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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기획번역>인도 독립 투쟁의 역사(A History of Indian Freedom Struggle) (15)
글쓴이 남부디리파드(E.M.S. Namboodiripad) E-mail send mail 번호 322
날짜 2013-04-26 조회수 2248 추천수 121
파일  1366932406_인도 독립 투쟁의 역사(A History of Indian Freedom Struggle) (15).hwp

  

























Ⅵ 산업자본주의 : 발전과 한계










우리가 앞장에서 논의했듯이, 사회문화적 변화의 논리적 필연으로써 “산업혁명”이 인도에서 일어났어야 했다. 그에 따라서 상호 적대하는 자본가와 노동계급이 형성되어, 그것이 초래하는 혁명이 발생해야 했고 급격히 발전되어야 했다. 바로 그런 일들이 유럽에서는 봉건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갔을 때 일어났다. 아시아 역시, 19세기 말경에 비슷한 변화가 일본에서 일어났다. 그 결과, 일본은 수세기에 걸쳐 오랜 전통을 유지했던 중국과 인도를 제치고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을 잠재적으로 위협할 만큼의 제국주의 위치로 성장했다.










인도 역시, 무굴제국시대와 수세기에 걸쳐 무굴제국이 몰락하는 동안에 그런 변화를 위한 객관적 조건들이 등장하였다. 산업자본주의 초기 모습도 점차 확산되었다. 상인 계급이 농촌 사람들에게 잉여 상품들을 구매하였고 그것들을 수백 마일이나 떨어진 도시와 마을로 실어 날랐다. 그 일을 했던 무역상인들은 그 목적을 위해서 필요한 모든 방법들을 만들고 실행하였는데, 화폐거래, 거래의 지불조건과 상품 이동시 도둑들로부터 상품과 돈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 같은 것들이다.










그런 일들에 능숙하여 돈을 벌게 된 계층의 사람들은 당대의 봉건주의 사회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들은 왕자들과 봉건 귀족들이 전쟁을 벌이거나 통치 자금이 필요할 때 돈을 빌려줄 정도의 능력이 있었다. 봉건사회의 한 부분으로 등장했고 발전했던 그런 상업 자본가들과 고리대금 자본가들은 포르투갈부터 영국에 이르기까지 외국인들이 주도하는 무역의 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 만약 그 계층의 도움과 협조를 얻지 못했다면, 외국인 무역업자들은 행정권도 없는 단순한 무역상인으로써 초기에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했을 것이다. 그런 외국 무역회사들의 대기업체와 관리자들도 인도상인들과 고리대금 자본가들을 도왔다. 무역이 발전하고 상품들의 교환과 화폐거래의 계속된 팽창은 인도 무역상들과 돈을 빌려주는 사람들 같은 중개인들의 사회적 삶의 지위와 이익률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런 방법으로 양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양쪽 모두 성장한 그 계층의 사람들은 외국 무역회사들에게 충성하고 예속적이 되었다.










그 계층의 성장이 특정 단계에 도달했을 때,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일본에서 그들 자신과 사회 전체가 탈바꿈 되었다. 무역과 고리대금업 활동에 국한되었던 자본가들이 산업생산 영역에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그때까지 생산자들과 소비자들 사이에서 상품을 교환하고 상품들을 실어 나르던 자본가들은 상품 생산을 위한 원자재와 기계들을 구입하려고 자본을 투자했다. 또한 기계를 가동하기 위해서 노동자를 고용하면서 그들의 활동영역을 넓히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생산에 개입하는 자본가들로 변신하였다. 자본가들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중개하는 위치에서 그들 자신이 생산과정에 참여하여 활동하는 조직자의 위치로 탈바꿈 하였다.










생산과정의 기술 속에서 일어난 혁명적 변화가 자본가들을 완전히 탈바꿈시킨 토대가 되었다. 산업혁명으로 잘 알려진 점진적인 기술적 변화들의 자연스러운 최고점이 수공업에서 숙련공들의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전통산업에 소개되었고 그 결과로 기계들이 발명되었다. 그런 발전과 더불어, 생산과정을 체계적으로 조직하고 그 목적을 위해서 필요한 자본을 투자하며 그 과정에 참여하는, 게다가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의 관례적인 중개인 역할을 하는 새로운 계층이 필요했다. 초기 단계에서는 상대적으로 단순했던 기계들과 그런 기계들에서 만든 생산물이 점점 더 복잡해졌고 새 기계들을 설치하고 그런 기계들을 작동하려면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원자재를 획득하기 위해서 점점 더 많은 자본이 필요해졌다. 그러므로, 생산 관계들(경제체제)에서 일어난 변화는 “기술혁명”으로 불리는 급격한 탈바꿈을 생산과정에서 일으켰는데, 그것이 산업혁명의 기초가 되었다. 그런 과정이 인도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무역의 기능과 고리대금 자본이 전례 없는 규모로 확장되었음에도, 그것은 생산영역에 들어가지 못했다. 전보다는 생산품의 유통과 그와 관계된 활동들에 꾸준하게 자본이 투자되었다. 그러나 기계와 여타 생산수단을 갖춘 공장을 짓고 원자재를 획득하고 노동력을 고용하기 위한 투자는 없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이유는 인도 자본주의 발전을 위한 기초가 외국무역업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점이다. 만약 유럽처럼 같은 종류의 경제적 탈바꿈과 “산업혁명”이 인도에서 일어난다면, 그리고 그 결과 인도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한다면 외국인 자신들의 이익을 위협할 것이란 점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의 의도는 그들 국가들 내에서 산업 생산물 생산에 필요로 하는 원자재를 싼 가격으로 착취하는 것이고 그들에게 유리한 가격으로 그들의 생산품을 판매하기 위한 시장으로 만들려고 인도를 이용하려는 것이었다. 그 목적을 위해서, 그들은 인도의 구석구석에서부터 항구들까지 원자재들을 실어 나르고 또한 그들의 산업 생산품들을 인도 시장에 실어 나르려는 교통체제를 발전시키려고 하였다. 교통체제 발전, 상업과 은행의 발전, 시장의 성장과 그런 것들을 위한 법의 필요성은 그들의 이익들에 기여하는 본질이었다. 이와 비슷하게 근대 대규모 농장의 사유지에서 시작된 산업 생산물과 상업 곡물의 발전에도 활용되기도 했다. 그들은 그런 목적을 마음에 품고 인도에 경제 영역에서 근대화를 소개하였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원자재 가공을 위한 산업이 인도에서 발전한다면 그들의 성장을 방해할 거라며 두려워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인도 자본가들에 의해서 인도 내에 산업이 발전하지 못하게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였다. 영국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하던 초기시대만 해도 인도의 수공예 옷들과 여타의 소비재는 영국의 공장들에서 생산되는 제품들과 경쟁력이 있었다. 그들은 그런 경쟁을 막기 위하여 법적인 조치를 하였다. 나중에는, 인도에서 영국산 제품들의 시장 경쟁력이 높아지자 영국산 제품과의 경쟁에서 인도산 수공예품 보호를 반대하였다. 달리 말하여, 영국의 산업발전을 보호하려고 그들 나라에서는 보호관세를 부과했던 지배자들은 인도의 수공업의 생존에 중요한 인도 내에서의 관세부과를 그들의 정치적 힘을 사용하여 막았다.










두 번째 요인은 인도에서 독립적인 산업 자본주의 발전의 경로에 서 있던 지배적인 인도 사회체제였다. 생산 과정의 근대화를 가능하게 하고 고무시키기 위한 객관적 조건이 존재하지 않았다. 인도 사회는 다양한 카스트와 하층 카스트로 분화되어 있었다. 인도에 존재했던 체제는 각각의 카스트 또는 하위 카스트에게 특정 직업을 부여했고 특정 카스트 또는 하위 카스트에서 태어난 각각의 구성원은 사회적 관습과 믿음에 의해서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직업으로 생산 활동을 했다. 그들은 그런 전통을 깨트리지 못하게끔 금지되었다. 이런 사회체제는 인도인들에게 생산 기술에서 사소한 변화조차 꺼려하게끔 만들었다. 반면에 산업혁명이 속속들이 지속적으로 소개되어 생산과정의 기술을 바꾸었다.










그러므로, 인도 내부 사회체제와 외국 지배자들 모두 동시에 수공업 체제를 근대 기계제 산업으로 전환하는 산업혁명의 경로에서 장애물이 되었다. 인도가 근대 부르주아 사회를 따라 잡으려면 그 두 가지 장애물을 극복해야 했다. 그런 장애물 가운데 어느 것 하나를 반대하는 대중들의 운동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런 환경이 지배적인 인도에서 진짜 산업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었다. 그와 같은 발전 대신, 실제 일어났던 것은 외국지배를 반대했던 사람들과 전통사회의 유지를 반대하던 이들이 양극화된 것이다. 이들은 서로 각자의 진영을 이루어 대립했다. 그 당시 객관적 조건 하에서는 외국인들을 토지에서 몰아내려면 전통적 사회체제의 뿌리를 잘라내야 하고 또 거꾸로 전통 사회체제를 파괴하고 사회혁명을 일으키는 것이 외국지배를 종식시키기 위해 불가결한 것이었음을 인민들이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맑스가 지적했듯이 낡은 전통 사회를 파괴시키는 임무를 갖고 있었던 외국지배자들에게는 사회혁명을 위한 물질적 토대를 만드는 임무도 있었다. 인도에 중앙집권식 행정체제를 수립하고, 철도와 근대적 통치체제를 만들고, 농촌마을을 세계시장에 연결시킴으로써 영국은 인도사회의 근대화를 위한 씨앗을 심었다. 이것은 무역과 고리대금 자금으로 이용되던 자본 가운데 일부분이 산업 생산에 투자되게끔 촉진하였다. 몇몇의 인도 자본가들이 영국에서 시작되었던 산업을 모델삼아 산업프로젝트 일을 시작하였다. 19세기 초반에 시작된 이런 과정이 점진적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인도인 소유자들은 벵골에서 삼베 방직과 봄베이에서 면화 방적사업을 시작하였다.










최초의 면화방직회사가 1854년 봄베이에 생겼다. 1866년에는 방직공장이 13개로 늘어났고 1876년에는 32개로 늘었다. 점진적으로 그 숫자가 늘어 1881년에는 47개, 1885년에는 49개, 1891년에는 67개, 1905년에는 69개였다. 19세기 말에는 봄베이에 있는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100,000명을 넘었다. 이 과정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영국지배가 시작되기 몇 년 전부터 무역과 고리대금업에 종사했던 바니아스(Banias)와 파르시스(Parsis)였다. 우리가 그들의 개별적인 가족사를 본다면, 우리는 그들이 봉건영주에 봉사하고 나중에는 영국에 충성하는 계층에 속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명확히 외국 자본가들의 하수인이자 매판자본가라고 단정할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의 성장이 외국지배의 유지와 성장에 연계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1857년~59년 동안에 그리고 이후에도 영국에 충성을 다하였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인 잠쉐지 타타(Jamshedji TaTa)는 빅토리아 여왕이 인도의 여제로 즉위한 것을 기념하고자 그가 세운 방직공장이름을 ‘여제방직공장(Empress Mill)’으로 지었다.]










그러나 일단 그들도 산업 영역에 뛰어들고 (산업에서 : 역자) 진보를 이루어내자, 자신들의 이익과 외국인들의 이익 사이에서 모순들이 존재함을 깨달았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한편에서는 영국의 “독실한” 충성자였고, 다른 한편에서는 영국 지배자들의 정책을 반대하였다. 그런 계층을 전형적으로 대표한 것이 타타(TaTa) 집안이다. 이런 대기업을 창업한 잠쉐지 타타는 영국이 일으킨 전쟁에 필요한 물품을 구매해 중개하는 일을 시작하였고 필요한 장소까지 실어다 주는 일을 했다. 그가 1857년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전쟁 중이었으므로 그는 상당한 이익을 얻었다. 그 돈을 활용하여 그는 중국과 무역을 시작했고, 또한 투기적인 목화거래 영역에도 발을 들였다. 계속해서 그는 여러 분야의 사업에 뛰어들었고 인도 최초의 제철소를 만들었다. 현재 타타는 인도 최고의 독점 대기업이다.










이런 산업화 과정이 아메다바드(Ahmedabad)에서도 반복되었다. 그러나, 캘커타에서는 그런 발전이 인도 자본가들 사이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이 지역의 대부분 산업은 영국이 설립하였다. 나중에 인도인들이 그곳에 대기업을 시작했을 때 벵골인이 아니라 벵골 밖에서 온 마르와리(Marwaris)인들 이었다. 그것은 영국이 만든 토지소유 제도의 차이의 결과이다. 벵골에 소개된 개혁은 새 토지소유 계급을 창조하는 데 적합했다. 특히, 그곳에 만들어진 조건들이 변호사, 언론인, 지식인, 문화적 지도자들의 출현에 적합하였다. 영대 자치제(Permanent Settlement)1)를 통해서 자민다리 제도가 소개된 일은 산업부르주아지 출현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반면에 봄베이에 소개된 료뜨와리 제도는 산업뿐만 아니라 사회문화 분야에서도 자본주의 발전을 위해서 길을 놓아주었다. 바니아스, 파르시스, 그리고 마하라스트라, 구자라트, 라자스탄의 마르와리인들은 일찌감치 무역과 고리대금업에 종사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벵골에 산업 기업을 세우고 벵골에 오기 전에 봄베이와 구자라트에 산업을 시작하는 데 어려움을 발견하지 못했다. 인도에서 근대 민족 독립운동의 발전은 봄베이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산업자본주의와 라자 람모한 로이와 여타 사람들이 이끈 벵골의 사회 문화 저항의 결과가 결합된 것이었다. <노사과연>






1) ‘Permanent Settlement’는 토지소유권이라는 재산권을 법률로써 인정하는 ‘협정’이며 인도학계에서는 영대자치체로 번역한다. 이 협정이 자민다리라는 봉건지주에게 사적소유권을 보장한 것이기에 간혹 영대 자민다리제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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