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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정세 >
제목 날조된 거짓이 지배하는 미친 세상―그리고 사이비 좌파의 계급모순ㆍ민족모순론
글쓴이 채만수 | 소장 E-mail send mail 번호 234
날짜 2013-04-26 조회수 3562 추천수 133
파일  1366914682_날조된 거짓이 지배하는 미친 세상.hwp

  

























국보법으로 언로를 막겠다는 법무장관










주지하는 것처럼, 속칭 ‘조ㆍ중ㆍ동’은 속칭 ‘문ㆍ매’와 더불어 이 시대 우리 사회의 대표적 극우 독점자본의 신문이요 매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는 여기에서 ≪중앙일보≫의 기사를 길게 인용하는데, 정철근 사회2부장 명의의 “미국도 냉전 땐 표현의 자유 제한…한국 안보 상황 그때보다 더 위험”(2013. 4. 22.)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현재 우리나라의 안보 상황이 한국전쟁과 동·서 냉전이 벌어졌던 1950년대 미국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하다”고 말했다.





황 장관은 지난 18일 중앙일보와의 단독 인터뷰 자리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 국가보안법 7조(찬양ㆍ고무) 적용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그는 “미국에서도 안보 상황에 따라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한계가 바뀌어 왔다”며 “50년대 미국에선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 아니더라도) 위협의 경향성이 높다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도록 원칙이 변경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50년대 미국은 냉전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었지만 본토에 직접적인 군사위협이 있었던 정도는 아니었다”며 “외국인들이 여행을 자제할 정도인 현재 우리 안보 상황이 (50년대 미국보다) 안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





그는 “지금도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우리 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글들과 자료들이 돌아다니고 있다”며 “이런 부분에 대해 엄정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에서 어떤 주장을 하면 굉장히 단시간에 우리 사회에 퍼진다. 민주적인 자유로운 주장은 최대한 보장해야 하지만 ‘종북’에까지 이르는 안보 위해 사범에 대해선 우리 사회가 명백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보도가 전하고 있는 것은 박근혜 정권 법무부 장관의 공식적 발언인데, 그 의미는 누가 보더라도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 국가보안법 7조(찬양ㆍ고무)[를] 적용”하여 “지금도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과 같은 “우리 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글들과 자료들...에 대해 엄정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 즉 ‘국가보안법’으로, 즉 국가의 폭력으로 대중의 입과 귀를 틀어막겠다는 것이다. (그 틀어막겠다는 발언이 필시 “오빠는 강남 스타일”이나 “아, 호랑나비” 같은 것은 아닐 터이니 곳곳에서 “공안정국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냐?” 하는 항의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물론 ‘자유 대한’의 법무장관답게 “민주적인 자유로운 주장은 최대한 보장해야 하지만”이라고 말씀하시지만, 그 말씀은 “하지만 ‘종북’에까지 이르는 안보 위해 사범에 대해선 우리 사회가 명백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고 이어진다. 역시 누가 보아도 방점은 분명 뒤에 이어진 말씀들, 즉 “‘종북’에까지 이르는 안보 위해 사범에 대해선 우리 사회가 명백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에 찍혀 있다.





그런데 여기에 의문이 있다.















‘종북’이라는 허깨비










우선 이른바 ‘종북’ 문제이다! ― 이 ‘종북’이라는 말은, 주지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대표적, 사실은 자칭 ‘진보적인 지식인들’ 혹은 ‘진보적 정치인들’의 일부, 보다 구체적으로는 특히 지금 ‘진보신당’(법률적으로는 해체상태이지만)의 지도부 일각을 형성하고 있는 인간들인 구 ‘사회당’이 선도하고, 역시 지금 ‘진보신당’과 ‘진보정의당’의 지도부를 형성하고 있는 인간들이 구 ‘민주노동당’으로부터 분열해 나올 때에 유행시켜 이제는 진보적 노동자ㆍ농민ㆍ지식인들에 대한 극우의 대표적인 비난ㆍ고발의 언어로 되어 있지만, 사실 우리 사회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직시한다면, 사실상 도무지 성립할 수 없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저들이 말하는 소위 ‘종북’은 “북의 주의ㆍ주장을 추종하고 선전한다”는 의미이고, 이때 ‘북’은 분명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혹은 평양 측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노동자ㆍ대중들에게는, 그리하여 ‘종북(주의자)’라고 비난ㆍ적대 받는 사람들에게는 그 ‘북’의 발언, 그 ‘북’의 주의ㆍ주장들을 듣고 볼 기회조차 사실상 완벽하게 봉쇄되어 있다. 그렇지 않은가? 북의 신문ㆍ잡지들을 볼 수가 있나? 기타 북이 발행하는 서적들을 볼 수가 있나? 방송을 들을 수가 있나? 북의 어떤 싸이트에 인터넷을 연결할 수가 있나? 사실상 모두 다 완벽하게 막혀 있다. 가끔 TV 뉴스나 신문에 ‘북’의 발언을 보도한다고? 그것은 모두 누가 듣고 보아도 ‘북’의 그 발언이 틀렸다고 들리고 읽히도록 앞뒤를 잘라 편집한 것이다. 그 때문에 아무리 철면피한이라도 그것으로 ‘북의 주의ㆍ주장을 들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 사회에도 북의 주의ㆍ주장을 듣고 읽는 자유를 누리는 극소수의 인간들이 있다. 예를 들면, 대북(對北) 관련 정보기관원들이나 대북정책 담당자들, 그리고 “북핵과 김정은 체제의 권력구조”(≪진보평론≫ 제55호, 2013년 봄호, pp. 176-197) 따위의 논문을 쓰는 박영자 교수님 같은 일부 ‘학자들’이다. 그러나 한 자밤1)도 안 되는 이들은 모두 ‘종북’이라고 비난ㆍ적대 받는 사람들의 대극(對極)에 서 있는 인간들이다.)





결국, 우리 사회의 현실을 조금만이라도 직시한다면, ‘종북’이란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북’의 주의ㆍ주장을 추종하고 선전한다는 말이다!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북’의 주의ㆍ주장을 추종하고 선전한다? 이 참으로 어이없는 주장! 그런데 이런 어이없는 주장이 이 사회에서는 당당히 시민권을 얻고 있을 뿐 아니라 지배의 무기이기도 하다!















진실을 말하는 자는 ‘종북’에까지 이르는 안보 위해 사범?










두 번째 의문은 법무장관 말씀에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는 “민주적인 자유로운 주장”이 과연 무엇인가이다! ― 제정신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러한 문제제기 자체가 의아하게 들릴 것이다. ‘민주적인 자유로운 주장’이란, 사실상 그 자체로서 명확한데다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단언컨대,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즉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과학적 진리나 사회적ㆍ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것을 가리켜 ‘민주적인 자유로운 주장’이 아니라고는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인가? 그렇다, 정말이다.





생각해보라.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 미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과학적 진리나 역사적ㆍ사회적 진실을 밝히는 것을 가리켜 ‘민주적인 자유로운 주장’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런데 ... 어떤 사회, 어떤 세상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어떤 사회, 어떤 세상에서는 제정신을 가진 사람들, 미치지 않은 사람들이 미친 사람으로 취급되어 고문ㆍ핍박을 받고, 심지어 화형ㆍ사형을 당해왔고, 당하고 있다. 그리고 거짓의 지배가 물론 당분간이지만 그 사회를 지탱시키는 주요한 기둥의 하나였다.





이 미친 사회란 다름 아니라 계급사회, 특히 위기에 처한 계급사회이고, 그 중에서도 특히 독점자본ㆍ제국주의 지배하의 사회이다. 예를 들면, 봉건제가 위기에 처했던 중세 말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있으며 하늘의 태양과 별들이 지구를 돈다는 교회의 천동설에 반대하여 지구의 자전설을 강의하다가 핍박을 받았고, 부르노(Giordano Bruno, 1548년-1600년 2월 17일)는 공개적으로 화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화형을 당하는 나보다 나를 화형에 처하는 당신들이 더 공포에 떨고 있다”는 법정 진술을 남기고!





독점자본ㆍ제국주의 지배하의 우리 시대에는 어떤가? 우리의 현대사는 어떤가? 혹시 천동설에 반대하여 지구의 자전설을 주장했다고 하여 화형에 처해지는 것과 같은 미친 세상은 아닌가? 우리로 하여금 ‘북’의 주의ㆍ주장은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하면서 ‘찬양ㆍ고무’, ‘종북(주의)’ 운운하며 단죄하는 저 국가보안법은 과연 무엇을 단죄하는 것일까?





비겁하고 비겁하여, 국가보안법이 무서워 남의 문제를 묻지만, ― 예컨대, 1965년 이후 수하르토 정권하의 인도네시아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는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으나, 반제국주의ㆍ비동맹주의를 추구하던 수카르노 정권을 몰아내고 친미 수하르토 정권을 확립ㆍ유지하는 과정에서 최소 50만 명 이상 최대 25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노동자ㆍ농민이 ‘공산주의자’라는 혐의 등으로 학살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이 미친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자신들의 국가ㆍ정부에 의해서 학살되었다는 사실을 인도네시아에서는 지금 젊은 세대들,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밝히고 교육하고 있을까?





이미 이승만ㆍ박정희가 권좌에서 쫓겨나고 세상을 떠난 지 오래인 것처럼, 수하르토가 권좌에서 쫓겨나 세상을 떠난 지 오래인 지금 인도네시아 정부는 그 피학살자가 “7만 8000명에 불과하다”(이승선, “청산 거부하는 수하르토의 유산, 무책임과 부패”, <www.pressian.com> 2008. 1. 28.)고 마지못해 ‘인정’하고 있는 모양이다. ‘진실을 밝히고 학살자들을 단죄하는 것’은 물론 노동자ㆍ인민의 역사적 몫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남의 얘기만은 아니다.





이런 얘기도 있지 않은가?










20세기 정치사에서 독재와 부패를 상징하는 인물은 여럿이지만, ... 수하르토(1921-2008)는 최악의 인물로 꼽힐 만하다. ‘200만 명 투옥, 100만 명 사망’ 이란 말이 압축해 보여주듯, 수하르토의 32년 인도네시아 철권통치 기간에 숱한 사람들이 붙들려가 옥고를 치르거나 죽었다. 특히 1965년 당시 육군 소장이던 수하르토가 ‘공산주의자들’의 반란 음모를 진압한다는 구실로 좌익계 100만여 명을 숙청한 ‘피의 역사’는 인도네시아 현대사에서 지울 수 없는 참극으로 기록됐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이 수하르토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국제투명성기구(TI)는 지난 2004년 수하르토를 세계 최악의 부패 지도자로 꼽으면서, 그가 32년 집권 기간에 무려 350억 달러를 제 속주머니에 챙겼다고 비판했다. (김재명, “수하르토와 키신저”, ≪한겨레21≫ 제697호, 2008. 2. 14. <legacy.www.hani.co.kr/section-021157000/2008/02/021157000200802140697037.html>)










사람은 죽는다. 독재자도 사람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대도,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다. 더러는 수하의 총탄에 맞아 비명에 가기도 하고, 더러는 마지못해 권력을 내놓은 뒤 훔친 재산으로 호사를 누리다 가기도 한다. 인도네시아의 은퇴한 독재자 수하르토는 후자에 속한다. ...





지난 1999년 5월 시사주간지 <타임>은 수하르토 일가가 현금과 주식ㆍ부동산 등의 형태로 보유한 자금이 150억달러(약 14조1930억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 수하르토의 인도네시아는 여러 모로 한국과 닮아 있다. (정인환, “어쨌든 수하르토여 쾌유하라”, ≪한겨레21≫ 제695호, 2008. 1. 24. <legacy.www.hani.co.kr/section-021019000/2008/01/021019000200801240695002.html>















사이비 좌파의 계급모순ㆍ민족모순론










그런데 노동자ㆍ인민이 그 역사적 몫을 다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사회의 구조와 발전법칙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체득하여야 하고, 그 사회의 구체적 정세를 현실적ㆍ역사과학적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되며, 그러한 과학적 인식에 기초하여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중동 지역을 포함한 아시아ㆍ아프리카ㆍ라틴 아메리카의 민족ㆍ국가의 경우 제국주의의 문제는 그러한 과학적 인식과 투쟁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수하르토 정권 하에서 “동티모르 인구 3분의 1을 죽인 억압통치의 길을 튼 것은 키신저였”다거나 “수하르토가 저지른 여러 악행 가운데 동티모르 침공과 무차별 학살은 지구촌 평화주의자들에겐 잊지 못할 일”인데, “그 뒤에는 역시 미국이 있었다”(김재명, 같은 글)는 말도 있지만, 사실은 아시아ㆍ아프리카ㆍ라틴 아메리카에서 벌어져 왔고 벌어지고 있는, 그리고 사실은 쏘련 해체 후 발칸반도에서 벌어진 “피의 역사”(김재명, 같은 글)의 배후에는 미국을 위시한 제국주의가 있었고, 미국을 위시한 제국주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 사회에서의 계급 지배와 착취는 바로 그 제국주의에 의해서 보증되고 있고, 그 제국주의 착취ㆍ지배 체제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소속 정당(진보신당)으로 봐서 필시 ‘좌파’임을 자부할 한 ‘진보적’ 교수님께서는 이른바 ‘북일 반미 연대’(―실제 존재하는지 의문이나, 아무튼 교수님께서 의미하는 것은 ‘북’과 ‘일본공산당’ 사이의 ‘반미 연대’이다―)에 대한 논의를 결론지으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북한에서 반미의식은 체제의 이념을 대표하고 체제를 옹호하고 체제의 모순을 봉합하는 것임에 비해, 일본에서의 반미의식은 체제를 비판하고 체제의 모순에 균열을 가하는 것으로 시작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의 아시아에 대한 지배에 저항한다는 공통의 목표를 내걸고 있으면서도, 북일 간의 반미 연대는, 북한에는 체제 유지와 강화로 이어지고 일본에는 체제비판적인 움직임과 연결되는 모순을 갖고 있으면서도, 양자는 계급모순을 민족모순의 하위에 두거나 무시하고, 국가라는 존재를 회의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반미와 내셔널리즘의 연결고리를 끊지 않고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을 전면에 내세우는 위험은 당시나 지금이나 그 밑바닥에서 국경과 이데올로기 대립을 넘어 무기에서부터 사람까지를 유통시키는 자본의 존재를 베일 속에 가린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아시아 반미연대의 모순은 미국이라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면 드리워질수록 어둠 속에 가려지기 쉽고, 또 그 만큼 아시아 해방투쟁의 지난함을 말해주는 것임은 북일 반미연대의 긴 역사가 배태한 역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임경화, ““미제는 우리의 원수”: 북일 연대 투쟁의 패스워드 ― [북일 민중연대의 기억들] 친미국가와 반미국가의 공통점과 차이”, <www.redian.org/archive/53781>, 2003. 4. 22.)










이 인용문들 가운데 두 번째 문단을 주목해보자. 그것은 의미상 첫 번째 문단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고, 또 이 두 번째 문단의 자가당착적이고 반(反)사실적ㆍ반(反)변증법적 ‘의의’가 밝혀지면, 그 뒤 문단들의 ‘(무)의의’ 또한 저절로 명백해지기 때문이다.





우선, 교수께서는, “미국의 아시아에 대한 지배에 저항한다는 공통의 목표를 내걸고 있으면서도, 북일 간의 반미 연대는, 북한에는 체제 유지와 강화로 이어지고 일본에는 체제비판적인 움직임과 연결되는 모순을 갖고 있”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그런데 바로 앞의 문단에서는 “북한에서 반미의식은 체제의 이념을 대표하고 체제를 옹호하고 체제의 모순을 봉합하는 것[‘체제의 모순을 봉합하는 것’? ― 이 역시 분명 교수님의 반북의식의 표현이다: 인용자]임에 비해, 일본에서의 반미의식은 체제를 비판하고 체제의 모순에 균열을 가하는 것으로 시작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성격을 갖고 있다...”고 얘기하셨다. 그렇다면, “북일 간의 반미 연대”가 “북한에는 체제 유지와 강화로 이어지고 일본에는 체제비판적인 움직임과 연결되는” 것이 어찌, 그 논리적ㆍ정치적 귀결이 아니고, “모순”이란 말인가? 교수님 스스로 자가당착, 논리적 모순을 범하고 있으신 것 아닌가?!





그리고 교수님은 말씀하신다. ― “양자는 ... 국가라는 존재를 회의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고. 교수님의 논의에 의하면 “북한에서 반미의식은 체제의 이념을 대표하고 체제를 옹호하고 체제의 모순을 봉합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한에서 논리상 ‘북’의 경우 “국가라는 존재를 회의하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북’이 그러한 태도를 취하는 이유를 설명하거나 그러한 태도를 평가할 수 없다. 국가보안법하에서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식들, 즉 사이비 좌파뿐이다!) 그러나 교수님의 논의에 의하더라도 일본의 경우는 이 점에서는 교수님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북’과 “공통”되지 않고 완전히 다르다. “일본에서의 반미의식은 체제를 비판하고 체제의 모순에 균열을 가하는 것으로 시작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성격을 갖고 있다”면, 그리하여 “ 북일 간의 반미 연대”가 “일본에는 체제비판적인 움직임과 연결”된다면, 이는 분명 “국가라는 존재를 회의하지 않고 있”는 것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교수님의 논의는 자가당착적이고 반(反)사실적이다.





그러나 “양자는 계급모순을 민족모순의 하위에 두거나 무시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에 비하면, 그러한 반(反)변증법적 사고에 비하면, 이는 사소한 오류일 뿐이다.





계급모순을 민족모순의 하위에 두거나 무시한다! ― 이러한 발언은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은 전적으로 별개의 것, 상호 독립적인 것이라는 의미를 분명 담고 있다. 그리고 이는 교수님의 말씀일 뿐 아니라 이 사회에서 ‘좌파’라고 자임하는 분들의 다수가 민족문제와 싸우고 있는 사람과 단체들을 ‘우파’로 규정하면서 우쭐대며 내뱉는 말이기도 하다. 즉, ‘좌파들’의 모순론이다.





형식이야 어떻든 실질적으로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고 있는 민족에게 있어서 과연 민족모순은 계급모순의 한 표현형태, 현상형태, 외화형태가 아니라 이 양자는 전혀 별개의 것이며 상호 독립적인 것인가? 식민지ㆍ반식민지ㆍ신식민지적 지배, 그 착취와 억압은 계급적 지배, 계급적 억압과 착취의 한 형태가 아니란 말인가? 그리하여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은 그 어느 것을 상위에 두고 어느 것을 하위에 둘 수 있는 것이란 말인가?





위 교수님의 발언에서 보듯이 저들 사이비 좌파들은 그렇다고 대답하고 있다! 그렇게 망발하면서 반미ㆍ반제투쟁을 조롱하고 적대하고 있다! 저들 ‘좌파’를 자임하는 자들이 ‘종북’이라는 말을 사실상 발명해내고 유행시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민족문제 혹은 민족모순에 대한 저들의 철저한 무지의 산물이고, 반제ㆍ민족투쟁에 대한, 그 무지로 인한 적의의 산물이다. 이 미친 세상을 조장하고 지배하는 거짓은 제국주의와 극우만이 날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좌파’를 자임하는, 그 거짓과 국가보안법의 자식들도 그것들을 날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노동자계급의 전진을 가로막고 있다.





이 날조된 거짓들을 극복하고 단죄하는 것, 그것 또한 이 땅의 노동자ㆍ민중의 무거운 짐이다. 그리고 이는 물론 민족모순을 계급모순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간주하면서 민족문제, 민족모순을 부르주아적ㆍ소부르주아적으로 풀어가려는 일부 ‘민족진영’에도 당연히 해당되는 말이다. <노사과연>






1) 편집자 주: 자밤, 의존명사, 나물이나 양념 따위를 손가락 끝으로 집을 만한 분량을 세는 단위.














... 주로 예를 드신...레디앙의 그 글 말입니다. 인상 깊은 구절은,

"북한 아카데미즘의 설립자들이 공동 집필한 김일성대학 강의록 『조선민족해방투쟁사』(조선력사편찬위원회, 1949)에서 찾아도 좋을 것이다."

저같은 범인이 이런 책을 구해서 읽는 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테지요? 감옥가라는 건가?
반대로 말하자면 이 글은 이런 부분을 인용해도 사회에 해를 끼치지 ? 않는 건전한 내용이라는 것을 의미할 테지요?
사실 이 글은 일본이라는 글자를 '남한'으로 바꾸어 읽어도 거의 동일합니다. 굳이 어렵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일본의 예를 들어서면서까지 하시는 이유는, 전공자라서 일까요?
좌우지간 일본 사회운동에서 '반미'운동이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 지' 존재하는 지도 잘 모르겠군요...일본 공산당이 반미라니?
2013-04-27 16:17:12
보스코프스키 인도네시아랑 수하르토 이야기가 나와 언급합니다. 위키백과 항목에 예전에 있었던 CPI(인도네시아 공산당)의 항목이 한글로도 있는데 이 당은 1965년 학살로 소멸합니다.

http://ko.wikipedia.org/wiki/%EC%9D%B8%EB%8F%84%EB%84%A4%EC%8B%9C%EC%95%84_%EA%B3%B5%EC%82%B0%EB%8B%B9 ,
http://en.wikipedia.org/wiki/Communist_Party_of_Indonesia

현재는 ICOR(구 ICMLPO(IN)) 그룹 소속의 REVINDO(동남아로부터의 변혁기구)가 유일하게 존재하는 형국입니다.
2013-04-26 23: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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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3 날조된 거짓이 지배하는 미친 세상―그리고 사이비 좌...[2] 채만수 | 소장 2013-04-26 3562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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