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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현장 >
제목 <노동자 교육 이야기 16>사교육의 현황과 사교육 해소방안에 대해(2)
글쓴이 김태균|평등교육 실현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상임대표, 회원 E-mail send mail 번호 227
날짜 2013-04-26 조회수 2074 추천수 131
파일  1366916065_사교육의 현황과 사교육 해소방안에 대해(2).hwp

  

























1960년대 중반엔 가정교사제가 활발했다. 1965년 9월 서울시 교육연구소가 조사한 내용에 의하면 서울 시내 국민학교 어린이 중 특 A지구 국민학교 어린이들의 81%가 가정교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67년 부산의 국민학교 5학년 학생이 밤 10시경 과외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다 피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과외공부 광풍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일부 교장이나 교사들이 과외공부 그만 하겠다는 결의대회를 열기까지도 하였다.1)





이러한 과외 광풍에 대한 비판적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반대급부로 사설 학원이 성황을 누리게 되었는데 예를 들면 서울 정릉에 있는 경기학원의 경우 셋방 33개에서 420여명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등 사설 학원들이 거대 기업화되기 시작하였다.2)





6-70년대 한국사회에서 회자되는 최대의 ‘인간승리’는 단연 대학입시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농촌에서 자식을 서울 명문대에 입학시키는 것 그 자체가 ‘인간 승리’였고 출세의 보장이었다.





이러한 인간승리는 소위 ‘치맛바람’이라 불리는 학부모들의 열성적 지원으로 이어졌는데 1960년대의 ‘치맛바람’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1966년 한국 부인회에서 ‘치맛바람 자숙운동’과 ‘자녀 과외 공부 안 시키기’ 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1967년 이규옹 감독의 ‘치맛바람’이라는 영화가 나온 것만 봐도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쉽게 짐작할 수가 있다.





당시 소위 ‘K-S 마크’라 불리는 경기고—서울대로 이어지는 명문 학교 중심의 로열코스는 이러한 출세지상주의와 치맛바람의 결과이기도 하다.





명문 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어린 국민학교 학생들마저 살인적 경쟁에 방치할 수 없다는 결단이 마침내 박정희 정권에 의해 1968년 7월 15일 발표되고 1969년 서울에서부터 시작된 중학교 무시험 추첨 배정제였다.





소위 ‘뺑뺑이 세대’라 불리는 중학교 무시험 추첨 배정제는 국민학교 어린 학생들의 치열한 경쟁구조를 완화하는 역할을 하였으나 여전히 대학입시와 대학의 서열화로 인해 경쟁 구조는 여전히 존재하였다.





1969년 서울에서부터 시작된 중학교 무시험 추첨 배정제는 1970년도에는 다른 여타의 도시로 확산이 되다가 1971년에는 전국적으로 시행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여전히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입시전쟁은 서울대 가기 위하여 좋은 고등학교에 입학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인해 ‘중3병’이라는 교육병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이후 박정희 정권의 유신정권의 폭압적 통치의 유화책으로써 1974년 서울과 부산에 이어 1975년 대구, 인천, 광주 등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고교 평준화 정책3)을 실시하였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정치는 살육과 공작이라는 폭압적 통치로 표현이 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포장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공세 또한 늦추지 않았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되는 박정희 정권의 국민교육 헌장은 1968년 12월 5일 발표가 되면서 교육의 공공성을 제한함과 동시에 교육을 사실상 입시 전장에 내모는 결과를 초래하는 데 일조하는 역할을 하였다.





1977년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 박정희 정권의 ‘충효사상’ 공세는 철저하게 이러한 이데올로기 공세의 대표적 예이다.





나라(유신정권)에 충성하는 것이 ‘충’이요, 열심히 공부하여 출세하는 것이 ‘효’라는 '충효사상’은 한편으로는 유신정권의 정당성을 포장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출세중심의 경쟁교육, 학벌주의를 국가 차원에서 부추긴 셈이었다.





1970년대 노동자들의 삶은 ‘공돌이, 공순이’로 압축이 되면서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의 분신 사건으로 유신정권의 폭압적 통치에 반기를 들기 시작하였다.





학벌 중심의 사회적 분위기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학교를 다니는 학생의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외출하면서 항상 책을 옆에 끼고 다니는 모습으로 바꾸기까지 하였다.





어째든, 고교 평준화 조치는 소위 일류 명문고를 없애는 효과를 보였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명문고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1976년 경기고가 1978년 휘문고, 1980년 숙명여중고와 서울고가 강남으로 이전을 하면서 교육행정 관할 구역상 8학군이 한국에서 대학입시 전장의 선봉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고교 평준화 정책은 1980년에 성남, 원주, 천안, 군산, 이리, 목포, 안동, 진주 등 8개 도시로 확대가 되면서 긍정적 효과도 있었지만 과외열기 심화라는 부작용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1979년 12.12 군사쿠데타와 1980년 5월 광주학살을 통해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군사정권, 살인정권이라는 본질을 숨기기 위하여 다양한 유화 정책을 실시하였다.





그 중 대표적인 교육정책이 바로 과외금지 및 대학 졸업정원제를 중심으로 한 ‘7.30 교육 개혁’ 정책이었다. 이러한 전두환 정권의 ‘7.30 교육개혁’은 과다한 과외비 지출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학부모들에게는 좋은 호응을 얻었다.





‘7.30 교육개혁’은 과외공부의 전면 금지뿐만이 아니라 대입 본고사 폐지, 고교 교육과정의 축소, 대학 졸업정원제 도입, 대학입학 정원 확대, 교육방송 실시, 불필요한 학력 제한 철폐, 임금격차의 점차적 축소 등을 제시하였다.





과외를 금지시키는 대신 TV 과외로 대체시키고자 했던 ‘7.30 교육개혁’은 철저하게 과외 금지를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몰래 바이트’란 이름으로 불법적 과외가 성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7.30 교육개혁’은 대학의 저항의식을 무마시키고자 했던 대학 졸업 정원제 실시 의도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고등교육현장 즉 대학의 저항의식을 사상시키기 위한 불순한 의도의 음모적 정책이었음이 확인되기에는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지 않았다. 이후 전두환 정권은 대학생들의 사회참여(데모)를 막기 위한 다양한 대학교육 관련한 정책을 폈는데 그중 대표적인 정책이 대학 교수를 비롯한 교직원들을 동원한 학생 감시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이후 80년대 입시제도는 몇 차례 변화되었는데 우선 1982년 예비고사가 대입학력고사로 바뀌었고, 1986년, 1987년에는 논술고사가 전형에 포함되었다. 1988년부터는 학력고사 과목이 축소되고 객관적인 공정성 문제가 제기된 논술고사를 폐지하는 대신 대학별 면접고사를 실시하였다.





1989년 2월부터 정부는 대학생들의 비영리 과외를 전면 허용하고 중고생들의 방학 중 학원수강을 허용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명문대생과 비명문대생 간의 빈부의 격차4)가 발생하였고, 중고생들의 학원수강 허용 조치로 인해 수많은 입시학원들이 호황을 누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입시학원과는 별도로 입시학원이 아니면서도 준 입시학원의 역할을 하는 소위 속셈학원들이 등장하였고, 부유층 자녀들을 중심으로 한 8학군 중심의 고시학원이나 외국어 학원 등이 준 입시학원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과외 열풍이 한국을 휘몰아치자 새로운 형태의 과외 산업도 생겨났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학습회’, ‘연구회’, ‘학습관리센터’ 등의 이름을 가지고 과외를 받는 학생과 선생을 연결해주는 ‘과외 복덕방’이다.





1993년 교과지식 중심으로 평가했던 대입학력고사가 고등 사고 능력 측정에 역점을 두면서 통합 교과 출제 형식의 수능으로의 새로운 대입전형제도가 도입되었다.





실시 첫해는 1, 2차로 수능을 두 차례 치렀는데 1차 수능은 쉽게 출제가 되고 2차 수능은 어렵게 출제되면서 ‘온탕’과 ‘냉탕’을 오간다는 비판을 받으며 수능 실시 1년 뒤인 1994년부터는 1회만 실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수능 시험은 새로운 유형의 과외를 탄생 시켰다. 서울 강남에서는 박사학위 소지자가 과외를 하는 ‘박사과외’가 생겨났고, 사교육 시장에서는 명문대 대학원 석사 이상의 학위 소지자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는 등 새로운 형태의 고급 과외가 성행하기 시작하였다.





1995년 대학입시부터는 본고사 실시 대학이 47개 대학으로 늘고 내신 성적의 비중이 40% 이상으로 높아지면서 일부 현직 교사들이 거액의 사례비를 받고 학생들에게 중간 및 기말고사 시험문제를 미리 알려주는 ‘내신과외’가 생겨나기도 하였다.





직장을 잃지 않기 위해 성적조작 및 강제모금 등 학교 측의 비리 요구를 거부하지 못했던 서울 상문고 28명의 교사들이 1994년 3월 15일 기자회견을 한 사건은 ‘내신과외’가 얼마 만큼 일선 학교 현장에 퍼져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러한 입시의 광풍은 학벌 중심의 한국 사회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월간조선≫ 1993년 5월호는 장·차관, 청와대 비서관, 군 검찰 수뇌부, 정부투자기관 사장 등 한국의 엘리트 249명의 출신 학교를 분석해 본 결과 서울법대 출신이 전체 249명 중 33.7%나 되었고, 서울대 출신은 전체적으로 56.2%를 차지했다고 보도 하였다. 이러한 보도는 한국 사회가 서울대를 중심으로 얼마 만큼 집중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사례이다.





결국, 이러한 살인적 경쟁 교육은 사교육비가 공교육비를 능가하는 결과를 낳았는데,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1994년 현재 17조 4,640억 원의 연간 사교육비가 16조 7,578억 원의 공교육비를 능가했으며 정부 년예산의 1/3에 이르는 액수에 이를 정도였다.





‘됐어 이제 /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 / 매일 아침 일곱 시 삼십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에 몰아넣고 /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똑 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 막힌 꽉 막힌 . 널 그리곤 덥석 모두를 먹어 삼킨 / 이 시꺼먼 교실에서만 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 / 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네 옆에 앉아 있는 그 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 수가 있어 / 왜 바꾸지 않고 마음을 조이고 젊은 날을 헤맬까’ 로 이어지는 1994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가 바로 1990년대 교육상을 보여주고 있는 사례이다.





서울대 중심으로 집중되는 학벌 구조는 1995년 12월 출범한 이수성 내각에서 75%가 서울대 출신이라는 점과 곧이어 진행된 1996년 4월 15대 총선에서는 전체 국회의원 299명 중 112명(37.5%)이 서울대 출신이라는 점에서 서울대 중심의 학벌 사회 구조는 더욱 더 고착화되어 가고 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학벌과 경쟁 중심의 한국 교육의 현실은 단순하게는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뿐만이 아니라 가정 파탄과 청소년들의 안타까운 죽음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대 중심의 나라라는 비판 속에 1996년부터는 ‘서울대 관련한 논쟁’이 지속적으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1995년 서울대는 ‘서울대학교 2000년대 미래상’을 통해 획일적 기준에 따른 국립대학 운영은 하향평준화를 초래하므로 서울대특별법을 만들어 서울대를 특수 법인체로 전환해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을 하였다.





이에 반해 1996년 2월 서울대가 불참한 가운데 전국 국립대학 총장 협의회에서는 서울대 특별법이 제정되면 다른 국립대의 위상이 심각하게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서울대 특별법이 아니라 국립대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였다.





이와는 달리 건국대 경제학교 정영섭 교수의 경우 ≪중앙일보≫가 발행하는 월간≪윈≫ 2월호 기고문을 통해 ‘서울대 폐교론’을 주장하면서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교육 개혁 방안 관련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학벌사회에 조응하는 입시전쟁과 사교육 광풍은 1997년 들어서는 생후 3개월부터 시작되는 이른바 ‘옹알이 과외’ 열풍5)을 불러 오기까지 하였다.





2000년 4월 27일 헌법 재판소가 과외 금지에 대한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강남을 정점으로 하는 사교육 시장이 요동을 치기 시작하였다.6)





대치동이 학원 1번가로 등장하면서 당연히 강남의 명문대 진학률이 월등이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2000년 서울대 정시 모집에서 서울 출신 합격자 1,000명 중 강남 8학군 출신은 50.6%였고 서울시내 25개 구별 일반 고교의 서울대 진학률은 100명당 강남구가 2.7명, 서초구가 2.5명으로 가장 많았다.7)





명문대를 입학하기 위해서는 서울 8학군-강남으로의 진입이 기본이었고 강남 진입이 여의치 않는 학부모들은 미국 등의 유학을 선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강남 진입과 유학 열풍은 결국 ‘기러기 아빠’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기도 하였다.





2004년 2월 정부는 야간자율학습 및 보충수업의 부활과 EBS 수능 특강을 중심으로 한 사교육비 경감대책을 발표했는데 온라인 교육 장비 업체들과 온라인 교육업체의 새로운 특수를 만드는 문제를 야기했을 뿐이었다.





이러한 광적인 사교육 열풍과 경쟁 교육은 경찰청의 한 보도 자료에서도 확인이 가능했다.





2004년 5월 경찰청이 불법 노래연습장에 대한 특별 단속 결과 적발된 노래방 도우미 2,255명 중 36.8%인 830명이 가정주부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자녀의 사교육비 때문에 노래방 도우미로 나서게 되었다는 발표는 한국 사회의 경쟁과 학벌 중심의 교육 구조가 어디까지 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교육부가 3불(不)정책8)을 고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4년 10월 이화여대와 연세대 그리고 고려대가 수시모집 학생선발과정에서 시행한, 고교 간 차이를 반영하는 소위 고교 등급제 파문은 결국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대입제도가 초중고교까지 이어지는 경쟁 구조임을 확인시켜주는 사례이다.





이후 2004년 말 노무현 정권이 발표한 ‘2008년 대입 제도 개선안’은 현행 수능을 등급제로 바꿔 지원 자격으로 사용하고, 대신 고교 내신 성적으로 학생을 선발할 것을 주된 내용으로 했으나 서울대를 정점으로 서열화되어 있는 현 대입 제도하에서 수능에서 내신으로의 전환이 경쟁을 축소시키지는 못 한다는 비판에 직면하였다.





실제적으로 첫 적용되는 2005년 고교 교실은 친구 간의 살육의 전쟁터가 되었고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이후 많은 수의 학생들이 비관 자살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속출하기도 하였다.










‘네 성적에 잠이 오냐?’, ‘재 깨워라’, ‘30분 더 공부하면 남편 직업이(마누라 몸매가) 달라진다’, ‘10분만 더 공부하면 마누라가 바뀐다’,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 ‘끝없는 연습만이 살길이다’, ‘10시간 : 서울대, 8시간 : 연대, 7시간 : 이대’










2000년대 중반부터 고등학교 교실에 걸려 있는 ‘급훈’의 내용이다. 2006년 3월 18일 청와대 인터넷 사이트 “열린 마당”에 ‘죽음의 트라이앵글 : 누가 우리를 미치게 만드는가.’ 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올라왔다. 이 동영상은 2008년 대입을 ‘내신 — 수능 — 대학별 고사’로 이뤄진 ‘최악의 삼각형’이라고 주장하면서 정부와 교사 그리고 학원업자 및 대학의 담합을 비판하였다.





2008년 2월 출범한 이명박 정권은 이전 정권과는 달리 정부의 교육정책의 기조를 ‘학교자율화’로 교육정책 기조를 분명히 하였다





2008년 4월 15일 교육과학기술부는 일선 초중고교의 자율성을 확대하겠다면서 교과부 29가지 지침을 폐지하는 내용의 ‘학교 자율화 추진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 계획에 따르면 우선적으로 ‘수준별 이동수업 운영 지침’을 폐지하여 각 학교별로 우열반을 편성하거나 혹은 서울대 입시반 등 특수반을 편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학사지도지침’도 폐지하여 정규수업 시작 전과 저녁 7시 이후 보충학습도 가능하게 하였다. 또한 학원이나 영리단체도 학교와 위탁계약하여 학교 내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4.15 학교 자율화 조치는 광범위한 청소년들의 반발과 함께 “미국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로 이어지는 촛불 집회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0교시가 싫은데 억지로 시키니까 공부도 안 되고, 아침밥을 먹을 권리를 왜 빼앗아 가는지 모르겠다 (중학생 강**).’





‘0교시 허용, 촌지 합법화 등 우리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정책들을 이명박 대통령이 내놨다. 점점 학교가 학원이랑 똑같게 된다 (고등학생 김**).’










2008년 상반기 한국 가정에서 지출한 교육비(사교육비+공교육비)는 총 15조 339억 원으로 집계가 되면서 2007년 같은 기간 13조 7,772억 원에 비해 9.1%가 늘어난 규모이다. 이는 전체 가계 소비지출 243조 9,885억 원 가운데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6.2%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는 수치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사교육비 절반’ 공약과 함께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의 후보 시절 ‘사교육비 절감’ 공약을 무색하게 하는 통계인 것이다.





2008년 11월 실시된 2009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전국에서 59만 명이 지원했는데 전국적으로 출퇴근 시간이 늦춰지고 시험장 200m 이내에는 차량 통행과 경적이 금지되고, 듣기평가 시간에는 비행기 이착륙이 조정되며 지각 수험생 수송을 위해 전국의 경찰력이 동원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도 대입 설명회장에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모여들고 있으며, 전국의 58만 명의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SKY9) 대학을 가기 위한 전쟁을 치른다. 한국의 모든 언론은 주요 지면과 화면을 할애하여 대학수학능력시험장의 이모저모를 보도하고 있으며, 온 국민이 이러한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대학입시에 참전을 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 교육 문제에 대해 외국의 주요 언론 또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일본 ≪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인 구로다 가쓰히로는 한국은 일본에 비해 모든 분야가 압도적으로 중앙집권적인 일극구조의 사회라며 서울대를 그런 구조의 상징이라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학문 세계는 서울대학교를 정점으로 하여 완벽한 피라미드형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서울대 말고는 다른 정상이 없다. 물론 라이벌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하나의 정상을 목표로 하여 사람들은 마구 내딛고자 한다. 이 정상에 오르는 것에 성공한 사람만이 승자이며 나머지는 모두 패자다. 서울 대학교가 라이벌이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것은 서울대의 신문 타이틀이 바로 ≪대학신문≫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10)11) <노사과연>






1) ≪조선일보≫ 1967. 10. 27.






2) ≪조선일보≫. 1967.11.11.






3) 당시 고교 평준화 정책 실시를 두고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인 박지만이가 KS마크라 하는 경기고-서울대, 즉 경기고에 입학할 성적이 안 되어 고교 평준화를 실시하게 되었다는 루머가 돌기도 하였다.






4) 예를 들어 서울대 인기학과 학생들의 경우 적어도 30만원-40만 원 정도의 과외비를 받는 반면 비 명문대생의 경우 20-30만원의 과외비를 받음으로 인해 빈부의 격차가 발생하였다.






5) ≪경향신문≫ 1997.2.16.






6) “교육, 과외특구 대치동이 뜬다” ― ≪동아일보≫ 2000.12.7.






7) 이에 ‘명문대 입학은 우편번호에 달렸다’라는 말이 돌 정도이다.






8) 고교등급제, 본고사 실시, 기여 입학 등 3가지 불가 정책.






9) SKY :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10) ≪월간조선≫. 1996.8






11) 다음은 ‘노동자 교육 이야기 17 - 사교육의 현황과 사교육 해소 방안에 대해 3번째 글, 사교육의 원인 진단 및 해소 방안 관련한 다양한 의견 및 쟁점이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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