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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현장 >
제목 <노동자 교육 이야기 13> 교육의 공공성에 대해
글쓴이 김태균|평등교육 실현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상임대표, 회원 E-mail send mail 번호 218
날짜 2013-01-14 조회수 1993 추천수 104
파일  1358125961_노동자교육이야기13.hwp

  

























들어가면서










2013년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새로움’이라는 의미가 감흥을 못 주고 있는 듯, 2012년 한 해를 정리하거나 마무리하지 못하고 넘어가고 있다. 12월 19일 대통령 선거 이후 곧바로 5명의 노동자 민중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벌어지고, 울산과 평택에서는 여전히 목숨을 건 고공 농성이 전개되고 있으며, 학교 현장에서는 경쟁과 시장화 교육으로 인해 우리의 아이들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현실이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는 것과 무관하게 전개되고 있다.





“투쟁하는 이들에게 ‘새로움’이란 단지 물리적 시간의 변화를 표현 할 뿐, 우리에게 ‘새로움’이란 투쟁의 변화 과정에서 확인될 뿐이다.”라는 어느 투쟁하는 노동자의 말이 생각나듯이 2012년 한 해가 마무리 되고, 2013년 새해가 밝았지만 여전히 우리 모두에게는 투쟁의 변화과정에서 우리만의 ‘새로움’을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번 [노동자 교육 이야기 13]은 필자가 고민하는 지점에 대해 전국의 노동자 학부모들과 고민을 함께 했으면 해서 주제를 ‘교육의 공공성’으로 잡았다.










‘교육의 공공성을 말살하는 신자유주의적 교육 정책 중단하라!!!’, “시장화 경쟁 교육 폐지하고 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자.”










요즘 교육과학기술부 및 각 교육청 앞에서 흔히 듣는 구호이다. 무상급식을 요구하는 투쟁의 현장이나, 서울대 법인화 폐지를 위한 투쟁 현장이나, 시장화 경쟁교육을 반대하는 투쟁의 현장이나 모든 교육 관련 투쟁의 현장에서는 현재의 교육 현실을 극복하고 그 대안적 상으로 ‘공공성’을 주장1)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주장하고 요구하고 있는 ‘공공성’에 대해 과연 정당한 요구인가? 그리고 과연 ‘교육의 공공성 강화2)’가 우리 투쟁의 대안적 상인가? 라는 등의 질문에 한번쯤 고민이 필요할 듯하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뛰어 넘어 교육의 대안으로 공공성을 주장함에 있어 우리는 주저함이 없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번 [노동자 교육이야기 13 ― 교육 공공성]을 통해 모색해 볼까 한다.















1. 교육의 공공성 개념에 대해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공공성’을 치면 “한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일반 사회 구성원 전체에 두루 관련되는 성질”이라 규정3)을 하고 있다.





이에 교육의 공공성이란 ‘교육’이라는 특정한 재화의 ‘공공성’ 즉 ‘교육’ 관련해서 일반 사회 구성원 전체에 두루 관련되는 성질을 굳이 따져 보자면 ‘교육의 공공성’이라 할 수 있다.





‘교육의 공공성’을 이야기해 보자면 그러할 수 있는데 그 이전에 과연, ‘교육’이 공공성이라는 성질을 가지는 재화인가, 혹은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할 듯하다. 공공재란 비배제성(non-exclusiveness)과 비경합성(non-rivalness)을 갖는 재화와 서비스를 말한다. 사적 재화는 소비의 배제성과 경합성을 특징으로 한다. 대가를 지불한 사람이 자기만(타인의 배제) 소비하고 자기가 산 만큼 소비하면 그 만큼 고갈되어(경합성) 다른 사람은 소비할 수 없다. 주택, 자동차, 옷 등이 모두 그러하다.





반면에 공공재는 이 사람 저 사람의 구별 없이 일괄적으로 공급되고, 공동의 형태로 사용된다는 특징을 갖는다.󰡐비배제성󰡑이란 그러한 재화가 사람에 구별 없이 공급되는 재화라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국방 서비스를 사회의 어떤 구성원에게 공급하려고 하면 그 서비스의 소비로부터 다른 어떠한 구성원도 배제할 수 없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공급된다. 󰡐비경합성󰡑이란 어떤 사람이 아무리 공공재를 소비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소비할 수 있는 양이 줄어드는 일은 없다는 뜻이다. 예컨대 어떤 선박이 등대를 이용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이용한 크기 만큼 다른 선박이 이용할 수 있는 양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공공재는 그 사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분할될 수 없는 덩어리로 공급되고 그들에게 공동으로 이용되는 재화인 것이다. 공공재의 대표적인 예로서는 국방, 행정, 사법 등의 서비스, 또는 도로, 교량, 항만, 등대, 공원, 하수도 등의 시설이 있다4).





이어 장상환 교수는 ‘교육’은 대체적으로 공공재적 성격의 서비스지만 사적재화의 성격도 있다고 주장을 하였다5).





즉, 교육은 다른 재화와는 다른 몇 가지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그 예로 효과적 측면과 비용적 측면을 나누어 설명을 하였다.





효과적 측면에 있어서 ‘교육’은 다른 재화와는 달리 그 효과가 단시일 내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용적 측면에서 ‘교육’은 단순히 교육 관련한 시설 등을 만들고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뿐만이 아니라 어떤 사람을 교육시킴으로써 발생하는 기회비용, 즉 그 사람이 교육을 받지 않고 다른  일에 종사했을 때 발생하는 효용과 소득을 고려할시 ‘교육’은 ‘교육을 받는 사람’이 얻는 직접적 효과에 비하여 간접적 효과가 매우 큰 반면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에서 여타의 재화와는 달리 ‘교육’은 대체로 공공재적 성격의 재화로서 부분적으로 사적 재화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장상환 교수 및 네이버 국어사전의 개념을 빌려보면 ‘교육의 공공성’이란 대체적으로 공공재라 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이준구(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교육’과 ‘정부’의 관계를 ‘공공재’와 ‘가치재’와 정부의 역할을 비교 분석하면서 교육과 정부와의 관계를 설명하였다.





즉, 이준구 교수는 정부의 다양한 역할 중 중요한 한 가지가 바로 국방 서비스나 경찰 서비스 같은 공공재를 생산, 공급하는 일이며 공공재와 더불어 정부 개입을 정당화하는 또 다른 준거로 사용되는 가치재를 설명하면서 ‘교육’과 ‘정부’와의 관례를 설명하였다. 이준구 교수는 가치재란 모든 국민이 최소한 일정 수준 이상의 혜택이 돌아가게 만들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정부가 직접 생산, 공급하는 상품으로 예를 들면 의료, 주택, 교육 서비스 등이 있다6)고 하였다.





종합해 보면, ‘교육’이란 공공재이건 가치재이건 ‘정부’가 직접 생산, 공급하는 상품으로 공적(혹은 가치적) 상품이다라고 규정할 수가 있다.















2. 교육의 공공성을 둘러싼 여러 가지 쟁점 형성의 배경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소유의 사적 성격이라는 자본주의의 기본적 골격을 유지해 감에 있어 이를 명문화하는 경제적 이론들이 자본주의 발전과 더불어 발전을 하였다.





자본주의 초기 과정에서는 자본을 소유한 즉 자본가 계급의 이윤 착취를 무제한 허용(?)해주는 자유주의 이론이 판을 쳤다. 자유주의는 말 뜻 그대로 ‘자유’를 지상 최대의 가치로 삼고 있으며 자본이 이윤을 착취하는 시장에서 정부가 개입하여 노동자들에게 실업수당을, 무주거자에게 주택을, 아픈 사람에게 의료적 혜택을, 모든 국민에게 교육적 혜택 등 정부의 사회 복지적 개입을 반대하면서 시장에서의 정부 개입을 전면적으로 반대해 왔다7).





이후, 자본주의 기본적 모순인 생산의 무정부성 및 20세기 초 쏘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권의 등장 등으로 인해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수호하기 위하여 기존의 ‘자유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케인즈주의가 등장하고 이를 설파하는 케인즈 이데올로그들이 전면에 등장을 하였다. 케인즈주의의 핵심은 시장과 민간 부문이 국가의 간섭이 없는 상태에서 가장 잘 작동한다는 ‘자유주의’와는 달리 정부의 적극적 개입8)을 주장하는 이론이다. 케인즈주의 출현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별도의 장에서 하겠지만 최소한 1930년대 대공황과 1900년대 초 쏘련 등 사회주의 국가의 등장 등으로 인해 체제적 위기를 느끼고 있던 세계 부르주아 계급의 입장에서 무조건적인 ‘자유’만을 외쳐대는 ‘자유주의’ 이론과 이에 맞는 정책만으로는 도저히 현재의 체제적 위기9)을 극복할 수 없겠다는 판단에서 출현했다는 역사적 필연성을 확인하고 넘어가자.





케인즈주의 이후 등장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이에 먹고 사는 이데올로그들의 출현은 1980년대부터 쏘련을 중심으로 한 세계 사회주의권의 반혁명 움직임과 1930년 대공황 이후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 즉 공황10)에 대한 자본가 계급의 생존의 논리이자 필연적 배경이 되었다.





사회주의권도 붕괴되고,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로 인해 자본가 계급의 입장에서는 이윤을 착취하기도 만만치 않은 조건에서 굳이, 케인즈 이데올로그들이 주창하듯이 정부 개입을 통해 사회 복지적 혜택을 노동자 민중에게 줄11) 필요성이 없었다.





더구나 끊임없이 하락하는 이윤율로 인해 이윤을 획득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자본가 계급의 입장에서는 케인즈주의가 달갑지만은 않은 것이다.





결국 케인즈주의와 이에 먹고 사는 케인즈주의 이데올로그가 판을 쳤던 20세기 초·중반 정부가 생산·공급했던 공공재 또는 가치재를 모두 시장에 내다 팔고, 노동자 민중에게 주었던(혹은 빼앗겼던) 사회 복지적 시스템을 무참하게 파괴하는 새로운 자유주의 즉, ‘신자유주의’가 1980년대 후반12)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이윤을 착취하는 자본가 계급에게 무한정한 자유를 주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다양한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시장에서의 정부 역할을 축소하고, 나아가 정부가 생산하고 판매했던 국공기업의 민영화작업들이 진행되었다.





물론 이윤 착취의 극대화를 위해 이에 반대하는 강력한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는 작업과 동시에 매우 저렴한 비용에 노동자들을 사용할 수 있도록 고용관계의 변화13)를 꾀함을 잊지 않고 말이다.





어째든 198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공공재(혹은 가치재)에 대한 정부 책임 방기 및 노동시장 유연화 공세로 나타났으며 이 과정에서 ‘교육 공공성’ 관련한 다양한 쟁점 또한 나타났다.















3. 교육 공공성 관련한 여러 가지 쟁점










신자유주의 등장과 더불어 나타난 ‘교육 공공성’ 관련한 논쟁은 크게 ‘교육’의 위기 극복을 위해 공교육을 민영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교육’의 공공성을 확대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눌 수가 있다.





현재의 ‘교육’의 위기는 ‘공교육’의 위기에 있다. ‘공교육’이 위기인 이유는 ‘공교육’에 경쟁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14). ‘교육’은 공공재가 아니며 현재의 ‘교육’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철저하게 시장경제 논리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신자유주의 출현 이후 한국 정부의 교육정책의 일관적 내용15)이었다.





이에 반해 현재의 ‘교육’의 위기를 ‘공교육’의 위기에서 찾는 것은 동의되나 ‘공교육’의 민영화 혹은 시장화라는 신자유주의적 방법이 아니라 ‘공교육’의 공공성을 확대 강화하는 과정에서 ‘교육’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16)으로 나눌 수가 있다.





이에 신자유주의적 논리 속에 ‘교육’ 혹은 ‘공교육’의 민영화를 주장하는 논리에 대해서는 이장에서 논외로 하기로 하고 주되게 ‘교육’ 또는 ‘공교육’의 공공성 강화를 주장하는 쪽의 쟁점들을 전국의 학부모들에게 소개할까 한다.





현 ‘교육’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교육’ 또는 ‘공교육’의 공공성을 주장하는 부류는 소위 진보진영의 대응 방식이다17).





진보진영의 대응 방식 즉, ‘교육’이나 ‘공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자는 주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우선 첫 번째가 ‘교육’의 권한을 시장에 대폭 이양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저지해야 한다는 주장18)이다. 이들은 지금의 교육 정책은 ‘자율화 확대’와 ‘수월성 추구’라는 미명하에 교육의 공공성을 포기하고 있다고 한다. ‘교육’이 사고 팔수 있는 서비스가 되어 버리면, 가진 사람들이 양질의 서비스를 독점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는 교육이 계급(계층) 구조화의 첨병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들은 지금의 교육 정책은 교육을 시장의 요구에 종속시킴으로서 오로지 ‘실용적’ 교육만이 판을 치고 ‘비판적’ 교육은 설 자리를 얻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에 이들은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 저지하고 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에 반해, 또 다른 진보진영은 위의 주장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단일하지는 못하고 여러 결을 보이고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한국의 교육은 국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통제되는 과정에서 관료화, 획일화되었다는 점에 비판의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근대 산업사회의 획일주의적 교육방식은 한계에 도달했고 따라서 교육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한다. 지금의 대량생산 체제적 교육은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에 필요한 창의성을 길러주기 어렵고, 지금의 주입식 교육은 비판적 주체를 형성하는 데도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이런 관점에서 지난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의 교육개혁에 신자유주의적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19), 획일주의를 극복하려는 요소도 있기 때문에 선별적으로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





전자는 후자의 선의(善意)를 인정한다 해도 결과적으로는 그들이 신자유주의를 지지/지원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비판한다.





신자유주의가 득세한 상황에서 ‘자율성 확대󰡑란 교육에 대한 권력을 시장에 넘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율학교에서 여러 가지 진보적 시도와 실험이 행해지겠지만, 큰 맥락에서 볼 때 그러한 시도와 실험은 고급 사립학교의 출현으로 귀결될 것이고, 이것은 결국 공교육이라는 댐을 무너뜨리는 구멍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와는 달리 ‘교육’의 공공성을 주장하면서 한편으로는 창의성과 자율성 확대를 함께 주장하는 견해도 있기도 하다.










4. ‘교육’의 위기의 극복 방안은 ?










현재의 ‘교육’의 위기에 대해서는 별도의 장에서 많은 이야기20)들을 하였다. 이에 주요하게 현재의 ‘교육’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에 대해 대안적 내용으로 제출되고 있는 ‘교육 혹은 공교육의 공공성 강화’ 주장에 대해 필자의 생각을 전국의 학부모들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학교가 이데올로기 기구로 비판을 받는 것은 학교가 ‘공공성’을 가장하여 특수한 계급의 이익을 관철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의 공공성이란 즉, 교육의 이데올로기성이다.”21)










‘교육’, ‘공교육’의 현장은 학교이다. 계급사회에서 ‘학교’란 이데올로기 기구이다. 즉,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교’란 자본가 계급의 이데올로기 기구인 것이다.





그러나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기구로 ‘학교’가 만들어졌다고 무조건적으로 그렇게만 작동하지는 않는다.22). 그러하기에 ‘학교’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충돌하는 역동적 장이며, 이는 자본가 계급과 학교 구성원 즉 교사, 학생, 학부모들과의 투쟁의 장이기도 한 것이다. 충돌의 장임과 동시에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기구로서의 역할 즉 교육과정 자체, 교수방법 자체, 각종 잠재적 교육 과정 등 ‘학교’에서 벌어지는 모든 영역에서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진보진영이 주장하고 있는 ‘교육 공공성 강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기구로서의 ‘공교육’에 대해 공공성을 강화하자는 주장은 결국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철저하게 지배계급의 이해와 요구에 ‘공교육’이 복종할 것을 주문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주장이 ‘교육’의 위기를 극복함에 있어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인가?





그리고 더욱 더 문제는 ‘공공성’이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 측면에 대한 간과 지점이다.





그동안 알뛰세르에서부터 지루 그리고 애플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교육학자들이 주장했던 부분이 바로 ‘교육 공공성의 허위’였다.





즉, ‘학교’라는 교육 현장이 이데올로기 기구로 비판을 받는 이유가 바로 ‘학교’가 ‘공공성’을 가장하여 지배계급의 이익을 관철하고 있기 때문이다23).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공성이란 결국 자본가 계급의 국가권력이 직접 생산하고 공급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며, 자본주의라는 계급사회에서 탈계급적이고 중립적인 ‘공공성’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상화된 공교육, 공공성이 강화된 공교육이 오히려 노동자 민중의 의식을 제대로 마비시키는 더 무서운 자본가 계급의 이데올로기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한국의 교육은 그나마 이데올로기 기구로서의 역할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시스템 영역에서는 일제고사, 교원평가제, 학교 평가 및 대입제도 등 철저하게 승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식의 자본가 계급의 이데올로기 기구로서 존재하지만, 교육의 내용적 측면에 있어서는 이데올로기 기구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





일례를 들면 반공 교육 등 교육적 내용조차 철저하게 입시교육의 기능적 수단으로 바뀌어 제대로 의식화 교육의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국 교육의 현실은 그 어떠한 이데올로기 교육을 하더라도 대입 시험을 위한24) 기능적 수단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입시교육 중심의 ‘학교’현장은 그 어떠한 교육적 내용조차 시험만을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기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역설적으로 자본가 계급의 입장에서 보면 철저하게 ‘공교육의 공공성’이 강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 공공성이 훼손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교육’의 이데올로기적 기구로서의 성격과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의 공공성이 훼손되어 있는 현실에서 ‘교육의 위기 극복’을 위한 ‘공교육 공공성’ 주장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필자는 ‘교육 공공성 강화’ 주장에 대해 반대하기 때문에 현재의 ‘교육의 위기’를 옹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역으로 현재의 ‘교육의 위기’, 시장화 교육, 경쟁화 교육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제출되고 있는 ‘교육’, ‘공교육’의 공공성 강화 주장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 교육의 위기 현실에 가장 중심점인 대학 평준화와 입시 폐지의 대안으로 제출되고 있는 가치중립 적이고 몰계급적인 ‘공공재로서의 공교육 주장’에 대한 문제점을 극복하자는 것이다.





현재의 한국 교육은 시스템적으로는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고 시장에 맡기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이데올로기적으로 지배계급의 의식화 도구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한국 교육으로 인해 노동자 민중은 살인적인 경쟁으로 인해 학생과 교사는 살인적 경쟁에 시달리며 사회적 학살을 당하고 있고, 학부모들은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을 정도의 교육비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현재의 ‘교육’의 위기 극복 방안은 ‘교육 혹은 공교육의 공공성 강화’가 아니라 경쟁교육 폐지와 사회 복지적 개념에서의 무상 교육을 요구해 들어가는 슬기로움이 필요할 듯하다.





물론, 필자의 ‘사회 복지적 개념에서의 무상교육’이라는 주장에 대해 또 다른 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최소한 ‘사회 복지적 개념에서의 무상 교육’이라는 주장은 ‘공공성’이라는 몰계급적 개념을 동원하여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기구로서의 ‘교육이나 공교육’을 통해 지배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관철하는 계급적 대립 전선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가 있는 주장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교육’ 혹은 ‘공교육’이 몰계급적이고 중립적인 개념이 아니라 계급 사회에서 철저하게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기구로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폭로하는 것이기도 하다. <노사과연>















참고자료










고길섶(2001), “주어진 공공성에서 만드는 공공성으로”, 2001, 4월호, 서울 ; 문화과학.





엄기호(2001), “국가와 시장을 넘어”, 2001, 4월호, 서울 ; 문화과학.





윤봉준(1997), “교육위기는 공교육의 민영화로”, 서울 ; 자유 기업 센타.





장상환(2001), “복지와 사회적 투자, 교육 공공성.”





헨리지루(1990), “교육운동과 저항”, 서울 ; 성원사.






1) 물론 공공성 강화 투쟁은 교육 현장뿐만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의 투쟁 현장이며 어디서나 인기를 받고 있는 구호이자 투쟁의 대안적 성격으로 취급되기도 하고 있다.





2) 혹은 ‘교육의 공공성 쟁취’.





3)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3195900.





4) 장상환(2001), “복지와 사회적 투자, 교육 공공성.”





5) 위의 글에서.





6) http://opinionx.khan.kr/240.





7) 물론 자유주의는 단지 시장경제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8) 실제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유주의나 케인즈주의나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하고 있는 상태임. 이는 계급사회에서의 국가의 성격 규정이나 당장은 중앙은행의 화폐 발권 행위 등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9) 20세기 초 쏘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적 혁명의 움직임 및 1930년대 대공황 등 자본주의 전반의 위기.





10) 편집자 주: 공황은 “1930년 대공황 이후 주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 19세기 초부터 대략 10년 주기로 발생했다. “1825년의 공황에 의해 비로서 대공업이 주기적 순환이라는 자기의 근대적 생애를 개시하게 된다” (칼 맑스, ≪자본론≫ 1권 서문 중에서).





11) 여기서 20세기 사회주의권의 출현과 유럽국가 중심으로 한 사회 복지적 시스템은 단지 자본가 계급이 준 것 만의 의미가 아니라 세계 노동자 계급의 투쟁의 성과적 의미가 있었다.





12) 편집자 주: 신자유주의는 1980년대 후반이 아니라, 1970년대 후반부터 영국의 대처정권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13) 외주, 특수고용 등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 확대를 중심으로 한 노동시장 유연화.





14) 윤봉준(1997), “교육위기는 공교육의 민영화로”, 서울: 자유기업센타.





15) 이는 1987년 직선제 이후 노태우 정권 - 김영삼 정권 - 김대중 정권 - 노무현 정권 - 이명박 정권 등 여야 정권교체와는 무관하게 전개된 교육 정책적 내용이다.





16) 고길섶(2001), “주어진 공공성에서 만드는 공공성으로”, 2001, 4월호, 서울 ; 문화과학.





17) 물론 진보진영내에도 현 ‘교육’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공교육’의 공공성 보다는 상대적으로 대안교육이나 대안학교 등을 고민하는 진보진영도 존재한다. 그러나 본 장에서는 ‘공교육’을 중심으로 한 공공성 강화론 자들 중심으로 논의를 하고자 한다.





18) 엄기호(2001), “국가와 시장을 넘어”, 2001,4월호, 서울 ; 문화과학.





19) 이들 중에는 정부의 교육개혁이 신자유주의적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며, 아예 󰡐신자유주의󰡑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20) 이에 대해서는 필자의 글 “노동자 교육이야기” 2011년 교육운동포럼 소개 글을 추천한다.





21) 헨리지루(1990), “교육운동과 저항”, 서울 ; 성원사.





22) 헨리지루(1990), “교육운동과 저항”, 서울 ; 성원사.





23) 헨리지루(1990), “교육운동과 저항”, 서울 ; 성원사.





24) 혹은 취업 시험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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