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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정세 >
제목 제18대 대선― 무엇을 주목하고 무엇을 배울 것인가?
글쓴이 채만수|소장 E-mail send mail 번호 228
날짜 2013-01-14 조회수 2305 추천수 100
파일  1358128764_2012년 12월 월례토론회 발표문.hwp

  

























<2012년 12월 월례토론회 발표문>





제18대 대선





― 무엇을 주목하고 무엇을 배울 것인가?















채만수|소장




















I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ㆍ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의 딸을, 혹은 외국의 주요 언론들의 표현처럼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것으로 제18대 대선은 끝났다. 그리고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한편에서는 환호작약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요즘 유행하는 말로 ‘멘붕’ 상태에, 즉 공황 상태에 빠진 모양이다. 후자에 대해서만 얘기하자면, 정권이 바뀌면 뭔가 세상이 달라지리라는 기대, 혹은 정권을 바꾸어 뭔가 세상을 바꿔보려던 의욕이 꺾인 데에 따른 자연스러운 심리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좌절하고 상심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이번 대선의 결과로 세상이 끝난 것도 아닐 뿐더러, 대선의 결과가 실제와 달라서 민주통합당의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었다 한들, 그 뭔가 세상이 달라지거나 바꿀 수 있었던 게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뀌고 또 정권을 바꾸어 세상을 바꾸겠다는 기대와 의욕은 전혀 객관적 근거가 없는 주관적 기대와 환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러 사람에게서 욕먹을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이번의 대선 역시 우리의 기대와 예상을 전혀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II





기대와 예상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그렇다! 으레 그렇고 그렇게 전개되리라는 그 양태와, 으레 그렇고 그렇게 전개되리라는 그 내용에 대한 기대와 예상 말이다.





먼저 그 양태를 보자.





예를 들면, “죽기 전에 이 나라 정치판의 흙탕물을 깨끗하게 청소해 놓고 죽어야겠다는 소명감에 불타”1) 스스로 대선전의 삐에로가 되고자 출마했으나, 박근혜ㆍ문재인이라는 두 마리 고래 사이에서 사실상 전혀 주목조차 받지 못했던 한 라만차의 신사 분께서는 그 양태를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참 나쁜 선거였다. 돈선거, 조직선거, 이벤트ㆍ이미지선거, 한탕ㆍ폭로선거, 비방ㆍ욕설과 세몰이선거, 지역감정선거가 횡행했다.”





“썩어빠진 구태 선거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 모든 불법ㆍ타락선거를 샅샅이 조사하고 발본색원해야 한다.”2)









평생을 부르주아 체제의 편에 서서 살아온 상층 부르주아 인텔리조차 이렇게 개탄하는 “불법ㆍ타락”이 횡행하는 “썩어빠진” “참 나쁜 선거”! 그것이 바로 부르주아 선거판이고, 따라서 이번 대선의 기대ㆍ예상되었던 양태였으며, 실제로도 그 기대ㆍ예상을 저버리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부르주아 선거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아니 누군가 노동자ㆍ인민을 대표하여 부르주아 선거에 출마했을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저 라만차의 신사 분과 우리의 의견의 차이를 여기에서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부르주아적 본능에서 저 신사 분께서는 이번 선거 역시 “한탕ㆍ폭로선거”였다고 개탄한다. 그에 반해서 우리는 이번 선거 역시 “한탕ㆍ폭로선거”조차 되지 못하였다고, 그리하여 우리의 기대ㆍ예상을 바로 그대로 저버리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여러 번 강조해온 바이지만, 맑스와 엥겔스가 말하고 있듯이,3) 어느 사회에서나 지배계급이, 따라서 오늘날에는 소수의 독점부르주아지와 그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 대표자들이 물질적 생산의 수단들뿐 아니라 사상의 생산의 수단들 역시 사적으로, 즉 독점적ㆍ배타적으로 소유하여 좌지우지하고 있다. 당연히 부르주아 사회의 구조와 운동법칙뿐 아니라 저들의 온갖 범죄적 행태들조차, 그것들이 더욱 더 사회적 의의를 갖는 것일수록, 노동자ㆍ인민의 눈과 귀로부터 은폐되고 미화된다. 그렇게 조작과 은폐, 미화가 일상적인 사회에서 ‘선거전’은 그나마 그 일각이 ‘한탕ㆍ폭로’될 수 있는 기회일 터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역시 그러한 ‘한탕ㆍ폭로’는,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가 제1차 TV ‘토론’(?)에서 일제(日帝) 천황에게 혈서로 충성을 맹세한 다카키 마사오를 입에 올린 것 외에는, 사실상 누구에 의해서도,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요란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있다면, ‘한탕ㆍ폭로’가 아니라, 근거 없는, 극우적ㆍ국가주의적 사상을 부추기는 모략ㆍ비방과, 역시 근거 없고 극우적ㆍ국가주의적 사상을 부추기는, 그에 대한 ‘방어’뿐이었다. 대표적으로 소위 북방한계선(NLL)을 국경, 즉 영토선으로 전제한 위에서의 여ㆍ야 간의 사악한 공방처럼 말이다!





그러면 왜 ‘한탕ㆍ폭로’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도리어 극우적ㆍ국가주의적 사상을 부추기는 공방만이 만개했는가?





두 사람 ‘노동자 후보’들의 경우, 대략 말하자면, 역량의 부족, 정치적 사상ㆍ이론의 빈곤 때문이었고, 기타 부르주아 후보들, 특히 현실적으로 ‘대권’을 다툰 여ㆍ야 후보들의 경우, 뭐니 뭐니 해도, 공통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가진, 사실상의 공범자들이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사회의 구조와 운동법칙이, 부르주아지의 착취와 비열한 계급적 범죄들이 밝혀지는 것은 그들 모두에게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온갖 기만적 슬로건으로 가득 찬 이번 대선전의 내용에서 더욱 명백하게 드러난다.





이번 대선을 시종 지배한 공약 혹은 슬로건들은, 극히 심화된 빈부 격차와 그에 따른 계급적 대립과 갈등의 격화를 반영하여, 여ㆍ야를 막론하고 모두 ‘국민대통합’, ‘상생’,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복지’ 등등이었다.





그런데, 듣기엔 그럴싸하지만 실제론 철저히 허구적인 이 슬로건들의 기만성을 선거에 후보로 나선 당사자들 누구도 폭로하지 않았다. 아니, 폭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서로 자신들이야말로 그것들을 실현할 수 있고 실현하겠다고 앞 다투어 떠들어냈다. 엄연히 계급적 분열ㆍ착취ㆍ억압의 사회인 이 부르주아지 지배의 사회, 그것도 독점부르주아지 지배의 사회에서 ‘국민대통합’이니, ‘상생’이니, ‘경제민주화’니, ‘재벌개혁’ 혹은 ‘재벌해체’니 하고 떠드는 것은 그 계급적 분열과 착취ㆍ억압을 은폐하는 사악한 기만이라는 것을, 혹은 ‘국민대통합’이니 ‘상생’이니 하는 것은 기껏해야 독점부르주아 정파끼리의 통합이요 상생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리고 부르주아 사회에서의 ‘복지’는 노동자ㆍ인민의 혁명적 투쟁을 통해서만, 그러한 투쟁으로 부르주아지가 체제적 위협을 느낄 때에만 조금이나마 획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폭로ㆍ선전하는 대신에, 서로 자신이야말로 그 기만적 공약ㆍ슬로건들을 실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역시 두 사람 ‘노동자 후보’들은 역량의 부족, 사상ㆍ이론의 빈곤으로 인한 경제주의적 정치노선 때문에! 그리고 부르주아 후보들은 그 기만성의 폭로가 계급적 이해에 치명적이기 때문에!





더구나 이러한 기만적 슬로건들을 선도한 것은 새누리당의 박근혜 측이었고,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측이나 기타 군소후보들이 이를 뒤따라가는 형태로 대선전이 진행되었으니, 사후적인 평가이긴 하지만, 대선전의 결과는 이미 그러한 모양새 자체 속에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III





이번의 선거 결과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주로 새누리당의 박근혜 대신에 민주통합당의 문재인이 당선되기를 간절히 바란 사람들일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민주통합당이나 그 문재인 후보가 얼마나 새누리당이나 박근혜의 아류(亞流)에 불과한 집단ㆍ인물인가를 간단히 말해두어야 하겠다.





이 두 집단, 두 인물 사이의 공약 혹은 슬로건들에, ‘국민대통합’이니, ‘경제민주화’니, ‘상생’이니 하는 그것들에 사실상 아무런 계급적 차이도 없다는 것은 이미 말한 대로거니와, 문재인은 심지어 “제가 대통령이 되면 국정 운영 과정에서 야당과 [즉, 새누리당과: 인용자]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면서 “대통합 내각을 구성할 때도 야당과 협의해서 야당이 동의한다면 함께하겠다”고까지 했다.4) “일부 지지자가 ‘안 된다’고 소리치자 문 후보는 ‘그래도 함께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5)고 한다.





순진한 지지자들은 ‘국민대통합’이 자신들과 같은 부류와의 통합일 것으로 열광하지만, 저들이 말하는 ‘국민대통합’이니, ‘상생’이니 하는 것의 실체가 사실은 독점부르주아지 분파끼리의 대통합ㆍ상생임을 무심결에 실토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이러한 ‘대통합’ㆍ‘상생’의 정신은 물론 자신의 패배가 확인된 후에도 계속된다. 보도를 그대로 옮기자면,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는 ... 박근혜 당선인에게도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그는 ‘국민통합과 상생의 정치를 펴 주시길 기대한다. 나라를 잘 이끌어 주길 부탁드린다’라며 ‘국민께서도 이제 박 당선인을 많이 성원해 주시길 바란다’라고 말했다.”6)










동일한 가치, 동일한 이해를 추구하고 있지 않고서야, 바로 조금 전까지도 그토록 서로 못 잡아먹어 한이란 듯이 으르렁대던 상대인데, 어찌 “국민께서도 이제 박 당선인을 많이 성원해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할 수 있겠는가?





실제로 김대중 정부도, 노무현 정부도 그 10년 집권 기간 내내 특히 그 경제ㆍ사회 정책들을 통해서 지금의 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치세력들과 동일한 계급적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ㆍ정부임을 실천적으로 입증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에 대한 노동자ㆍ인민의 저항이 강화되자 노무현 정부는, 좌파 신자유주의를 자임하며, 지금의 새누리당인, 불과 1년여 전에 자신을 탄핵했던 한나라당과의 ‘공동 정부’까지 제안하지 않았던가?





한 가지만 더 지적하자면, 언젠가 그 전에도 지적한 바 있지만, 저들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사실은 동일한 계급적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이며, 다만 그 노획물의 분배를 둘러싸고 투쟁할 뿐인 자들, 그러한 집단일 뿐이라는 사실은 선거철만 되면 벌어지는 저들의 소위 ‘이합집산’, 그것도 ‘서로 대립하고 있는’ 집단들을 대표하는 거물들, 심지어 그 총재ㆍ대표를 지낸 인물들이 이 집단에서 저 집단으로 스스럼없이 오고 가는 데에서도 명백하다. 그리고 그들은 이번 대선에서도 역시 기대와 예상을 배반하지 않고 그렇게 작은 통합을 보여주었다. 예컨대, 이번에 이리저리 서로 오고간 한광옥이나 한화갑, 김경재, 김덕룡, 윤여준, 이인제, 이회창 등등이 이 정치판의 어떤 인물들이던가?





이렇게 저들은 결국 한 무리이니, ‘정권교체’를 못하고 다카키 마사오ㆍ오카모토 미노루의 딸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공황상태에 빠질 이유는 없다. 문제는 대선의 양태와 내용을 노동자계급적 관점에서 냉정히 분석하고, 거기에서 교훈을 찾는 것이다.










IV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번 대선 역시 부르주아적, 독점부르주아적, 예속적 독점부르주아적 헤게모니가 철저히 관철된 선거 그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듭 강조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시대, 이 사회에서는 예속적 독점부르주아지가 물질적 생산의 수단들뿐 아니라 정신적 생산을 위한 수단들 역시 사유ㆍ좌지우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본주의적 생산이 발달함에 따라 자본의 집적ㆍ집중이 심화되고, 그리하여 그들 생산수단들이 거대해질수록 그 집적ㆍ집중도 심화되고, 그에 따라 대중에 대한 그 지배력도 강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특히 신문ㆍTVㆍ라디오ㆍ영화 등등 부르주아 대중매체의 위력이 얼마나 압도적이던가!





게다가 한국에는 헌법을 치장하고 있는 기본권 조항들의 상위에 국가보안법이 있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언필칭 진보적 지식인이라는 인사들의 다수, 노동자계급 운동의 활동가ㆍ투사라는 사람들의 다수조차 사실은 도착된 사고를 하는 국가보안법의 자식들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예를 들면, 남쪽에서 선거전이 한창이던 12일 이북에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자 극우 새누리당이나 ‘상대적으로 자유주의적인’ 민주통합당 등 독점부르주아지 정당들뿐 아니라 명색이 ‘노동자 후보’라는 측조차 서로 입을 맞춘 듯이 사실상 한 목소리로 그것을 비난하고 나설 수 있었겠는가?! 미국 등 다른 나라의 그것들뿐 아니라 한국의 실패하고 연기된 나로호 발사까지도 당연시하는 그들이, 사돈 논 사서 배 아픈 것도 아닐 터인데, 유독 이북의 그것에 대해서만은 적의를 보이니 하는 말이다.





그들에게, 진보적 지식인이라는 자들, 스스로 노동자계급운동의 활동가요 투사라는 자들에게 묻고 싶다. 이라크나 리비아, 아프가니스탄 등이, 그 인민이 왜 저토록 제국주의에 비참히 유린당했고, 유린당하고 있는지를! 이 땅, 이 민족이 다시 한 번 더 제국주의에 의해, 그 침략 전쟁에 의해 유린당해도 좋은지를!










V





어느 부르주아 선거에서나 마찬가지로 이번 대선을 겪으면서도 거기에서 끌어낼 수 있고, 끌어내야 하는 크고 작은 교훈이 많겠지만, 나는 특히 두 가지를 여기에서 지적하고 싶다.





하나는, 노동자계급운동, 그 상층의 활동가ㆍ투사들조차 너무나 심각하게 부르주아적ㆍ소부르주아적 사상ㆍ이론에 침윤당해 있고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혁명적 사상ㆍ이론을 획득하기 위한 치열한 투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민대통합이니, 경제민주화니, 상생이니, 복지ㆍ기본소득 같은 몰계급적, 아니 계급 기만적 담론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그러한 사상ㆍ이론의 침윤ㆍ빈곤 때문임은 위에서 지적한 대로거니와,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자본이 축적될수록 대량의 상대적 과잉인구가, 즉 오늘날의 비정규직을 포함한 대량의 실업ㆍ반(半)실업과 노동자계급의 빈곤ㆍ고통이 그만큼 필연적으로 축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폭로ㆍ선전하는 대신에, ‘노동자 대통령’이 등장하면 마치 그러한 실업ㆍ반실업ㆍ빈곤ㆍ고통을 해소할 수 있다는 듯이 주장하는 것, 그리하여 기껏 비정규직 해소 등등의 경제주의적 요구 제출에 머무는 것도 모두 그러한 사상ㆍ이론의 침윤ㆍ빈곤ㆍ비과학성 때문이다! 혁명적 이론 없이 혁명적 실천 없음을 다시 한 번 입증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노동자계급이 그 피착취ㆍ피지배계급으로서의 처지를 극복하려면, 노동자계급의 정치와 투쟁은 역시 우리의 조건에 맞는 노동자계급 고유의 방식으로 조직되고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르주아적 정치는, 이번 대선을 통해서도 여실히 입증된 것처럼, 부르주아지의 헤게모니를 관철ㆍ강화하는 기구이고 방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역시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한국에는 부르주아지의 헤게모니에 조그마한 생채기를 내는 것까지도 잔혹하게 엄금ㆍ탄압하는 국가보안법이 군림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어떤 사람들은 바로 그러한 국가보안법이 그렇게 군림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의 정치와 투쟁을 노동자계급 고유의 방식으로 조직ㆍ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물론 국가보안법은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기 위한 폭력 장치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실제로 불가능하다고 사고하고 말하는 것은 결국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 않는 한 한국에서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불가능하다는 숙명론일 뿐이다.





물론 국가보안법의 폐지 없이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불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폐지조차도 노동자계급이 자신을 자신의 고유한 방식으로 조직하고, 자신의 고유의 방식으로 투쟁하지 않으면 달성될 수 없다. 수많은 노동자ㆍ인민이 “탄핵은 무효!”라며 길거리를 메워 국회의 절대다수를 점했고, 저들 극우세력이 그토록 ‘좌빨ㆍ종북주의’ 정권이라고 몰아세우는 노무현 정권에게조차 국가보안법은 금과옥조였지 않은가!





지난 세기 마지막 10년을 남겨두고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가 해체되었고, 그 훨씬 이전에 부르주아 국가의 수많은 공산당ㆍ노동자당들이 허울만 남은 그것으로 전락해갔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는 어김없이 노동자계급 자신의 고유한 사상ㆍ이론ㆍ방식의 이완과 포기, 부르주아적 그것들의 침윤이 있었다. 바로 수정주의, 기회주의의 침윤과 발호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노동자계급 자신의 사상ㆍ이론ㆍ방식을 획득하고 강화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비근하게, 부르주아지가 봉건적 사상ㆍ이론ㆍ방식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그들이 과연 봉건제를 극복하고 부르주아 사회, 부르주아 시대를 열 수 있었겠는가?! <노사과연>






1) 고성호 기자, “[박근혜 대통령 당선]강지원 ‘구태 얼룩진 참 나쁜 선거였다’”, ≪동아일보≫, 2012. 12. 20.





2) 같은 기사.





3) ≪독일 이데올로기≫, MEW, Bd. 3, S. 46.





4) 신정민ㆍ박국희 기자, “[오늘 대선] 朴 ‘중산층 70% 시대로’… 文 ‘투표가 권력 이길 것’”, ≪조선일보≫ 2012. 12. 19.





5) 같은 기사.





6) 조수진 기자, “[박근혜 대통령 당선]문재인 ‘朴당선인 상생의 정치로 나라 이끌어주길’”, ≪동아일보≫, 2012.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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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7 제18대 대선― 무엇을 주목하고 무엇을 배울 것인가? 채만수|소장 2013-01-14 2305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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