에서 보내는 처우를 받게 되며, 개별실 내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내가 면접한 수형자 중에서도, 사회복귀를 준비하거나 재활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도 일반 공장 작업에 종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과잉수용하의 형무소에 그들에게 활동보조를 하면서 재활적 관점에서 작업을 실시할 수 있을 만한 인적, 물적 여력은 거의 존재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수수방관할 수는 없어 내 경우에도 보안이나 형무작업을 담당하기 위해 강한 발언권을 가진 처우부에 협조를 요청하면서 처우를 개선하였다. 작은 공간을 활용하여 이러한 핸디캡을 가진 수형자를 위해, 양호공장(장애 등으로 집단행동이 불가능한 자를 재활적 관점에서 작업을 시키는 공장으로, 경작업을 중심으로 하며 작업시간도 일반 공장보다 짧다)을 신설․확충하고 경리수형자를 활동보조로서 배치하고 가능한 한에서 많은 수형자를 주야간 독실에서 공장으로 나오도록 시도하였다.





그러나 양호공장의 정원은 아무리 늘려보았자 증가하는 수형자를 따라잡지 못하였으며 공간뿐 아니라 활동보조를 하는 경리수용자도 충분히 확보할 수 없었다. 또한 양호공장이라 해도 공장인 이상, 집단을 만들어 작업을 시키기 때문에, 장애의 정도가 중도인 경우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데 지장이 있는 경우 등은 공장 작업에 종사시킬 수 없었다.















◯ 어느 고령수형자와의 면접










주야간 독실에 수용되어 있던 수형자에 대해서는 정기적으로 카운셀링을 겸한 면접을 실시하도록 되어 있으며, 조사관(심리기관)을 대신하여 내가 실시할 때가 자주 있었다.





다음 사례는 일단 갱생하였지만 고령으로 일할 수 없게 되거나 홈리스가 된 이후 생활이 곤궁하여 굶주림에 재범을 저지른 지적 장애 수형자와의 면접 기록이다. 일본의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구멍 투성이인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경도의 지적장애에, 노쇠하기까지도 하여 사고능력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주변과 의사소통이 곤란하며, 또 동작도 매우 완만하여 집단생활이 부적당하다고 판단되어 주야간 독거가 된 사례이다.





독실을 나올 때부터 휘청거리고 있었으며, 직원의 지시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제지될 때까지 내 편으로 휘청대며 가까이 다가선다. 동작도 완만하며 질문에 대해서도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는지 곧바로 대답을 하지 않는다. 반복해서 단어를 골라가며 질문을 계속하면 무엇인가 이해했다는 모습을 보이지만 대답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단어도 확실하지 않다.





독거생활에 대해 물었더니 사람과 대화가 되지 않아 외로운 것 같은 모습을 보였지만, 공장으로 출역 희망을 물었더니 ‘지금에 와서, 뭐 이대로가 좋습니다.’라는 대답. 식사나 수면 등에 대해 물었더니 ‘괜찮아요’라고 대답한다. 투약을 받고 있는 것 같아 어떤 약을 먹고 있는지를 물었더니 ‘황색 동그란 것’이라고만 대답한다. 어떤 약인가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않다.





인수처로 본인이 희망했던 요코하마 갱생보호시설에서 인수 불가통지가 왔다는 것을 고지하고 도쿄의 갱생보호시설을 희망할 수도 있으므로, 요청을 하는 게 어떤지 조언했지만,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는지 불분명하다.





출소 후 생활을 묻기 시작하였더니, 숨이 막히는 듯한 표정이 되어 ‘나이를 먹으면 바보가 되니 어쩔 수 없지 않나요’ ‘나 따위 살아 있어 본들, 상관없어’ 등 아무렇게나 내뱉듯이 말을 하였다.





그는 이번이 두번째 수형생활이지만 이전 수형소 출소는 30년도 더 전이었다. 초범 출소 후 지적장애를 안고 있으면서도 토목작업원 등으로 어떻게든 자력으로 생계를 유지하였으며 재범하지 않고 일단은 갱생한 상태였지만, 고령화되고 점차 몸이 부자유스럽게 되자 홈리스 상태에 빠지게 되었으며, 편의점에서 과자 한 봉다리를 슬쩍 한 혐의로 집행유예를 받았다. 그러나 집행 유예 후에도 복지기관 등에서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다시 홈리스가 되었으며, 본 건인 튀김을 훔친 사건이 일어났다. 홈리스가 된 후 생활보호를 받기 위해 인근 복지사무소를 방문한 것 같지만, ‘주소가 없으면 받지 못한다’라고 들었다고 한다.





출소 후 생활에 대한 불안이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절망감이 강하고 매우 자폐적인 상태에 있어, 동정을 살피는 것이 약간은 필요할지 모른다. 면접 도중에 화장실에 가고 싶은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으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진술하여 면접을 종료하였다.





지적 장애뿐만 아니라 노화도 진행되고 있으며, 집단생활은 곤란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출소 후 생활을 생각하면 재활도 겸해 양호공장으로 출역도 고려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현재 본인에게 출역 의욕이 없었기 때문에, 잠시 동안 주야간 독거에서 상태를 보아갈 수밖에 없었다.















◯ 건강한 수형자는 어디에 있는가










형무소의 현실은 매우 부자연스럽다.





일부 학자나 대중언론에 의하면, 수형자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치안이 악화되고 범죄가 증가․흉악화된 결과라 여겨진다. 그렇다면 ‘치안의 최후의 보루’인 형무소에는 치안 악화를 초래한 범죄자로 넘쳐나지 않으면 이상한 것 아닌가.





그러나 현실에서는 건강한 수형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건강하기만 하다면 할 수 있는 작업에 종사시키기 위한 수형자조차 보이지 않으며 대부분의 수형자가 무엇인가 작업상 지장을 초래할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모순된 것이다. 치안악화가 고령자나 장애인에 의해 초래된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잘 생각해보면 형무소 내이든, 일반사회이든, 작업에 필요한 인재는 동일함에 분명하다. 징역형이라는 강제노동을 과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전원 고용이 원칙인 형무소에서 일을 찾지 못한 수형자는 당연하게도 사회에서도 실업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즉 증가하는 수형자의 대부분은 앞서 사례에서 언급한 수형자와 마찬가지로, 노동력으로 일반 사회가 필요로 하지 않는 자들이기도 한 것이다.















◯ 외국인 수형자는 ‘흉악’한가










외국인 수형자의 경우도 노동력으로서 불필요하다는 의미에서 동일하다.





내가 근무하고 있던 형무소에는 일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를 포함하여 200명 이상의 외국인 수형자가 수형되어 있었다. 중국인․이란인․베트남인․브라질인 등이 중심이었는데, 그들 대부분은 비합법인 취로이긴 하였지만 임금을 얻기 위해 일본으로 왔으며 버블 경제의 붕괴로 일자리를 잃고 곤궁한 생활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부 보도에서 중국인 수형자에 대해 ‘일본의 형벌은 가볍다. 일본 형무소는 삼시세끼뿐 아니라 일도 주고, 임금까지 받을 수 있다. 형무소 임금은 일본인에게는 보잘 것 없지만 중국인에게는 큰 돈이다. 중국인에게 일본은 경찰에 잡혀도 형무소에 들어가 있어도 커다란 문제가 아니며 따라서 범죄천국인 것이다’라는 논조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하게 중국인에 대한 편견이다. 실제로 많은 중국인 수형자와 면접해보면 이러한 주장은 사실과 동떨어져 있다.





그들 다수는 푸캉(福康)성 등에서 취로목적으로 불법 입국해 온 자들이며, 일본어는 거의 하지 못한다. 면접하러 가면 이국의 땅의 형무소에서 이유도 모른 채 곤혹스러워 하며 불안으로 떨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덧붙여 그들 다수는 불법 입국을 알선한 중국인 범죄조직 ‘브로커’(蛇頭)에 200만엔 이상 돈을 빌려 일본으로 불법입국하고 있다. 형무소에서 벌 수 있는 작업 상여금은 월평균 4000엔 정도인 것을 생각한다면 도저히 수지가 맞는다고는 볼 수 없다.





또 그들 불법 입국자들은 언제라도 국외로 도망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 하나, 폭력단은 입국 과정까지만을 책임진다. 중국 계 불법 체류자가 귀국하기 위해서는 입국관리국에 출두할 수밖에 없다. 종종 텔레비전 등에서 ‘일본 경찰은 미온적이다’라고 대담하게 호언하는 중국 마피아 관계자도 나오지만, 형무소를 보는 한에 있어서, 그러한 중국인은 거의 볼 수 없다. 외국인은 건강상 문제를 가지고 있는 자는 거의 없지만,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등의 문제로 노동시장에서 쫓겨나고 있다.





정말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는 외국인 수형자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 어느 날 작업장 배치 결정 회의










여기에서 새롭게 입소한 수형자에게 일할 공장을 결정하는 장면의 한 씬을 소개한다. 수형자는 한 명, 한 명 회장으로 불려나가, 각 부문을 대표하는 형무소 간부를 면담한다.















■111번 왼쪽 다리가 마비된 수형자





면접 회장 문이 열린다. 수형자가 가볍게 절을 하고 ‘들어가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서기담당 부간수장이 ‘의자 앞으로 가세요’라고 지시하자, 수형자는 비실비실 앞으로 의자 앞으로 나아가서 ‘111번 xx 타로’라고 신고한다. 그것을 보고 있던 의장을 맡은 분류심의실장이 ‘뭐야, 그 자세는. 좀 똑바로 못 할까. 다시 해’라고 꾸짖는다.





다시 문으로 돌아가려는 수형자를 제지하고 고사총괄이 ‘실장, 이 사람은 뇌경색 후유증으로 왼쪽 다리에 마비가 남아 있어서 ……’라 끼어든다. 그랬더니 실장은 ‘그래? 그럼 별 수 없지. 뭐, 그래. 앉으시오. 하지만 그런 몸으로 형무소는 힘들 텐데. 신입훈련은 제대로 받았는가?’라고 수형자를 향해 물었더니 수형자는 ‘네.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몸은 움직일 수 있습니다. 청소든 뭐든 나를 써주십시오’라고 확실한 음성으로 답변을 한다. 실장은 ‘자네 말이야. 그 나이랑 몸으로 형무소는 힘들 거야. 좀만 해도 질릴 걸’이라며 피곤한 얼굴로 말한다.





그 뒤 처우부문 총괄을 비롯한 각 부문 간부가 10분 정도 질문을 한다.





수형자가 면접을 마치고 방을 나가 문이 닫힌 뒤, 고사총괄이 ‘111번 xx 타로’라 부르고는 공장을 총괄하는 처우총괄이 ‘15공(양호공장) 부탁드립니다’라고 실장을 향하여 제안. 이것을 받아 실장이 ‘15공인가. 계단은 괜찮은가’라 물었더니 처우총괄이 ‘손잡이를 사용하면 어떻든 걸을 수 있습니다’라 답하고 마지막으로 실장, ‘조심해서 쓰도록 하시오’라고 지시.










■660번 일본어를 못하는 외국인 수형자





다시 부간수장 ‘다음 들어와’라고 대기실에 말을 걸었다. 문이 열린다.





수형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채, 인사하고 부간수장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입실하려 한다. 부간수장이 ‘인사는 뭐라 했지? “들어갑니다” 잖아’라고 지시했더니 그는 말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당황한 표정을 띤다. 그러자 문 앞에 서 있던 형무관 쪽으로 몸을 돌린다. 그 형무관에게 작은 소리로 ‘“들어갑니다”라고 말하시오’라는 지시를 받자 이번에는 알아들었는지 떠듬거리는 일본어로 ‘들어갑니다’라고 말하며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며 입장.





의자 앞에 오더니 다시 떠듬거리는 일본어로 ‘로퍄클록조우반 류 입니다’라 신고한다. 실장이 ‘류 씨인가’라고 묻자 당황하며 입을 다문다. 고사총괄이 ‘실장. 국대F(일본어를 말할 수 없는 외국인이라는 뜻)입니다’라고 말하자, ‘그래. 별 수 없군. 어이, 일본어 알아들어? 몸 상태는 어떤가’라 묻는다. 그랬더니 ‘조금 조금’이라 웃는다. 처우총괄이 몸짓을 섞어가며 ‘몸, 병, 괜찮은가’라 묻자 겨우 알아들었는지 ‘응, 응’ 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실장도 그 이상 질문해도 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규칙을 지키도록 힘써 주시오. 알았는가’라고 말을 던지고 돌려보낸다. 수형자가 방을 나간 다음 고사총괄이 ‘660번 류입니다’라 말하자 처우총괄이 ‘8공 부탁합니다’라 제안. 실장 ‘8공장인가. 일본어를 빨리 익히게 하시오’










■213번 환청이 있는 정신장애인





다음 면접회장에 들어온 수형자는 조금 긴장하고 있는지 표정이 경직되어 있다. 떨리는 목소리로 ‘213번 xx 지로입니다’라 신고하고 착석한다.





실장이 ‘형무소는 3번째인가. 어떤가. 제대로 일할 수 있겠는가’라 물었더니, 힘든 표정을 지으며 ‘전파를 통해 목소리가 들립니다. 전에 들어가 있던 형무소가 여러 가지 나에 대해 나쁜 소문을 전파로 흘리고 있으니까 그걸 중지시켜주세요.’라고 호소한다. 실장이 꽤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알았다. 전파의 건은 생각해 보도록 할 테니까, 전파는 신경쓰지 말고 작업에 집중해 주시오. 전파 이외에는 문제는 없는가?’라 했더니 ‘전파만 없어진다면 괜찮습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라 대답.





수형자가 방을 나간 뒤 사고총괄이 ‘213번 xx 지로입니다’라 말하고 처우총괄이 ‘7공 부탁드립니다’라 제안. 실장‘ 7공장인가. 환청은 괜찮을까. 담당자에게 충분히 주의하여 쓰도록 말해 두시오.’










■555번 청각에 장애가 있는 수형자





다시 부간수장이 ‘다음, 들어와’라고 지시. 이번 수형자는 큰 소리로 ‘들어가겠습니다’라 외치며 인사하고 지시대로 의자 앞에 서더니, 더욱 더 큰 소리로 ‘555번 xx 지로입니다’라 신고.





부간수장 지시로 착석한 수형자에게 실장이 ‘몇 번째 수형소인가’라 질문하자 귀를 실장 쪽으로 기울이면서 ‘네? 귀가 안 좋아서 잘 안 들립니다. 한 번 더 말씀해주십시오’라고 답한다. 다시 실장이 ‘난청인가’라고 말하면서 큰 소리로 ‘이번이 몇 번째냐고. 몇 번째 형무소인가’라고 묻자 역시 잘 안 들리는지 답답한 표정으로 ‘죄송합니다. 아직도 안 들립니다’라 답변. 진행 쪽 부간수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수형자 귀 바로 밑에서 ‘형무소는 몇 번째냐’고 말하자 겨우 알아들었는지 기쁜 표정으로 ‘부끄럽습니다만, 10번째 입니다’라 답변.





20명의 면접심사가 끝난 뒤 실장은 ‘오늘도 꽤나 힘들었구만.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수형자는 없는가. 경리요원은 말할 필요도 없어. 이래서야 형무소는 버틸 수 없다구’라면서 질린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자 곧바로 고사총괄이 ‘실장, 이건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여기에 오지 않은 주야간 독거처우 사람들이 엄청 많으니까요.’라며 또 한 번 아픈 곳을 찌른다.





이렇게 잘 관찰해 보면, ‘치안의 최후의 보루’임에 틀림없는 형무소는 확실히 처우곤란자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것은 종래보다 품이 많이 드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흉악범죄자보다는 명백하게 노동시장에서 퇴출당한, 어떤 종류에서건 핸디캡을 가진 사람들로 메워지고 있는 것이다.















◯ 수형자를 통계에서 읽어내다










그런데 다음으로 과잉 수용으로 어떠한 수형자가 늘어나고 있는가에 대해 통계적으로 검증해보도록 하자.





다음 그림은 “헤이세이 16년판 범죄백서”(2004년)의 과잉 수용 특집에서 발췌한 새롭게 확정된 수형자 특징을 나타낸 것이다. (그림은 생략: 역자)





이 그림들을 보더라도 명백한 것처럼, 최근 수형자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형기가 장기화되고 있다는 것, 게다가 과잉 수용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고령자, 외국인, 심신장애나 중대한 질병을 가진 수형자, 또한 일이나 가정을 상실한 수형자이다.





그 어느 것도 과잉 수용을 초래하고 있는 수형자 다수가 그 어떠한 종류의 핸디캡을 가지고 있으며, 또 사회 안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안전망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평성 16년판 범죄백서”(2004년)의 문장을 읽어보자면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다. 예를 들어 특집 부분의 “머리말” 부분에는 이렇다.










‘본년 특징으로 성인 범죄에 대한 교정․보호를 테마로 들었다. 그리고 치안이 양호했던 예전의 “평온한 시대”와 대비하면서, 최근의 “범죄다발사회”에서의 성인 범죄자 처우의 현상을 밝히고 그 과제를 발굴함과 동시에, 이후 논의에 보탬이 될 자료를 제공하였다’










백서 문장을 읽으면 치안이 악화된 결과 형무소가 과잉 수용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 전제로 되어 있다. 그러나 동 백서에 제시되어 있는 통계 데이터를 보면, 어떠한 수형자로 과잉 수용이 초래되었는지를 잘 알 수 있으며 그 전제에는 모순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관공청 공적 자료인 백서는 그 발행까지 부내의 결제, 법무성의 결제(조회), 관계청에 대한 조회 등 몇 단계의 스크리닝을 거칠 필요가 있으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조정이나 다른 정부견해와의 정합성이 체크된다. 즉 백서 문장에는 손이 상당히 가해지는 것이다. 통계는 객관적인 수치이기 때문에 거의 손을 대지 못한다. 백서를 자료로 하여 분석하는 좋은 수법은, 문장에 구애되는 것이 아닌 데이터나 통계를 허심탄회하게 읽어내는 것이다. 백서의 핵심은 데이터에 있는 것이다.















◯ 고령화하는 형무소










또한 위의 그림 22를 보기 바란다. 최근 총 인구의 고령화와 형무소 고령화의 관계 및 형무소에서 사망하는 수형자수의 추이를 본 것이다.





형무소의 고령화는 일반 사회를 훨씬 뛰어넘는 속도로 진행되며 이와 더불어 형무소에서 사망하는 수형자도 급증하고 있다. 또한 사인에 대해서도 분석해 보았는데, 암, 뇌출혈, 간 장애, 심질환 등 다기에 이르며 모든 부문에 걸쳐 사인이 증가하고 있다.





또 고령자 이외 사망자 수는 거의 증가하고 있지 않다. 즉 수형이 원인이 되어 사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 사망해야 할 사람이 형무소에서 사망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형무소는 사회를 비추어내는 거울이다. 미국 연구에서도 복지예산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고 약자를 내버려두는 불관용적인 사회(주(州)) 일수록, 형무소 인구비율이 높다는 연구가 있다.





한 교정기관자에게 ‘교정통계연보를 유심히 보고 있으면 다양한 흥미로운 것들을 알 수 있어요’라고 들어서 찾아보았더니 당연한 것이지만, 다중누범자, 체포시 무직자, 요수발자, 무전무식자 등 재범기간이 극단적으로 짧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깨진 창 이론’이라 불리는 ‘경미한 질서위반으로부터 범죄의 싹을 잘라낸다’라는 제로 톨러런스(관용도 제로)적인 엄벌화는 자립곤란한 수형자를 재범으로 내몰고 형무소로 보내온다.





자기책임을 강조하고, 타인에게 엄격한 배타적인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가 범죄자로서 형무소에 보내지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 형무소는 ‘복지의 최후의 보루’










형무소에 근무했던 3년간 강하게 느꼈던 것은 사회가 필요치 않게 된 인재를 형무소에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점이었다.





현재, 정부에서는 과잉 수용 대책으로 형무소의 확충이 실시되고 있다.





PFI방식(공공시설의 건설, 운영 등에 관해서 민간의 노하우나 자금을 활용하는 것)을 이용한 형무소 신설도 실시될 수 있도록 되고 있다. 형무소의 전 간부직원인 나로서는 형장에서 일하는 형무관을 위해서도 수용정원의 확대와 직원 증원은 시급히 필요한 장치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조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PFI 방식의 형무소에는 비교적 갱생의 가능성이 높은 초범 수형자를 수용하도록 되어 있으나 마츠모토 형무소 내 오오이(大井)조반작업소14)와 같이 개방적 처우를 실시하고 있는 다수의 시설에서, 적격자의 확보가 곤란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일정 레벨 작업능력이 있는 수형자를 확보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현재 형무소에 수용되어 있는 수형자는 본래 형사사법에서 형무소가 설계되었을 당시 상정되어 있던 사람들인 것일까.





과잉 수용에도 불구하고 연이어 보내지고 있는 수형자에 대해 연이어 판결이 내려지는 가운데, 내가 본 형무소는 ‘치안의 최후의 보루’가 아닌 ‘복지의 최후의 보루’가 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 장례식도, 참배도










형무소에는 절대 수용자를 거부할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어떤 죄를 지어 재판소에서 판결을 받은 이상, ‘당신은 여기에 어울리지 않으며 충분한 배려도 받지 못하므로 복지사무소나 병원에 가세요’라고 되돌릴 수는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수용을 거부하거나 다른 곳으로 내돌리는 것은 할 수 없다.





그것이 형무소에 부여된 사명인 것이다.





이러한 장소는 사회 속에서 형무소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어떠한 수형자라 하더라도, 정식으로 석방되는 날을 맞이하든지, 또는 사망할 때까지 돌볼 수밖에 없다. 수형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가능한 수단을 전부 사용하여 가족을 찾아 유체 또는 유골을 전달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형무관이 비행기로 유골을 전해주러 가기도 한다. 가족이 인수를 거부한 경우에도 형무소가 장례식을 치르며 유골을 묘지에 매장한다. 연 몇 차례 참배하는 것도 빠뜨릴 수 없다. 그 정도로 배려심 좋은 장소는 다른 곳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형무소는 수형자를 절대 방치할 수 없다. 어떤 형무관은 ‘버틸 수밖에 없다. 입 다물고 버티는 것이 형무소의 역할이다’라고 말했지만 형무소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곳이며 게다가 ‘(사회의, 수형자에게는 일생의) 최후의 보루’로서 훌륭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물론 형무소는 인생의 최후를 보살펴 주기 위해 만들어진 복지시설이 아니다.





직원은 그 목적을 위해 채용되며 훈련을 받고 있는 게 아니며, 봉사 정신으로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정식으로 석방되지 않는 한, 형무소가 수형자를 방치할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이상, 그 무엇이 일어나도 최후까지 형무관이 보살필 수밖에 없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형을 수료한 수형자가 한 발 문 밖으로 내닫는 순간부터 그 수형자에 대해서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 것도 형무소이다.















◯ 형무소 인구가 늘어난 이유










지금까지 내가 체험한 형무소 현실을 소개했다.





형사사법 최종지점인 형무소는 형사정책을 비추어내는 거울이다. 형무소 수형자를 보면 그 나라의 형사정책이 사회에 무엇을 초래하고 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치안이 악화되었다고 생각해 감시를 강화하고 지역에서 수상한 자를 잡아들이고 엄벌화를 행한 결과, 대량의 사회적 약자가 형무소에 보내지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형무소가 사회적 약자로 뒤덮히게 된 배경을 정리해 보자. 주로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겠다.





첫번째로 인과관계의 엄밀한 음미는 별도로 하더라도, 실업률과 수형자 인구 사이에는 강한 상관 관계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형무소 인구가 증가로 돌아선 것은 1995년 경부터이며 버블 붕괴로 인한 고용환경의 악화가 적어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고령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장기적인 불황이 발생하고 구조개혁이 강력히 주장되며, 체력이 부족한 기업은 도산하고 비교적 체력이 있는 기업조차 슬림화는 피할 수 없게 되어 정리해고가 횡행하였다. 그것이 사회불안을 증대시켰다. 개인을 대상으로 보자면 기댈 곳 없는 고령자․모자가정․외국인․심신장애인 등 사회적으로 약한 입장에 놓인 사람들 순으로 자립을 위한 생활 기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사회안전망에 과도한 부담이 걸리게 되었다.





생활보호를 받는 세대는 매년 증가하고 그것이 국가나 지방 재정을 압박하게 되었다. 정부는 사회적 약자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법률을 만들고 고령자 의료비 자기부담액을 증대시키는 등 ‘자립’을 슬로건으로 사회보장비 부담경감을 꾀했다. 그 결과 사회안전망에서도 버려지는 사람들이 나타났으며 그물망 그자체도 충분히 기능하지 않게 되어 이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 대량으로 발생하게 되었다.





다만 버블이 붕괴하고 실업률이 증가하고 범죄가 증가하여 형무소 인구가 늘었기 때문이라는 것만으로는 조금 매끄럽지 않다. 실업률과 형무소 인구의 증가 사이에는 보다 복잡한 요인이 개재하고 있다. 미국 연구에서는 실업률 상승이 사회불안을 초래하고, 예방적 의미에서 형사사법 관계자에 의한 단속이나 엄벌경향이 강화된다는 보고도 있다.















◯ 서비스 향상이 요구되며










두번째로 정보공개가 진행된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행정의 투명화․설명책임이 요구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형사사법 분야에서는 1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피해자 지원을 비롯한 형사 사법 개혁이 시작되었다.





수상한 자 통보를 받은 경찰이 범죄성이 없다고 판단되어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아동학대․가정 내 폭력․근린 트러블 등 통보에 대해 독자적으로 범죄성을 판단하여 개입하지 않은 결과, 그것이 중대사안으로 연결된 경우에는 경찰은 책임을 추궁당하게 되었다. 1999년 발생한 도치가와(栃川) 스토커 살인이나 같은 해 도치가와 린치 살인사건이 그 전형이다.





검찰이나 재판소도 가해자 사정을 감안해서 기소유예나 집행유예로 한 경우 미디어나 피해자들로부터 강한 비난을 자주 받게 되었다.





즉 형사사법 기관이 재량에 의한 처리가 점차적으로 곤란하게 된 것이다. 2001년 아카시(明石)시에서 불꽃대회를 구경하러 온 관객들이 한꺼번에 쓰러지게 되어 사망자 11명을 낸 대참사로 경비담당자가 기소되었다. 그러나 피해자 유족은 경비를 담당하고 있던 경찰서 서장이 기소되지 않은 점에 불복, 검찰심사회에 두 번 불기소부당 문제제기를 제출했다.





또 06년에는 술 기운에 운전을 하다 오토바이와 추돌하여 오토바이 운전자가 중도의 후유증으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사건에서, 피해자 부모가 가해자 운전수를 불기소하려 한 부검사의 경질을 요청, 받아들여진 경우도 있다. 검찰관에 의한 처분도 항상 비판에 노출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어떤 의미에서는 형사사법 기관의 투명성이 확보되고 재량적 처분이 억제되어 다수의 경우에서 정식적인 형사수속(불기소보다는 기소, 약식보다는 공판, 집행유예보다는 실형)이 선택되는 경향이 높아졌다.















◯ ‘무사안일주의 행태’의 만연










나도 예전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정은 잘 이해할 수 있다.





나중에 책임문제로 발전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획일적인 규정이라 불린다 하더라도, 자신이 판단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사안을 처리하는 편이 다소 사무량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안전하다.





개별 사정을 감안해 주체적으로 괜찮다고 판단하여 혹시 나중에 문제가 되었을 때 책임을 지는 것은 담당직원이다.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면 매뉴얼(법령) 대로 행동하고 자신이 판단하지 않는 것이 제일이다. 최근 개인정보보호법 시행 뒤 공적 기관의 창구가 개인에 관해 정보를 묻는 것이, 동법을 이유로 간단한 정보 개시조차 거부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이러한 것들도 그러한 전형적인 예이다.





이른바 ‘무사안일주의 행태’의 만연이다. 그 결과 보다 정식적인 처리가 선택되게 되었으며 형사사법의 ‘네트워이드닝(법 망의 눈을 확대)’이라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덧붙여 경찰에서는 피해자 상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닌, 지금까지 취급하지 않았던 아동학대․스토커․DV(가정폭력)․금융 문제 등 민사적 사건에 대해서도 대응할 것이 요구되며 처리사건 수가 급속하게 증가되었다. 그것은 통계상으로는 일견 범죄사정이 악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태로 이어졌다. 그것이 제3의 배경이다.





네번째로 1990년대 후반부터 범죄피해자나 유족에 대한 대중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어 시민에게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위기가 보이게 되었으며, 범죄와 일상의 경계가 붕괴되고 범죄가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이른바 ‘안전신화의 붕괴’이다.





그 결과 1-3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시민은 치안대책으로서 엄벌화를 요구하고 동시에 자위를 위해 수상한 자에 대한 감시의 눈을 강화하고, 수상한 자를 발견하면 경찰에 통보, 통보를 받은 경찰은 이전보다 방치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아 어떠한 대응이라도 하도록 압박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일반 시민이 통보하는 수상한 자는 요약하자면 자신들과는 다른 이질적인 사람, 또는 일반인과는 다른 언동을 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결국 혼잣말을 하면서 걷는다든가, 갑자기 별다른 일 없이 웃는다든가 하는 홈리스․장애인․치매(인지증) 노인․외국인 등이 될 것이다. 일반 시민 속에 자신들의 행동을 주시하고 무엇인가 수상한 행동이 있다면 바로 통보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지역사회(커뮤니티)가 사회안전망에서 흘러 넘치게 된 사회적 약자를 불온한 수상한 자로 배제하는 이상, 수상한 자가 갈 곳은 산이나 무인도에 처박혀 있거나 무엇인가 위법 행위를 해서 경찰에 잡혀 가는 수밖에 없다.





일단 형사사법의 수속 절차에 올라가게 되면 나중에는 받아들여주는 곳이 없다면 절대로 받아들여주는 것을 거부할 수 없는 형무소에 모이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 과잉수용이 되지 않는 북구










무엇이 형무소 인구를 증감시키고 있는가를 찾는 데 있어서 참고가 될 만한 연구가 있다.





2006년 6월 스톡흘름에서 개최된 국제범죄학 심포지움에서 핀란드 연구자 타비오 라피 세파라는 과잉 수용에 관해 흥미로운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의 발표는 유럽 각국 형무소 인구의 동향이나 수형자 인구비를 비교하면서 형무소 인구가 무엇에 의해 컨트롤되고 있는가를 분석한 것이었다.





그는 살인 등 범죄지표에 덧붙여 지니 계수(소득격차를 나타내는 통계지표), GDP에서 점하는 사회보장비의 비율, 사람이나 형사사법에 대한 신뢰 등과 형무소 인구 간의 상관관계를 비교 검토한 결과, 소득격차가 적고 사회보장비의 비율이 높으며 사람이나 사회에 신뢰감을 갖고 있는 국가일수록 형무소 인구가 적다라는 결론을 도출해 내었다.





즉 핀란드 등 북구 제 국가들이 다른 선진국과는 다르게 엄벌화나 대량 구금 등 사회병리에 빠지지 않는 이유는 격차가 적고 약자를 배려하는 점에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승자․패자가 명확히 나뉘고 격차사회가 진행되고 있다고 여겨지는 일본에게도 중요한 제언을 포함하고 있다.





상호 신뢰가 없는 사회일수록 엄벌화를 지향하고 형무소를 사회적 약자로 넘쳐나게 하는 것이다.















◯ 일본의 벌은 관용적인가










일본이 범죄자에 대해 관용적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속담으로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라는 것이 있다. 원래 ‘고의가 없는 범죄는 벌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중국의 속담이었는데 에도시대부터 ‘범죄는 미워해서 벌해도 죄를 저지른 사람까지는 미워하지 말라’라고 일본 풍으로 바뀌었다.





속담뿐만 아니라 연구성과 등에서도 일본이 범죄자에게 관용적인 국가라 지적하는 경향이 있다. 국제적으로 저명한 오스트레일리아 범죄학자 존 프레이스웨이트는 그 저서 중 선진국 가운데 범죄증가를 동반하지 않고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은 일본뿐이며 게다가 그 요인 중 하나로 일본의 형벌에 대한 관용을 들고 있다.





프레이스웨이트는 미국 재판에서는 사죄하는 것이 비(책임)를 인정하는 것이라 평가되어 보다 엄격한 형벌이 과해지는 것에 비해 일본에서는 사죄하는 것이 반성의 태도라 평가되어 형의 경감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비교하면서 재판에서 사죄가 수행하는 역할의 차이에 착목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범죄자가 재판 등에서 스스로의 죄를 반성하고 사죄하는 것으로 형사사법을 포함하는 사회가 그 사죄를 받아들이며 범죄자의 사회복귀를 촉진하는, 재통합적 시밍 기능(죄를 범한 자를 반성시켜 반성한 자를 사회의 일원으로서 받아들여 갱생시키는 사회 기능)이 사회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일본은 이것이 잘 기능하여 재범을 억지하는 것으로 안전한 사회가 유지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일본에서는 기소된 사람의 대부분이 유죄로 되는 반면, 검찰청에 수리되고 사건 송치된 사람의 2% 미만만이 실형판결을 받는다.





이것은 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해볼 때 매우 낮은 실형률이다. 그리고 통계적으로 보아도 “평성 11년판 범죄백서”(1999)에 있는 것처럼, 화해 등으로 피해회복 노력이 이루어진 경우에는 피해복귀 정도에 따라 검찰․재판 단계에서 기소유예․집행유예가 선택되는 경향이 있다. 검찰관이나 재판관 앞에 사죄하고 그 결과 실형을 피할 수 있게 되어 범죄자가 사회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 ‘사죄’란 무엇이었는가










일견 프레이스웨이트가 지적한 대로 사죄와 용서가 기능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이것을 가지고 일본 사회가 관용적인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형사재판에서 이루어진 범죄자에 의한 사죄는 누구에 대한 사죄였는가.





잘 생각해 보면, 직접적인 사죄의 대상은 검찰관이나 재판관이다. 화해도, 검찰관․재판관에 변호사를 덧붙인 범조3자의 대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많은 것은 아닌가.





여기에서 당사자인 피해자나 가해자의 의사는 어느 정도 존중되고 있는 것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심히 매정한 것이다.





범죄피해자 지원 운동이 고조되고 범죄피해자의 형사재판에 대한 관여가 강하게 주장되기 까지에는, 형사재판에는 난해한 법률용어나 형사수속을 이해하는 법률가 이외의 인간이 관여할 여지가 없었다.





일본 형사재판이 관용적이었던 것은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관료지배가 철저했으며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닌 전문가에 의해 감정을 배제하여 운영되어온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관료지배의 상황이 일변했다.





1990년대 후반이 되어 범죄 피해자 지원 운동의 기운이 높아짐에 따라 형사재판에서도 직접 당사자가 수행해야 할 역할도 크게 되었다. 그 결과 범죄피해자의 목소리나 미디어를 통한 여론은 검찰관이나 재판관에게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으며 그것이 형벌화를 향한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일본인이나 일본사회가 원래 범죄자에 대해 관용적이었다는 가정 그것에는 의문이 생긴다. 가령 형사법 기관이 지금까지 범죄자에 대해 관용적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형사사법의 관지배가 철저히 이루어졌으며 당사자의 영향을 극력 배제하는 것으로서 성립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 사형판결도 무기판결도 증가










이어서 형사사법에 관한 담론에도 한 가지 의심해보아야 할 전제를 소개한다.





최근 사회의 주목을 모은 살인사건 재판에서 사형과 무기형, 어느 쪽이 선택될 것인가가 논의의 대상이 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2004년 발생한 나라 여아 유괴살인사건에서는 피고인 공소 취하로 일심 사형판결이 확정되었다. 이 판결은 흉악한 사건이라면 아무리 피해자가 한 명이라 할지라도 사형을 선택한다는 사법 당국의 강한 자세를 나타낸 것이라 여겨진다.





여기서 최근 사형과 무기형에 대해 통계적인 사실을 확인해 두자.





형사시설에서의 사형결정자 및 무기형 수형자의 추이이다. (그림 생략: 역자) 다음 그림 23과 그림 24를 보길 바란다. 1장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이른바 흉악범죄는 증가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무기형판결도 사형판결도 증가경향에 있다. 또한 현저한 것은 형사시설에서의 사형확정자나 무기형 수형자의 증가이다. 형사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사형확정자는 06년에는 100명에 가까이 다가섰으며 그림 23에 있는 바와 같이 무기형수형자는 1000명을 돌파하고 1500명에 달해가고 있다.















◯ 무기형은 거의 종신형화










형사사법 관계자를 포함한 다수의 사람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무기형 수형자의 다수가 15년 정도 되면 가석방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다.





이것은 “범죄백서”를 읽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전 재판관이나 전 검사를 포함한 다수의 영향력이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태연하게 ‘무기형이라 해도 15년 정도로 가석방된다’라고 발언하는 것을 들을 때가 있다.





229페이지(원래의 책: 역자)의 그림 25는 무기형 수형자의 가석방자 수와 가석방까지의 재소기간을 나타낸 것이다. 2005년 가석방자수는 3명이며 3명 평균 재소기간은 20년을 넘고 있다. 같은 해 신규 확정 무기형수형자는 130명을 넘고 있다.





실무적으로는 사람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된 무기형 가석방은 웬만한 사정이 없는 한 인정되지 않는다.





즉 무기형은 운용상 종신형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엄벌화를 논의하기 전에 먼저 현재의 형벌 운용을 제대로 파악해 두는 것이 불가결하다고 생각되지만 엄벌주의자의 다수는 왜인지 억측을 수정하려 들지 않는다.





관련해서 04년 내쉬빌에서 개최된 미국 범죄학회에서는 형벌에 의한 범죄억지효과의 종합적 검증 프로젝트의 중간 보고가 진행되었다. 여기에서는 40개 이상의 억제효과 실증 연구를 메타분석이라는 방법으로 검증하고 있었는데, 엄벌화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범죄억제효과가 없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 과학적 근거가 뒷받침된 정책을










미국 범죄학회 보고와 같이 통계적 사실에 근거하여 범죄대책을 검증하는 것은 중요하다.





나도 2004년 범죄사회학회 기관지 ≪범죄사회학연구≫(제28호, 현대인문사)에서 범죄대책에 대한 범죄학의 제언으로 이른바 “범죄학적으로 정당한”(criminologically correct)범죄대책의 존재방식에 대한 특집을 기획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범죄대책을 생각할 때 범죄정세의 정확한 측정, 분석, 범죄발생률과는 독립한 존재로서의 범죄불안의 파악, 범죄대책의 효과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 비용 분석을 포함, 보다 저렴하고 부작용이 적은 대책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기본에 있는 것은 ‘과학적 근거에 뒷받침된 범죄대책’이다. 이 반대편에 있는 것이 04년 형법 개정에서 법무대신의 발언에서 나타난 ‘(형벌) 신앙에 근거한 범죄대책’이라 말할 수 있다.





이번 형법 개정은 과학적 근거를 검토하지 않고 ‘일단 형법의 중벌화로 국민에게 규범이 무엇인지를 제시한다’는 것을 내세웠으며, 그 목표를 향해 논의가 집약되었다.





이 개정은 우리들의 장래에 무엇을 초래할 것인가.





원래 범죄피해가 증가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경찰에 의한 사건의 발본색원으로 인지건수가 상승하는 경향은 일단 한숨을 돌리고 있다. 이것은 그다지 이번 형법개정 효과와는 관계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법정형의 중벌화를 이어받아, 검찰․재판실무의 구형, 양형의 전반적인 상승이 이루어져 형무소의 과잉 수용이 더욱 심각화되고 있다.





그리고 형무소 신설은 불가피한 것이 되고 있다. 여기에는 국민의 세금이 대량 투입되게 된다.





여기서 생각나는 사례가 있다. ‘법과 질서’ 캠페인을 기치로 1980년대 엄벌화 정책을 추진하였던 미국에서는 범죄발생률이 서서히 저하하기 시작한 80년대부터 현재에 걸쳐 형무소 인구가 300퍼센트 증가하였고 200만명을 돌파했다. 600만명 이상이 보호관찰 등, 어떤 종류에서건 사법 감시를 받고 있다.





미국 형사사법 예산은 이미 파산 상태이다.





‘법과 질서’ 캠페인은 이른바 ‘신앙에 근거한 범죄대책’의 대표이며, 그 결과는 경이적인 대량구금이다. 일본도 이번 법개정으로 대량구금을 향한 일보를 내딛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부는 03년 국가를 내걸며 치안복귀에 나설 의사표시로서 범죄대책 각료회의를 설치하고, 같은 해 12월에 ‘범죄에 강한 사회 실현을 위한 행동계획—“세계 제1의 안전국가, 일본” 부활을 목표로’라는 문서를 제출하였다. 관련해서 이 문서에서는 모두 ‘지금, 치안은 위험수준에 있다’라며 시작하고 있지만 그 근거는 그 무엇도 제시되어 있지 않다. 당연히 치안의 무엇이 어느 정도 악화되고 있는가 현상분석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점 과제로서 소년범죄나 외국인 범죄를 들먹이며 구체적인 대책으로서 외국인의 출입국 관리의 철저와 불법 체제 외국인의 철저한 단속을 제언하고 있다. 이를 전후로 하여 수도권 수장들이나 그 브레인인 유식자들도 외국인 범죄의 위협을 호소하는 의견이 차례차례 제시되고 있다.















◯ 캠페인 공동계획의 도전










이러한 신화나 신앙에 근거한 형사정책에 대항하기 위해 모두에서 언급했듯이 범죄학의 분야에서는 의학 코크란 공동계획을 모델로 ‘근거에 근거한 범죄대책’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관련해서 코크란(Cochrane)공동계획이란 1992년 시작되었으며 국제적 규모로 급속하게 퍼져나가고 있는 의료정보의 평가와 보급을 위한 프로젝트이다. 구체적으로는 전 세계에서 이루어진 무작위 대비시험(Randomized Controlled Study)에 대해 계통적 평가(수집하고 평가하고 통계학적으로 통합한다)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전세계의 의사, 의료정책결정자, 더 나아가 일반인들에게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캠페인 공동계획은 이를 본받아 무엇이 범죄대책으로 효과가 있으며 무엇이 유해한가를 메타 분석 등 통계적 수법을 사용하여 계통적으로 평가하고 과학적으로 타당한 정보를 제공하려는 국제적인 실험이다.





일본에서는 시즈오카현립대학 츠토미 히로시(津富 宏) 조교수가 중심이 되어 캠페인 공동계획 홈페이지(http://fuji.u-shizuoka-ken.ac.jp/~campbellcj/index.html)가 개설되었으며 범죄대책에 관련된 타당한 근거가 계속 제공되고 있다.





나는 현상 인식으로 치안이 악화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악화되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일본에서 흉악범죄가 전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수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매년 7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범죄 피해로 인해 소중한 목숨을 잃고 있다. 최악에 대비하면 최선이 제 발로 찾아온다. 범죄에 대한 준비는 필요하다.





다만 이때 준비라는 것은 범죄는 올바르게 우려되어야 하고, 그 다음 효과적이며 부작용 없는, 사람들의 생활을 배려한 범죄대책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미 바야흐로 신앙에 근거한 형사정책에서 졸업해야 되는 것은 아닐까.















◯ 공포와 불안에 대한 굴종










현재 치안복귀를 위해 경찰을 비롯한 형사사법 기관의 엄벌화와, 감시강화로 인한 범죄 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현장은 증가하는 사건 등, 처리해야 할 업무량의 증가에 비명을 지르고 있으며, 적정하게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현장 수준에서의 증원은 긴급을 요구하는 문제이다.





우리들은 다시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범죄는 정말 증가하고 있는가, 엄벌화로 범죄는 줄어드는가, 대량의 범죄자를 형무소에 수용하는 것이 정말로 좋은 방법인 것일까. 미국 등 예를 보면 경제불황의 긴축 재정하에서 치안 유지비를 증액하기 위해서는 복지․교육예산이 희생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도 언급된다.





또 전술한 바와 같이 형무소는 확정된 수형자를 거부할 수 없다. 따라서 재판소에서 결정되고 형무소로 보내져 온 이상 전력으로 처우해 나갈 수밖에 없으며 직원은 묵묵히 눈 앞의 업무 수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수형자 다수는 사회적 지원이 없으며 무엇인가 핸디캡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회에서 자립할 수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한 재입소자는 면접에서 ‘선생, 내가 홈리스가 될 각오를 하게 된다면, 다시 형무소로 오는 일은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일본은 ‘홈리스가 될 각오를 하고 홈리스가 되’든지, ‘형무소에 들어가든지’ 양자 선택만이 남은 사회가 되고 만 것일까.





2006년 9월 새롭게 지명된 수상은 ‘아름다운 나라, 일본’을 슬로건으로 삼았다. 소신표명에서 수상은 아름다운 나라의 모습으로 문화․전통․자연․역사를 제1로 들면서 ‘내가 지향하는 “아름다운 나라, 일본”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차세대를 짊어질 아이들이나 젊은이의 육성이 불가결합니다. 하지만 최근 아이들의 모럴이나 배우고자 하는 의욕이 저하하고 있으며 아이들을 둘러싼 가정이나 지역의 교육력 저하도 지적되고 있습니다’라고 마냥 좋던 옛날 시절의 부활을 호소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일종의 ‘마냥 좋던 일본의 노스텔지어’일지도 모른다. 05년 “Always 3정목(행정단위: 丁目)의 저녁”이라는 영화가 화제가 되었다. 쇼와 30년대(1955년—64년: 역자), 가난해도 가족이나 지역의 관계나 심정이 남아 있던 시대. 그리고 그 시대는 내가 태어난 시대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인근 사람들에게 보살핌을 받으면서 자연 속에서 낚시나 곤충 채집에 즐거워 하고 나무 타기를 하거나 때로는 골목대장이 있어서 서로 싸우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사람의 중요함이나 맞았을 때의 아픔을 알 수 있었다라고도 곧잘 이야기되던 시대.





그러나 그 시대는 전후 소년비행이 가장 흉악, 증가하였던 시기이기도 했다. 대수롭지도 않은 이유로 아이가 단순하게 아이를 때려 숨지게 하는 사건이나 어린 소녀를 음란한 목적으로 유괴하고 살해한 사건, 가족 간 서로 살해하는 사건이 지금의 몇 배나 발생하였었다. 당시 신문을 조금만 찾아보더라도 금방 알 수 있는 것이다(예를 들어 ‘소년범죄 데이터 베이스’라는 사이트(http://kangaeru.s59.xrea/index.htm)가 있다. 여기에는 아동이 아동을 살해한 사건이나 아동이 성적인 목적으로 희생된 살인사건 등을 신문 등에서 찾아 시계열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학교에서 애국심과 규범의식을 가르쳐서 통솔하는 사회를 만들고, 깨진 유리창 이론과 제로 톨러런스로 지역사회에서 수상한 자를 형무소로 내쫓아내는, 일견 깨끗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말 ‘아름다운 나라’인가 어떤가, 잘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노사과연>






1) 역자주: 일본 특정 관청에 대한 정책지식에 밝거나 인맥을 구축하여 정책 결정권을 쥐거나 업계단체나 이익보호에 영향력을 갖거나 하는 국회의원 및 집단을 의미한다.





2) 역자주: 1997년 2월부터 수개월에 걸쳐 복수의 초등학생이 살해된 사건. 피해자의 머리 부분을 학교 정문에 놓는다든가, 지역신문사에 ‘도전장’을 우송하는 등, 강한 폭력성을 동반한 사건으로, 범인이 이른바 ‘평범한 14살짜리 중학생’이라는 점에서도 일본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범인이 소년이라는 점에서 어떠한 처벌을 해야 하는지, 피해자 가족의 권리는 무엇인지, 과연 이 소년이 실제 범인인지 등등 사회적 논쟁이 있었다.(일본 위키피디아 참고)





3) 역자주: 2001년 오사카 교육대학부속 이케다 초등학교에서 흉기를 든 남성이 침입, 그 학교 아동 등을 습격하여 아동 8명이 살해당하고 아동 13명, 교원 2명이 부상을 입은 참사. 범인은 타쿠마 마모루로, 당시 37세. 2004년 사형이 집행되었다. (일본 위키피디아 참고)





4) 역자주: 2004년 나라시에서 일어난 초등학생 유괴사건의 범인. 2013년 사형이 집행되었다. (일본 위키피디아 참고)





5) 역자주: 앞서 언급한 2001년 오사카 교육대학부속 이케다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을 말한다.





6) 역자주: 한국의 구, 동, 리 등에 해당하는 말단 행정구역이다.





7) 역자주: 한국의 특별시, 광역시, 도 등에 해당하는 광역 행정구역이다.





8) 역자주: Parent-Teacher Association의 약자로, 각 학교에 조직된 교원, 학부모 모임이다.





9) 역자주: 한국의 반상회 정도에 해당하는 주민자치조직인 정내회(町内会)에서 행사 등이 있을 때 공지하는 회람판을 의미한다.





10) 역자주: 도쿄, 사이타마(埼玉) 연속 여아 유괴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체포, 기소되어 사형판결이 확정, 사형당한 인물.





11) 역자주: 초등학생이 주로 매는 가방.





12) 역자주: 일본 지역 이름.





13) 역자주: 올드 보이로 졸업생 혹은 퇴직자를 의미한다. 남성인 경우에는 OB, 여성의 경우에는 올드 걸이라는 의미에서 OG라 한다. OB, OG와 일본에서는 꽤 자주 사용되는 단어이다.





14) 역자주: 감시 울타리가 없이 일반 조선소에서 수감자가 일을 할 수 있는 교도소. 일반 노동자와 똑같은 작업을 한다. 급료는 시간당 60엔. 일상 생활은 다른 교도소에 비해서 훨씬 엄격한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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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2 범죄불안사회: 누구나 수상한 사람? 세리자와 카즈야, 하마이 코이치 2013-06-18 2614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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