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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기획번역 스딸린 바로 보기(15)
글쓴이 루도 마르텐스(Ludo Martens) E-mail send mail 번호 318
날짜 2013-04-03 조회수 2170 추천수 104
파일  1364948616_8장.hwp

  

























8장





제2차 세계대전이 임박한 시기의 뜨로츠끼의 역할















1930년대에 뜨로츠끼는 완전히 세계적인 반공주의 전문가가 되었다.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우익 이데올로그들은 스딸린 시대의 쏘련에 대적하는 무기를 찾기 위해 뜨로츠끼의 저작을 숙독한다.





1982년, 레이건이 반공성전(anti-Communist crusade)을 다시 설교하고 있을 때, 벨기에 왕립 군사학교의 명예 교수인 앙리 베르나르(Henri Bernard)는 다음과 같은 긴급한 내용을 전파하기 위해 한 권의 책을 출판했다:










‘1982년의 공산주의자들은 1939년의 나찌들이다. 우리는 히틀러와 맞섰던 1939년 8월보다 모스끄바와 맞선 지금 더 무력하다.’1)










파시스트인 프랑스 국민전선(French National Front)의 지도자 쟝 마리 르뺑(Jean-Marie Le Pen)의 모든 상투적인 문구의 전형이 그 책에 있다.










‘테러리즘은 몇몇 미치광이의 행동이 아니다. 그 모든 것의 기반은 쏘련과 국제적 테러리즘의 은밀한 조직망이다.’2)





‘기독교적 좌익주의는 서방의 상처의 하나이다.’





‘동시에 발생하는 “평화주의자” 시위는, 그들이 어떻게 모스끄바에 의해 고무되었는지를 보여준다.’3)





‘포클랜드 제도(Falklands)에 죽을 각오를 하고 갔던 영국의 특공대들은 서방에 아직 도덕적 가치가 존재함을 증명한다.’4)










그러나 베르나르처럼 스스로 인정한 반공주의자가 쓰는 전술들은 매우 흥미롭다. ‘좌익 기독교도’를 경멸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뜨로츠끼와 자신을 어떻게 결합시키려하는지가 여기에 있다.










‘뜨로츠끼처럼, 레닌은 사적으로는 한 인간이었다.... 그의 개인적 삶은 미묘함으로 가득차 있다....’





‘뜨로츠끼는 정상적으로는 레닌을 계승했어야만 했다.... 그는 10월 혁명의 주요한 기획자였고, 내전의 승리자였으며, 붉은 군대(Red Army)의 창설자였다...’





‘레닌은 뜨로츠끼를 상당히 존중했었다. 그는 뜨로츠끼를 후임자로 생각했다. 그는 스딸린이 너무 잔혹하다고 생각했다...’





‘쏘련 내에서, 뜨로츠끼는 공산주의 기관을 마비시키고 있었던 위압적인 관료주의에 맞서 분연히 일어섰다...’





‘예술가, 지식인, 관습을 거부하는 사람, 종종 예언자로서, 그는 공산당 내부의 주요한 독단주의자들과 친해질 수 없었다...’





‘스딸린은 민족주의자였고 레닌이나 뜨로츠끼에게는 없었던 감정적인 면이 있었다.... 뜨로츠끼와 함께 했다면, 외국의 공산당들은, 사회주의적 질서를 유일한 목적으로 추진하는 세력으로 자신들을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스딸린과 함께 했던 그들은 끄렘린을 위해서 일했고 나아가 쏘련의 제국주의 정책을 위해서 일했다.’5)










여기서 우리는, 뜨로츠끼가 1937-1940년 동안에 제기한 중요한 의제 몇 가지를 소개할 것인데, 그것은 그의 절대적인 반공주의 투쟁의 성격을 실예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들을 통해서, 앙리 베르나르와 같은 부류의, 서방의 정보기관의 사람들이 공산주의와 맞서기 위해, 왜 뜨로츠끼를 이용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것들은 또한 볼셰비끼와 기회주의자들 간의 계급투쟁과, 그리고 1937-1938년의 대숙청의 몇몇 측면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적은 새로운 귀족, 신(新)볼셰비끼 부르주아계급이다









뜨로츠끼에게, 주요한 적은 쏘련의 수뇌부에 있었다: 그들은 ‘신볼셰비끼 귀족’으로서, 사회에서 가장 반사회주의적이고 반민주주의적 계층이었으며, ‘미국의 부유한 부르주아’처럼 생활하는 사회 계층이었다! 그는 그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특권을 가진 관료는 ... 이제 쏘비에뜨 사회의 가장 반사회주의적이고 가장 반민주주의적인 부분의 표본이다.’6)





‘우리는, 새로운 귀족으로 변모하여 대중을 억압하고 강탈하는 지배 도당을 고발한다.... 관료의 고위층은 미국과 다른 여러 자본주의 국가의 부유한 부르주아와 거의 같은 방식의 삶을 살고 있다.’7)










이러한 표현은 뜨로츠끼를, 백러시아군 및 침략군과 함께 무장 반혁명 투쟁을 이끌고 있던 멘셰비끼 지도자들과 구별할 수 없게 한다. 또한 이러한 표현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전통적인 우익과 뜨로츠끼를 구별할 수 없게 한다.





국제기독연합동맹(the International Confederation of Christian Unions, CISC)의 주요한 반공주의 이데올로그와 뜨로츠끼를 비교해보라. 1948년 세라렌(Serraren)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스딸린 덕분에 또다시 ‘계급들’과 부유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 자본주의 사회와 똑같이 엘리트들은 돈과 권력으로 보상받는다. (프랑스의) ‘노동자의 힘(Force Ouvrière)’은 이들을 ‘쏘비에뜨 귀족’이라 부른다. 이 주간지는 이들을 나폴레옹에 의해 만들어진 귀족에 비유한다.’8)










세계 제2차 대전 후에, 세라렌이 언급하고 있던 프랑스 노조연맹, 노동자의 힘9)이 즉각 설립되었고 CIA에 의해 자금을 조달받았다. ‘롱베르주의자'(Lambertist) 뜨로츠끼파 집단이 노동자의 힘 내부에서 활동했으며, 여전히 활동 중이다. 당시에, 이탈리아 또는 벨기에에 있던 국제기독연합동맹은, 유럽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방어를 목적으로 직접 CIA를 위해서 활동했다. 공산주의에 맞서 노동자들을 동원하기 위해 이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과 뜨로츠끼주의자에게서 차용한, 구역질나는 ‘반자본주의’ 악선동을 이용했다: 쏘련에 ‘새로운 부자 계급’, ‘쏘비에뜨 귀족’이 존재한다고.





‘대중을 억압하고 강탈하는 이러한 새로운 귀족’과10) 직면하자, 뜨로츠끼의 눈에는, ‘가슴 깊이 불만을 품은 1억6000만 명’이 보였다.11) 이러한 ‘사람들’은, ‘무식하고 포악한 스딸린주의자 도둑들’에 대항하여 생산 수단의 집산화와 계획경제를 보호하고 있었다. 바꾸어 말하면, ‘스딸린주의자들’을 제외하고, 사회의 나머지 부분은 깨끗했으며 투쟁을 이끌었다! 뜨로츠끼의 말을 들어보자:.










‘1200만에서 1500만 명의 특권층 — 퍼레이드, 시연, 열렬한 환영식을 조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한때 언급된 것과 마찬가지의 이러한 "정치적 불평등국가(pays légal12))"와는 별개로, 뿌리 깊은 불만을 가진 1억6000만 명이 존재한다...’





‘관료와 인민들 사이의 적대는 전체주의 통치가 강화되는 것에 의해 측정된다...’





‘관료제도는 오직 새로운 정치적 혁명에 의해서만 분쇄될 수 있다.’13)





‘경제는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집산화의 기초 위에 계획된다. 이러한 국가 경제에는 고유한 법칙이 있는데, 그것은 스딸린주의 관료제도의 독재, 무지, 강탈을 점점 더 용인하지 않는다. ’14)










뜨로츠끼가 보기에 자본주의를 복구하는 것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사회민주주의자, 수정주의자, 부르주아 혹은 반혁명분자들과 같은 모든 적대세력들은 (뜨로츠끼의 입장에서는: 역자) 정당한 것이 되었다. 그것은 ‘뿌리 깊은 불만을 가진 1억6000만 명’의 목소리였고, ‘신귀족’에 대항해 생산 수단의 집산화를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뜨로츠끼는 모든 퇴행 세력, 모든 반사회주의자들과 파시스트의 대변인이 되었다.















볼셰비즘과 파시즘










뜨로츠끼는 볼셰비즘과 파시즘이 쌍둥이라는 노선을 처음으로 제기한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다. 1930년대에 이러한 이론은 반동적 가톨릭 정당에서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공산당은 그들의 불구대천의 적이었으며, 파시스트 정당은 그들의 가장 중요한 부르주아 경쟁자였다. 다시 뜨로츠끼의 말을 들어보자:










‘파시즘은 거듭된 승리를 하고 있으며, 그것의 최고의 동맹자이자 전 세계에 걸쳐 파시즘의 길을 열고 있는 것은 바로 스딸린주의이다.’15)





‘사실, 스딸린의 정치적 수법과 히틀러의 그것과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하지만 국제적 규모에서 그 결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16)





‘쏘비에뜨 기구의 — 점점 중요해지는 — 핵심 부분은 파시스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들은 스스로를 파시스트로 인식해야만 한다. 쏘비에뜨 체제와 파시즘을 동일시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커다란  오류이다.... 하지만 정치적 상부구조의 대칭성과, 전체주의 수법과 심리학적 특징의 유사성은 놀랍다....’





‘스딸린주의가 주는 고통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가장 가증스럽다.’17)










뜨로츠끼는, 1950년대에 진행된 CIA와 파시스트의 필수적인 선전 주제의 첫 번째 판본들 중 하나를 여기서 제시했는데, 그것은 ‘붉은 파시즘’이었다. 뜨로츠끼는 ‘파시즘’이라는 단어를 이용함으로써, 거대 자본의 테러 독재에 대한 대중의 증오를 사회주의로 향하게 하려고 했다. 1944-1945년 이후에 서방으로 달아난 모든 독일, 헝가리, 크로아티아, 우끄라이나 파시스트 지도자들은 ‘민주주의’라는 가면을 썼다: 그들은 — 새로운 헤게모니 세력이고, 퇴행적 세력과 파시스트 세력을 지지해줄 주요 원천인 — 미국의 ‘민주주의’를 찬양했다. 자신들의 범죄적 과거를 신봉하는 이러한 “구” 파시스트들은 모두 같은 주제를 개발했다. ‘볼셰비즘은 파시즘이다. 그러나 훨씬 더 나쁘다.’





또한, 유럽 파시즘이 이미 전쟁(에티오피아와 스페인에서의 전쟁,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의 합병)을 시작했을 때, 뜨로츠끼는 세상에서 “가장 끔직하고 가증스러운 광경”은 “사회주의가 주는 고통”이라고 확언하고 있었다는 것을 주목하라.










나찌 독일에 대한 패배주의와 항복










뜨로츠끼는 쏘련에서 패배주의와 항복주의을 주장하는 주요 선동가가 되었다. 그의 선동적인 ‘세계혁명’은 쏘비에뜨 혁명을 질식시키는 데 더 효과적으로 봉사했다. 뜨로츠끼는, 파시스트가 쏘련을 침략하면, 스딸린과 볼셰비끼가 ‘배반’할 것이고, 그들의 지휘 아래에서는 쏘련의 패배는 피할 수 없다는 이론을 전파했다. 여기에 그러한 주제에 대한 그의 생각이 있다:










‘군대와 ... 쏘비에뜨 러시아의 상태는 모순된다. 한편으로는, 우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에 의해서 깨어난 1억7000만 명과 ... 다소 발전한 군수산업을 가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는 새로운 사회의 모든 힘을 마비시키는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다.... 내가 확신하는 것은 바로, 정치체제는 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생산을 위해 국유화된 재산인 사회체제는 독재적 성격을 지닌 정치체제보다 현저하게 더 강력하다. 정치체제, 또는 관료제도의 대표자들은 전쟁의 가능성을 두려워하는데, 왜냐하면 체제와 마찬가지로 전쟁 이후에 자신들이 생존하지 못하리라는 점을 우리보다 더 잘 알기 때문이다.’18)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혁명에 의해 깨어난 ‘1억7천만 명’의 ‘선량한’ 시민들이 있었다. 만약 볼셰비끼 공산당과 스딸린에 의해 깨어나지 못했다면, 누가 그렇게 했을지 사람들은 의아해 할 것이다: 많은 농민 대중들은 1921-1928년 동안에 분명히 ‘깨어나지’ 못했다. 이들 ‘1억7천만 명’에게는 ‘발전된 군수산업’이 있었다. 스딸린의 강력한 의지 때문에 시행되어, 기록적인 기간 내에 군수산업을 일으킨 그의 집산화와 공업화정책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듯이 말한다! 그의 정확한 노선, 의지, 조직화 능력 덕분에 볼셰비끼 정권은, 그동안 계속해서 무지하고, 미신적이며, 원시적이고 고립적으로 노동하던 대중을 일깨울 수 있었다. 선동가 뜨로츠끼의 고함소리에 의하면, 볼셰비끼 정권은 그 사회적 힘을 마비시켰다! 그리고 뜨로츠끼는, 볼셰비끼 정권이 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점이 확실하다는 등 온갖 종류의 터무니없는 예측을 했다! 그래서, 뜨로츠끼의 글에서, 반볼셰비즘과 패배주의라는 나찌에게 소중한 두 가지 선전 주제가 발견된다.










‘베를린은, 끄렘린 도당이 자기들이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통하여 국가의 군대와 주민들을 어느 정도 타락시켰는지 알고 있다...’





‘스딸린은 국가의 도덕적 힘과 전반적인 저항의 수준을 계속해서 약화시킨다. 스딸린이 의지해야만 하는, 명예나 양심이 없는 출세주의자들은 어려운 시기에 국가를 배신할 것이다.’19)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심에 찬 뜨로츠끼는 나찌에게 쏘련에 대한 전쟁을 수행하라고 선동했다. 쏘련의 사정에 대해 잘 아는 ‘탁월한 전문가’인 뜨로츠끼는, 나찌에게 그들이 스딸린에 대한 전쟁에서 승리할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군대와 주민들은 타락하였고(거짓!) 스딸린은 저항을 파괴하고 있으며(거짓!) 스딸린주의자들은 전쟁 초기에 항복하리라는(거짓!) 것이다.





쏘련에서 이러한 뜨로츠끼주의자들의 선동은 두 가지 효과가 있었다. 그것은, 쏘련이 그렇게 부패하고 무능한 지도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파시즘이 확실히 승리하리라는 사상을 퍼뜨려서, 패배주의와 항복주의를 조장한다. 그것은 또한, ‘반란’과 ‘어려운 시기에 배신할’ 볼셰비끼 지도자들을 제거하려는 암살 시도를 조장했다. 전쟁 기간에 절대적으로 무너질 운명의 지도부는, 전쟁 초기에 무너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그 결과 반쏘비에뜨 집단과 기회주의 집단들은 공격을 도모할 수 있었다.





두 가지 경우에서 모두, 뜨로츠끼의 선동은 직접적으로 나찌에 도움을 주었다.










뜨로츠끼와 뚜하체프스끼의 음모










뚜하체프스끼의 군사적 음모를 다룬 장에서, 대규모의 반공주의 적대 세력이 실제로 붉은 군대(Red Army) 간부진 내부에 존재했음을 보았다. 이 사실에 대한 뜨로츠끼의 태도는 교훈적이다.





뚜하체프스끼 사건에 대한 뜨로츠끼의 글을 살펴보자.










‘나는 이제 뚜하체프스끼와 나의 관계에 대해 말해야 한다. .. 나는 결코, 고참 근위대(Old Guard)인 이러한 장교에 대한 공산당의 유죄판결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





‘장군들은, 스딸린의 사적인 안전을 지키려는 이해관계에 대항하여, 쏘련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20)





‘군대는, 경제학자나 과학자처럼, 유능하고 정직하며 독립적이고 개방적 사고를 지닌 사람들이 필요하다. 자주적 사고를 하는 모든 사람들은 관료제도와 대립하게 되고, 관료제는 스스로를 보존하기 위해, 한 부분을 희생하여 다른 한 부분을 참수해야만 한다.... 뚜하체프스끼와 같은 훌륭한 장군은, 그 주위에 있는 다른 장군들 같은 독자적인 보좌관이 필요하며, 뚜하체프스끼는 보좌관들이 가지는 내재적인 가치에 따라 그들을 평가한다. 관료제도는 주로 고분고분한 사람,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 노예들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두 부류의 사람들은 모든 상황에서 충돌하게 된다.’21)





‘뚜하체프스끼와 그와 함께한 군 간부진들의 정수(精髓)는 붉은 군대 장교들을 감시하는 경찰의 독재에 맞선 싸움에서 무너졌다. 사회적 성격으로 볼 때, 군사 관료제도는 당연히 민간 관료제도보다 나을 것이 없다.... 관료제에 대해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두 가지 기능이 있다: 그것은 권력과 행정이다. 이러한 두 가지 기능은 이제 심각한 모순에 맞닥뜨렸다. 훌륭한 행정을 보장하기 위해서 전체주의 권력은 제거되어야만 한다....’





‘새롭게 나타난 이중 권력 상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적군의 해체의 첫 단계와 국가에서의 새로운 내전의 시작인가?’





‘현재의 정치위원들의 세대(스딸린주의자들: 역자)는 군대 행정과 시민 행정에 대한 나폴레옹주의자 도당(스딸린주의자들: 역자)의 지배를 의미하며, 그리고 이것을 통한 인민들에 대한 지배를 의미한다....’





‘붉은 군대 내에서 성장한 실제적인 지도자는, 그들을 붉은 군대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으며, 수년에 걸쳐 얻어진 이론의 여지 없는 권력을 가진다. 한편으로는, 관료들의 아들들 중에서 정치위원이 모집되었는데, 이들은 혁명 경험도 없고 군사적 지식과 이데올로기적 자산도 없다. 이것이 새로운 패거리 출세주의자(new school careerist)들의 원형이다. 그들은 ‘부단히 경계22)’하기 때문에, 즉 그들은 군대의 경찰이기 때문에 오직 명령만 허락되었다. 지휘관들은 충분한 이유가 있는 증오심을 그들에게 보인다. 이중 명령(dual command) 제도는 정치 경찰과 군대 간의 투쟁을 초래하고 있고, 중앙 권력은 정치 경찰 편을 든다...’





‘국가의 발전과 특히 새로운 필요의 성장은 전체주의의 찌꺼기와 양립할 수 없다: 이것이, 전반적 생활에서 관료제에 저항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이유이다.... 기술, 경제, 교육, 문화, 방위 등의 분야에서, 경험이 많고 과학 지식이 있는 권위자들은, 메흘리스(Mekhlis)와 예조프와 같이 아주 야만적이고 냉소적이며 난폭한 사람들인, 스딸린 독재 요원들을 자동적으로 거부한다.’23)










무엇보다도, 뜨로츠끼는 뚜하체프스끼와 그와 같은 사람들이 결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했다: 그전에는 뜨로츠끼 자신은 뚜하체프스끼를 나폴레옹식 군사 쿠데타를 일으킬 인물로 지적하였다. 게다가 스딸린에 대한 그의 무자비한 투쟁의 필요성 때문에, 뜨로츠끼는 군대 지휘부에 부르주아의 반혁명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한다. 사실 그는, 뚜하체프스끼와 알끄스니스(Alksnis) 등등을 포함하여 스딸린과 볼셰비끼 공산당에 맞선 어떠한 반대세력이라도 지지했다. 뜨로츠끼는 군대 내부의 모든 반공주의자들과 함께 연합 전선 정책을 이끌었다. 이것은, 뜨로츠끼는 오직 반혁명세력과 연합하여서만 권력을 잡을 수 있었을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뜨로츠끼는, 군대 내부에서 스딸린과 공산당의 지도부에 맞서 싸우는 이들은 사실은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 싸우고 있으며, 반면에 공산당에 충성하는 장교들은 스딸린의 독재와 그의 사적인 이해를 보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붉은 군대 내부에서의 투쟁에 대한 뜨로츠끼의 분석은, 로만 콜코비츠(Roman Kolkowicz)의 미군을 위한 그의 연구에서의 분석과 동일하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154쪽 참조). 첫째, 뜨로츠끼는, 붉은 군대를 정치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공산당의 조치를 반대하였다. 특히, 뜨로츠끼는 정치 인민위원들의 재도입을 반대했는데, 그들은 반파시스트 저항 전쟁에서 필수적인 정치적 역할을 수행할 것이며, 전쟁이 초래하는 엄청나게 복잡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젊은 군인들이 선명한 정치적 노선을 유지하도록 도와줄 것이었다. 붉은 군대를 분열시키고 내전을 유발시킬 명백한 목적으로, 뜨로츠끼는 당에 적대하는 군대 내부의 엘리트주의자들과 배타적인 정서를 고무했다. 다음으로, 뜨로츠끼는 장교들이 유능하고 정직하며, 공산당에 반대하는 정도까지 개방된 사고를 지녔다고 말하며, 그들의 독립성을, 즉 ‘전문성’을 자신이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마찬가지로 또까예프와 같은 반공주의 분자들이 독립성과 개방적 사고라는 미명 아래 반체제적 부르주아 사상을 옹호했음은 분명하다!





뜨로츠끼는 ‘스딸린주의’ 권력과 국가 행정 간에 대립이 존재했고, 자신은 후자를 지지하였다고 주장했다. 사실, 그가 말했던 대립은 볼셰비끼 공산당과 국가 관료제도 사이의 대립이었다. 전 세계의 모든 반공주의자들처럼 뜨로츠끼는 공산당을 ‘관료주의적’이라고 부르며 중상했다. 실제로, 체제가 관료주의화되는 실제적 위험성은, 사회의 여타 부위에 관료주의를 강요하며, 온갖 종류의 특권과 이익을 얻기 위해, 결코 공산주의가 아닌, 공산당의 ‘숨막히는’ 정치적 및 이데올로기적 통제의 제거를 추구하는 행정의 여러 부분에서 유래했다. 군대와 민간 행정에 대한 공산당의 이러한 정치적 통제는, 특히 관료주의적인 붕괴를 초래하는 이러한 경향들과 투쟁하는 데 그 목표를 두었다. 뜨로츠끼가, 국가의 효과적인 행정을 보장하기 위해서 공산당이 제거되어야 한다고 썼을 때, 그는 여러 국가 기관의 가장 관료주의적인 경향의 대변자였다.





더욱 일반적으로, 뜨로츠끼는 군대, 기술, 과학, 문화 분야의 고위층들, 즉 뜨로츠끼의 가르침에 따라, 공산당 통제에서 벗어나고자 하며, ‘삶의 모든 분야에서 공산당을 제거하고자’ 원하는 모든 기술관료(테크노크라트)의 “전문성’을 옹호했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 국가와 공산당 내부에서 일어난 계급투쟁에서, 스딸린의 레닌주의 노선을 옹호한 세력과 기술관료주의(technocratism), 관료주의, 군사주의를 조장한 이들 간에 전선이 형성되었다. 훗날, 흐루쇼프의 쿠데타 기간에 공산당의 지휘부에 대한 주도권을 잡게 되는 세력은 후자였다.















나찌에 봉사하는 도발










나찌의 침략 전쟁에 대비해서, 스딸린과 볼셰비끼는 전복되어야 했다. 이러한 이론을 변호함으로써, 뜨로츠끼는 히틀러주의자들의 도구가 되었다. 최근에 브뤼셀 자유 대학(the Free University of Brussels)에서 개최된 회의에서 뜨로츠끼주의자가 소리쳤다.: ‘그것들은 거짓이다! 자신은 제국주의에 맞서 무조건적으로 쏘련을 방어했다고 뜨로츠끼는 항상 말했다.’





맞는 말이다. 볼셰비끼 공산당의 제거가 방어를 위한 최선의 대비책이라고 생각하면서, 뜨로츠끼는 언제나 쏘련을 방어했다! 본질적인 점은 뜨로츠끼가 반볼셰비끼 반란을 요구하고 있었다는 점인데, 이것은 소수의 뜨로츠끼주의자들에게가 아닌 나찌에게 도움이 될 것이었다. 뜨로츠끼는 쏘련의 ‘보다 효과적 방어’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에서 반란을 훌륭하게 설교할 수 있었으나, 그는 분명하게 반공주의 노선을 취했으며 모든 반사회주의 세력들을 동원했다. 나찌가 이러한 ‘쏘련의 보다 효과적인 방어’에 제일 먼저 감사했을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제 ‘쏘련의 보다 효과적인 방어’에 관한 뜨로츠끼의 정확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내가 일반적으로 “쏘련을 위해” 일한다고 할 수는 없다. 나는 쏘련을 창조한 노동 대중들을 위해 일하고, 혁명의 성과를 강탈한 관료주의에 대항한다 ... 스딸린은 쏘련의 패배를 계획하는 중이라고 아주 솔직하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이 진지한 혁명가의 의무로 여전히 남아 있다.’24)





‘나는 현재의 국제정세에서 쏘련에 대한 주요 위험요소는 스딸린과 그가 주도하는 소수 독재정치라고 생각한다. 그들에 대한 공개적인 투쟁은 ... 나에게 있어서는 쏘련의 방어와 불가분하게 관련되어 있다.’25)





‘구볼셰비끼 공산당은 카스트 기구로 변질되었다....’





‘제국주의라는 적에 대항하여, 우리는 전력을 다하여 쏘련을 지킬 것이다. 그러나 10월 혁명의 성과는, 마치 이전에 짜르의 관료주의와 부르주아계급에 맞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오직 스딸린주의 관료주의에 맞서는 행동을 보여줄 수 있을 경우에만, 인민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26)





‘새로운 기생충들로 구성된 비열한 전제 정치에 맞선 쏘비에뜨 프롤레타리아의 반란만이, 사회의 기저에 여전히 남아 있는 10월 혁명의 획득물들을 보호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고 오직 이러한 의미에서만, 우리는 제국주의, 파시스트, 민주주의와 스딸린의 관료제 그리고 그것에 ‘고용된 동료들’로부터 10월 혁명을 방어한다....’27)










이러한 인용문으로 볼 때, ‘우리는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쏘련을 지지한다’라는 말은, 최후까지 사회주의 체제를 수호할 준비가 되어 있는 대중을 조금이라도 경청하게 할 기회를 가지기를 원했다면, 이렇게 말해야만 했던 반공주의자들에 의해 공표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눈이 먼 사람들만이 이러한 ‘방어’의 의미를 혼동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것은 배신자들이나 적들이 방어를 준비한 방식이다: ‘스딸린은 배반할 것이다. 그는 패배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므로 쏘련을 지키기 위해서는 스딸린과 볼셰비끼의 지도부를 제거해야 한다.’ 그러한 선동은 완벽하게 나찌가 원하는 대로였다.





뜨로츠끼는 쏘련을 ‘방어’했으나, 스딸린과 볼셰비끼 공산당의 쏘련은 방어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의 모든 힘으로서’ 즉, 쏘련에서 그의 몇 안 되는 수천의 추종자들로서 쏘련을 방어하는 척했다! 한편, 이러한 수천의 보잘 것 없는 자들이 스딸린과 볼셰비끼 공산당에 대한 반란을 준비했어야 했다! 확실히 대단한 방어다.





심지어 또까예프와 같은 완고한 반공주의자마저 뜨로츠끼의 글들이 독일 침략자들의 술수에 넘어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또까예프는 반공주의자지만, 영국 제국주의의 지지자였다. 전쟁 초기에 그는 이러한 의견을 남겼다.










‘쏘련의 인민들은, 치명적인 위험에 직면하여 근본적인 감정에 의해, 스딸린 체제와 하나가 되었다.... 여러 반대 세력들은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발생적인 행위였다: 평균적 쏘비에뜨의 견해는 ‘히틀러를 패배시키기 위해선, 악마와도 손을 잡아라’였다.... 스딸린과 대립하는 것은 국제 반추축국 전선에 해로울 뿐만 아니라, 쏘비에뜨 인민들에 적대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28)










제2차 세계 대전이 임박하자, 뜨로츠끼는 주로, 비록 유일한 것은 아니었지만, 쏘련에서 볼셰비끼 공산당을 전복하는 망상을 하게 되었다. 그의 이론은 세계 극우파의 이론이었다: ‘스딸린과 볼셰비끼 공산당을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옹호하는 자는 누구든지, 사회주의의 최악의 적이다.’ 여기 뜨로츠끼의 선언문이 있다.










‘반동적인 관료주의는 철폐되어야 하고 그렇게 될 것이다. 쏘련에서 정치적 혁명은 필연적이다.’29)





‘오직 나폴레옹주의자인 끄렘린 도당의 전복만이 쏘련 군사력의 재생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전쟁, 제국주의, 파시즘에 맞선 투쟁은, 범죄로 얼룩진 스딸린주의에 대한 무자비한 투쟁을 요구한다. 스딸린주의를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옹호하는 이는 누구든지, 또는 그것의 배신에 대해서 침묵하거나 그것의 군사력을 과장하는 이는 누구든지, 혁명 또는 사회주의의, 그리고 억압받는 인민들의 최악의 적이다.’30)










이러한 글이 1938년에 쓰여지고 있을 때, 파시즘과 볼셰비즘 사이의 맹렬한 계급투쟁이 전 세계적 무대에서 전개되고 있었다. 오직 프랑스, 영국, 미제국주의, 파시즘의 극우익 이데올로그들만이 뜨로츠끼의 이론을 옹호할 수 있었다:










‘스딸린주의를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옹호하는 이는 누구든지 ... (극우익의: 역자) 최악의 적이다.’















뜨로츠끼는 테러리즘과 무장 반란을 조장했다










1934년부터 계속해서, 뜨로츠끼는 테러와 무장 반란을 통한 볼셰비끼의 전복을 반복적으로 요구했다.





1938년 4월, 뜨로츠끼는 쏘련에서 스딸린과 다른 볼셰비끼 지도자들에 대한 공격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공언했다. 물론, 그는 개인적인 테러는 올바른 레닌주의 전술이 아니라고 계속해서 주장했다. 하지만 ‘역사의 법칙은, 스딸린과 같은 강도들에 대한 암살 시도와 테러는 필연적임을, 우리에게 말한다’라는 글을 우리는 본다. 여기에 1938년 뜨로츠끼가 개인적 테러 계획에 대해 제출한 글이 있다.










‘스딸린은 군대를 파괴하고, 국가를 분쇄하고 있다.... 무자비한 증오가 그의 주위에 쌓이고 있고 끔찍한 복수는 그의 머리에 걸려 있다.’





‘암살 시도? 테러리즘과 싸운다는 구실로 국가의 최고 두뇌들을 제거한 이 체제가 결국에는 개별적인 테러로 고통 받을 것이다. 권력을 가진 강도들이 필사적인 테러리스트에게 복수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의 법칙에 상반될 것이라고 추가할 수 있다. 그러나 제4차 인터내셔널은 ... 절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개인적인 복수는 우리에게 극도로 제한된다.... 우리가 스딸린의 개인적인 장래를 고려한다면, 우리는, 그의 정권이 붕괴되는 것을 볼 만큼 그의 개인적 운명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랄 수 있을 뿐이다. 그는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31)










그러므로 뜨로츠끼주의자들에게는 스딸린, 몰로또프, 쯔다노프, 까가노비치 등을 죽이려고 공격하지 않는 것은 ‘역사의 법칙들에 위배’될 것이다. 이것은 뜨로츠끼주의자 비밀 조직이 자신들의 테러리스트 메시지를 보내는 ‘지능적이고’ ‘교묘한’ 방법이었다. 그들은 ‘암살을 조직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스딸린에 대한 테러리스트의 복수는 역사법칙의 일부이다’라고 말하였다. 또까예프와 지노비예프가 자주 모였던 반공주의 조직에서, 볼셰비끼 지도부에 대한 암살을 준비하는 이야기가 많았음을 생각해 보아라. 어떤 세력들이 뜨로츠끼의 글에서 ‘영감’을 받고 있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뜨로츠끼는, 볼셰비끼 지도부에 대항한 무장 반란을 목적으로 하는 선전 활동과 개인적 테러리즘에 대한 요구를 번갈아 가며 했다. 일반적으로 그는 은폐되고 위선적 용어로 ‘정치 혁명’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1989년, 뜨로츠끼주의자인 만델과의 토론에서, 우리는, 뜨로츠끼가 쏘비에뜨 체제에 대항해 무장 투쟁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만델은 화를 냈고, 그것은 ‘스딸린주의자의 거짓말’이라고 소리쳤는데, 왜냐하면 ‘정치 혁명’은 대중의 혁명을 의미하며 평화적인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일화는 전문적인 반공주의자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채택되는 이중성의 한 예이며, 그들의 기본적인 임무는 좌익 조직들에 침투하는 것이다. 여기서 만델은 환경보호론자 청중들에게 접근하기를 원했다. 이제 뜨로츠끼에 의해 제시된 반볼셰비끼 무장 투쟁의 계획에 대해 살펴본다:










‘인민들은 ... 짜르의 군주제, 귀족, 부르주아지에 맞서 세 번의 혁명32)을 겪었다. 어떤 의미에서, 현재 쏘비에뜨 관료제도는 모든 전복된 계급의 특징을 구현하고 있으나, 그들의 사회적 기반이나 그들의 전통은 없다. 그들은 오직 조직화된 테러를 통해서 그들의 기괴한 특권을 보호할 수 있다...’





‘국가의 방어는 오직, 파괴활동가들이며 패배주의자들인 독재 도당을 제거함으로써 가능하다.’33)










진정한 반혁명가로서 뜨로츠끼는, 사회주의가 짜리즘, 귀족, 부르주아지의 억압적인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사회주의가, 다른 착취 체제가 가진 것 만큼, 넓은 사회적 기반을 가지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반사회주의 대중들은 더 쉽게 그것을 전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다시 여기서, 모든 반동세력들에게, 혐오스러우며, 비틀거리는 체제를 공격하여 ‘네 번째 혁명’을 일으키라고 요구한다.





1938년 9월에 오스트리아는 이미 합병되었다. 이때는 뮌헨협정34)이 있었던 달로, 그 협정에서 프랑스와 영국의 제국주의는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도록 길을 터주었다. 뜨로츠끼 자신의 새로운 과도기 강령에서 그는 ‘하나의 조직으로서 “뜨로츠끼주의는” 쏘련에서 극도로 약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쏘련에서 자신의 조직의 임무를 제시했다.35)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진술했다:










‘테르미도르 소수 독재자들은 ... 테러주의적 방법에 매달린다.... 쏘련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임무는 여전히, 이러한 테르미도르 관료제도의 전복으로 남아 있다.... 오직 억압받는 대중의, 승리하는 혁명적인 반란만이 쏘비에뜨 체제를 소생시키고 사회주의를 향한 앞으로의 발전을 보장할 수 있다. 쏘비에뜨 대중이 반란을 일으키도록 지도할 능력이 있는 오직 하나의 정당이 있는데, 바로 제4인터내셔널이다.’36)










모든 뜨로츠끼주의자 분파들이 자신들의 기본 강령으로 여기는 이 문서에는 놀라운 문장이 포함되어 있다. 언제 이러한 ‘반란’과 ‘봉기’가 일어날 것인가? 뜨로츠끼의 대답은 너무나 솔직해서 놀라운데, 뜨로츠끼는 히틀러가 쏘련을 침략했을 때를 그의 반란의 시기로 꼽았다.










‘쏘비에뜨 노동자들이 혁명적 봉기를 일으키는 데 있어서, 그 추진력은 아마도 국가 외부의 사건에 의해서 제공될 것이다.’37)










다음 인용문은 이중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1933년에 뜨로츠끼는 독일의 스딸린주의자들의 ‘주요한 잘못’은 파시즘에 대항하는 사회 민주주의와의 연합 전선을 거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히틀러가 1933년에 권력을 잡을 때까지, 사회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단결하자는 독일 공산당의 제안을 계속 거절했다. 1940년 5월, 유럽 지역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지 8개월 후에 ‘연합 전선’의 가장 위대한 전문가인 뜨로츠끼는 붉은 군대(Red Army)에게 볼셰비끼 정권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라고 제안했다! 그는 쏘비에뜨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그의 공개서한에서 이렇게 적었다:










‘제4인터내셔널의 목적은 ... 기생적인 관료제를 정화함으로써 쏘련을 재생시키자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한 가지 방법으로만 가능하다: 그것은 압제자들과 기생충들이라는 새로운 특권계급(카스트, caste)에 대항하여 봉기하게 될 노동자, 농민, 붉은 군대의 군인, 붉은 함대의 수병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대중 봉기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당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제4인터내셔널이다.’38)










히틀러가 쏘련에 대한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을 때, 선동가 뜨로츠끼는 붉은 군대에게 쿠데타를 실행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한 사건은, 파시스트 탱크에 국가전체를 열어주어, 대재앙이 되었을 것이다! (8장 끝) <노사과연>




















번역 : 편집부











1) Bernard, op. cit. p. 9.





2) Ibid. p. 121.





3) Ibid. p. 123.





4) Ibid. p. 11.





5) Ibid. pp. 48-50.





6) Trotsky, Thermidor et l'antisémitisme (22 February 1937). La lutte, pp. 143-144.





7) Trotsky, The World Situation and Perspectives (14 February 1940). Writin-gs, vol. 12, pp. 148-149.





8) P. J. S. Serrarens, La Russie et l'Occident (Utrecht: Con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s Syndicats Chrétiens, n.d.), pp. 33, 37.





9) 역자 주: 프랑스에는 5개의 주요 노조연맹이 있는데, “노동자의 힘”은 이 중 3번째 규모이며 사회당 계열이다.





10) Trotsky, The World Situation, p. 148.





11) Ibid. p. 149.





12) 역자 주: 프랑스어로, 주민의 일부만이 투표권 등의 정치적 권리가 인정되는 국가를 말한다.





13) Ibid. p. 149.





14) Trotsky, La capitulation de Staline (11 March 1939). La lutte, p. 216.





15) Trotsky, Caïn Dugachvili va jusqu'au bout (April 1938). L'appareil, p. 238.





16) Trotsky, La capitulation de Staline, p. 216.





17) Trotsky, Nouvelles défections (17 March 1938). La lutte, pp. 161-162.





18) Trotsky, On the Eve of World War II (23 July 1939). Writings, vol. 12, p. 18.





19) Trotsky, Staline et Hitler (12 March 1938). L'appareil, p. 234.





20) Trotsky, L'armée contre Staline (6 March 1938). L'appareil, pp. 197, 201.





21) Trotsky, On the Eve of World War II, p. 19.





22) 역자 주: 스딸린이 반혁명분자에 대한 “부단한 경계”를 요구했는데, 이를 빗댄 것으로 보인다.





23) Trotsky, Les défaitistes totalitaires (3 July 1939). La lutte, pp. 166-169.





24) Trotsky, A Political Dialogue, pp. 156, 158.





25) Trotsky, Stalin After the Finnish Experience (13 March 1940). Writings, vol. 12, p. 160.





26) Trotsky, Lettres aux travailleurs d'URSS (May 1940). La lutte, pp. 301-302.





27) Trotsky, The Twenty-First Anniversary (14 November 1938). Writings, vol. 11, p. 111.





28) Tokaev, op. cit. p. 188.





29) Trotsky, Le gouvernement soviétique applique-t-il toujours les principes définis il y a vingt ans? (13 January 1938). La lutte, pp. 159-160.





30) Trotsky, A Fresh Lesson: After the ``Imperialist Peace'' at Munich (10 October 1938). Writings, vol. 11, p. 68.





31) Trotsky, Caïn Dougachvili va jusqu'au bout, p. 238.





32) 역자 주: 1905년 혁명, 1917년 2월 혁명, 1917년 10월 혁명을 말한다.





33) Trotsky, Les défaitistes totalitaires, pp. 165, 169.





34) 역자 주:  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가 체결한 협정(1938. 9. 30). 이 협정으로 체코슬로바키아 서쪽의 주데텐란트가 독일에 합병되었다. ≪daum 백과사전≫





35) Leon Trotsky, The Death Agony of Capitalism and the Tasks of the Fourth International. The Transitional Program for Socialist Revolution (New York: Pathfinder Press, 1974), p. 103.





36) Ibid. pp. 103-106.





37) Ibid. p. 105.





38) Trotsky, Lettres aux travailleurs d'URSS, p.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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